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머리말 1:1-4
외식적인 서언과 헌사, 아첨하는 말투, 그리고 득의만만한 태도 등은 항상 지혜롭고 선한 자들에게 비난을 받는 바이지만, 그렇다고해서 유익하고 교훈적인 말들에 대해서까지 그 비난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의 경우가 그러하다. 하나님의 친구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데오빌로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그 이름이 어떤 특정 인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일컫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데오빌로를 고위층의 특정 인물로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가는 여기서 바울이 총독이었던 베스도를 부를때 사용했던 존대의 호칭과 똑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행 26:25). 종교는 아름다운 말씨와 훌륭한 태도를 보존케 하며, 우리들의 관례에 따라, "존경받기에 합당한 사람을 존경하라"고 가르친다.
1. 누가가 이 복음서를 쓴 이유(1-3)
그는 성령에 의해 감동되어 이 복음서를 쓰게 되었으며, 복음서를 저술하는 중에도 성령에 감동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감동을 받은 것이지, 그저 기계처럼 움직여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고려하여 저술하게 되었다.
(1) 그가 기록한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확실하게 믿는 것들이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배워야하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그는 회의적인 논쟁거리가 아니라, 가장 확실히 믿고 있으며, 또 확실히 믿어야될 것들에 대하여 기록하려고 했다. 대체로 우리가 오랫동안 가장 확실하게 믿어져왔던 것들을 신조로써 지킨다는 사실은 비록 그것이 믿음의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하더라도 믿음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수천의 지혜롭고 훌륭한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을 과감히 내맡겼던 것이다.
(2) 그러한 일들을 순서대로 써야한다는 점이다. 즉, 그리스도의 생애를 순서대로 써야한다는 사실들이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다면, 우리 자신이 이용하기 위해서는 어느 부분을 찾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어떻게 보관해야 할지를, 그만큼 더 잘알수 있다.
(3)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하여 기록했었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행한 일은 우리들의 할 일을 대신해 준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일을 북돋워주기 위한 것임을 생각해야 한다.
(4) 그가 기록해야했던 사실들의 진실성은 그 일들을 완전히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일치된 증언으로 확증된다는 것이었다. 즉 이제 누가는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되고 일꾼된 자들(2절)'에 의해 되풀이하여 구전되어 왔던 사실들을 저술하고자 한 것이다. 이에 관하여 다음의 사실을 주목할수 있다.
첫째,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 혹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일꾼된 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말씀을 받아들였고 또한 그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였다(요일 1:1). 그들은 교사가 되기위하여 복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일꾼으로서 전파하기위하여 받은 것이었다.
둘째, '말씀의 일꾼된 자들'은 목격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들었고, 그분이 행하시는 기적들을 보았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그 사실들은 소문이나 보고에 의하여 간접적으로 알게된 것이 아니었다.
셋째,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던 처음부터 보고 들었다(2절). 예수께서 그의 첫번째 기적을 행하실때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있었다(요 2:11). 제자들은 예수께서 그들가운데 출입하실때에 항상 함께다녔다(행 1:21).
넷째, 우리가 오늘날에도 볼수 있는 이 기록된 복음은 초대교회에서 선포되었던 복음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다섯째, 누가는 자신이 기록한 일들에 대하여 '근원부터 완전히 알고' 있었다(3절). 그는 자신이 이 일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일을……자세히 살핀 나도……좋은 줄 알았노니(3절). 그는 이러한 일들을 열심히 살폈다. 그는 상세한 사항들에 관하여 지식을 얻는 것을 그의 임무로 삼았었다. 그는 전승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계시로써도 그의 지식을 얻었다. 그는 전승으로 전하여진 것이면서도, 영감에 의하여 확증된 것들에 대해서 썼다. 그러므로 누가는 이 모든 일들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수 있었다. 그는 그 일들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2. 누가가 본 서신을 데오빌로에게 보낸 이유 (4)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보내는 것이 좋은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바의 확실함을 알게하려 함이라(3,4절). 이 말은 마태복음 28:18절의 말씀에 근거하여 볼때 그가 세례받기 전이나 후, 혹은 세례받으면서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 배웠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 배운바. 그 말의 뜻은 이러하다. 가장 지각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에의 입문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누가는 데오빌로로 하여금 '그러한 일들의 확실성을 알게' 하고자 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확실성이 있다.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 잘 교육받은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들의 확실성을 알기 위하여, 즉 우리가 믿고있는 대상과 그것을 믿는 이유를 알기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안에 소망이 있는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
Ⅱ. 세례요한의 탄생 예고 1:5-25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자들은 요한에 대하여 그의 세례와 사역부터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기자는 우리 구세주의 잉태와 출생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1. 세례 요한의 부모에 대한 설명(5)
그들은 헤롯왕 당시에 살았다. 헤롯은 외국인이었으며, 로마의 대리인이었다. 후에 그는 유대를 로마 제국의 영토로 만들었었다. 이것은 유다가 주권을 아주 상실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노예가 되었지만, 그때 이스라엘의 영광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는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 사가랴였다. 아론과 다윗의 혈족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영예를 받은 혈족은 없었다. 한 가문에게는 제사장직에 대한 약속이, 다른 한 가문에게는 왕권에 대한 약속이 주어졌다. 그리스도는 다윗 가문의 출신이었으며, 세례 요한은 아론 가문의 출신이었다.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 출신이었다. 다윗의 시대에 아론의 혈족이 많아지자, 다윗은 그들이 자신들의 직무를 더욱 철저하게 수행할수 있도록 하기위해 그들을 24반열로 나누었다. 그들가운데 여덟째가 아비야 반열(대상 24:10)로서, 아론의 맏아들인 엘르아살의 후손이었다. 사가랴의 아내도 아론의 후손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론의 아내인 엘리세바와 같은 이름인 엘리사벳이었다(출 6:23). 제사장들은 아주 엄격하게 그들의 가문내에서만 결혼하였다. 이제 사가랴와 엘리사벳에 대해 살펴보자.
(1) 그들은 매우 신앙심이 깊은 부부였다. 이 두사람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다(6절). 그들은 진정으로 그러했다. 그들의 의인임은 하나님에 의해 입증되었다. 결혼하여 서로 연합한 부부가 모두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그들은 말로가 아니라 행위로 보여주었다. 즉 그들은 행하는 방법과 원칙으로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거룩한 예배와 관련된 주의 규례대로 행했을뿐만 아니라 선한 생활의 모든 실례들을 언급한 계명대로도 행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임무가 아닌 일은 결코 행하지 않았으며, 그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죄가 없지는 않았지만 흠이 없었다. 어느 누구도 공공연하게 비난할만한 죄로 그들을 정죄할수 없었다. 그들은 정직하고 악의없이 살았다.
(2) 그들은 오랫동안 무자 하였었다(7절). 자식은 하나님의 유업이다. 그것은 가치있고 바람직한 축복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의로우면서 그러한 축복을 받지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엘리사벳은 잉태하지 못했으며, 엘리사벳과 사가랴 둘다 늙었으므로, 자식을 가지는 일을 단념하게 되었다. 훌륭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이삭, 야곱, 요셉, 삼손, 사무엘이 그러했으며, 세례 요한 역시 그러했다. 그래서 그들의 출생은 더욱 돋보이며, 출생의 축복은 그들의 부모들에게 더욱 값진 것이 되었다.
