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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칠십인의 사명 10:1-16
본문을 보면 70인의 제자들이 둘씩 둘씩 복음을 전파하고 기적을 행하도록 보냄을 받았다.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이 기사를 다루지 않았다. 여기서 70인의 제자들은 열두 제자와 똑같은 지시를 받는다.
1. 그들의 수(1)
그들은 칠십인이었다. 그리스도는 열두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실때 열두 족장, 열두 지파, 그리고 열두 지파의 왕을 염두에 두었던 것과 같이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칠십 장로들을 생각하셨던것같다.
(1)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파송하기에 적합한 추종자들이 많았음을 보고 기쁨을 느낀다. 그리스도는 비록 많은 반대에 부딪혔지만, 그의 수고는 모두 헛되지 않았다. 이들 칠십인은 열두 제자들처럼 항상 그리스도와 가까이 있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그의 가르침을 듣고 기적을 목격하고 그를 믿었다. 이 칠십인들은 베드로가 말한대로 '주께서 우리가운데 출입하실때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었으며, 백이십명 중에 포함된 자들이었다(행 1:15,21).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에 나오는 사도들의 동행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이 칠십인의 제자들에 속한 자들이었을 것이다.
(2) 많은 사역자들에게 수행할 임무가 있고 설교자들에게 청중이 있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여기서 겨자씨가 자라기 시작하였으며 누룩의 향기는 가루속에서 발하기 시작하였다.
2. 그들의 활동과 사업(1)
그리스도는 그들을 둘씩 보내어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도록 했다. 그는 이들을 열두 제자들처럼 이스라엘의 모든 고을에 다 보내시지는 않고 그의 선구자로서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만 보내셨다(1절). 그들은 그리스도가 가시는 곳마다 행하셨던 것과 같은 두가지 일을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 그들은 병자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야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보기를 갈망하고 자기 이름으로 그토록 권능을 나타내는 자를 영접하게 되도록해야 했다.
(2) 그들은 하나님나라가 임박했음을 알려야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우리의 이익과 기회를 알게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을 얻을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나라가 우리에게 가까이 왔을때 우리는 나가서 맞아야 한다.
3. 그리스도의 지시(2-16)
(1) 그들은 기도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2절). 그들은 사람들의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 그들은 둘러보아 추수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야 한다. 거두어 들이는 일손이 모자라면 버리고 잃는 곡식이 많은 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일꾼이 매우 적다는 것을 염려해야 한다. 장사꾼이 손님이 적은 것이 곤란한 문제임을 그의 포도원의 일꾼들로 하여금 인식하게 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사명을 받기를 간절히 소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추수할 일꾼으로 보내셨으며 다른 사람들도 앞서 보내셨다. 하나님이 그들도 보내셨기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동행하시고 그들을 성공으로 이끄실 것을 기대하게 된다.
(2) 그들은 고통과 박해를 예상하고 출발해야 한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3절). "그러나 가라 너의 적은 이리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비록 그들의 먹이가 된다해도 평온하고 참을성 있는 양이 되어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가 성령과 용기를 그들에게 주시지 않으셨다면 이리가운데 양을 보내는 일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3) 그들은 장거리 여행을 할것처럼 많은 준비를 할 필요가 없고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시는 하나님과 친구들에게 의존해야 한다.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4절).
1) 그들은 바쁜 사람처럼 가야한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의식이나 인사로 방해받거나 늦어져서는 안된다.
2) 그들은 사업가로서 가야한다. 그들의 사업은 저 세상에 관계된 것이므로 세속적인 일에 얽혀들지 말아야 한다.
3) 그들은 엄숙한 모습으로 가야한다.
(4) 그들은 가는 곳에서마다 자신들의 호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5,6절).
1)그들의 임무는 어느집에 들어가든지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5절).
①그들은 개인의 집에 들어갔던것 같다. 즉 그들은 회당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전도할수 있는 곳으로 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선생님과 같이 집에서 말씀을 전파하였다. 상당수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처음에는 가정 교회에서 시작했다.
②그들은 어느집에 들어가든지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하라고 지시를 받았다. 이는 곧 "의례적으로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인사하지 말고 너희가 들어간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평안할지어다라고 진실한 마음으로 문안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온세상에 나가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평안을 빌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는 평안, 즉 지상의 평안을 전파하고 사람들에게 와서 그 은혜를 받도록 초청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평안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2)사역의 성공여부는 그들이 전파하고 기도해준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달랐을 것이다. 그 집의 거주자들이 평안의 자녀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그 집의 평안을 기대할수 있기도 하고 기대할수 없기도 한 것이다. "너희는 평안의 자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복음의 말씀을 빛과 사랑속에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이다. 너희의 평안으로 그들을 찾아내게될 것이며 그들에게 희망을 걸게될 것이다. 너희 기도는 응답될 것이며 복음의 약속을 그들에게 확신시키게될 것이다. 또한 너희는 너희가 전하는 말을 도무지 들으려고도 마음을 쓰려고도 하지않는 자들, 따라서 그들의 집에는 평안의 자녀가 하나도 없는 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의 평안은 분명히 그들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다시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고 책임을 다함으로써 위로를 받게될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평안이 되돌아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일뿐만 아니라 평안의 자녀들에게 그것을 전달할수 있기 위해서이다.
