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지침서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목회와 성도의 삶에 관한 교훈을 전한다. 말씀 듣는 이를 구원으로 인도하려면, 목회자가 자신의 가르침에 맞는 삶을 보여야 한다.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상대의 말과 이론을 따르는 게 아니라 행동을 보고 따르기 때문이다. 성도의 삶을 바르게 인도하는 것은 질책이 아닌 사랑과 기도다.

디모데전서 한눈에 보기

본문

1:1~2

1:3~3:13

3:14~6:2

6:3~21

요점

인사말

교회에 관한 교훈

디모데에게 주는 교훈

마지막 교훈

저자

바울의 저작설을 반대하는 이들은 디모데전.후서가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문체가 다르다고 말하며,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과의 연관성을 언급한다. 내용 자체도 교회 제도가 견고해지고 영지주의가 본격화되는 2세기 무렵에 기록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바울의 서신서는 모두 문체가 다르다. 바울에게는 서신을 받아 적는 동역자가 있었는데, 그의 독특한 말투 등이 글에 반영됐을 것이다. 더욱이 노년의 바울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편지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바울만이 쓸 수 있는 감상적인 세부 사항들이 바울 저작설의 진정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연대

로마의 가택 연금에서 풀려난 이후, 62~65년 사이에 썼을 것이다.

목적

바울이 친아들처럼 아끼는 디모데는 지금 에베소에서 교회를 이끌고 있다. 에베소 교회에는 거짓 교사들이 전하는 거짓 가르침의 문제가 있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 바른 목양의 자세를 교훈한다.

분류

서신서 (목회 서신)


인사말 (1:1~2)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참아들'이 된 자라고 부른다. 바울은 개인적이고 친밀한 편지를 통해 어떻게 교회를 목양해야 하는지 교훈한다.

교회에 관한 교훈 (1:3~3:13)
거짓 가르침에 대한 경계 (1:3~20)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면서 디모데를 남게 한 것은 이곳에 거짓 가르침들이 난립했기 때문이다. 거짓 교사들은 다른 교훈을 가르치며, 신화와 족보를 늘어놓고, 율법을 강조했다. 이와 달리 바울의 교훈은 그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복음만을 따르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 한때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던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께 긍휼을 입어 직분을 맡게 된 과정을 소개한다. 이어서 바울은 전에 디모데에게 준 '예언'을 언급하며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하라고 권한다. 바울은 믿음에서 파선한 후메내오(딤후 2:17)와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딤후 4:14)를 사탄에게 내주었다(딤전 1:19~20). 즉, 이들은 교회에서 출교됐다.
기도와 여자들에 대한 가르침 (2:1~15)
바울은 권력자들을 위해 기도하되,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또한 분노와 다툼 없는 기도를 드리라고 한다. 교회 내 여자의 행함에 대한 교훈(2:9~15)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특히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2:15)는 바울의 언급에 대해 경건한 여성은 어머니 역할을 완수한다거나, 그리스도를 낳은 마리아의 행함을 은유한다거나, 경건한 여성은 출산 중에도 안전할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장로(감독)와 집사의 자격 (3:1~13)
교회 지도자인 장로(3:1~7)와 집사(3:8~13)의 자격을 다룬다. 장로(감독)는 전체 리더로서 교회를 책임지고 돌본다. 집사는 장로를 보조하며 다양한 실천적 의무를 수행한다. 스데반과 빌립처럼 가르치는 집사도 있었다(행 7~8장). 장로는 남자로 한정된 듯하지만, 집사는 여자도 될 수 있었다. 장로든 집사든 공히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여야 했다.

디모데에게 주는 교훈 (3:14~6:2)
경건의 비밀 (3:14~4:5)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는 교훈에서 친밀한 감정을 드러낸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에서 바르게 행하기 위해서는 성령 안에서 거짓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핵심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 (4:6~16)
그리스도의 일꾼은 진리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자신을 연단해야 한다. 다른 이들의 존경심을 얻을 필요도 있다. 또 모든 일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성도를 대하는 태도 (5:1~6:2)
교회는 과부와 고아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가족의 책임이 우선이지만, 친척이 없는 경우에는 교회가 나서야 한다. 바울은 누구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자세한 지침을 준다.

