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절]
그 미래임이니라. 세상 사람들은 단순히 세상에서 잘 먹고 건강한 것을 지상 목표로 생각한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악착같이 잘 살려고 한다. 이런 자들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의 고통을 조롱하며 무시한다. 그러나 여기 전도자가 놀라운 미래 지향적 신앙으로 고백하였듯이 성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미래의 영원한 구원인 것이다.
(9:13~10:1절)
지혜의 불완전성 - 먼저 9:13~16절은 지혜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부당한 자세를 지적하고 있고, 9:17~10:1절은 인간 지혜 자체의 결함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세상 지혜는 그 자체로도 완전하지 않고 또 세상에 대하여 실질적 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 자체로서도 충족하며 또 천하를 직접 좌우할 능력이 있는 지혜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밖에 없다(시 104:24; 잠 3:19; 단 2:20, 21; 롬 11:33).
(2~12절)
하나님 없는 생의 불확실성 - 본서가 해 아래 세상의 부정적 측면을 적나라하게 제시함으로써 성도들에게 간접적으로 '그러면 이런 헛된 세상에서 구원의 길은 없는가?'라고 자문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서론과 각 문단 강해에서 밝혔었다. 그런데 이제 본서 후반부인 이 부분에서도 이를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본서 후반부는 비교적 많은 잠언 형태의 글이 계속되는데 이를 읽을 때 그 부정적 견해에 잠시 어리둥절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간접적 충격 효과를 노린 전도자의 의도와 본서의 전체적 맥락, 나아가 성경 신학 전체의 시각에서 각 구절을 심층적으로 이해해야지 어느 한 구절만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이 부분은 2, 3절에서 죽음 등 인간 만사가 외부적 현상만을 볼 때에는 선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임하므로 크게 모순되고 희망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나서, 4~10절에서 이런 세상에서 성도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지를 밝힌다. 그 후 전도자는 11, 12절에서 다시 한번 인생은 인간의 생각이나 뜻이나 능력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좌우되며 인간은 그 모든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음(8:15~9:1)을 거듭 밝히고 있다.
[2~3절]
선과 악의 양립,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에 대한 전도자의 회의가 언급되어 있다(2:12~23).
[3절]
해 아래서(1:3). 그것은...악한 것 즉 죽음이 이토록 혐오스러운 것은 그것이 죄의 삯으로 온 것이기 때문이다(롬 5:14; 롬 6:23).
(4~10절)
적극적인 삶의 태도 - 4~6절은 죽음을 전제할 때 인간이 해 아래 세상을 탈출하여 모순이 없는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죽음이 오기 전까지 밖에 없다는 경고성 교훈이다. 그리고 7~10절은 비록 세상의 현실은 어둡지만 하나님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그 결과가 어찌하든지 최종적 승리를 확신하면서 삶의 기쁨을 누리며 적극적이고도 낙관적으로 살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2:24~26; 3:11~15; 5:18~20; 8:15~17절 등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한편 7~10절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삶의 즐거움과 기쁨의 향유는 현실도피적 향락 추구를 권장하는 말이 아니라 기본적인 영혼의 만족과 평화를 가리키는 것이다(고전 10:31; 빌 4:4). 성경은 오히려 이미 구원의 약속을 얻어 영혼의 기쁨을 누리는 성도들에게 세상의 고난에 동참하라고 명령하고 있다(롬 8:17; 벧전 2:20; 벧전 5:10). 이는 성도들이 고난 중에서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벧전 1:7).
(4~6절)
살아 있는 동안에는 소망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 구절이다.
[4절]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개는 가장 멸시받는 동물이고, 사자는 반대로 가장 칭송받았던 동물이다. 이 말씀은 현세의 삶에 의해 내세의 삶이 영원히 결정되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삶의 기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훈해 주고 있다(눅 16:19~31).
[10절]
일. 하나님이 인간에게 최초로 주신 세 가지 제도는 안식일 제도, 노동의 제도, 결혼의 제도이다(창 2:1~3, 15, 22~25). 따라서 노동은 거룩한 제도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된다. 아담의 범죄로 저주받은 것은 노동 자체가 아니라, 노동에 대한 인간의 수고이다(창 3:17~19). 이러한 노동에 대한 타락상은 다음 세 가지로 나타난다. ①노동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 않는다. 어떠한 노동이라도 그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타락한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면 모든 일이 선이 되지만,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모든 일이 죄가 된다(롬 8:28; 롬 14:23). ②노동의 종류를 나누어 어떤 것은 귀히 여기고 어떤 것은 천히 여긴다. 전도자는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라'고 가르친다. 노동엔 귀천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노동을 하느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왜 노동을 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③노동을 힘써 하지 않는다. 이런 자들은 먹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으며(살후 3:10) 안식일을 제외한 6일 모두를 힘써 일하라고 명령하셨다(출 20:9)<살후 3:7~9, 그리스도인의 직업관>.