(5) 그들은 자기들을 영접하고 환영하는 자들의 친절을 받아야 한다(7,8절). "복음을 영접하는 자들은 그것을 전파하는 너희를 영접하고 환대할 것이다."
1) "부끄러워하지 말라. 너희를 환영하는 것을 의심치 말고 폐가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들이 주는 것들을 진심으로 먹고 마셔라. 너희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일꾼은 그 삯을 받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배운 자들이 그것을 가르쳐준 사람들에게 삯을 주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정당한 일이다."
2) "너희에게 준 음식을 꺼리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7,8절). "그것이 일류요리가 아닌 간소한 음식이라 할지라도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라." 좋은 음식을 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답지 못한 일이다. 아마도 그리스도는 본문에서 장로들의 식사 관습에 대하여 언급하신것 같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장로들의 식사 관습 같은 것에는 상관하지 말고 그들에게 준 것을 가리지말고 먹으라고 하셨다.
(6) 그들은 그들과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거부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공포해야 한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10절). "그들이 너희를 집으로 영접지 아니하면 그 거리로 나와서 그들에게 경고하라." 그리스도는 열두 제자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해야할 일을 지시하셨다(참조. 눅 4:5). "이렇게 그들에게 말하라.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리노라(11절). 그들에게서 어떠한 친절도 받지말고 그들을 쳐다보지도 말라." 그들이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거기에 갔었다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자라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는 그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여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라. 여기에 분명한 은혜가 너희에게 주어졌다. 너희가 만일 그 은혜를 받지못하면 그것은 너희의 잘못이다. 하나님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너희가 하나님 나라에 이르러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면 너희 죄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라."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은혜와 생명을 분명히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그만큼 훗날을 책임져야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받은 것들을 소홀히 여긴다면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12절). 소돔 사람들은 사실 롯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더욱 큰 죄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복음서 기자들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1)그리스도가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푼 고을의 특별한 운명(마 11:20-24).
①그 마을 사람들은 큰 특전을 누렸다. 이 일로 그 사람들은 하늘나라로 오라간 것처럼 의기양양해졌다. 그들은 외적인 수단으로 할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하여 하늘나라와 가까워졌던 것이다.
②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그들이 회개하고 삶을 개혁하며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있게 하는 것이었다.
③그들은 이러한 의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였다. 즉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누린 특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④만약 그리스도가 두로와 시돈 그리고 이방 도시에 가서 전파하고 이적을 행했었다면 그곳 사람들은 오래전에 회개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들은 즉시 회개하고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았을 것이며, 그만큼 깊이 회개했을 것이다.
⑤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한 자들의 운명은 매우 암담할 것이다. 이렇게 높임을 받은 자들은 높아지는 것을 이용하지 못하면 지옥에 떨어지게될 것이다.
⑥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이 도시들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그리스도는 사람들이 그의 사자들에게 하는 것이 곧 그에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16절). 그리스도의 충실한 사자를 저버리고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저버리는 셈이 되는 것이다.
Ⅱ. 칠십인의 보고 10:17-24
1. 전도여행의 성공을 보고함(17)
그들은 전도여행의 성공에 대해 그리스도에게 보고하였다. 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그들은 여행으로 인한 피곤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자기들의 성공을 기뻐하였다.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그들은 이 모든 영광을 그리스도에게 돌렸다. 그 일은 '주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사단에 대한 우리의 모든 승리는 이루어진다.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영적 대적들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어떤일이 그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면 그 영광은 그의 이름에 돌려야 한다. 그들은 기쁨에 넘쳐서 말했다.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귀신이 우리에게 항복한다면 우리앞에 무엇이 설수 있겠는가?
2. 그리스도께서 이 보고를 인정하심(18-24)
(1) 그리스도는 그들이 말한 것이 그가 본것과 일치하고 있음을 확증하셨다. 사단이 하늘로써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18절).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사단과 그의 나라는 멸망한다. 그때 사단은 졸지에 회복할수 없을정도로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진다. 즉, 인간 마음속에 있는 그의 왕좌에서 떨어질 그때 사단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복음이 전파됨으로써 어디든지 사단의 왕국이 멸망할 것을 예견하였다. "이제 이 세상의 왕이 쫓겨날 것이다."
