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기도에 대한 가르침 11:1-13
기도는 자연 종교의 가장 큰 원칙 중의 하나이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돕고 의무에 복종케하며, 기도속에서 가르침을 받고 그로써 믿음의 진보를 가지도록 북돋아주는 것이다.
(1)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 한 곳에서 기도하시는 것을 볼수 있다(1절). 누가는 다른 복음서 기자들보다 자주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셨던 일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즉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께서는 세례받으실때(3:21) 기도하셨고,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으며(5:16),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다(6:12). 또 예수께서는 따로 기도하셨고(9:18),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때에' 변화하셨다(9:28,29). 본문에서는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2) 제자들은 예수께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였다.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실때 그들은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하고 요청하였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기도를 마치셨을때 그와같이 여쭈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기도하기를 마치셨을때 제자 중 하나가 '주여…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하고 말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늘 가르치시는 분이셨으나 특별히 여기서는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받고 계신다.
1)제자들의 요청은 이러했다.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1절). 제자들이 그리스도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말한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다운 태도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주여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는 그것 자체로는 하나의 좋은 기도이며 필요한 기도이다. 왜냐하면 기도를 잘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며, 그리스도만이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기도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치실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꼭 필요한 기도를 할수 있도록 기도할수 있는 입과 지혜를 주옵소서. 즉 우리가 말해야할 것을 가르쳐 주옵소서."
2)그들은 또한 이렇게 탄원하였다.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가르쳐 주옵소서. "요한은 이러한 필요한 의무를 그의 제자들에게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들도 그들처럼 배우고 싶습니다." 유대인의 기도는 대체로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송영이었지만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간구와 청원의 기도를 가르쳤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요청은 이런 것이라고 하겠다. "주여, 이제 우리가 어려서부터 익숙해진 찬양과 송영에 덧붙여야할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그리스도는 완전히 간구로 된 기도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 기도에는 송영과 아멘이 생략되어 있었다.
(3) 그리스도는 전에 산상설교에서 가르쳤던 것과 똑같은 기도를 가르쳤다(마 6:9-13). 그들은 그들이 요구했던 모든 것이 이 몇마디 말씀에 나타나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며, 자신의 말로 부연시키거나 더 상세하게 기도했을 것이다.
1)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에는 몇가지 차이가 있다. 그 하나가 네번째 기원이다. 마태복음에는 네번째 기원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되어있지만, 본문에는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되어있다. 즉 "우리에게 우리 몸에 필요한 양식을 날마다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필요한 양식은 오늘, 내일 필요한 양식은 내일 있기를 위해서 간구해야 하겠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어린아이들이 부모에게 의지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의지할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날 그날의 필요에 따라서 날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므로 그날 그날 해야할 의무에 새롭게 복종할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번째 기원에도 차이점이 있다. 마태복음에는 그것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되어있고, 본문에는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되어있다. 이것은 용서에 필요한 자격을 말하는 것으로,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자격을 주신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사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는 또 한가지 덧붙여진 것이 있다. 즉 일반적으로 '죄 지은 자들'을 용서할뿐만 아니라 특별히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다. 본문에는 끝부분에 송영과 아멘이 생략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이 부분을 비워두어서 기독교의 원리에 따리 성부 성자 성령에게 영광을 돌리는 송영으로 채우도록 했던것 같다.
2)그러나 두 기도문은 본질적으로 같다. 본문에는 몇가지 일반적인 교훈들이 들어있다.
①기도할때 우리는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나아가듯이 우리 모든 인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②자신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바로 그 시간에 그리고 그 기도속에서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할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원리인 사랑의 정신을 가지고 철저히 계속해서 그 원리에 맞게 이러한 기도를 드릴수 있어야 한다.
③경건한 습성을 확고히 하기위해서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수 있어야 한다.
④기도할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영광을 돌리고 그의 나라에 권세를 돌림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더욱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⑤보이지않는 세계의 원리와 실제는 매우 본래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세의 원리와 실제가 그 본래적인 것에 일치하기를 기대해야 한다.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라는 말은 기도문의 처음 세가지 간구에 대한 언급이다.
