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모하라
[이사야 40장 27절~31절]
27절 -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절 -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절 -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절 -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절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오늘은 '하나님을 사모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면 먼저 이 제목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 본문의 '앙망하라'(waitupon)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앙망하다'는 말의 뜻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기다린다', 혹은 '바라본다', '사모한다', '의지한다' 라는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가지 뜻만 선택한다면 '사모한다' 또는 '갈망한다'라는 말을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사모하라고 이렇게 간곡히 말씀하셨겠습니까?
여러분, 예를 들어서 우리가 돈이나 애인을 사모한다고 하면 그것은 왜 사모하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이요,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귀중히 여기기 때문이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믿기 때문에 그 돈이나 그 애인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사모한다는 것의 의미
하나님을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이요, 귀중히 여긴다는 뜻이요, 의지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몹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귀중히 여기며 의지하고 믿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성도들에게 세상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참으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그 마음속 깊이 하나님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정상적인 성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남편이 먼 나라에 갔는데 집에 있는 부인이 남편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필시 그 부부 사이는 금이 갔거나 어딘가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남편과 아내로 비유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랑이요 성도는 그 신부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된 우리 성도들은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갈망하는 것이 정상적이요, 그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요, 그리스도와 정상적인 관계가 맺어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갈급히 사모해야 될 이유
부부간에도 기다리고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애정에 금이 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 곧, 예수님의 신부들이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고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말라기 1장에 보면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찾아보면 야곱은 하나님과 그 은혜를 간절히 사모한 사람이었고, 에서는 그 사모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야곱은 덩치도 작고 왜소하여 형만 못하고 도덕적으로 보면 아주 약삭 빠르고 간사해서 아버지와 형을 속일 때도 있었지만 그 중심엔 늘 하나님과 그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고 갈망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의 장자권도 빼앗고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라도 아버지한테 축복기도도 받고 환도뼈가 부러지기까지 하나님에게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대범하고 너그러워 보이고 남성적이었으나 동생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의지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산 상속권이요 축복의 열쇠가 되는 장자권마저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선해 보이고 신사적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야곱과 같이 그런 갈급한 마음이 있을 때에 그 사람을 더 기뻐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약 4:4절에서 보면 "간음하는 여인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간음하는 여자들이라고 하는 것은 육체적인 간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인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주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세상을 더 사랑하며 세상과 벗이 되면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계 3:16절에 보면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에 대하여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갈급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자를 기뻐하십니다.
삼상 2:30하반절에 보면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십니다.
시 42:1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뜨거운 여름에 목이 말라 시냇물을 먹고 싶어서 찾는 것처럼 하나님께 대한 목마름을 느끼는 사람이 생명수를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갈급히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렘 2:13절에 보면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만족을 주시고 축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안에서 살아야 할 백성인데도 하나님을 떠나서 터진 웅덩이를 파는 분은 없습니까?
요 7:37절에 보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마른 마음이 있고 갈급한 마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실 수 있는 것이지 그런 목마름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생수를 마실 수가 없습니다.
팔복 중에도 첫째 가는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했습니다. 심령의 배고픔과 갈급함을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도 첫째가는 복인 것입니다.
수가성의 여인은 남편을 다섯 번이나 갈아 살았지만 만족이 없고 컬컬함을 느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서 생수를 마셨던 것입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돈은 많았지만 그 심령이 답답하고 갈급함이 있었으므로 뽕나무 위에까지 올라가서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 혹은 철야기도 하고 싶은 마음, 금식기도 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다 은혜인 것입니다.
요한 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서 1미리만 떨어져 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도 피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모하여 항상 주님께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모하게 하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의지하지 않고 멀리 떠나는 것을 끌어 당겨서 억지로라도 당신을 앙망케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우리에게 무능함과 부족함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무능함과 약함을 깨닫게 해주셔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서는 살 수 없다고 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사모하게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다른 사람의 병은 손만 얹어도 낫고, 손수건만 대어도 죽은 자가 살아나기도 했는데 자기 몸속에 있는 병은 낫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 번이나 기도했을 때 응답으로 '나의 약함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해주신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고후 12:10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고난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내가 가장 부족하고 약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제일 강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둘째, 환난과 고통을 통하여 사모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편안할 때는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힘으로 견딜 수 없는 시련과 고통과 환난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게 됩니다.
출애굽기에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종노릇하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악한 왕을 만나서 핍박을 받고 사내아이가 모두 죽임을 당하고 벽돌을 굽게 하고 매를 맞게 되니까 그제서야 그 곤욕으로 하나님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출 2:23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고 했습니다.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게 한 다음에 그 기도가 상달해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하는 신호인 것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셋째,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모하게 합니다.
사람이 사업에 실패를 하고 사랑에 실패를 하고 세상의 모든 믿었던 것이 무너지게 될 때 어쩔 수 없이 손들고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모하고 귀중히 여겼던 것을 하나 하나 그 기둥을 뽑아버린 뒤에 실망과 낭패를 당하게 하시고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기도의 응답마저 없어 보이고 하나님마저 나를 버렸다고 느낄 정도로 완전히 절망을 느끼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럴때일수록 하나님은 가장 가까이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실패는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시 119:8절에 보면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후 1:8절에 보면 "힘이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낭패와 실망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이해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인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절망을 느끼는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내 지혜나 재산이나 사업의 아무 것도 믿을 것이 없다는 것을 의식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와 가장 가까이 계시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첫째, 새 힘을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없어지고 곤비하고 피곤하여 넘어져도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는 독수리처럼 올라가는 새 힘을 주십니다. 마릴린먼로 같은 돈 많은 세계적인 여배우가 왜 자살을 했습니까? 헤밍웨이 같은 유명한 사람은 왜 자살을 했습니까?
세상 것을 사모하고 사랑하면 할수록 나중에는 더 큰 낭패와 실망만 당하게 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사모하는 자는 점점 더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습니다.
렘 29:12, 13절에 보면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쫓아온다고 할 때 아무리 해도 해결이 안되었는데,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나니까 형과 사랑으로 만나는 문제 해결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셋째, 구원을 얻습니다.
사 45:22절을 보면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모해서 나오는 자를 절대로 그냥 돌려보내거나 내어쫓지 아니하십니다.
넷째,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십니다.
시 25:3절에 보면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수치를 당하는 것처럼 큰 징계가 없습니다. 앙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해 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다섯째, 회복시켜 주십시다.
대하 7:14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건강을 잃어버리고 물질을 잃어버리고 수치를 당하고 낭패를 당했을지라도 하나님을 사모하고 돌아오게 되면 하나님은 회복시켜 주십니다.
여러분,
여호와를 사모하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십시오. 항상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삶의 가장 큰 은혜, 빛으로 오신 예수님 (사 9:1~7) (0) | 2016.12.23 |
---|---|
넓힙시다 (사 54:1~3) (0) | 2016.09.01 |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사 55:6~9) (0) | 2016.05.31 |
사랑의 하나님을 의심하지 맙시다 (사 49:14~17) (0) | 2016.03.11 |
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 (사 66:1~4) (0) | 2016.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