(2) 그리스도는 그들의 사명을 다시 인정하고 확장시켜 주셨다. 내가 너희에게 뱀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19절). 그들은 그들의 능력을 사단에 대적하여 힘있게 사용하였고, 이제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더 큰 능력을 주신다.
1) 공격적인 능력 : 즉 뱀과 전갈을 밟고, 마귀와 극악한 귀신 그리고 그 옛 뱀을 제어할 힘을 주셨다. 귀신이 지금 너희에게 항복했듯이 저들도 항복할 것이다.
2) 방어할 능력을 주셨다.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뱀도 전갈도 너희를 해하지 못하리라. 만일 사악한 자가 너희에게 뱀같이 굴고 전갈같이 너희를 해하려 할지라도 너희는 그들의 포악함을 제어하고 밟을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겁을 줄지는 모르나 너희를 해칠수는 없을 것이다."
(3)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기쁨의 동기를 올바른 것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20절). "너희는 이런 일만으로 값없이 기뻐하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 그리스도는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실수 있었다. 왜냐하면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권세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은 자일지라도 마지막날에 그리스도에 의해서 부인될 경우가 있을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결코 죽지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양이며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다. 거룩한 사랑은 방언을 말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것이다.
(4)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렸다(21,22절). 이와같은 감사기도는 전에도 하신 적이 있었다(마 11:25,27). 그러나 본문에는 '이때에 예수께서 기뻐하사'라는 말이 앞에 덧붙여져 있다. 사단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을때 그리스도는 기뻐하셨다. 그리스도의 기쁨은 참으로 본질적인 기쁨이요 내적인 기쁨이었다. 그는 성령으로 기뻐하였다. 그 이유는 감사에 넘치는 찬양은 거룩한 기쁨의 순수한 언어이며, 거룩한 기쁨은 감사 찬양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다음 두가지 사실에 대해 감사드렸다.
1)아들을 통해 아버지께서 계시하신 것을 감사하였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감사하나이다(21절). 그가 감사한 내용은 이러하다.
①하나님 자신과 인간의 화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에 적합한 몇몇 사람들에게 계시된 것을 감사하였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감추어져 왔던 비밀을 드러내셨다.
②그것들을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신 것에 대해 감사하셨다. 그 어린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들의 능력을 끌어올려 주기 전에는 그러한 사실들을 이해할수 없는 자들이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린아이들과 같은 그러한 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도록하는 명예를 주셨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약한 자를 강하게 해주셨다는 사실 때문인 것이다.
③하나님께서 어린아이들에게는 이 사실을 나타내셨으면서 지혜롭고 지식있는 자들, 즉 이방 철학자와 유대의 랍비들에게는 숨기신 것에 대해 감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의 사건을 나타내시지도 않으셨으며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는 일을 맡기시지도 않았다. 바울은 사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 가운데서 교육받은 자였다. 그러나 그가 사도가 되었을때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또한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외에는 어떠한 지식도 나타내보이지도 사용하지도 않았다(고전 2:2,4).
④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사하신 것에 대해 감사하셨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와 그의 아들에 관한 지식을 보다 합당치 않다고 생각되는 자들에게 주시고 유효하게 전도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주시지 않는다할지라도 그것은 만족스러운 것임에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기술로 미화하려는 자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파하려는 자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맡기셨던 것이다.
2)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비밀에 대해서 감사했다(22절).
①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큰 확신을 주셨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충만한 것이 있으며 그에게서 모든 관리하는 가장 신임받는 자이다.
②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잘알고 있다. 아버지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성령의 계시를 받은 자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다.
(5)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일이 그들에게 나타난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말해주셨다(23,24절). 제자들을 돌아보시며(23절). 그것은 제자들이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알게된 것과 사람들에게 이 비밀을 알리는 일을 맡게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 그들은 얼마나 복을 받았나? 비록 이러한 사건에 대한 단순한 지식이 구원은 아니지만 그것은 구원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 그들은 그들보다 앞서간 자들보다 얼마나 높아졌나? "많은 선지자와 의인(마 13:17), 많은 선지자와 임금(24절)이 너희가 매일 계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듣고자 했으나 보지도 못하였고 듣지도 못하였다." 신약의 성도들의 명예와 행복은 구약의 선지자나 왕의 명예와 행복을 훨씬 능가했다. 구약의 성도들이 메시야 왕국의 은혜와 영광에 대해서 가졌던 일반적인 관념들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에게 희미하게 가려져있었던 것들의 실체를 봤으면하는 바램을 오랫동안 가지게 하였다.