⑥믿음으로 진실되게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다른 모든 일들이 더해질 것을 겸허하게 소망하며 그것들을 위해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만일 우리의 첫번째 소원과 관심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그의 나라가 임하여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담대히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야할 것이다.
⑦현세적인 축복을 위해 기도할때 우리는 우리의 욕구를 절제하며 우리의 능력에 맞게 한정시킬수 있어야 한다. 본문의 '날마다'라는 표현은 일용할 양식이라는 말과 아주 같은 것이다.
⑧죄는 우리가 매일 지고있는 빚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한다. 우리 죄는 날마다 쌓인다. 그런데 자비의 기적으로 우리는 날마다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 매일 매일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기도할 용기를 갖게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일흔번씩 일곱번보다 더많이 용서해 주신다.
⑨만일 우리가 언제고 우리를 모욕하고 우리에게 해를 입힌 자들을 진실로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를 용서해주시지 않을 것이다.
⑩우리는 죄에 대한 유혹을 죄로 인해서 파멸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는 유혹을 받아 죄에 빠지고, 그 죄로 말미암아 멸망에 이르지않도록 열심히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⑪우리는 모든 악으로부터 구원을 받기위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악에 빠지지않고 악을 가져오는 사단의 유혹을 받지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4) 그리스도께서는 다음 내용을 보이심으로 기도할때 강청할 것과 열심과 끈기를 가질 것을 역설하신다.
1)강청은 사람들을 대할때 효과를 가져다 준다(5-8절). 어떤사람이 때아닌 한밤중에 갑작스럽게, 자기 자신이 아니라 찾아온 친구를 위해서 이웃에 떡 한두덩이를 빌리러 갔다고 생각해 보자. 그 이웃은 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려고 하지않을 것이다. 이는 그가 문을 두드려 잠을 깨움으로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많은 사과를 했을것이나 그의 이웃은 그 사람의 청을 거절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며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그러면 그 이웃은 그 사람에게 떡을 주어 돌아가게 할 것이다.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8절). 사람들은 강청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들어주지만 하나님께서는 강청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이러한 비유를 통해 우리는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①우리는 어떤사람이 자기를 사랑하고 친절히 대해주는 이웃이나 친구의 집에 가서 하는 것처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기위해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②우리는 양식을 위해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양식은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③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이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를 위해서 떡을 구하러 갔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때, 선행을 베풀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사고 구하는것 이상의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④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이나 부주의로 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인해서 곤란을 당하는 것이라면, 어려운 가운데서도 더욱더 담대하게 하나님께로 나아갈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친구가 갑자기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떡을 구하러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에게 배려해주신 것을 기꺼이 하나님께 되돌려 드릴수 있어야 한다. 강청함으로써 화가 난 사람을 이처럼 설복시킬수 있다면, 무한히 관대하시며 강청함에 화내시지 않고 받아주시는 하나님께 강청할때에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하더라도 쉬지않고 기도한다면 합당한때에 응답해 주실 것이다.
2)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하는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것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선하심뿐 아니라 그의 말씀도 가지고 있다(9,10절).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9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직접하신 말씀이다. 우리는 구할뿐만 아니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한 것에 대해 노력할수 있어야 한다. 구하고 찾을때는 계속해서 강청하고 똑같은 문을 두드려야 마침내 응답을 듣게될 것이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10절). 아무리 미천한 자라도 믿음으로 구하면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하라고 지시하신 것들 즉, 그의 이름이 거룩하여지고 나라가 임하며 그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하나님께 구하는 일에 있어 우리는 강청해야 한다.
(5)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생각하게 하심으로 교훈과 용기를 주신다.
1)세상에서의 아버지의 인자함을 상기시킴 :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면 생선 대신 뱀을 주며 알을 달라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는 너희 자녀에게 그렇게 몰인정할수 없음을 잘알고 있다"(11,12절).