마지막 교훈 (6:3~21)
바울의 마지막 경고는 재물에 관한 것이다. 돈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다. 부자는 정함이 없는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선을 행하는 데 재물을 사용해야 한다.


디모데전 · 후서 길라잡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경건 - 김규섭 대신대학교 초빙 교수


사람들은 대개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약의 교회는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많은 것을 소유하기보다 가진 것을 나누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며,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이었다. 바울은 디모데전후서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을 '경건'이라 부른다(딤전 2:2; 3:16; 4:7~8; 6:3, 6, 11; 딤후 3:5, 12).


바울 시대의 경건

경건(헬라어로 '유세베이아')은 바울 서신 중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에만 사용되는 개념이다. 이는 목회 서신의 특별한 상황과 관련될 수도 있지만, 디모데전후서의 강조점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하나의 척도이기도 하다. 경건은 당대 사회 문화에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었다. 그레코-로만 철학과 헬레니즘 유대교에서 경건이란 일종의 의로운 행동 양식으로, 신에게 충성되고 사람들에게도 충실하다는 개념이었다. 신에게만 충성되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경건은 고대에서 낯선 것이었다. 바울은 이러한 당대의 경건이라는 개념을 차용 또는 수정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경건의 개념을 디모데전후서에서 정립한다.


자기 사랑에서 이웃 사랑으로

어떤 학자들은 디모데전후서의 경건을 훌륭한 기독교 시민이 되는 것으로 보고, 경건의 개념이 당시에 교양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도입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디모데전후서의 경건은 '이 세상과 구분되는' 그리스도인의 사고방식과 관련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숙함'(딤전4:15)을 요구하는데, 이는 '마음의 성장'을 의미한다. 곧 믿음이 있는 삶은 마음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발전하는 것과 경건이 연결된다고 보았다.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성장한다는 것은 자기중심의 생각에서 나아가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사고방식으로까지 성장한다는 뜻이다. 경건은 행동 양식이지만, 바울은 행동이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바울은 믿음을 양심과 연결시키며, 믿음이 있는 삶과 양심적인 삶은 상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딤전 1:19, 3:9, 4:1~2). 양심은 마음의 기능을 나타내기에 의지, 결정, 판단을 좌우한다고 본다. 반면 어떤 사람들이 실패한 이유는 마음이 부패했기 때문이다(딤후 3:8). 마음이 부패한 것은 악덕 목록(딤후 3:2~4)과 관련된다. 악덕 목록은 '자기 사랑(2절)'으로 시작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는 것(4절)'이라는 사랑 개념으로 끝난다. 곧 바울은 자기 사랑(욕망)과 하나님 사랑을 상반되는 가치로 보고, 쾌락(욕망)과 자기 사랑에서 벗어나 하나님 사랑에 이르는 것을 경건과 연결시킨다(딤후 3:5 참조).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마음의 성장이다.
우리는 두 개의 사랑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이는 나 자신의 안락함을 사랑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느냐로 요약할 수 있다. 디모데전후서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개념이 아니다. 성도는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관대해야 한다(딤전 6:18). 바울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나그네 대접과 환난당한 사람을 돕는 것을 언급한다(딤전 5:10). 다른 사람을 돌보지 않는다면 경건한 삶이 아니다. 이는 전도를 하거나 이웃의 영적 필요를 채워 주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물질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것까지 의미한다. 경건은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루어질 때 온전한 것이 된다.

결론적으로, 바울에게 경건은 일종의 '욕망의 치유'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삶, 욕망에 순응하는 삶은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다. 남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안락함만 추구하는 것은 경건한 삶이 아니다. 이타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 영적인 것이며, 경건이다. 욕망으로 어지러워진 마음이 치유되어 자신의 유익을 버리고 하나님과 타인을 사랑하는 삶이 진정 경건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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