2. 사가랴에게 천사가 나타남(8-11)
다음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
(1) 사가랴가 하나님의 직무를 행한 방법(8절) : 그는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서 행했다. 그때는 그가 섬기는 주간이었으므로 그는 직무를 행해야 했다. 그런데 제비뽑기로 각각의 직무를 맡았던 다른 제사장들과 마찬가지로 사가랴도 제비뽑기를 하여 그가 섬기는 주간동안 아침 저녁으로 주의 성소의 향을 피우게 되었다. 그 일은 향단(11절)에서 매일 향을 피우는 일이었다. 그 향단은 대제사장이 들어가는 지성소가 아닌 성소(9절)에 있었다. 유대인들은 한사람의 제사장이 일평생 두번 이상 분향할수 없게 되어있다고 말한다. 사가랴가 성전에서 분향하고 있는 동안 '모든 백성은 밖에서 기도하고 있었다'(10절). 사람들이 모두 기도하고 있는 (그들은 마음속으로 기도했으므로,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때 종이 울리면 그들은 제사장이 분향을 하러 안으로 들어갔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참된 이스라엘 백성은 항상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둘째, 그때에는 분향과 같은 의례가 행해질때 영적이고 도덕적인 임무도 함께 행하도록 요구되었다. 다윗은 그가 그의 기도가 응답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제단 앞에 있을때 기도하지 않으면서 분향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있는 것과 같았다.
셋째, 만약 우리 마음이 예배드리고 있지않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넷째, 우리가 이 세상의 제단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기도들은 위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그리스도가 드리는 중보의 분향에 의해서만 받아들여지고 응답될수 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또한 우리의 기도가 끊임없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중보의 은혜를 기대할수 없다.
(2) 사가랴는 직무를 행하고 있었을때, 하늘에서 그에게 보낸 사자를 통하여 어떻게 영광을 받았나?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11절). 이 사자는 향단 우편 즉, 사가랴의 우편에 섰다. 사가랴는 그의 오른편에 서서 그를 격려하는 선한 사자를 보았다.
(3)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사가랴는 어떻게 대처했는가(12절).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왔고, 생활에 흠이 없었지만, 무서워하지 않을수 없었다. 인간은 죄인이므로 죄인으로서의 그의 마음은 그러한 계시들의 영광을 감당할수 없었으며, 그 계시들이 불길한 징조가 아닌가하여 두려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신다.
3. 천사가 그에게 전했던 소식(13-17)
천사들이 일반적으로 하듯이 그는 '두려워 말라'라는 말로 그의 전언을 시작한다. 아마도 사가랴는 천사를 보자 자신이 저지른 무슨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그로부터 힐책을 받게 되지나 않을까하여 두려워했을 것이다. 천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을 가라앉혀라. 그리고 내가 너에게 전해 주어야할 소식을 침착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듣도록 하라." 이제 그 소식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1) 그가 종종 드렸던 기도는 이제 평온한 응답을 받게될 것이다.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13절). 만약 천사가 말한 것이 아들에 대한 그의 특별한 기도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이전에 그가 자식을 가질수 있었을때 그러한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드렸던 기도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자비를 베푸심으로써 오랫동안 사가랴가 그의 아내를 위해 그리고 아내와 함께 드렸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는 당장 응답되지는 않는다할지라도, 하늘에 쌓이며 잊혀지지 않는다. 만약 천사가 사가랴의 "지금 간구하고 있었던" 기도를 가리켜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생각할때 그 기도는 그의 직무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그들의 평안을 위해, 그리고 메사아와 왕국의 도래에 대해 그들과 맺어진 약속의 성취를 위해서 드려졌을 것이다.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왜냐하면 네 아내가 곧 메시야의 선구자가 될 아들을 잉태하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유대인 저자들은 제사장이 분향하면서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면 그 기도가 상달될 것이라고 말한다. 대체로 천사의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볼수 있다. "네가 지금 드리고 있는 기도와 네가 드리는 모든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며, 이것은 곧 네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는 표시가 될 것이다. 그러니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다."
(2) 그는 노령에 오랫동안 잉태치 못했던 그의 아내 엘리사벳을 통해서 아들을 얻게될 것이다. 그는 아들에게 지어줄 이름에 대해서도 지시를 받는다.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13절). 이 이름은 히브리어로 요하난에 해당하며 우리가 구약에서 종종 대하는 이름이다. 또한 그 의미는 "은혜로운"의 뜻이다.
(3) 이 아들은 그의 가족과 모든 친척들의 기쁨이 될 것이다(14절). 그는 환영받는 아이가 될 것이며 사가랴 자신에게도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오래토록 기다려왔던 일이 마침내 실현되었을때, 더욱더 기쁜 법이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14절). 만약 많은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이 무엇이 될지를 미리 알수 있다면, 그들은 자녀의 출생을 기뻐하기보다 오히려 자녀가 태어나지 말기를 원할 것이다. 천사는 사가랴에게 이와같은 의미를 전한다. "내가 네 아들이 무엇이 될지를 말하겠으니, 아들의 출생을 두려움을 가진채로 기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너는 할수있는만큼,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도록 하라." 많은 사람도 그의 낳음을 기뻐하리니. 모든 친척들과 탄생의 복을 비는 모든 사람이 그 일을 기뻐할 것이니, 그의 출생은 집안의 영광이요 위안이기 때문이다(58절).
(4) 이 아들은 "하늘이 특별히 사랑하는 자가 될 것이요, 땅에 특별히 내린 축복"이 될 것이다. 아들을 얻는다는 영광은 그러한 아들을 얻는다는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1)그는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이다(15절).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면전에 그를 두실 것이다. 그는 선지자가 될뿐더러 선지자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는 주 앞에 지극히 위대한 자가 될 것이다.
2)그는 나실인이 되어 불결한 모든 것에서 떠나 하나님 편에 있을 것이다. 이것의 표시로써 나실인의 율법에 따라, 그는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않게될 것이다. 그는 평생 나실인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뛰어난 종이 되고자 하며 하나님의 탁월한 사역을 하려는 사람은 자기 부정과 겸손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하며, 감각적인 쾌락을 죽이고, 마음을 혼미케 하며 교한시키는 모든 것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3)그는 그렇듯 훌륭하고 특별한 일을 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15절). 성령으로 충만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취하지 않고 절제해야 하며, 포도주와 소주를 삼가야 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어린아이들이 모태에서부터 성령에 의해 영향받는다는 것은 있음직한 일이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은 모태에서조차 성령으로 충만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의 자손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기로 약속하셨다(사 46:3).
4)그는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16,17절). 그는 이방인에게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보내질 것이다. 그렇지만 제사장의 가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모두에게 보내질 것이다. 그는 그들의 하나님이신 주, 다시말해서 메시야에 앞서가게 된다. 요한은 메시야보다 앞서가서 사람들에게 메시야가 오실 것을 알려주고,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할 것이다. 그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갈 것이다.
①그는 엘리야와 같은 사람이 되고 엘리야처럼 타락하고 부패한 세대에게 회개와 거듭남의 필요성을 설교할 것이다. 그리고 엘리야처럼 대담하고 열렬하게 죄를 책망하고,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의 죄까지도 고발하여 그로 인하여 미움과 박해를 받게될 것이다. 그는 엘리야처럼 거룩한 능력과 심령으로 그의 일을 수행할 것이며 그 거룩한 능력과 심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사역은 더할나위 없는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사도들에 앞서 갔으며, 복음의 가르침과 의무의 본질, 즉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를 설교하면서 복음 시대를 열어 보여주었다.