[11~12절]
시기와 우연. '시기'는 하나님이 정하신 적절한 때를 의미하고, '우연'(히, 페가)은 발생 사건을 의미한다. 인생은 시기와 우연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각양 삶의 직물을 짜낸다. 그런데 인생의 지혜만으로는 이 시기와 우연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인생은 내일 일을 자랑치 말고 하나님 앞에서 오직 겸손해야만 한다(잠 16:1~3; 잠 27:1; 약 4:13~16).
(9:17~10:1절)
세상 지혜의 한계 - 인간의 지혜는 상대적으로는 그 무엇보다도 능력이 있는 것이지만 결코 절대적인 신뢰의 대상은 될 수 없다. 그것은 다음 두 가지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혜는 큰소리나 권세자(어른)의 힘에 방해를 받을 수 있다(9:17). 지혜는 '작은 우매'로 인하여 일순간에 무너져 버릴 위험성이 있다(9:18~10:1). 따라서 전도자는 인간의 지혜도 인생이 의뢰할 궁극적인 대상이 못 된다는 것을 경고해 주고 있다. 결국 인생이 날마다 의뢰해야만 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잠 3:5, 6).
# 해설
하나님 없는 생의 불확실성 (9:2~10:1절)
4장을 기점으로 크게 2부로 나누는 관점에서 보면 4~6장은 인생의 모순상을, 7~12장은 신앙에 의한 영원한 해결책과 세상에서의 행동 원리를 말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본 9장은 7~12장의 중간 삽입부로서 잠시 분위기를 바꾸어 다시금 하나님을 통한 절대성의 확립이 없었을 때의 세상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그러나 혹자는 이 장이 다시금 해 아래 생의 모순을 말하는 점을 중시하여 전도서를 1~3, 4~8, 9~12장 등 세 부분으로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9:7~10절이 비록 소극적이지만 8:14, 15절과 함께 2:24~26; 3:9~15절과 일맥 상통하는 잠언을 담고 있다는 점으로 볼 때 역시 중간 삽입부 정도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한편 본장은 9:7~10절을 제외하고 각각 9:2~6; 9:11, 12; 9:13~10:1절의 세 문단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기본 논조는 만약 우리가 해 아래 세상만 고려한다면 선과 악, 지혜와 무지가 무원칙한 불확실성을 보여 줄 뿐임을, 더더욱 곧 망각될 한 순간의 허망한 현상일 뿐임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본 단락은 소위 현대 실존주의자들의 '부조리' 논리와 일맥 상통한다고 보여진다. 특히 9:13~18절의 인본주의적 지혜가 상대적으로 좋기는 하나 결국에는 근본적 기준 확정이 없다면 결정적으로 우매를 극복할 수 없는 상대적 한계를 갖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 핵심
1절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해 좌우됨을 나타내는 표현
흰 옷 (8절)
기쁨과 순결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솔로몬 성전에서 노래 부르는 자들은 흰 세마포를 입었다(대하 5:12).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 앞에서 영예를 얻을 때 흰 옷을 입었고(에 8:15), 천사들이 흰 옷을 입었으며(막 16:5), 하나님께 합당한 성도들, 곧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씻김을 받은 성도도 흰 옷을 입을 것이라고 했다(계 3:4; 계 7:14). 흰 옷은 기쁨의 축제 때 입는 옷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성도가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천국 잔치의 기쁨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묵상
영생의 분복(分福)을 얻을 수 있는 길 (1~3절)
인간의 삶과 죽음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인간의 행위는 헛될 뿐입니다. 따라서 헛된 인생을 추구하지 말고 생명이 있는 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인간의 생사와 구원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달려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직접 특별한 은혜를 주실 때까지 멋대로 살자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나 자신의 죄악된 처지에 비해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큰 점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히 소망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소망을 가진 자의 삶 (7~10절)
소망을 가진 자는 이생에서도 보람되고 즐거운 삶을 살아갑니다. 외형상으로 볼 때는 똑같은 인생을 산다고할지라도, 하나님을 소망하며 사는 자들에게는 기쁨과 희망이 있기 때문에 인내하며 부지런한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일의 의미 (10절)
일은 성경에 나타난 거룩한 제도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타락으로 노동이 힘들어지기는 했지만, 노동 자체가 죄의 형벌은 아닙니다. 타락 이전에도(창 2:15) 이후에도 하나님은 노동을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제외한 날엔 모두 힘써 일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다시 없는 노동의 기회로 알고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인간이 의지해야 할 지혜 (11~18절)
구원받은 성도가 진정으로 의지해야 할 참 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지혜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 속에서 인간의 지혜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정직하게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우매함이 증명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의지해야 할 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지혜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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