Ⅲ. 우리의 이웃 10:25-37
본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양심의 문제에 대하여 한 율법사와 대화하는 것을 볼수 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그리스도에게서 분명한 대답을 듣게된다.
(1) 우리는 영생을 얻기위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선을 행해야 되는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율법사는 그리스도를 시험하려고 그리스도께 질문을 던졌다(25절). 율법사는 일어나서 물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만일 그리스도에게 이에 대해 지시할 특별한 처방이 있다면, 율법사는 이 질문으로 그것을 얻어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특별히 지시할 사항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의 가르침이 무용한 것이라고 헐뜯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율법사는 그리스도에 대해 아무런 악의가 없었고 사람들이 목사의 설교를 듣기위해 교회에 가듯이 그리스도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가 한 질문은 훌륭한 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나 나쁜 의도로 그러한 질문을 했을때 그 질문의 가치는 전적으로 상실되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말하고 질문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올바른 관심을 가지고 말하고 질문해야 한다.
1)그리스도는 그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그의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아셨지만 그의 질문의 어리석은 면에 의거하여 대답하지 않고 지혜롭고 선한 면에 대하여 대답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26절). 그리스도는 그를 문답식으로 가르쳐 그 스스로 깨달을수 있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그의 직업을 알고 계셨으므로 그에게 잘 가르쳐 주실수 있었다. 그의 지식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는 영생을 얻지못할 것이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어떻게 읽느냐'를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가 하늘나라로 가는데에 매우 유용할 것이다. 성경과 율법은 그리스도의 수중에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들에 의지하고 거기에 나타난 길로 가야한다. 기록된 것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이해하면서 읽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그래서 어떤일이 있을때 그것에 관해 율법에 기록된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말할수 있어야 한다.
2)그는 율법, 즉 율법의 중요한 명령에 대해 훌륭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바리새인들처럼 장로들의 전통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율법의 명령 중 첫째가는 중요한 두가지 율법에 대하여 말하였던 것이다. 이 두가지 명령은 나머지 모든 율법을 포함하는 것이었다(27절).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가장 온화하고 완전하며 뛰어난 최상의 존재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진실되고 열렬하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최고의 사랑 즉 죽을만큼 강한 사랑이면서도 지적인 사랑이어야 한다. 우리는 온 영혼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섬겨야 한다. 우리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면 쉽게 이웃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해야 하며 악을 행해서는 안된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3)그리스도가 그의 대답에 대하여 칭찬하셨다(28절). 그리스도는 그가 한 말이 옳다고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도다. 그리스도 자신도 이것을 율법의 가장 큰 두가지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2:37). 대답은 옳았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일이 남아있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즉 "너는 영생을 얻을 것이다."
4)그는 지금 막 자기에게 지시될 일을 피하려 했다. 그리스도가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셨을때 그는 자기가 이 일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스도가 시인하게 하려한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변호하려 했으므로 그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보다는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 속에 있는 그릇된 점을 겸손하게 알아보기 위해서보다는 자기들의 선행을 교만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훌륭한 질문을 한다.
(2) 우리는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아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 율법사의 또다른 질문이었다. 하나님 사랑에 대하여 그는 더이상 말하고 싶지않았으나 이웃에 대해서라면 계율을 잘 지켰다고 확신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매우 친절하였고 공손하였기 때문이다.
1)여기서 율법사의 그릇된 생각은 무엇인가. 그는 "너는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 그러나 모든 이방인은 제외시켜라.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이웃이 아니고 우리 민족과 우리 신앙을 가진 자들만 우리 이웃이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죽어가는 이방인을 보고도 그의 생명을 구하기위하여 도와줄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2)그리스도는 이 비인간적인 생각을 바로잡아 주었으며, 비유로써 우리가 친절을 베풀어야할 사람들과 우리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누구든지 우리 이웃으로 간주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①이 비유의 내용 : 이 비유는 곤경에 처한 유대인이 선한 사마리아인에게 구원받는 것을 보여준다.