②요한은 주의 날이 오기전에 보내어 지리라고 말라기에서 엘리야의 이름으로 예언되었던 바로 그 사람이다(말 4:5). 그는 이스라엘의 많은 자손들을 그들의 주 하나님에게 돌아가게 할 것이다. 죄악으로부터 우리를 돌아서게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우리를 우리의 주시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은혜를 통하여 죄의 멍에를 떠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즉 유대인의 마음을 이방인에게로 돌이키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유대인이 이방인들에 대하여 가졌던 뿌리깊은 편견들을 없애게 해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은 세례 요한의 행함으로부터 시작될 것이었다. 세례 요한은 유대의 바리새인들뿐만 아니라 로마 군사들에게도 세례를 주고 그들을 가르쳤으며 조상이 아브라함이라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기던 유대인들의 자만심과 확신을 고쳐주었고, 그는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그들에게 말했던 것이다(마 3:6).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받아들인 유대인들이 그들처럼 그 신앙을 받아들인 이방인들과 함께 사귀게 될때, 아버지의 마음은 자녀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 결과 증오가 사라지고 불화가 그치게될 것이다. 그리고 반목하는 자들은 그의 세례로 결속되어 보다더 친밀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요세푸스가 세례 요한에 대하여 설명한 것과 일치한다(요세푸스의 고대사 제 18권 7장). "그는 선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이웃에 대한 의로움으로, 유대인에게 덕행을 가르쳤다." 또한 요세푸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몰려들었으며, 그의 가르침을 대단히 즐거워하였다." 이렇게하여 그는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함으로써 아버지와 자녀들의 마음을 하나님에게 또한 서로서로에게로 돌아오게 하였다.
첫째, 참된 신앙은 의인의 슬기이다. 경건해지는 것은 우리의 지혜이자 의무이다. 경건에는 공평과 신중함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
둘째, 믿음이 없었고, 불순종했던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의로운 자의 지혜로 돌아올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아무리 큰 무지와 편견도 극복할수 있다.
셋째, 복음의 가장 중요한 의도는 사람들을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하며, 이웃에게 더욱 가까이 가게하는 것이다. 그결과, 세례 요한은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할 것이다. 주께 헌신하고, 주 안에서 은혜를 누리려는 사람들은 모두 먼저 그를 위하여 예비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키는데 있어서 회개에 대한 가르침 이상으로 직접적인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죄가 고통스럽게 느껴질때, 그리스도는 가장 귀중한 분이 될 것이다.
4. 천사의 예언에 대한 사가랴의 의혹과 천사의 책망(18-20)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알수 있다.
(1) 그는 의혹에 차서 무어라 말했는가?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18). 구약에서는 늙었을때 아이를 갖게된 사람들의 실례가 많이 있었지만 그는 그러한 약속된 아이를 자신이 갖게된다는 것을 믿을수가 없었다.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에게 징표가 주어지기를 원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믿지않았을 것이다. 그가 이 소식을 성전에서 기도하며 분향하고 있었을때 들었음에도, 또한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하나님에게는 능치못할 일이 없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충분히 모든 의혹을 물리칠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몸과 아내의 몸이 너무 늙었다는 것만을 생각하며 아브라함의 자손답지 않게 그 약속에 아연실색하였다.
(2) 그의 의혹은 어떻게 잠잠해졌으며, 그는 어떻게 그 일에 침묵하였나? 천사가 그를 침묵하게 하였다. 그는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라고 물었으며 이에 대하여 천사는 '나는 가브리엘이라'(19절)라고 말함으로써 그를 이해시켰다. 즉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권능 혹은 하나님의 전능한 자라는 의미를 이해시킬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었다. 따라서 그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내가 지금은 여기서 너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하나님 앞에 서있는 자이다. 나는 너에게 이야기를 하고,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보내졌다. 그러니 이 소식들은 모두 받아들일만한 가치가 있을뿐만 아니라, 너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천사는 실제로 그의 입을 막았다. "너는 더이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보라 네가 벙어리가 될 것이다. 만약 네가 믿기위한 증거로 징표를 갖고자 한다면, 징표는 또한 너의 불신앙에 대한 벌이 될 것이다." 이 일의 되는 날까지……능히 말을 못하리니(20절). 너는 벙어리요, 귀머거리가 될 것이다. 즉 한단어에 두개의 의미가 모두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그가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게 되었음은 그가 사람들에게 형용으로 뜻을 표시했다는 것(22절)과 그들과 그에게 형용하였던(62절) 것으로 보아 명백하게 알수 있다.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이의를 말했으므로, 그에 대한 하나님의 처우는 공정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친절하고 매우 온유하며 자비롭게 대하셨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의심하며 믿지못해 하는 말들을 더이상 못하게 하셨다. 사악한 말을 할바에야 말을 하지않는 것이 더 낫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굳게해 주셨다. 즉 말할수 없게 됨으로써 그는 더 훌륭한 것을 생각할수 있게 되었다.
셋째,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누설하지도 자랑하지도 않게 되었다.
넷째, 그의 죄된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알맞은 때에 실현된다는 것은 크나큰 은혜이다. 그는 영영 벙어리가 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이 일의 되는 날까지만 벙어리가 될 것이다. 이 일이 이루어지면 너의 입술이 열리고 네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할수 있으리라.
5. 약속된 아이가 잉태됨(21-25)
(1) 백성들은 사가랴가 성전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다. 왜냐하면 그는 주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내려진 축복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평소보다 훨씬 오래 지체했는데도, 그들은 축복에 대해 이야기를 듣지않았으므로 급히 그 자리를 뜨지않고 그를 기다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은 그가 '성전에 오래 지체함'을 이상히 여기고 잘못된 일이라도 있나하고 염려하고 있었다(21절).
(2) 그는 나왔지만 '말을 못하였다'(22절). 그는 회중들로 축복을 안고 돌아가게 하려했지만 벙어리가 되어 그렇게 할수가 없었다.
(3) 그는 환상을 보았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었다(22절). 구약은 징조로써 이야기한다. 구약은 우리에게 형용으로 뜻을 나타냈지만 말없이 그대로 있다. 반면에 복음은 구약에서 거울을 통해 희미하게 보였던 것을 확실하게 이야기해 주고 분명히 알게해 준다.
(4) 그는 직무의 날들 동안에 쭉 성전에 있었다. 왜냐하면 제비에 따른 그의 직무는 '분향하는 것'이었고 벙어리요 귀머거리가 되었다할지라도 그는 그 일을 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만큼 하나님의 직무를 수행할수 없을때라도,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그것을 수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받아주실 것이다.
(5) 그리고나서 그는 그의 가족에게 돌아갔으며 그후 그의 아내가 수태하였다(23,24절). 그녀는 다섯달 동안 숨어서 수태한 일을 비밀로 하였다. 그것은 첫째, 그녀 자신이 피해를 입지않기 위해서였다. 둘째, 그녀는 낳을 아이가 나실인으로 손색이 없도록 하기위해 의식상의 부정한 일에 관계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셋째, 그녀가 숨어있었던 것은 지나친 절제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혹은, 그것은 겸손의 표시였다. 다시말해서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내리신 영광을 자랑하지 않으려 했던것 같다. 넷째, 그녀가 숨어있었던 것은 신앙심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숨어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주께서 나를 돌아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25절). 자식을 가지는 일은 유대인에게 아주 큰 축복으로 간주되었으므로 불임은 크나큰 비난거리였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못하는 사람에게는 알려져 있지않은 큰 죄가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이제 엘리사벳은 승리하였다. 즉 그러한 비난이 사라졌을뿐만 아니라, 큰 영광이 그녀에게 임한 것이다.
Ⅲ. 가브리엘 천사의 예언 1:26-38
우리는 이제 우리의 복된 구세주의 성육신과 수태에 관련하여 알아야할 모든 것들을 접하게 된다. 사가랴에게 "그의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었던 천사 가브리엘이 이 일에도 역시 쓰임을 받는다. 전자에서 시작된 영광스러운 구속의 역사가 후자에서 계속되기 때문이다.
1. 주의 어머니에 대한 설명(26,27)
(1) 그녀의 이름은 모세와 아론의 누이 미리암과 같은 이름인 마리아였다. 그 이름의 의미는 존귀함이다.
