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가이오에게 축복한 내용은(요삼 1:2)?

가이오의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행하는 일이 잘 되고,
육신이 강건하기를 축복했습니다.
여기에서 유념해 보아야 할 두가지는 범사의 형통과 육신의 건강입니다. 영은 거룩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적 사고를 버리고 항상 영육간에 균형잡힌 발전을 도모해야 합니다.


요한은 가이오의 어떠한 행위를 칭찬했나(요삼 1:3)?

가이오의 선하고 신실한 행위를 칭찬함.
선행의 지속을 유도하며 선도하는 사역자에 대한 봉사는 주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 것으로써 성도가 행해야 할 의무입니다.


디오드레베의 죄악성은 무엇인가(요삼 1:9-11)?

순회 교사 때문에 교회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권위 실추와 기득권이 상실될 것을 염려하여 순회 교사를 박대하고 순회 교사를 대접하는 자들을 교회에서 파면한 행위.
이 일은 자신의 단순한 정욕과 이기심의 발로로 생겨난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스스럼없이 훼방하는 자들로 경계의 대상이 됩니다.


데메드리오의 인물됨은(요삼 1:11, 12)?

회중의 인정을 받았고, 진리를 몸소 행했으며 사도에게 인정을 받은 인물.
성도는 하나님께 속한 선한 행위로 인해 신자에게뿐만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출처 : 갓피플


1. 요한삼서의 이해
버논 맥기(Vernon McGee)는 요한삼서에 대해 "요한이서에서는 진리 수호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본 서는 그 진리를 위해 일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진리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전도자를 영접하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도자의 역할이 진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를 돕는다는 것은 바로 진리를 위함이기 때문이다.

2. 내용 분해
Ⅰ. 인사말(1:1)
Ⅱ. 가이오의 덕망에 대한 칭찬(1:2-8)
1. 가이오의 경건(1:2-4)
2. 사역자들에 대한 대접(1:5-8)
Ⅲ. 디오드레베에 대한 책망(1:9-11)
Ⅳ. 데메드리오에 대한 증거(1:12)
Ⅴ. 끝인사(1:13-15)