㉠그 유대인은 강도에게 무슨 일을 당했다. 이 정직한 사람은 볼일이 있어 평화롭게 길을 가고 있었다. 그 길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큰 길이었다(30절). 아마도 이 일은 본문에 기록된대로 그 당시 최근에 일어났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강도들을 만났다. 그들은 매우 잔인하였다. 그들은 그의 돈을 빼앗았을뿐만 아니라 옷도 벗겨갔다. 또한 강도들은 그를 때려 상처를 입혔고 거의 죽을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는 가버렸다. 우리는 강도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의 친구라고 할수 있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 일을 보고 냉담했다. 그들은 거룩한 직업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할 자들이었다. 많은 제사장들이 여리고에 살면서 직무를 수행하기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곤 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그 길을 많이 오르내렸으며 레위인들은 그들의 수행원이었다. 그들은 그 길에서 강도를 만나 부상당한 사람을 보았다.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는 한 낯선 사람 즉 사마리아인에 의해 구출되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고 멸시할뿐만 아니라 상대도 하지않는 민족이었다. 그러나 그 사마리아인은 인정이 있었다(33절). 제사장은 자기 백성인 그 사람에게 마음을 닫았으나 사마리아인은 다른 민족인 그 사람에게 마음문을 열었다. 이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다. 비록 그가 유대인이었지만, 한 인간 그것도 불행을 당한 인간이었다. 이 사마리아인은 모든 사람을 존중하라고 배워왔으므로 그를 불쌍히 여겼다. 그는 마치 자신이 그와 같은 처지에서 동정을 받고있는 듯했다. 이 사마리아인의 동정은 값싼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마음이 동하여 이 불쌍한 사람에게 손을 뻗쳤다. 이 사마리아인은 얼마나 친절한가. 그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피해 지나갔던 그 불쌍한 사람에게로 갔다. 그는 그 이상의 방법이 없었으므로 그 자신이 외과 의사의 일을 했다. 그는 그의 상처를 싸매기 위해 자신의 옷을 찢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름과 포도주를 부었다. 포도주는 상처를 아물게 하려고 사용했던 것이다. 그는 마치 자기가 상처를 당한 것처럼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그 불쌍한 사람을 자기 짐승에 태우고 자기는 걸어서 주막이 있는 곳을 향해 갔다. 이 사마리아인도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의 일이나 하나님의 제자가 이와같은 자비로운 행동에 우선할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주막에서 그를 돌보아 주었다. 그는 사람을 침대에 눕히고 적당한 음식을 주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기도를 했을 것이다. 그 불쌍한 사람이 자기 자식이나 되는 것처럼, 다음날 아침 주막을 떠나면서 주막 주인에게 돈을 내어주고 더필요하면 돌아와서 갚겠다고 말하였다. 그 당시 돈으로 두데나리온이 필요한 모든 액수에 대한 계약금임을 알수 있다. 이 모든 일은 친구나 형제에게 기대할수 있는 친절과 관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는 낯선 이방인이 그 일을 행하고 있다. 이 비유는 본래의 의도와 다른 목적에도 적용된다. 그중에도 특히 죄많고 불행한 인간에 대한 우리 구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준다. 우리는 곤경에 빠진 이 불쌍한 여행자와 같다. 모세의 율법은 우리를 돕기위한 동정심도 능력도 갖고있지 않았으므로 곤경에 빠진 우리를 피하여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러나 축복의 예수 즉 선한 사마리아인이 오셨다. 그는 우리를 동정하시고 우리를 돌보신다. 이것은 그의 사랑의 풍성함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빚을 졌으며 어떻게 이것을 갚을 것인가?"
②이 비유의 의미
㉠그 속에 포함된 진리를 율법사는 시인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이 세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다(36절). 즉 "이들 중 누가 이웃이 할일을 했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율법사는 "분명히 사마리아인입니다"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그가 선한 이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비유가 의미하는 의무가 율법사의 양심을 찔렀다. 가서 너도 이와같이 하라. 만일 사마리아인이 곤경에 빠진 유대인을 도운 것이 잘한 일이라면, 유대인이 곤경에 빠진 사마리아인을 그와 같이 구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가서 어떤일이 있을때마다 사마리아인처럼 행동하라. 너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그들이 비록 너희 민족이 아니라해도 관심과 동정심을 가지고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라." 이 율법사는 자신의 질문으로 그리스도를 당황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였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사마리아인에게서 그의 의무를 배우라고 그를 보냈다. "가서 그와 같이 행하라".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고 도와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며 특히 율법사의 의무이다.
Ⅳ. 마르다와 마리아 10:38-42
(1) 마르다가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그녀의 집에서 대접하였다(38절).
1)그리스도는 마르다가 사는 동네에 가고 있었다. 저희가 길 갈때에 예수께서는 한 촌에 들어가시매. 이 마을은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베다니였다. 그리스도는 크고 사람이 많은 도시뿐만 아니라 작은 마을에도 가서 은혜를 베풀었다. 그 이유는 그가 은밀한 곳에 때로 가셨듯이 가난을 동정하였기 때문이다.
