신자의 일하는 동기

[고린도전서 3장 12절~17절]
12절 -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절 -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절 -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절 -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16절 -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절 -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공산주의자들이 좋은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도 좋다고 해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 결과보다 그 일의 동기를 더 중요시하십니다. 무슨 일이나 그 일의 동기가 순수하고 좋아야 합니다. 동기가 나쁘면 그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먼저는 동기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좋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오늘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함에 있어서 바른 동기로 일하는 성도가 되기 위하여 성도가 일함에 있어서 버려야 할 잘못된 동기의 일과 취해야 할 올바른 동기의 일을 살펴봄으로써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잘못된 동기의 일
첫째, 구원받기 위해 일하는 것은 잘못된 동기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기 위해 일하고 봉사합니다. 전에 목사 고시위원이 돼서 막 목사 안수받을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전도사님 구원 받았습니까?' 했더니 '예, 구원받도록 힘쓰고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습니다. 자기 자신도 구원받은 확신이 없으면서 누구를 구원하겠다는 말입니까? 구원과 영생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거저받는 선물이지 행위의 결과가 아닌 것입니다.
엡 2:8, 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것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롬 3:20, 24, 롬 4:4, 5). 인간의 행위란 죽은 것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롬 8:6-8). 거듭나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육에 속한 자이며 육신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서 일해서도 안되고 또 일할 수도 없습니다. 도리어 일하기 위해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구원받았으니 일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좋아하기 때문에 일하는 것은 잘못된 동기입니다.
주의 일하는 것을 비둘기나 강아지 기르듯이 오락이나 취미삼아 하는 이도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두는 것은 다 잘못된 동기입니다.
전에 시골 교회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어렸을 때 조실 부모하고 고모 손에서 제멋대로 자란 사람이 속장이 되고 권사까지 되었는데, 이 사람은 제 기분나면 열심히 일하고 제 기분 나쁘고 제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한번은 추운 겨울날 급히 교회 일할 것이 있어서 찾아갔더니 벌렁 누워서 대답도 하지 않고 내다보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나 괘씸하던지 도무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종래 신앙 생활을 못하고 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일은 좋아하고 말고 하는 데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 되어서도 안 되고, 기분에 따라 하는 것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의 명령대로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다른 사람이 하니까 나도 따라서 일하는 것은 잘못된 동기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따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함께 행동하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었으나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가고 아브라함과 함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넷째, 남의 칭찬 때문에 일하는 것은 잘못된 동기입니다.
예를 들면 '야! 그 사람 참 열심이다', '야! 그 사람 참 말 잘한다', '그 사람 헌신적이다' 등의 사람들의 칭찬을 듣기 위해서 일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동기입니다.
옛 이야기에 개구리가 칭찬해 주는 배에 배를 자꾸 불리다가 결국 배가 터져 죽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존 번연(John Bunyan)이 한번은 설교를 하고 났더니 '오늘 당신 참 설교 잘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겸손히 모자를 벗어 인사하면서 '당신이 말하기 전에 마귀가 먼저 말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남의 칭찬을 들을 때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하물며 남의 칭찬을 들은 것 때문에 일한다면 순수한 동기의 봉사가 아닙니다.

다섯째, 무엇을 얻을까 하는 이기심에서 일하는 것은 잘못된 동기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물질의 이익이나 예수님이 왕이 되면 한자리 해먹을까 하는 이기적인 욕심과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참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예수님을 팔아먹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자기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동기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여러 가지 직분을 맡아 일하고 봉사하는데 잘못된 동기에서 하지는 않는가 반성해야겠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한다든지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한다든지 다른 사람이 하니까 따라 한다든지 남의 칭찬 때문에 하거나 이기심 때문에 해서는 결코 안되겠습니다.

2. 올바른 동기의 일
첫째, 자기 부인이 있어야 합니다.
눅 9:23, 24절에 "...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요 12:24-26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섬기려면 자기를 철저히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듯 하면서 자기를 도리어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어느 분이 '전에는 내가 살았으나 지금은 내가 죽었노라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 계신다'고 한 것은 참으로 훌륭한 자기 부인의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참으로 끈질기고 무시무시한 것이 자아입니다. 얼마나 많은 방법으로 자기를 나타내려 하는지! 겸손한 듯 하면서 교만한 자아가 살아나고, 알지도 못하고 경험도 못 한 것을 아는 체하고 경험한 것처럼 말하는 위선의 자아, 위대해지려고 하고 무슨 일이나 우두머리가 되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 야망의 자아, 사울 왕이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가 어깨 위만큼 더 큰 자였던 것 같이 잘난체 하는 자아, 하나님의 영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열심있는 자아,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거룩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종교적인 자아도 있습니다.
자아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그 생명이 끈질기고 천천히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훌륭한 일을 해냈다면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신 것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소년이 구슬치기를 잘 합니다. 이 소년은 구슬치기를 하기만 하면 다 땄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친구는 하나 하나씩 다 떨어져 나갑니다. 어느날 이 소년은 목사님과 대화하면서 목사님께 말씀드리기를 '나는 구슬치기를 잘 하는데 왜 친구가 자꾸 떨어져 가는지 모르겠습니다'하니까 목사님께서 소년에게 묻기를 '너 하나님께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하니?' 그러자 이 소년은 '하나님, 구슬치기를 잘 해서 구슬을 따 먹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얘야, 그것은 잘못된 기도란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생명을 버리시기까지 했는데 너는 남의 것을 자꾸 따 먹기만 하니까 친구가 떠나가지 않니. 지금부터는 네가 희생하고 구슬을 주고 포기하는 사람이 될 때 친구들도 너에게 다가오고 네가 믿는 하나님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단다'하고 타일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하나님은 네 하나님이시다. 네 하나님을 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타일렀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자기의 생명까지 버리신 하나님을 보여줘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생명을 버리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희생하고 헌신하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사랑의 하나님을 더 좋게 생각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둘째,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바치고 헌신해야 훌륭한 일꾼이 되고 훌륭한 제자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를 위해서 했습니다.
복음성가 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주님 나는 오늘부터 모든 것을 버리고
일편단심 주님만을 사랑하겠습니다.
주님 위해 나는 살고 주님 위해 일하고
주님 위해 고생하며 주님 위해 죽겠네'
'나를 위해 죽어주신 주님 생각할 때에
생명이나 물질이나 아깝지 않습니다.
주님 위해 나는 살고 주님 위해 일하고
주님 위해 고생하며 주님 위해 죽겠네'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바치고 헌신하는 자들을 통하여 많은 생명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들이 크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셋째, 고난 중에 즐거워해야 합니다.
행 9:16절에서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고 한 것은 아나니아가 바울의 장래를 예언한 말씀입니다.
또한 고후 4:11절에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억울한 말을 듣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즐거워해야 합니다.
골 1:24절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말씀했습니다.
교회를 위하여, 남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고후 12:10절에서 사도 바울은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에만 관심을 두고 교회와 남의 유익을 위하는 동기로 일한다면 우리는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위하여 일하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동기로 열심히 충성하여 주님의 참된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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