(2) 그녀는 다윗의 직계 자손인 왕족의 딸이었으며, 그러한 사실을 그녀 자신이나 그녀의 모든 친구들이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다윗 가문의 칭호와 품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하나님의 섭리로 그리고 유대인들의 돌봄으로 그들의 혈통을 보전하고 입증할수 있었으며, 이는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 이루어질때까지는 지킬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세상에서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영예로운 자들의 후손이라는 것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
(3) 그녀는 처녀였다. 그러나 그녀처럼 똑같은 왕족이었던 낮은 신분이었던 사람과 정혼한 상태였다. 그의 이름은 요셉이었는데 그 또한 다윗 가문에서 난 자였다(마 1:20). 그리스도의 어머니는 처녀였다. 그러나 그는 결혼하기로 약속한 처녀에게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결혼을 영예롭게 하기위한 것이었다.
(4) 그녀는 인가에서 뚝 떨어진 시골인 갈릴리의 한마을 나사렛에서 살았다. 그곳은 종교로나 학문으로나 이름이 나있지 않았으나, 이방 지역을 접하였으므로 이방인들의 갈릴리라 불리었다. 천사는 나사렛에서 그녀에게 보내졌다. 아무리 멀고 불편한 곳이라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로 되어있는 사람들에게는 방해가 되지않을 것이다.
2.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말(28)
천사는 다음과 같이 인사하여 그녀를 놀라게 하였다. 은혜를 받은 자여(28절). 이러한 인사말은 그녀에게서 이러한 것들을 높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1) 그녀 자신의 가치를 높여주기 위해서였다. 마리아처럼 오직 자기의 낮은 신분에 대한 올바른 숙고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기회가 온다.
(2) 외국에서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온 중대한 소식에 대한 기대를 높여주기 위해서였다. 평안할지어다. 그것은 통례적인 인사말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여기에서 다음의 의미를 갖는다.
첫째, 그녀는 존귀함을 받았다. 너는 지극히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메시야의 어머니로 너를 선택하시고, 네게 특별한 은혜를 주시어 너를 영예롭게 하셨다.
둘째,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임하셨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예배를 드리지 못하거나 은혜를 얻지못하는 일이 아무리 큰 문제라 할지라도 그것때문에 결코 절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 그녀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사람들이 너에 대해 그렇게 여길뿐만 아니라, 네가 실제로 그렇게될 것이다. 이 일에서 지극히 은혜를 받은 너는 다른 일들에서도 축복을 받을 것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그녀 자신이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48절).
3. 그 말을 들은 그녀의 놀람(29)
그녀 자신이 그러한 위대한 일을 보증받을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보고 놀랐다. 그리고 이것이 무슨 인사인가하고 생각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왔을까? 이러한 인사말에 대해 그녀가 주의를 기울였다는 사실은 젊은 여성들에게 매우 유익한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즉, 이로써 그들이 인사말을 들을때, 그것이 어떤 종류의 인사인지를 숙고해 보게되는 것이다.
4. 천사가 그녀에게 전해야 했던 소식(30-33)
그는 사명을 띠고 왔다(30절). 천사가 말한 것에 대해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천사는 그것을 더 확실하게 이야기하였다. 마리아여 무서워말라(30절).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받은 것보다 더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너는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은혜를 베푸시는가? 하나님은 당신 편인가? 그렇다면 누가 당신을 대적하든 상관없다.
(1) 그녀는 처녀이지만, 어머니가 되는 영예를 안게 된다.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31절).
(2) 그녀는 가난하게 그리고 낮은 신분으로 살았지만,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 그녀의 아들은 구주 예수라 불리울 것이다. 그는 천국과 밀접하게 관련될 것이다. 그는 큰 자 곧 지극히 큰 자가 될것이며, 그 증거로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며 결코 잘못 불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은 진정으로 큰 자들이므로 지극히 선해지는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요일 3:1,2). 그는 이 세상에서 지극히 높임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비록 종의 모습으로 보이지만,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32절). 그의 백성들은 그 위를 그에게 주려하지 않을 것이나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들을 다스릴 권세를 주시고, 거룩한 산 시온에 그의 왕으로서 그를 세우실 것이다. 천사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확신을 주었다. 그의 나라는 영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는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약속에 따라 이스라엘의 족속인, 영적인 나라를 통치할 것이다. 그는 영원히 통치할 것이며 그의 왕국은 끝이 없을 것이다. 다른 왕권들은 수세대로 이어질수 없지만, 그리스도의 왕권은 이어진다.
5. 그녀의 질문에 대한 더 자세한 대답(34-37)
(1) 그녀는 당연한 질문을 했다. 어찌 이일이 있으리이까(34절). 그녀는 메시아가 처녀에게 태어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그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면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 이 말은 그녀가 믿지 못해서 한 말이 아니라,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한 것이었다.
(2) 그 질문에 대하여 만족할만한 대답이 주어졌다(25절).
첫째, 그녀는 성령에 힘입어 임신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 즉 성령의 힘이 그 일을 이룰 것이다.
둘째, 그녀는 그 일이 행해질 방법에 관하여 아무런 질문도 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극히 높으신 자의 능력으로써 성령이 그녀를 덮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모태에서 아기가 형성되는 것과 생명의 영이 그속에 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은밀하게 지음을 받았다. 아기 예수의 형성은 더욱 큰 신비였다.
셋째, 그녀가 낳은 아이는 거룩한 자이기 때문에 보통의 생식으로 잉태될수 없다. 그에 대해서는 결코 같은 자가 없었던 거룩한 자라고 단호하게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다. 그의 인성이 그렇게 태어나야 했던것은 마땅히 그렇게되어야 신성과 일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3) 비록 늙었으나 그녀의 친족 엘리사벳도 아기를 잉태했다(36절)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믿음은 더욱 고무되었다. 여기 노령에 불가사의하게 아이를 밴 사람이 있다.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이가 이미 여섯달이 되었나니(36절). 천사는 마리아에게 일어난 이 일에 대하여 그녀를 안심시켜 그녀의 믿음을 북돋워주고,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하며 보편적으로 유용한 위대한 진리의 말로 그의 메시지를 끝맺는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37절). 하나님에게 능치 못하심이 없다면 이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있어서 그에게 능치 못하심이 없는한, 우리가 믿을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은 없다.
6.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 마리아(38)
그녀는 자인한다.
첫째, 그것은 하나님의 권세에 대한 신실한 복종이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그녀는 하나님께 결과를 맡기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다.
둘째, 그녀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린다.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다는 것을 기뻐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기를 겸허하게 간구하였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여기서 마리아가 한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구하고 말씀에 근거하여 소망을 가져야 한다.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방법으로가 아니고 바로 그렇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일이 있은후 천사가 떠나갔다. 천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갔다.
Ⅳ.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1:39-56
여기서 우리는 행복한 두 어머니,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을 보게된다. 때때로 선한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생각한것 이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수 있다.
1.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함(39)
이 때에(그날 그때). 마리아는 이 일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났다. 그녀는 신중하고 부지런히 그리고 신속하게 갔다. 그녀는 산중에 있는 유대의 한 동네에 갔다. 수십 마일이나 되어 장시간 여행을 해야되는 거리였지만 마리아는 서둘러 그곳으로 갔다. 우리가 생각할때 그녀는 자신의 믿음을 확고히 하고 그녀의 자매와 함께 기쁨을 나누기위하여 그곳으로 갔을 것이다. 또한 그녀는 사람들 눈에 띄지않으려고 아니면 나사렛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그곳에 갔을 것이다. 그녀는 하늘로부터 받았던 소식을 나사렛의 이웃 사람들에게는 알리지않았지만 자신이 수천번 숙고했던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를 갈망했으며, 또한 그 일에 대하여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은 그녀의 사촌인 엘리사벳외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마음속에 은혜의 선한 역사를 체험한 사람에게는 똑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과 상의하는 것이 유익하고 위안이 되는 일이다. 그들은 물속에 얼굴이 비치듯이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2.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40,41)
마리아는 사가랴의 집에 들어갔다. 그녀는 '엘리사벳에게 문안하고'(40절), 자기가 함께 즐거움을 나누기위하여 그녀를 만나러왔다고 말했다.