2)이 말씀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축복에 적용시킴(13절) :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에도 그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다음 내용을 살펴보자.
①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해야할 것에 대해 가르쳐 주신다. 우리가 성령을 구해야하는 까닭은 성령께서 기도를 잘하게 하실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하게 될 모든 선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②그리스도는 이 기도가 곧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라고 우리를 격려하신다. 너희 천부께서 주시지 않겠느냐. 그는 그의 권세로 성령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베풀어주실 좋은 것 일체를 가지고 계시며 그것들은 성령에 싸여있다. 그러나 그것이 약속된 전부는 아니다. 이 세상의 부모들이 악할지라도 친절하며 빈약할지라도 자녀들에게 줄뿐만 아니라 식별하여 가장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성령을 주시지 않겠는가.
Ⅱ. 예수와 바알세불 11:14-26
본문은 마태복음 12:22절이하에도 나온다. 그리스도께서는 본문에서 특별히 사단을 다스리는 권세를 증명해 보임으로써 신적인 사명에 대한 일반적인 증거를 보여주고 계신다. 본문에서도 그리스도께서는 사역의 성취를 위한 열심을 보여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벙어리 귀신을 내어쫓으셨다. 마태복음에는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귀신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쫓겨나와 그 벙어리는 즉시 말하게 되었다.
(1)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기적을 보고 감동받았다. 무리들은 기이히 여겼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였다.
(2) 또 어떤 사람들은 이 기적을 보고 비난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고 하였다(15절). 이들은 이러한 생각을 확증하고 그리스도의 기적적인 능력의 증거에 맞서기위해서 그리스도에게 하늘로써 오는 표적을 보여주어 그리스도의 말씀을 확신시켜 달라고 도전하였다. 그들은 하늘로써 오는 표적이라면 공중의 권세잡은 자와 손을 잡아 귀신을 쫓아내는 것처럼 행할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지독한 불신자들은 어떤일을 꾸미든지 절대로 당황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트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단도직입적으로 답변하신다.
1)사단처럼 교묘한 왕이 자신을 파멸시킬 일을 하리라고는 결코 생각할수 없다(17,18절). 예수께서는 그들이 흉증을 감추려고 생각할때에도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의 이러한 비난이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알수 있다. 왜냐하면 스스로 분쟁하는 자가 결코 서지 못한다는 것은 공인된 격언이기 때문이다. 이는 나라나 가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자든지 스스로 분쟁한다면 자신의 파멸을 재촉하는 것이 될 것이다."
2)그들이 그리스도가 사단과 협약을 맺었다고 비난한 것은 매우 편파적이고 심술궂은 태도였다. 다른 사람이 이러한 기적을 행했다면 그들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찬미했을 것이다(19절).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너희 동족인 유대인이나 너희의 제자인 바리새인 중 어떤 자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당한 것같이 가증하게 사단과 용납하면서 책망하는 자를 정죄한다는 것은 크나큰 위선이다.
3)이러한 기적을 확신하지 않음으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원수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나라를 밀쳐냈기 때문이다(20절).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따라서 만일 너희가 영접치 아니하면 멸망할 것이다." 본문의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가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라고 되어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광대하신 팔을 다 뻗지않으셔도 된다. 원하신다면 울부짖는 사자도 나방처럼 손가락 하나로 죽이실수 있다.
4)그리스도께서 귀신을 내어쫓으신 것은 귀신과 그들의 힘을 파괴하는 것이었다(21,22절). 그리스도께서 귀신을 내어쫓으셨을때 그는 귀신보다 강했으며, 권능으로 그 일을 하실수 있었으므로 사단의 세력을 멸하시기 위해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서나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에서나 그리스도께서 사단을 지배하시고 이기신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펴볼수가 있다.