3. 교회
오랜 세월에 거쳐 그 세대의 삶의 정황에 따라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각기 특성있는 정의들이 내려져왔다. 이를 고대와 중세, 근대및 현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고대 감독들의 정의
고대 교회 직후에는 체계적으로 교회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유대의 율법주의, 영지주의의 위협이나 이단들의 위협을 당하면서 교리적인 체계를 세우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에 대한 정의도 단편적이지만 내려지기 시작하였다.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리용의 이레나이우스(Irenaeus), 터툴리안(Tertullian), 키프리안(Cyprian) 등 많은 감독들은 교회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회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기 처해있는 정황에 의해 교회에 대해 언급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교회에 대한 정의는 점차적으로 정리되었는데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로 축약되었다. 사람에 따라 이부분들은 각기 서로 다르게 강조되었다. 우선 '하나의 교회'란 예수그리스도로 인한 지역을 넘어선 하나의 교회를 의미하고, '거룩한 교회'란 세상과 분리되는 거룩한 하나님을 본받는 교회를 의미한다. 또 '보편적 교회'란 시공을 초월한 교회를 의미하고, '사도적 교회'란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계승한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승을 받고있는 교회를 의미한다. 그리고 성만찬, 교제, 직제 등이 강조되기도 하였다.
2) 중세 교부들의 정의
중세의 교회론을 체계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이라 볼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시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도나투스파에 대항하면서 교회론을 발전시켰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교회에만 성령이 있으며 교회도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로 나뉘어 가라지와 진정한 성도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라 보았다. 그리고 도나투스파의 가시적 성화에 반대하여 교회의 보편성을 주장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중세의 교회는 사도 베드로에게 감독권이 있다고 보았고 사죄의 열쇠 또한 그에게만 있었으므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의 권위가 매우 존중받게 되었다. 또 교회의 표시인 성만찬은 화체설로 변하였으며, 7성례가 교회의 표지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중세의 교회론은 많은 종교회의(니케아-콘스탄티노플 회의, 칼케돈 회의, 라테란 공의회, 플로렌스 공의회 등등)를 통해서도 정의되었다.
3) 근대 종교개혁자들의 교회론
중세에 내려졌던 교회에 대한 정의는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화체설이나 교황의 권위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은 여러가지 교회의 표지 중에 세례와 성만찬만을 대표적인 교회의 표지로 채택하였다. 그리고 화체설은 부인되었으며 설교권과 성경 해석권이 교황에게만 있다는 것을 거부하였다.
교회의 전통적인 정의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는 그대로 옹호되었고 이와 더불어 만인 제사장설이 교회에 도입되었다. 그리고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는 루터에 의해 구체적으로 발전되었으며 고대 교회의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직제, 기도, 설교 등도 강조되었다.
4) 20세기 교회론
많은 신학자, 칼 바르트, 불트만, WCC(World Council of Churches)등에 의해 교회론이 다양하게 정의되었는데 교회사적으로 정의된 교회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복잡한 정의들이 생겨났다. 자세히 살펴보면 WCC가 제시한 교회론에 의하면 구원이 과연 교회에만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지가 의심될 정도의 확장된 의미를 갖게되었다. 인종, 성차별, 장애자 등 다양한 소외된 자들을 구원의 그늘로 맞아들이려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교회의 사회 봉사적인 측면이 매우 강조되고 있으며 정치적 참여도 적극적으로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과거의 전통적인 교회에 대한 인식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교회론도 존재하게 되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본 서에서 요한은 세사람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 세사람을 통하여 당시에 보여지는 교회의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이곳에서 요한은 고유 명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내용면에서 교회에 걸맞는 표현이다. 즉 교회의 역할이 복음을 증거하며, 예수그리스도를 좇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지만, 전도자를 조력하는 것도 그 역할의 한부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세사람들을 통해 요한은 전도자를 어떻게 접대하는지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1. 가이오에 대한 칭찬(요삼1:1-8)
요한은 가이오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누구인가? 요한은 가이오에게 축복의 말을 하였는데 그것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가이오는 어떠한 선행을 하였기에 요한으로부터 축복을 받는가? 그리고 그의 행실이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는가?
1) 교회의 선한 행위
요한은 가이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가이오란 이름은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그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신약성경에는 모두 네명이 나온다(행19:29 ; 행20:4 ; 롬16:23 ; 고전1:14). 사도 요한은 모든 성도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였다고 말하고 있다(요삼1:4). 요한의 기쁨은 가이오로 인함이었다. 그래서 가이오에게 축복의 말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삼중적 축복이다. 즉 영혼과 육신의 건강과 이세상의 삶의 번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요삼1:2). 그렇다면 가이오는 왜 이러한 축복의 말을 들었을까? 그것은 간단하다. 성도로서 해야할 마땅한 의무를 행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이오의 생활이 선행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전도자들을 후히 접대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요한은 가이오에게 한가지 부탁을 한다(요삼1:6). 이 말은 하나님의 일을 대리로 하는 전도자들을 대접하기를 하나님께 하듯 하라는 의미이다.
2) 대접하라
교회라는 공동체가 아름답게 성장하려면 서로 대접하는 모습들이 보여져야 한다. 복음 전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행해야할 의무요, 책임인 것이다. 그일 중 하나는 바로 전도자를 후히 대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활이 정결하고 진실된 생활이며 복음을 따라사는 삶인 것이다.