(1)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41절). 그녀는 아기가 태동하는 것을 종종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은 여느때의 아기의 태동 이상의 어떤 것이었으므로 엘리사벳은 이에 놀라 아주 특별한 일을 기대하게 되었다. 아기가 뛰놀았다는 것은 자기 뒤에 올 자가 지금 가까이 와있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2) 엘리사벳은 성령 혹은 예언의 영으로 충만해져 있었으며, 그것에 의해 메시야가 가까이 와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녀의 복중에 있는 아기의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은 하나님의 힘에 이끌려 그녀의 영이 비범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표시였다.
3.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환대함(42,45)
예언이 영에 의해 엘리사벳은 우리 주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환영한다.
(1)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받은 영광을 축하하였다. 그녀는 큰 소리로 불러 말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42절). 이 말은 천사가 했던 것과 똑같은 것이다(28절). 그런데 엘리사벳은 거기에다가 이유를 붙이고 있다. 즉 "네 태중의 아이가 복이 있으니 네게 복이 있다." 엘리사벳은 제사장의 아내였으며 연장자였지만, 자기보다 휠씬 나이가 적은 사촌이 처녀로 잉태하여,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반면에, 자기에게 주어진 영광은 휠씬 그만 못하다는 것에 대해 시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그 일을 즐거워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과분하게 받고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만큼,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받은 것보다 훨씬 큰 은혜를 받았다고해서 결코 시기하지는 말도록 하자.
(2)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자기를 방문하여 보여준 겸손에 대해 감사한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된 일인고(43절). 그녀는 처녀인 마리아를 내 주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녀는 마리아가 그녀의 집에 온것을 환영한다고 말했을뿐만 아니라, 이 방문이 크나큰 은혜이며 자기는 그러한 방문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어찌된 일인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자신의 공적은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고귀하게 생각한다.
(3) 그녀는 자기의 복중에서 아이가 마리아를 환영하여 기쁨으로 뛰논다고 알려주었다.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때에 아기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44절). 그러니까 그 아이는 메시야가 자기 바로 뒤에 올 것이며, 자기는 메시야의 선구자가 될 것이므로 기쁨으로 뛰었던 것이다. 이렇듯 그녀의 일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보증되었다는 사실은 동정녀의 믿음을 강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4) 엘리사벳은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고 격려해 준다(45절). 믿는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믿는 자는 복있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것은 말씀이 그들을 실족지 않게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신실하심은 성도들의 믿음에 대한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성취하신다는 것을 체험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약속을 어기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해야 한다.
4. 이때 마리아가 찬양의 노래를 함(46-66)
엘리사벳의 예언은 동정녀 마리아의 문안에 대한 응답이었으며, 이 노래는 그러한 예언에 대한 한층 확고한 응답이다. 복된 동정녀가 여행끝에 매우 지쳐서 들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잊고있으며 여기에서 그녀의 믿음을 확증할수 있게 되었으므로 새로운 생명과 활기와 기쁨이 솟아오름을 느낀다.
(1) 여기 기쁨과 찬양의 표현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그러한 찬양의 대상이요, 기쁨의 중심이 되고 있다. 여기서 마리아가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1)하나님에 대해 깊이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라고 말한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46절). 이와같이 하나님을 더욱더 높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게 된 자들이 그리고 그러한 자들만이 은혜가운데 나아가게 된다. 우리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영광이 크면클수록 하나님께 더욱 큰 영광을 드리기위해 힘써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을 찬양하는 일에 우리가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우리의 영혼이 그를 찬미하게 되며, 모든 것들이 우리 마음속에 거하게 된다. 찬양하는 일은 영혼이 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2)하나님을 매우 기뻐하며, 구주라고 하였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47절). 이것은 그녀의 아들이 될 메시야를 가르키는 듯하다. 그녀는 그를 내 구주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는 지극히 높으신 자의 아들이니 그의 이름은 구주 예수가 되리라고 천사가 그녀에게 말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말을 자기 자신에게 관련시켰다. 그는 하나님 내 구주이시다. 우리 주의 어머니까지도 그를 자신의 구주로 생각할 필요가 있었으며, 그러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2) 이렇게 기뻐하고 찬양하는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1)그녀 자신 때문이었다(48,49절). 그녀의 '영혼이 주를 기뻐하였음'은 하나님께서 그녀를 위해서 자비로우신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48절). "나의 비천함과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선택하사 이러한 영광을 주셨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녀의 비천함을 돌아보셨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천함을 기억하는 모든 인간에게 자신의 은혜의 표본을 보이신 것일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영원한 영광을 보장해주신 것이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영광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엘리사벳은 두번 마리아가 복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로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모든 세대가 나를 이렇게 부를 것이다." 그녀의 영혼이 주를 찬양한다(49절).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처녀가 잉태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일이다. 여기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권능이 나타난다.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라고 그녀는 덧붙인다. 전능하시며 더욱이 그 이름이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대할수 있다. 그러한 분은 모든 일을 하실수 있으며, 모든 일을 온전하게 최선으로 하실 것이다.
2)다른 사람들 때문이다. 메시야의 어머니인 동정녀 마리아는 일종의 공인이 되었으므로 밖을 내다보고,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며, 앞을 보며 하나님께서 여러모로 인간의 자녀들을 대하심을 깨닫는다(50절). 하나님께서 긍휼하심을 예비해 두신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일처럼 분명하게 나타난 적은 없다.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50절).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긍휼을 베풀어오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례없이 이러한 은혜를 분명히 나타내시어 그의 아들을 보내셔서 영원한 구원을 주셨으며, 이 일을 대대로 베푸셨다. 즉 복음의 특권이 전해졌으며, 영원토록 계승되었다. 세상이 존립하는한 그분안에서 용서하는 은혜, 치유하는 은혜, 용납하는 은혜, 무상의 은혜가 대대로 주어진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섭리대로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영예롭게 하신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써 전능하심을 보여주셨듯이(48,49절), 그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긍휼하심을 베푸심으로써 자신의 팔이 그처럼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과정에서 인간의 기대를 초월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이다. 교만한 사람들은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고자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의 생각을 흩으시고 그들을 낮추신다. 권세있는 자들은 권세의 힘으로써 그들의 보좌에 앉는 것이 보장되리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끌어내리신다. 반면에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놀랍게 올려진다. 영광에 관한 이러한 통찰은 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아주 가난하여 자신과 가족들이 먹을 양식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위한 섭리의 놀라운 전환으로 좋은 것들로 채워지게 된다. 반면에 부자들은 이상하게 곤궁해져서 빈손으로 떠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큰 일을 기약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좌절시키고, 작은 일을 기약하는 사람들의 기대는 그 이상으로 이루어 주시기를 즐기신다. 선하신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은 높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위안의 말을 건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복음의 은혜는 다음과 같은 것들에서 나타난다.
①그것이 베푸는 영적 영예에서 드러난다. 교만한 바리새인들은 거부되고, 세리들과 죄인들이 그들에 앞서 하늘나라로 들어갔을때 즉, 의의 율법을 좇는 유대인들은 법에 이르지 못하고, 그것을 생각지 못했던 이방인들이 의에 도달했을때(롬 9:30,31) 또한 하나님께서 육을 좇는 지혜로운 자, 권세 잡은자, 혹은 고귀한 자를 선택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고 기독교 신앙을 심게 하시지 않고, 세상의 미련하고 약한 자들, 멸시받는 자들을 택하신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있는 자들을 낮추시지만 비천한 자를 높이셨다.
②그것은 영적인 부에서 나타난다(53절).