①회개하지 않는 죄인의 비참한 상태 : 하나님의 거처가 되어야할 그의 마음이 귀신의 소굴이 되어있다. 그리고 영혼의 모든 힘과 능력은 귀신의 재물이 되어버렸다. 거룩한 심령은 거룩한 것의 거처이지만 성화되지 않은 심령은 귀신의 소굴이다. 강하게 무장된 귀신은 이 소굴을 지키며 그리스도에 대항하기 위해 모든 할수 있는 무장을 다한다. 마귀는 온갖 그릇된 생각으로 인간의 마음을 완고하게하여 진리와 거룩함을 대적하게 하는데 이 그릇된 생각들은 곧 마귀가 자기의 소굴을 지키기 위한 요새이다. 강하게 무장된 마귀가 지키고 있는동안 회개치 않은 영혼의 소굴에는 평안이 있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죄인은 자신을 좋게 평가하여 매우 안일해하며 즐거워한다. 그는 자신만만하며 편안하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전까지는 모든 것이 무사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한길만 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이 선포되면 마귀의 소굴의 평안은 소란케될 것이다.
②회개함으로써 오는 놀라운 변화 : 사단은 강하게 무장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께서는 그보다 훨씬더 강하다. 그가 승리하신 방식을 보라. 예수께서는 사단이 자기의 소유가 안전하고 그것을 완전히 정복했다고 생각할때 갑자기 오신다. 이러한 승리의 증거를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아버리신다(22절). 즉 예수께서 친히 그 재물을 소유하신다. 이제까지 사단을 위해 사용되었던 마음과 육체의 재산이 이제 그리스도를 위해 쓰여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것들을 분배해 주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 승리의 축복을 베풀어주신다.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기적의 목적은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그의 복음을 받아들이며 진심으로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모든 사람의 의무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지않으면 적과 한패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23절).
5)계약에 의해서 귀신이 나가는 것과 강제적으로 쫓겨나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어쫓김을 당한 귀신이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신다. 이는 그렇게 하는것이 그리스도의 책임이기 때문이다(막 9:25). 반면에 귀신은 스스로 나가면 언제든지 다시 들어오곤 한다(24-26절). 그리스도께서는 전체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적을 패배시키신다.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알수 있다.
①위선자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 그의 마음은 여전히 귀신의 집이다.
㉠그러나 더러운 귀신은 나갔다. 그는 쫓겨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얼마동안 나가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겉으로는 사단의 지배를 받고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 집은 부분적인 회개로 어느정도 소제되었다. 그러나 집은 소제되었지만 깨끗하지는 않았다. 그 집이 깨끗하지 않다면 그리스도의 집이 될수 없다. 소제함으로 더러운 쓰레기는 치워지지만 죄인을 따라다니던 죄는 그대로 있게 된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소제되지만 구석구석에서 눈에 띄지않는 쓰레기는 치워지지 않은채로 있게 된다. 집은 청소되어도 더러운 것은 벽속에 그대로 있는 것이다.
㉢집은 일반적인 은사와 은혜를 닮은 것들로 되어진 것이다. 그것은 모두 허식이요 눈가림이며 진실된 것도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집은 수리되어도 소유물은 그대로 있는 상태이다. 그 집은 그리스도께 복종한 것이 아니다.
②배교자의 최후의 상태는 귀신이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26절). 그들은 아무런 어려움없이 들어간다. 그들은 환영받으며 거기서 거한다.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심하게 되느니라. 위선은 배교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죄의 은밀한 장소가 외적인 신앙고백의 가면속에 감추어지고 양심이 타락한 곳에 배교의 길이 있다. 그러한 자의 나중의 죄와 형벌은 전보다 더심하게 된다. 배교는 인간의 최악의 상태이다. 그들의 양심은 마비되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죄는 극도에 달할 것이다. 그리고 내세에서 그들은 더 큰 저주를 받게될 것이다.
Ⅲ.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의 복 11:27-28
본문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구절이다.
