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서신 - 요한일서
세상을 이기는 빛의 자녀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있던 생명의 말씀이시다. 이를 믿는 자는 마지막 때에 거짓에 미혹되지 않고 진리를 올바로 분별할 수 있다.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본받아 계명을 지킴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마땅히 사랑의 계명을 지키고, 선한 것을 본받으며, 악한 것을 내쫓아야 한다.
요한서신 한눈에 보기
본문 | 요한일서 | 요한이서 | 요한삼서 | |||
1:1~2:17 | 2:18~29 | 3:1~4:21 | 5:1~21 | |||
요점 | 빛과 세상의 대비 (편지를 쓰는 동기) | 적그리스도를 경계하라 | 아버지가 주신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라 | 세상을 이기는 믿음 | 사랑으로 행하라 | 영접할 자와 내쫓을 자 |
주제 | 빛 | 거짓 | 사랑 | 승리 | 새 계명 | 선과 악 |
저자 | 요한일서는 저자에 대한 언급이 없고,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는 '장로'라고 칭한다. 요한복음과 비슷한 특징 표현 때문에 교회 역사 초기부터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썼다고 전해 온다. 요한서신에는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증언들이 있다. | |||||
기록시기 | 확실하지 않지만 복음서가 기록된 이후인 듯하다. 주후 85~95년경으로 추정한다. | |||||
목적 | 편지들은 영지주의의 위협에 맞서고 있다. 영지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형시키는 거짓 교사들이 전한 비도덕적인 가르침이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가 실재하지 않는 영적 존재라고 주장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육체의 부활을 위협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고 듣고 만진 증인들은 거짓 가르침에 맞서 정결한 삶을 살라고 촉구한다.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건들을 기술하며 거짓 교사들에 대해 경고한다. |
요한일서 : 빛 가운데서 서로 사랑하라
빛과 세상의 대비 (1:1~2:17)
요한일서의 첫머리는 요한복음과 매우 유사하다. 세상에 생명을 주는 '말씀'을 언급한다. '말씀'은 세상에 물리적으로 임재했다. 저자는 이 말씀을 보고 듣고 만졌다. 누구든지 빛를 보고 어둠 속에서 살 수는 없다. 빛은 하나님의 특징으로, 어둠을 몰아내고 진리를 들어낸다. 모두가 죄를 짓고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를 본받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이 새로운 계명은 이미 요한복음에도 언급된 것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요 13:34~35). 이 명령에 순종하고 실천할 때 어둠이 물러간다. 빛과 어둠을 동시에 사랑할 수는 없다.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사랑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빛 가운데 걸어가야 한다.
편지를 쓰는 동기 (2:12~14)
대상자 | 저작 동기 | 저작 동기의 반복 | 의미 |
자녀들 | 그분의 이름으로 죄 사함 받았음을 앎 | 하늘 아버지를 앎 | 순진무구함으로 죄를 용서받음 |
아비들 |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 |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 | 지혜로 하나님을 알게 됨 |
청년들 | 악한 자을 이김 | 하나님 말씀이 안에 거하며 흉악한 자를 이김 | 열정으로 어둠을 물리침 |
하나님의 자녀와 적그리스도 (2:18~29)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거짓 교사들이 퍼뜨리고 있는 교리이다. 거짓 교사들이 갑작스럽게 출현하는 것은 교회가 마지막 시대에 돌입했다는 징조이다. 거짓 교사들은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부인한다. 하지만 진정한 제자는 진리를 알고 있다. 따라서 진리 위에 든든히 서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가 보이신 모범을 따름으로써 그분과 연합해야 한다.
적그리스도 (2:18)
'적그리스도'는 요한서신에만 등장한다. 바울은 이와 비슷한 의미로 '불법한 자'(살후 2:8)라고 칭한 바 있다. 거짓 교사들은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가리킨다(요일 4:1~3).
형제 사랑 (3:1~4:21)
그리스도인 됨의 증거는 사랑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구별하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며, 하나님을 아는 시금석이 된다. 사랑은 진실한 행함과 관계로 표현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다 (3:20)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기에 우리도 형제를 위해 마땅히 목숨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도 형제를 미워하거나, 형제의 궁핍함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는 행함과 진실함이 없는 태도이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자신을 책망할 일이 없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며 모든 것을 아시나 덮어 주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기독교의 근본정신은 심판과 정죄가 아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여부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 (5:1~21)
예수님을 믿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분에 대한 사랑을 입증하는데, 하나님의 계명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선택하는 자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세상을 이기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믿음이다. 저자는 하나님이 세례 시 예수님께 몸을 '입혔다'가 죽음 직전에 거두어 가셨다는 영지주의 가르침을 공박한다. 이런 가르침대로 하면 예수님은 세례 당시 물은 통과하셨지만, 피(죽음)는 통과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거기에 속임수나 대체물은 없었다.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분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다. 육체로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이다.
사망에 이르는 죄 (5:16)
죄에 등급이 있어서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는 것일까, 어쩌면 저자는 기독교 진리를 고의적이고 계획적으로 부인하는 일의 엄중함을 지적하며 이것이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바로 영지주의자들이 자행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실제적인 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죄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아나니아와 삽비라(행 5장)의 같은 죄이거나 어쩌면 더 영적인 의미일 수도 있으나 단언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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