첫째,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들 최선의 것들로 채워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풍성하게 주시며, 그들은 지극히 만족하게 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안식을 얻게될 것이며, 목마른 자들은 그리스도에게 나아가 마시도록 부름을 받을 것이다.
둘째,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자들은 자부하며, 자기 만족에 빠져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신의 문에서 내쫓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빈손으로 보내신다. 그들은 자부하면서 왔다가 그리스도의 의가 없으므로 내쫓긴다.
메시야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힘과 영광이 되리라는 것은 항상 기대되었던바인데 진실로 그는 다음의 특별한 의미에서 그러하시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54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손으로 붙드셨고, 쓰러져서 어쩔수 없는 자들을 도우셨다. 불쌍한 죄인들에게 도움이 되신 메시야를 보내신 것은 베풀수 있는 가장 큰 은혜였으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하심을 기억하신다. 이 축복이 지연되고 있는동안 하나님께서는 긍휼하심을 이렇게 묻고자 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하심을 잊으셨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셨으며, 자신의 긍휼을 기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옛날을 기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신다. 그것은 의도된 자비이며, 선포된 자비이다(55절). 축복이 '그 자손에게 영원하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조상 특히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은 그들의 자손에게서 이루어질 것이다.
㉢마리아가 석달 동안 엘리사벳과 함께 지낸후에 나사렛으로 돌아간 것이다(56절).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자리잡은 사람들은 홀로 앉아서 조용히 있는 것을 이전보다 더 즐기게 된다.
Ⅴ. 세례 요한의 탄생 1:57-66
1. 세례 요한의 출생(57)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약속된 은혜는 때가차야 기대할수 있는 것이며, 그전에는 기대할수 없는 것이다.
2. 이웃과 친족들이 기뻐함(58)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수가 있다.
(1) 하나님에 대한 깊은 존경 : 본문의 말씀에 있듯이 그들은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셨음을 인정하였다. 많은 일들(그녀가 아이를 배지 못했었으며, 이제 늙었다는 것, 그러나 특히 그 아이가 주 보시기에 큰 자가 되리라는 것)이 협력하여 긍휼히 여기심을 크게 하였다.
(2) 엘리사벳에 대한 애정이 깃든 존중 : 그녀가 기뻐할때, 그들도 그녀와 함께 기뻐하였다. 그들의 안락함에 대해서도 우리 자신의 안락함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3.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에 대한 논란(59)
팔일이 되자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들은 아이의 출생을 기뻐하였으며, 아이를 할례하러 왔다. 우리 자녀에게서 얻을수 있는 가장 큰 위안은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는데 있다. 우리 자녀가 세례를 받는 것은 그들의 출생보다 더큰 기쁨이다. 그 당시에는 자녀에게 할례할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었으므로 하나님께 바쳐지는 이름으로 불리워질때까지 이름없이 지낸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니었다.
(1) 어떤이들은 아이를 그의 아버지의 이름인 사가랴라고 불러야한다고 제안했다. 그들은 그 아이 아버지가 아이를 더낳을 것 같지 않았기때문에 그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고자 하였다.
(2) 그의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그 아이의 이름을 요한으로 정하셨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아이의 이름을 사가랴라고 부르는데에 반대하였으며 요한이라고 부르자고 했다. 요한이라 할 것이라(60절). (요한은 은혜의 선물이란 뜻-역주). 은혜로운 선물이라 함은 그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개할 것이요, 그 복음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그 어느때보다 밝게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3) 친족들은 엘리사벳의 제안에 반대하였다(61절).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그러니 친족 중 어느 한 친족의 이름을 따라 그 아이의 이름을 지어라.
(4)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일은 아버지의 할일이었으므로, 그들은 아버지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들은 그 부친에게 형용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부친이 벙어리였을뿐 아니라 귀머거리였음을 알수 있다. 어쨌든 그들은 그만이 결정할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그에게 이해시켰다. 그랬더니 그는 서판을 달라고 형용하였다. 그는 '그 이름은 요한이다'라고 썼다(63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겠다라든가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기를 원한다라고 쓴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은 요한이다"라고 쓴 것이다. 왜냐하면 이 이름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가랴는 말할수 없었으므로 글로 썼다. 사역자들은 말을 하지 못할때, 즉 설교할수 없을때에라도 그들의 손이 묶여있지 않을때 즉 무엇이든지 쓸수 있을때라면 손으로 행할수 있다. 사가랴가 엘리사벳이 선택한 이름과 똑같은 이름으로 결정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 다 기이히 여기더라.
(5) 그러고나서 그는 곧 말할수 있게 되었다(64절).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그가 벙어리로 있게 되어 있었던 기간은 이 일이 성취될 때까지였다(20절). 이제 때가차서 속박은 풀렸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입을 열어주셨다. 불신앙으로 그의 입이 닫혔으나 이제 믿음으로 다시 그 입이 열렸다.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입술을 여실때, 우리는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벙어리나 다름없다.
(6) 이 일들은 온 마을에 퍼져 그것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65,66절).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된다.
첫째, 이 말들은 화제거리가 되었으며, 온 유대 산중에 두루퍼졌다.
둘째, 이 일들에 대하여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로 말미암아 매우 놀랐다.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65절).
셋째, 그 일은 이 아이에 대한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이러한 전조를 마음에 간직하였다. 우리가 들은 것이 새것이건 옛것이건 우리에게 유익이 된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줄수 있도록 또한 우리가 돌이켜보면서 "그것이 우리가 기대할수 있었던 일이다"라고 말할수 있도록 잊지말아야 한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또한 자기들끼리 '이 아이가 장차 어찌될꼬', 즉 이러한 일들이 싹이라면 그 열매는 어떤 것일까? 하고 말했다.
넷째,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러라(66절). 즉 그는 훌륭한 일을 위해 작정된 자로서, 출생시부터 전능자의 특별한 보호를 받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하나님에게는 유아기의 어린아이들에게 역사하시는 방법이 있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만드셨으므로 그것을 성화시키는 방법도 반드시 알고 계신다.
Ⅵ. 사가랴의 예언 1:67-82
우리는 여기서 사가랴의 입이 열리자,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듣는다. 또한 성경은 그가 예언했다고 말한다(67절).
1. 그가 예언한 방법(68)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그는 신적인 영감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불신앙과 의혹을 용서하셨을뿐만 아니라 그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다.
2. 그의 노래의 내용(68-80)
여기서 그는 자기 집안에 관한 사적인 관심사, 즉 무자했음에 대한 치욕을 면하였음을 노래하지 않았다. 그는 전적으로 메시야의 왕국만을 생각하며 노래하였다. 구약의 예언들이 종종 찬양과 새노래로 표현되고 있듯이 신약의 예언도 그렇게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68절). 사가랴는 구속의 역사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그를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그때까지 구속의 예언, 약속, 상징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으며, 이제 그것이 처음으로 이스라엘에게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가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1) 메시야 자신이 수행하실 구속의 역사를 찬양하고 있다(68-75절).
1)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보내심으로써 그의 백성을 은혜롭게 돌아보셨다. 하나님께서는 친구같이 그들을 돌아보셔서 그들의 형편을 인지하셨다.
2)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속량하셨다.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죄에 팔리고, 죄때문에 팔린 사람들을 구속하는 일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때 지닌 사명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값을 치룸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로운 손에서 그들을 구속하시고, 권능으로써 사단의 포학한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신다.
3)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의 가장 뛰어난 왕, 즉 다윗과 맺으신 왕위에 대한 계약을 성취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가문에 대하여 영광스러운 일들을 말씀하셨었다. 즉 능력있는 자인 그에게 도움이 더해지리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 가문은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다. 이제 여기서 영광스럽게도 약속에 따라 다윗의 뿔이 다시 나게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69절). 그 일은 다윗의 집에서 일어나리라고 약속되었고 기대되었다. 그리스도 오직 그 안에서만 우리는 구원을 얻으며, 그것은 구원의 뿔이 된다. 그것은 영광된 구원이다. 그것은 다른 모든 구원들보다 뛰어난 것으로 다른 어떤 구원도 그 구원과 비교할수 없다. 그것은 풍성한 구원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대적자들을 넘어뜨리고 그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실 구원을 일으키셨다.