(1) 한 다정하고 정직한 여인이 예수의 훌륭한 말씀을 듣고 찬사를 보냈다. 이 선한 여인은 그의 말씀을 찬미하였다. 이 말씀하실때에 무리 중에서 한여자가 기뻐하며 이렇게 외쳤다. 당신을 밴 태가 복이 있도소이다(27절). "즉 당신을 아들로 나은 여자는 얼마나 행복한가. 이 땅에 매우 복된 자가 되며, 결코 인간의 말로 표현할수 없는 크신 자의 어머니였다면 나는 참으로 복된 자가 되었을텐데."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인격은 귀중한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낳고 길러준 자보다 그의 신실하고 순종적인 제자들이 더 복된 자라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28절). 예수께서는 한편으로는 육신의 모습에 지나치게 찬사를 보내는 그녀를 견제하기 위해서, 또 한편으로는 만일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된다면 그의 어머니처럼 행복해질수 있다고 격려해 주기위해서 이 말씀을 하셨다. 즉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만이 진정으로 복된 자이다.
Ⅳ. 선지자 요나의 표적 11:29-36
(1) 우리가 우리 믿음을 확증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대할수 있는 표적은 무엇인가? 그리스도가 하나님께로서 보냄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는 유력한 증거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다.
1)예수께서 이미 많은 표적을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표적을 요구하는 자들을 책망하셨다. 무리가 모였다(29절). 많은 무리가 모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많은 무리가 왜 모였는지를 아셨다. 즉 그들은 표적을 구하기 위해서 왔고 구경하기 위해서 왔으며 집에 돌아가서 할 이야기거리를 얻기위해서 왔던 것이다.
2)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이제까지 본 표적과는 다른 한가지 표적을 보여줄 것을 약속하셨다. 그것은 곧 선지자 요나의 표적으로, 마태복음에서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적을 보고서도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들은 극도의 파멸외에 아무것도 기대할수 없게될 것이다. 인자는 이 세대의 표적이니라(30절).
3)예수께서는 이러한 표적을 믿으라고 경고하셨다. 심판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31절). 남방의 스바 여왕은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 생소했으나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다. 그녀는 자기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말씀을 들으려고 왔다.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예수께서 유대인들가운데 있었음에도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에 조금도 관심을 두려고하지 않았다. 심판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32절).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설교는 요나의 설교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듣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니느웨 백성처럼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도 않았다.
(2)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씀을 확증하시기 위해 우리에게서 기대하시는 표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신앙고백하는 내용을 진지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1)그들은 등불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복음의 등불을 켜서 말아래 두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다시말해서 그리스도께서는 구석에서 전파하지 않으셨다. 복음의 빛이 등경위에 놓여 있다는 것은 큰 특혜이다. 그러므로 들어오는 자마다 그것을 볼수 있고, 또한 그것으로 인하여 볼수 있다.
2)등불을 가졌기때문에 그들의 관심을 보는 것이었다. 사물을 아주 분명하게 보는 것이다. 만약 몸의 기관이 건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건강한 것이 아니다. 몸의 등불은 눈이라(34절). 영혼의 등불은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는 능력이다. 이렇게 볼때에 하나님의 계시의 등불이 우리에게 비치면 그것이 곧 축복이다.
①만일 영혼의 눈이 성실하고 분명하게 보며 오로지 진리만을 목적으로하여 자체를 추구한다면, 온몸 즉 온영혼은 빛으로 충만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충만한 빛속에서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영혼을 채운다. 우리의 영혼이 복음의 빛으로 채워져서 어두운 부분이 없다면 모든 영혼은 빛으로 충만할 것이다. 영혼은 어두움 그 자체였으나 지금은 주 안에서 빛이 되었다.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36절). 복음은 그것을 받기위해 대문과 창문을 열어놓은 자의 영혼으로 들어올 것이다.