2. 디오드레베와 데메드리오(요삼1:9-12)
요한은 두사람을 소개하면서 이들의 행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각각 어떻게 말하여지고 있는가? 특히 디오드레베의 악행은 어떠한 것이며, 그가 그렇게 행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라고 생각되는가? 요한은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말하면서 가이오에게 어떤 부탁의 말을 하는가? 한편 디오드레베는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가?
1) 경계의 대상과 모범의 대상
요한은 디오드레베를 있어서는 안될 교만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디오드레베는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요삼1:9). 그는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복음 전도자들을 멸시하였다. 그것은 요한이 본 서신을 보내기 전에 보냈던 서신을 아마도 찢어버렸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요삼1:9). 그래서 요한은 직접 방문하여 그를 책망할 생각이었다(요삼1:10). 요한은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크게 네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요삼1:9,10).
첫째로 사도로서의 요한을 무시하였으며, 두번째로는 요한과 복음 전도자들에 대해 악한 말로써 비방하였다. 이것은 그들을 거짓으로 고소하는 장면에서 볼수 있다(요삼1:10). 이것은 결국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에게 목회자에 대한 거짓 증거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수 있다. 세번째로 성도로서 해야할 당연한 의무인 형제 접대하기를 하지 아니하였으며, 네번째로 오히려 전도자들을 접대한 사람들을 출교시킨 것이다. 요한은 디오드레베의 악행에 대해 말하면서 가이오에게 선을 행하도록 한다(요삼1:11). 디오드레베를 통해 사도 요한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2) 있어서는 안될 사람
어떠한 공동체든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그 공동체내에서 지위나 특권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지위로 인해 교만해진 사람, 상대편의 권위를 인정해 줄줄 모르는 사람, 거짓으로 고소하는 사람들은 공동체내에서 없어져야 할 것이다.

3. 끝인사(요삼1:13-15)
요한은 편지글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소원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에서 보여지는 요한의 의도는 어떠한 것인가? 서신서의 형태가 그러하듯이 항상 문안 인사와 끝 인사가 있다. 요한은 본 서신을 어떻게 시작하고 있으며, 끝맺고 있는가?
1) 기쁨의 마음과 간단한 끝인사
요한은 먼저 가이오에 대한 축복의 말로 본 서신을 시작하고 있다(요삼1:2). 그는 가이오의 행동에 대해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 서신을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는 마지막에 자신의 마음을 말하면서 서신을 끝내고 있다. 그는 더 할말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대면하여 말할 것을 밝히고 있다(요삼1:13,14). 이것은 가이오가 속해있는 교회의 형편과 처지가 좀 긴박한 상황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즉 디오드레베의 악행으로 인해 교회 전체가 혼란의 도가니로 빠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짧은 편지로써는 도저히 이러한 것에 대해 대처할 수 없었기에 직접적으로 만나고 싶어하는 요한의 간절하고도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요한은 간단한 인사로써 본 서신을 끝맺고 있다(요삼1:15).
2) 기쁨을 주는 삶
요한은 자신의 심정이 가이오로 인해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력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선행에서 오는 결과인 것이다. 우리의 삶의 결과로 인해 타인에게 기쁨을 주고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성도로서의 겸손하고 진실된 삶을 살때 남에게 기쁨을 줄수 있는 것이다.

요한은 본 서신이 그저 한사람의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전교회에 적용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많은 성도들의 삶이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와 같은 삶이 되어야 하며 결코 디오드레베의 삶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주고있는 것이다. 성도들은 영접해야할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구별할줄 알아야 한다. 특히 영접해야할 사람임에도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영접치 않는다는 것은 큰 잘못이다. 바로 교회와 성도는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제목 : 영혼이 잘되는 사람 (피종진 목사)

 

[요한삼서 1장 1절~4절]

1절 -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절 -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절 -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절 -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1. 간구함이 있어야 한다. (기도)

  - 기도할 때 영혼이 소생하게 되고, 깨워있게 되고, 담대하게 된다.

  - 시편138: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 기도할때는 좌절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다.

  - 주님께 구하고, 의지하고, 맡기고, 소망할때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다.

  - 항상 기도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2. 진리 안에서 행해야 한다.

  - 믿음 안의 생활, 말씀 안의 생활, 예수님 안의 생활이 진리다.

  -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보장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 야고보서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진리 안에 행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

  - 마태복음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3.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 하나님 앞에 내 생활이 정착되어 있을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다.

  -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함이 있으면 불평이 없어지고 사랑이 생긴다.

  -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함을 준다.

  - 주님을 사모하고,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고,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일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고, 믿음의 생활을 사모하고, 좋은 것을 사모하라.

 

4. 말을 조심해야 한다.  

  - 잠언21:23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 우리의 혀에서 주의 말씀, 주의 성령의 능력, 주의 권세 있는 말이 나와 축복받는 삶이 되어야 한다.

  - 혀는 사람의 생사를 다스리는 권세가 있다 - 은혜로운 말, 축복의 말, 위로의 말을 하는 권세를 받자.

 

※ 영혼이 잘 될때 범사가 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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