4)하나님께서는 구약의 가장 탁월한 예언자들이 교회에게 한 모든 귀중한 약속들을 성취시키셨다.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바와 같이(70절). 메시야의 구원에 대한 그의 교의는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오래전에 말씀하신 일을 지금 수행하고 계신다. 다음을 살펴보자.
첫째, 이러한 구원에 대한 예언은 얼마나 신성하였던가? 구원에 대한 예언을 전한 선지자들은 거룩한 선지자들이었으며, 그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분은 거룩하신 하나님 자신이었다.
둘째, 그것은 얼마나 오래전에 있었는가? 세상이 시작되었을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셋째, 우리는 그러한 예언과 약속들 가운데서 얼마나 훌륭한 일치와 조화를 깨닫게 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통하여 똑같은 사실을 말씀하셨다. 그러면 이렇듯 예언된 구원은 어떠한 것인가 알아보도록 하자.
①그것은 우리의 원수들의 악의에서 구제하는 것이다. 우리의 원수들 즉 우리를 미워하는 자의 권세로부터의 구원이다(71절). 그것은 죄로부터의 구원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어'(마1:21), 그들이 죄아래 있지않게 하실 것이다.
②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전에 약속하셨던 긍휼히 여기심을 행하시는 것이다(72절). 구속주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의 자비가운데 있게하며 하나님과 재언약을 맺게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족장들에게 하신 약속들과 그들과 맺으신 거룩한 계약, 즉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를 의미한다(73절). 조상들에게 약속하셨고, 우리에게 행하시는 것은 순수한 은혜인 긍휼이다. 그것은 우리의 공적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원하셨기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당신의 거룩한 언약, 즉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에 주의를 기울이셨다. '내가 너와 네 자손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의 자손들은 범죄함으로써 사실상 이 언약을 상실하였다. 그들이 재난을 당할때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언약을 기억하실 것이다.
③그것은 하나님을 섬길수 있는 자격이며, 섬기는데 대한 격려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합당한 방식과 우리 자신에게 위안이 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능력과 은혜를 주시리라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셨다'(74,75절). 복음의 은혜에 담긴 위대한 뜻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지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도록 이끌고 격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멍에에서 해방되어 주 예수의 즐겁고 편안한 멍에를 목에 매게 되는 것이다. 주께서 풀어주셨던 바로 그 속박의 끈이 우리를 그에게 더욱 단단하게 맨다. 그 결과 우리는 다음의 것들을 할수 있게 된다.
첫째, 하나님을 두려움이 없는 평온한 사람처럼 성스러운 안정과 평온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식이 어버이에게 대하여 가지는 경외감 즉 공손하고 순종적인 두려움, 또한 각성시키고 소생시키는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 두려움은 주인을 혹독하며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게으른 종의 두려움과 같은 노예적인 두려움이어서는 안된다.
둘째,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인간의 전반적인 의무를 포함한 성결과 의로써 하나님을 섬길수 있다.
셋째, 하나님을 직접 예배할 의무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섬길수 있으며,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이 항상 우리 곧 우리 속사람을 지켜보신다는 것을 아는 자로서 하나님을 섬길수 있다.
넷째, 종신토록 그를 섬길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며,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를 끝까지 사랑하도록 보증해 주셨다.
(2) 사가랴는 이러한 구원을 예비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구원을 예비하는 일은 세례 요한이 수행할 것이었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76절). 예수 그리스도는 지극히 높으신 자이시다. 세례 요한은 그의 선지자였다. 예언은 오랫동안 중단되었었으나 요한에게서 되살아났다. 요한의 임무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백성들에게 구원을 예비시키는 것이었다. 네가 주 앞에 앞서가서 그의 길을 예비하여라. 그가 가는 길을 방해하거나, 그를 곤경에 빠뜨리거나,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오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라(참조. 이사야 16:3,4).
2)백성들에게 구원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알게하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그가 선포한 가르침은 천국이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구원이 다음의 두 요소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아야할 것이다.
①우리가 범한 죄에 대한 용서 : 그것이 죄사함으로 인한 구원이기 때문이다(77절). 세례 요한은 백성들의 상황이 통탄할만 하더라도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용서받을수 있기 때문에, 절망적인 것이 아님을 백성들에게 이해시켰다. 즉 우리의 불쌍한 처지만이 하나님의 긍휼을 살수 있었던 것이다.
②다가올때를 위해 더욱 선한 일을 하라는 지시 : 복음의 구원은 분명하고 참된 빛을 발한다. 그것을 따라 우리는 올바르게 걸어갈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78절). 이는 또한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아침 햇빛이요, 돋는 해다. 복음은 빛을 동반하여 우리로 하여금 이교도적인 무지의 암흑이나 구약의 상징과 비유의 달빛가운데에서 방황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다시말해서 복음속에서 동이 트는 것이다. 세례 요한에게서 동이 트기 시작하였으며, 그것은 급속도로 진행하여 점점더 빛을 비추어 완전한 광명에 이르렀다. 오랫동안 아침을 기다렸던 사람들이 아침을 즐겁게 맞이할 많은 이유가 있듯이 우리가 복음의 날을 맞기를 즐거워하는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복음은 깨닫게 하는 것이다. 복음은 어둠속에 앉아있는 자들에게 빛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하는 빛을 던져주는 것이다.
㉡복음은 소생케 하는 것이다. 복음은 지하 감옥에 감금된 죄수들처럼 죽음의 그늘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어 그들에게 죄사함의 소식, 적어도 집행 유예와 용서받을 기회에 대한 소식을 전해 준다. 그 빛은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그것은 지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화해케 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죄인인 우리는 그 평강의 길에서 벗어나 그것을 알지못했으며 우리 스스로는 결코 알수도 없었다.
마지막 절에는 세례 요한의 어린시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첫째, 속사람이 탁월하였다. 그 아이는 정신력이 자라서 심령이 강하여졌으며 강한 판단력과 결단력을 지녔다. 주 안에서 강한 자들은 심령이 강하다.
둘째, 겉사람은 보잘것 없었다. 그는 빈들에 있었다. 그는 거기서 명상과 기도를 하면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는 학교에서 혹은 랍비 곁에서 교육받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크게 쓰여질만한 자격이 있는데도 세상에서 잊혀져 있다. 또한 예정되고 그리하여 마침내 매우 크게 쓰임받기에 알맞도록 준비된 많은 사람들도 오랫동안 그렇게 잊혀져 지낸다. 세례 요한도 그처럼 이스라엘에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리라. 이스라엘에게 예비된 은혜를 나타내는데에는 일정한때가 있었던 것이다.
# 해설
위대한 탄생 예고 ( 1 )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의 찬송이 울려나오게 하였습니다. 메시야의 탄생을 예고하는 소리가 울려퍼질때 감사와 감격의 소리가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인생 최고의 즐거움은 구원자를 찬송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걸음이 복된 것은 이 소식을 듣는 자들에게 구원의 복이 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이 아름답고 복된 소식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1. 탄생 예고
1) 하나님 앞에 의인
이는 세례 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소개하면서 누가가 사용한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실천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부류의 사람들을 선택해서 사용하시는데 여기의 이들은 흠없고 순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이들이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수 있는 완전한 의인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낫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할 것은 이들을 의인이라 칭하는 조건이 이들의 행실에 대한 평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행실은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임을 명심하고 온전한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a.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것을 지킴(신6:25).
b.삶의 원칙(딛2:12).