2)그는 마르다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마르다는 그리스도를 환영하였다. 그리스도는 특별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는 다른 친구들보다 그들을 더 사랑하여 자주 방문하였다. 그는 마르다의 가족을 사랑하였으며(요 11:5) 그들에게서 자주 초대를 받았다. 그 집은 마르다의 집이라고 불리고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마르다가 과부였고 그 집 주부였기 때문이었던것 같다. 이 즈음 그리스도를 대접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특히 예루살렘과 가까운 곳에서는 더욱 위험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위험을 당하는 것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이 그를 반대하고 영접하지 않았지만, 그를 환영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2)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39절). 마리아는 그의 말씀을 들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마르다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다. 집에서 좋은 설교를 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그리스도가 말할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들어야 한다. 마리아는 앉아 그의 말씀을 들었다. 이 말은 그녀가 매우 주의를 집중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리스도가 전하는 말을 어쩌다 한마디만 이해하려 하지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 했다. 우리가 그의 발앞에 앉아있다면 머지않아 그의 보좌에 그와 함께 앉게될 것이다.
(3) 마르다는 가사를 돌보았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40절). 이것이 바로 그녀가 마리아와 한자리에 있지 않게된 이유였다. 주부는 큰 손님 접대를 하려면 얼마나 마음을 쓰고 부산을 떨어야하는지를 잘안다. 여기서 다음을 살펴보자.
1)마르다에게도 칭찬할만한 점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녀는 우리 주 예수에 대해 칭찬받을만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이러한 대접은 겉치레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여기서 또한 그녀의 가사에 대한 칭찬할만한 보살핌을 볼수 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든가 편안한 것을 좋아하면 가족들을 등한시하게 된다.
2)마르다에게는 책망받아야할 점이 있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았다. 그녀는 정성을 다하여 호화찬란하게 대접하려 했다. 그녀는 많은 준비에 정성을 쏟았다. 많은 준비를 하는 티를 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답지 못한 행동이다. 도움도 되지않는데 많은 준비를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마르다는 준비하느라 분주하였다. 그녀는 그 일에만 매달려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일을 맡기시든지 우리는 그것때문에 부산스럽게 행동해서는 안된다. 일은 선한 의무이지만 분주함은 죄요 어리석음이다. 마르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위해 그의 발앞에 앉아있는 마리아와 함께있어야 할때에 준비하는 일이 많아 분주하였다.
(4) 마르다는 그녀의 동생 마리아에 대해 그리스도에게 불평하였다(40절).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1)이러한 마르다의 불평은 그녀의 속된 마음가짐을 드러내 준다. 그것은 그녀의 지나친 염려와 분주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세속적인 일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고 추구하다보면 가족간의 불안과 친지간의 분쟁을 야기시키게 된다. 동생에 대해 화가난 마르다는 그리스도에게 간청하였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나이까. 마르다는 자기가 근심하며 마리아도 그리스도도 그리고 모두가 같이 걱정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기분이 좋지않을 것이다. 하나님께 열렬하게 간청하는 자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부당하고 근거없는 불평을 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맡긴 일은 즐겁게해야 하지만 어리석게 자신을 의지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2)마르다의 불평은 마리아의 경건과 헌신에 대한 방해로 생각할수 있다. 마르다는 마리아의 경건과 헌신에 대해 격려해주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않고 오히려 마리아가 할일을 하지않는다고 불평하였다. 신앙심이 많은 사람들이 대적들의 반대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비난과 모욕을 받게된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5) 그리스도는 마르다의 지나친 염려에 대하여 책망하였다(41절).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으로 족하니라.
1)그리스도는 손님이었지만 그녀를 책망하였다. 그리스도는 사랑하는만큼 책망도 하고 벌도 준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도 잘못을 하면 책망을 들어야 한다.
2)그리스도는 그녀를 책망하실때 '마르다야'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마르다야 마르다야'하고 그녀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 그리스도는 그녀의 평안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진 자로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생활에 대한 염려에 빠진 자들은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
3)그리스도는 그녀가 많은 일로 근심하고 염려한다고 책망하였다. 그는 그녀가 일에 골몰하는 것과(너는 일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하며, 망설이고 혼란을 겪고 있구나) 일이 많은 것에 대해(많은 일로) 책망하였다. "가엾은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화를 내고 있구나. 그것이 너에게서 웃음을 빼앗아갔으니 적게 일하는 것이 좋겠구나." 이 세상 일에 대한 지나친 염려와 근심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서도 흔히 볼수 있는 결함이다. 정당한 이유없이 화를 낸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 때문이다.