②영혼의 눈이 약하다면 온몸, 온영혼이 어두움으로 가득찰 것이다(34절). 그러므로 네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35절). 성실함과 진리를 탐구하고 거기서 사랑, 빛, 능력을 받을 준비를 하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않거나 그것을 행하려고 하지않았던 이 세대의 사람들처럼 되지말라. 그들이 어둠속에서 행하고 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Ⅴ. 바리새인을 책망하심 11:37-54
그리스도께서는 본문과 한 바리새인과 그의 손님에게 식사중에 사적인 대화로 많은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후에 이 말씀을 성전에서 공적인 설교룰 통해서 하셨다(마 23장). 예수께서 공적으로 말씀하신 것과 사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일치한다.
1. 바리새인 집에 식사하러 가심(37)
그리스도께서는 매우 정중하게 그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 한 바리새인과 함께 식사하러 갔다. 예수께서 말씀하실때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37절). 우리는 이 바리새인의 마음을 알지못하나 그리스도께서는 아셨다. 만일 그가 좋지못한 의도를 품었다면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선한 의도를 품었다면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선을 베풀어 주시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들어가 앉으셨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에게서 무뚝뚝하지 않고 사교적인 태도를 배웠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자리에서든지 조심해야 되지만 경직될 필요는 없다.
2. 바리새인의 범죄(38)
그 바리새인은 그리스도께서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보고 좋지않게 여겼다. 그는 거룩한 분이신 그리스도께서 식사하시기 위해 앉으시고서 먼저 '손 씻지 아니하심'을 이상하게 여겼다. 바리새인과 다른 손님들은 물론 손을 씻었다. 의식법에는 씻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가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손을 씻는 규정은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손을 씻지않으면 비난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으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않으셨다.
3. 그리스도의 책망(39-44)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을 신랄하게 책망하였다.
(1)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신앙을 의식적이며 사람의 눈에 잘보이는 것으로 대치하고, 반면에 영혼에 관한 것이나 하나님의 눈에 잘보이는 일은 미루거나 아주 잊어버리는데 대해 책망하셨다(39,40절).
1) 그들은 어리석음을 범했다.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39절). "너희는 물로 손은 씻지만 너희 마음의 사악함은 씻지 않는다." 잔이나 대접의 겉만 깨끗이 하고 속은 깨끗이 하지않는 자는 결코 청결한 종이 될수 없다. 모든 신앙적인 헌신에 있어서 마음의 상태는 잔과 대접의 속과 같다. 마음이 더러우면 예배를 더럽힌다. 영적인 죄악의 지배하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큰 모욕이다. 그것은 마치 종이 잔 겉의 먼지는 씻었으나 속은 거미집과 거미로 찬 잔을 그의 주인의 손에 쥐어주는 것과 같다. 원한과 사악은 더크고 더럽고 용서받을수 없는 음란의 죄등을 잔의 겉에서 씻어낸 자들이 빠지기 쉬운 위험한 죄이다.
2) 어리석음의 구체적인 예가 본문에 나와있다.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40절). 즉 모세의 율법에 여러가지 씻는 일들을 지시해 주신 하나님께서 너희 마음을 깨끗이 씻고 정화시키지 아니하시겠느냐. 밖을 위해서 율법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속을 위해서는 더욱더 많은 것을 만들지 않았겠는가. 이 육체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더욱 놀랍고도 기이하게 만들어진 이 영혼도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겠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이 두가지를 다 만드셨다면, 그는 당연히 우리가 그 둘다 돌보기를 바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을 씻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인 영혼도 씻어 마음의 문둥병을 치유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다 우리 음식물이 우리를 깨끗케하는 규정을 추가하고 있다(41절). "먹기 전에 너희 손을 씻는 대신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여 가난한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몫을 가지게 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할 것이며 너희도 그것들을 안전하게 쓸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모세의 율법의 분명한 의미이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그들의 소산물의 일정한 양을 레위인, 나그네, 고아, 과부에게 주어야 한다. 이렇게해서 그들 자신이 사용하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 깨끗한 것이 되었다(신 26:12-15). 우리가 예비치 못한 자들에게 나누어 줄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편안히 누릴수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몫을 취하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가진것 역시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풂으로써 음식을 사용할 우리의 자유를 우리 자신에게 분명히 한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사소한 일에는 관심을 두면서 율법의 중요한 부분은 소홀히 하는데 대해 책망하셨다(42절). 바리새인들은 신앙의 수단에 관계되는 율법은 아주 정확하게 지켰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즉 종류대로 완전하게 드렸다는 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십일조를 정확하게 드리는 일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들의 중요한 의무를 소홀히 하는데 대한 보상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책망하는 것이다. 그들은 신앙에 관계되는 율법을 무시하였다. 너희가…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몫을 주면서도 하나님께는 너희 마음을 드리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지 않다."