2) 세례 요한의 탄생 예고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을 보내셔서 요한의 탄생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미리 알리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크신 일을 감당시키기 위해서 미리 택하시고 세밀히 인도하시는 것은 그의 일이 위대한 사역에 대한 전조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사역을 보면서 더크고 온전한 사역을 바라볼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가랴의 반응은 인간의 생각이 앞서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앞에서 그를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표현한 것과는 차이가 있는 모습입니다. 특별한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당황한 것입니다. 계명과 규례를 지키는 일에서 벗어나서 더높은 신앙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을 계명을 지키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a.세례 요한에 대한 예언(사40:3-5).
b.예언의 성취(마3:3).
3) 예수 탄생 예고
마리아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할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반응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능치못한 일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앙고백으로써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하루에도 몇번씩 암송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생각속에는 작은 하나님만 남아있는 것입니다. 가브리엘과의 대화에서 이 사실을 깨달은 마리아는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것을 말씀하실때 우리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는지 돌아보아야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그대로 따르는 신앙의 온전한 모습을 회복할 때입니다.
a.좋은 소식(사40:9).
b.복된 좋은 소식(나1:15).
2. 기쁨과 찬송의 충만
1) 성령충만한 엘리사벳
믿음의 여인이 하나님의 아들을 맞이하면서 성령의 충만하심을 입게 되었습니다. 복중에 요한을 가진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만나면서 오실 메시야에 대한 기다림과 기쁨이 더해진 것입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선택된 사람이 보여주는 신앙의 모범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으며 마리아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람은 이렇게 성령의 열매를 맺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은사를 베풀어 주셨으면 그것을 받은 사람은 겸손과 온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하신 일을 찬송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a.구약의 예언(사61:1).
b.기쁨을 주심(롬14:17).
2) 마리아의 찬송
엘리사벳의 성령충만한 모습을 본 마리아는 하나님의 높으심과 은혜로우심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감사의 마음을 찬양으로 드리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약한 자들을 돌보시고 가난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을 찬송하였고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진정한 찬송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이유들을 넘어서서 공의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으로 이루어질 온전한 나라를 바라보면서 그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a.하나님을 경배함(대하23:18).
b.영원한 찬송(히13:15).
3. 세례 요한의 출생
1) 요한의 탄생
엘리사벳이 요한을 낳은후에 그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사가랴는 아직 벙어리로 있었기때문에 서판을 이용해서 요한이라 표현하였습니다. 그후 사가랴의 입이 풀려서 말을 하게 되었는데, 이 일이 유대에 퍼져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탄생에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할일은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격동케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감사와 기쁨의 찬송을 드리게될 것입니다.
a.나실인으로 구별됨(민6:2-3).
b.예수를 메시야로 증거함(요5:33).
2) 사가랴의 찬송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가랴는 구원의 사역에 대한 예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위대한 구원을 바라보면서 기쁨과 감격의 찬송을 올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약속을 이루기위하여 구원의 일을 이루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사가랴는 요한을 가리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이루시는 구원을 주의 백성에게 알리고 선포하는 사역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사가랴로 하여금 암울한 상황속에서 빛을 발견하게 하였으며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갖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죽어야할 자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것이며 멸망을 당해야할 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시는 것입니다.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구원의 길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사가랴는 진정한 찬송을 드리게 됩니다.
a.기쁨을 찬송으로 나타냄(마26:30).
b.사람들에게 증거함(행16:25).
결론
하나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십니다. 암울한 상황에 있는 백성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죄를 사하고 죽음에서 영생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의 아들을 보내시기로 하십니다. 그리고 그 반가운 소식을 백성들에게 전하십니다. 이제 더이상 절망하지 않고 희망의 찬송을 힘차게 부를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안심할수 있으며 그의 아들이 오시기때문에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바라보고 즐거워합니다. 이제 이 즐거움과 감사와 기쁨의 찬송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 핵심
1:1-4
누가가 데오빌로로 대표되는 헬라 문화권의 모든 이방인에게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본서를 기록했음을 밝히는 머리말이다.
예수님의 독특한 탄생(1:26-38)
예수님은 약혼자 요셉과 육체적 관계를 갖기전의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34,35절). 이는 인간 출생의 일반 법칙을 초월한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이다. 왜 예수님은 동정녀에게서 나셔야 했을까?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선 그 자신이 인간이어야 하면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아담의 원죄를 물려받지 않은 분이셔야 했기때문이다.
서판(1:63)
밀랍을 칠한 나무 판자이다. 여기에 철필이나 뾰족한 뼈조각 같은 것으로 글을 썼으므로 서판(書板)이라고 했다. 다 쓴글은 밀랍을 눌러 지우거나 그 위에 밀랍을 덧칠해 새로 사용하곤 했다. 이러한 서판을 여러개 묶어 책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중요한 내용은 봉인해 보관하였다. 로마인들은 서판을 상아로 장식하기도 했다.
# 묵상
제사 방법 ( 1:8-10 )
당시의 제사 방법은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흠이 없이 행하는 제사장이 제비를 뽑아 성소에 들어갔으며, 모든 백성은 밖에서 기도하는 방식을 취하였습니다. 예배는 인간의 욕구에 따라 드려서는 안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드려져야 하며, 인간은 겸손히 회개와 순종의 태도를 보여야하는 것입니다.
사가랴의 기도와 직무 감당 ( 1:13-20 )
그의 기도는 자녀를 구하는 부모의 간절한 기도였고 하나님 앞에 흠이 없이 행하며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이렇게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사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여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의로운 사가랴였지만 말씀을 의심하는 불신앙에 빠졌을때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진노하셨습니다. 벙어리가 된 사가랴는 그냥 그 상태로 성소에서 직무를 마쳐야 했습니다. 의심에 따른 징벌이 임했지만 사가랴는 이를 감추려하지 않고 자신의 불신앙을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성령충만한 가족 ( 1:15, 41, 67 )
누가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록합니다. 그는 사갸랴의 가족을 성령충만한 가족으로 묘사합니다. 세례 요한은 모태에서부터 성령충만을 입었고, 어머니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만나 성령충만을 받아 찬양했으며, 아버지 사가랴는 요한이 탄생했을때 성령충만을 받아 예언했습니다.
엘리사벳의 태도 ( 1:24, 25 )
천사의 예고대로 수태한 엘리사벳은 다섯달 동안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무자한 자기 부부에게 아이를 주신 주님께 감사했고, 자랑하며 과시하기보다는 겸손히 하나님의 일을 받아들이며 준비하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마리아 ( 1:26, 27 )
예수님의 모친이요, 갈릴리 나사렛에 사는 다윗의 자손으로서 요셉과 정혼한 처녀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앞에서 순결했으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천사의 명령을 들은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문안했습니다. 마리아는 선배 신앙인을 찾아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하고 믿음과 순종의 자세를 더욱 굳혔습니다.
마리아 찬가 ( 1:46-55 )
이 찬가에서 마리아는 큰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했고(46-48절),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과 긍휼을 찬양했으며(49, 50절), 권세를 가진 교만하고 부한 자를 내치고 비천하고 굶주린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을 찬양했고(51-53절),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찬양했습니다(54, 55절). 마리아 찬가에 표현된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거룩하시며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권세있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권능과 긍휼은 자기를 의지하고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의지할데 없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자 ( 1:67-79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하나님의 종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잘나고 권세있는 자, 교만한 자를 결코 긍휼히 여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비천하고 못난 자, 겸손한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사가랴는 그 백성을 속량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구원하신 사실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신앙의 부모는 자녀들이 주님의 구원사역에 쓰임받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성장 ( 1:80 )
그는 자라면서 심령이 강해지며 빈들에 거했습니다. 이처럼 육신의 성장에는 영적인 성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빈들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영적 훈련을 받던 광야를 말합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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