4)그녀의 염려의 어리석음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가지 부족한 것은 마리아가 선택한 일, 즉 그리스도의 발앞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는 일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한가지 일에 진력해야 할때에 마르다는 많은 일로 근심하였다. 세상이 분열시킨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결합시켜 주신다. 마르다가 근심한 많은 일들은 불필요한 것이었고 그녀가 소홀히한 한가지 일은 필요한 것이었다. 마르다의 염려와 봉사는 적당한 때와 장소에서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녀는 뭔가 다른 일을 해야했고 그것은 분명히 더욱 필요한 일이었다. 마르다는 그리스도가 그녀처럼 일하지 않는 마리아를 책망하기를 바랐지만, 그리스도는 마리아와 같이있지 않은 마르다를 책망하였다. 마르다도 마리아와 같은 자리에 앉기를 원하는때가 올 것이다.
(6)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진실된 신앙을 칭찬해 주었다. 그러나 몇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42절).
1)마리아는 가장 가치있는 일을 올바르게 선택하였다. 왜냐하면 그녀가 행한 이 한가지 일은 가장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가장 필요한 일이다. 이것외에 우리를 하늘나라로 이끌어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2)마리아는 스스로 현명하게 행동하였다. 그리스도는 마르다의 비난에 대해 오히려 마리아를 정당화시켜 주었다. 조만간 마리아의 선택은 옳다고 인정받게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선택을 하고 그것을 따르는 모든 자들이 옳다고 인정받게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전부는 아니다. 그리스도는 그녀의 지혜를 칭찬하였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그 이유는 그녀가 그리스도와 함께있는 편을 택하였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임으로써 마르다같이 자기 집에서 그리스도를 대접하는 일보다 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①그리스도의 편은 좋은 편이다.
②그리스도의 편은 그것을 택한 자들에게서 결코 떠나지않는 편이다. 어느것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사랑의 편에서 우리를 분리시킬수 없을 것이다. 인간과 악마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에서 떼어내지 못할 것이다.
③이 좋은 편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들 각자의 지혜요 의무이다. 마리아는 염려하는 마르다와 일을 같이하여 좋은 주부라는 칭찬을 받든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발앞에 앉아서 열성적인 제자임을 증명해 보이든지 둘 중의 한가지를 택해야 했다. 이 특별한 경우에 마리아가 선택하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는 그녀가 평상시 어떤 선택을 하는지 판단할 것이다.
# 해설
복된 삶 ( 10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진정한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함께하는 사람이 그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누릴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이 이끄는 곳에는 저주와 심판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구분하고 판단할수 있어야 행복이 이를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참행복을 찾아서 인생의 여정을 바르게 걸어가야 합니다.
1. 칠십인의 제자들을 보내시다
1) 칠십인을 파송하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과 함께 칠십인의 제자들을 여러동네에 보내십니다. 그들이 가는 곳에서 예수께서 명하신 일들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왔다는 사실을 전하고 그들에게 이 나라에 들어오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기를 전하는 종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다른 것을 가지고 가지않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희망이요, 보장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준행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a.복음을 널리 전함(롬10:14).
b.복음을 전함(엡4:11).
2) 저주받은 도시
예수께서 보내신 제자들과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많은 기적과 이사를 행하신 도시들이 오히려 복음을 받지않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저주와 심판이 임하리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의 일들이 일어납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말씀이 선포되었다면 그곳에는 이제 선택의 일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과 하나님을 대적하고 멸망을 길을 가든가 자신이 선택해야 합니다. 저주받은 도시들은 이미 예수를 버리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서 멸망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a.의도적인 불순종(렘44:17-18).
b.마음이 완고함(요12:37-40).
3) 칠십인의 보고
칠십인의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명을 감당하고 돌아와서 보고하는 것은 그들이 한 일을 보고하는 것이 아나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이루신 일들에 대한 감사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사단이 권세를 잃고 멸망당하는 것을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더이상 사단에게 세상 권세를 주지않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기뻐할 것은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받아야할 것은 외적인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신분이 변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멸망의 자리에서 벗어나 생명의 자리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a.만물을 다스리심(암4:13).
b.원하시는 것을 다 행하심(시115:3).
2. 진정한 행복
1)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은혜는 진정으로 겸손한 자들에게 베푸시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들에게는 구원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교만으로 인해서 구원의 길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예수께 나아와서 자신의 모든 죄된 본성을 내어놓고 용서함받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철저히 의뢰하는 사람들이 그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게됩니다. 이것이 비밀이며 감추어진 것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이 사람들에게 그대로 나타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받지않는 사람들에게는 메시야의 오심이 아직도 기다려야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오직 겸손한 전적인 의뢰로 하나님의 이루심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a.기묘하고 광대함(사28:29)
b.위대함(렘32:19)
2) 제자들의 복
제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볼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보며 그의 곁에서 그와 함께 생활하고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의 사랑을 받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원했던 일입니다. 선지자들이 원했고 믿음의 선진들이 바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직접 눈으로 볼수 있는 제자들은 진정 복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비밀한 것들을 설명하시고 감추어진 일들을 밝히 드러내시는 말씀을 들을수 있는 제자들은 진정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그 무엇으로도 그들의 행복을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행복을 누릴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초대에 응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a.하나님의 나라 백성된 자(시33:12)
b.지혜를 얻은 자(잠3:13-14)
3. 올바른 삶
1)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인간의 가장 큰 문제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허무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께 질문을 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을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율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요 삶의 문제입니다. 예수께서 지적하신 것은 바로 율법의 실천입니다.