(3)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들의 교만과 허영을 책망하셨다.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43절).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높은 자리에 앉거나 문안받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런 일들을 기뻐하는 것에 대해서 책망하고 계시는 것이다.
(4)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책망하셨다.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과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44절). 이 바리새인들의 내부는 부패한 무덤처럼 혐오, 교만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들은 예배라는 미명하에 교묘하게 그것을 감춘다. 그러므로 그들과 얘기하고 그들의 교리를 따르는 자들은 죄로 더럽혀지고, 그들의 부패상과 악한 교훈에 감염되게 된다. 전염병은 서서히 침투하여 모르는 사이에 감염되고 만다. 그러나 병에 걸린 자들은 결코 자신이 악화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4. 율법사와 서기관들에 대한 책망(45-54)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율법사와 서기관들을 책망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일에 관심을 가졌지만, 율법사와 서기관들의 임무는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1)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에 대해 분개한 율법사 한사람이 있었다.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45절). 충실하고 우정깊은 충고를 악용하는 것은 죄와 영합하여 거기서 떠나지않으려는 자들의 어리석은 소행이다. 그들은 충고자들이 자기들을 비난하려한다며 화를 내고 자신들을 합리화시킨다. 이 율법사는 바리새인들의 생각을 지지하면서 그의 죄에 동참하는 자가 되었다.
(2)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셨다. 화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사여(46절). 그리고 또 '화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라고 말씀하셨다(52절).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좋은 평판을 받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보시지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을 책망하는 일에 대해서 그것이 자기들에 대한 것이 아닌가 항의하고 의심하는 자들은 단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화를 자초할 뿐이다.
1)율법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시키신 것보다 더 부담이되게 신앙의 봉사를 하게하고 자신들에게는 더 가벼운 짐이 되게 한것에 대해 책망받았다.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46절). 다시말해서, ①"너희는 그들과 함께 짐을 지지도 않을 것이며 너희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그 속박에 구속받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②"너희는 너희가 다스리는 자들의 짐을 가볍게 해주지 않을 것이며 손을 대지도 않을 것이다. 즉 너희는 무겁고 어려운 짐을 진 사람을 보았을때 그 짐을 없애주거나 덜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위하여 두손을 가지고 나오나 장로들의 엄격한 전통을 완화시키는 일에는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2)그들은 그들의 조상이 죽였던 선지자들을 존경하는척 했기때문에 책망을 받았다. 그들의 조상들은 똑같은 임무를 띠고 그들에게 보내진 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하였다(47-49절).
①이 위선자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았다'(47절). 즉 그들은 선지자들을 찬양하며 그들의 무덤에 비문을 세웠다. 그들은 선지자들의 유물을 무덤속에 넣거나 순교자들의 무덤을 경배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열납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미신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마치 선지자들의 자손인양 그들의 경건을 추모하고자 그 무덤들을 수선하고 아름답게 꾸며 신성하게 하였다.
②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선지자들의 영과 능력으로 그들에게 온 당시의 사람들에 대해 철저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들에게 보내진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죽이고 핍박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선지자들은 그들의 죄를 책망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할 것이다. "내가 선지자들을 저희에게 보내리니 저희는 선지자들을 모함하고 반대할뿐만 아니라 죽이고 핍박할 것이다."
③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 일을 아주 다르게 해석하실 것이다. 즉 그 일은 그들이 자기 조상들의 행위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45절). 그들의 조상들이 이곳에 매장된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 일은 그렇게밖에 해석할수 없다.