a.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지됨(신8:3)
b.믿음으로 얻음(요5:24)
2) 사마리아인의 비유
강도를 만난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있을때 그를 도와준 사람은 외적인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유대인의 멸시를 받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십니다. 말뿐인 사람보다 실천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진정한 이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일은 마찬가지로 다가옵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말로 베푸는 선행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실천으로 보여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의미있는 행동이 됩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진정으로 자비를 베풀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a.믿음이 있어야 함(딛1:15)
b.바르게 행해야 함(행24:12-13)
3) 마르다와 마리아
마르다와 마리아는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나무랄데 없었습니다. 누구도 잘못했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선택은 예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작용한 것입니다. 일상의 여러가지 일들이 있지만 예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다른 것들보다도 중요하고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예수의 말씀을 듣기위해서 그의 곁에 있게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무엇이 가장 필요한 것인지 돌아봐야할 것입니다.
a.생명의 말씀(요6:68)
b.간구함(마15:27)
결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말하는 것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러한 일반적인 것에 대해서 거의 맹목적으로 따라다니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뒤로하고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에 귀기울이지 않으면 우리의 길은 언제 어떻게 잘못될지 모릅니다. 항상 주님께 나아와 우리의 모습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돌보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 핵심
10:1-24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전도하러 보내신데 이어(9:1-6) 다시금 70인의 제자를 파송하셨다. 이는 복음을 온세상에 두루 전파하는 것이 바로 제자의 근본 사명임을 시사한다.
의약용 기름과 포도주(10:34)
상처 부위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붕대로 감싸는 것은 고대의 일반적 치료법 중 하나였다. 이때 포도주는 소독제로 사용되었고, 기름은 통증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했다. 근동 지역에서 의약용으로 주로 사용된 기름은 감람유이다.
# 묵상
70인의 파송 ( 10:1-9 )
이는 임박한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며 회개를 촉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가운데로 보냄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전도는 정신을 차리고 해야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것으로써, 그리스도인이면 반드시 감당해야할 사명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서 개개인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개인적인 훈련에도 참여를 해야합니다. 여기의 70인 파송은 열두 사도와는 별도로 특별히 조직되어 짝을 지어 파송하는 것으로써 오늘날의 전도에 많은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앞의 사건들에서 볼수 있듯이 여러가지 일로 핑계를 대고 전도하는 일과 따르는 일에 대하여 회피하는 것과는 많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미래의 가버나움 ( 10:15, 16 )
예수님은 미래의 가버나움은 음부에까지 낮아진다고 하셨습니다. 가버나움은 주님이 많은 이적을 베풀었던 곳이지만 그곳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치 않고 이적에만 관심을 두었던 지역이었습니다. 이는 구원이 진실한 회개를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에 달려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정말 기뻐해야 할 일 ( 10:20, 21 )
우리는 우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주님의 가장 놀라운 이적은 육신의 질병이나 귀신을 내어쫓는 것이 아니라 한영혼이 구원을 얻는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진리가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겨지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란 세상의 지혜자를 말하며, 어린아이들이란 복음을 순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 어린아이들은 복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율법사의 질문 ( 10:25-28 )
예수님께 율법사는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생각은 교만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공적(功績) 신앙이 짙게 깔려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 10:30-37 )
이 비유는 영생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졌으므로 자비를 베푸는 것은 영생과 관련된 것으로 교훈합니다. 즉 강도 만난 자를 멀리하지 않고 그의 고난과 아픔에 동참하는 자비심을 보여준 사마리아 사람은 영생에 들어가게 됨과 위선에 가득찬 제사장과 레위인은 영벌받게 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마25:45, 46). 강도를 만난 사람의 진정한 이웃은 한사마리아 사람, 즉 자비를 베푼 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여러면에서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즉 제사장과 레위인을 제치고 그들이 개처럼 여기던 사마리아 사람을 의로운 사람의 모델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주님은 형식적 종교인들의 허위의식을 고발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비를 베푼 자가 하나님의 자비를 받아 구원얻을 것임을 역설하셨습니다.
마르다의 봉사 ( 10:40-42 )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이는 분주한 봉사로 인해 말씀듣는 일을 소홀히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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