④그들의 박해가 다하면 그들은 심판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50,51절).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박해한 죄는 그들의 조상들이 지은 어떤 죄보다 더한 것이므로 진노가 그들에게 가장 심하게 내려질 것이다. 사실 로마인에 의한 그들의 멸망은 너무 가공할만한 것이었으므로 그것은 선지자들을 박해한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보복으로 여겨졌다.
3)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대한 것에 대한 책망을 받았다(52절). 그들은 자기들의 임무에 따라, 메시야를 예언한 구약성경을 사람들에게 충실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성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사람들을 혼돈시켰다. 다시말해서 그들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간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위해 그 열쇠를 사용하거나 그들로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도와주는 대신에 그것을 그들에게서 감추었다. 이러한 일을 마태복음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천국문을 닫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마 23:14). 그들은 구약의 지식을 통해 때가찼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로 들어가고자 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들의 안내나 도움을 받지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을 쫓아내겠다고 위협하는 등 할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들을 방해하고 좌절시켰다.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나쁘지만 그것에 반대하는 것은 더 나쁘다.
(3) 본장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사악하게 그리스도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는가를 볼수 있다(53,54절). 그들은 자기들이 옳다고 믿는 것들을 책망하는 것에 대해서 참을수가 없었다. 그들은 마치 그리스도의 책망이 심하기 때문에 그를 저지시키기 위해 격분하여 대든다는듯 '맹렬히 달라붙어 여러가지 일로 힐문하고' 또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밉게 보거나 정부가 그를 불쾌하게 생각하도록 만들만한 것을 책잡고자 '목을 지켰다.' 죄를 충실하게 책하는 자는 많은 대적들을 예상해야 한다. 인내로써 이러한 종류의 시험을 견디고 신중하게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 죄인들의 반대를 견디셨던 그리스도를 생각하자.
# 해설
기도에 관한 교훈 ( 11 )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그에게 도전을 합니다.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모함하려고 시도합니다. 메시야가 자기의 나라에 왔으나 그의 백성들에게 환영을 받지못하는 것은 정말 모순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또다른 놀라운 구원의 일들을 위해서 준비된 것임을 알게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나 크고 놀라워서 우리의 생각으로는 헤아릴수 없습니다.
1. 기도를 가르치시다
1)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의 모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르게 기도하고 바르게 간구할수 있는 것은 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를 드리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우리에게는 행복과 즐거움이 됩니다. 기도를 모르고 우리의 영혼이 윤택할수 없으며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없이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기를 바랄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우리가 성장하는 길이며, 영혼이 윤택해지는 비결인 것입니다.
a. 기도에 관한 첫 기록(창4:26).
b. 기도의 필요성(시65:2).
2) 기도에 대한 가르침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간구하는 것을 모른체 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이 간구하는 것은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따라서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릴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 와서 함께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하며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진실된 마음과 간절한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은 그의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입게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향해서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a. 하나님과의 대화이자 영교임(시91:14).
b. 영혼의 호흡(롬12:12).
2. 유대인들과의 논쟁
1) 바알세불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많은 기적과 이사를 행하시자 이에 시기하며 음해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능력 행하시는 것이 귀신의 힘을 입어서 가능한 것이라고 모함합니다. 이것은 예수를 심각하게 해하려는 박한 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잘못 알고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일이 귀신의 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고 그들의 일을 없애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사단의 세력을 몰아내는 것이며 사단과의 싸움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제 공중 권세잡은 자와 메시야와의 결전이 이루어집니다. 메시야의 승리와 사단의 멸망은 정해진 것입니다. 이것을 보는 사람이라면 앞으로의 일도 예상할수 있습니다. 이제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a. 하나님 앞에서 양방이 같이 섬(신19:17).
b. 여호와가 이스라엘과 쟁변하심(호4:1).
2) 참된 행복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안에 거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의 모든 것이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래에 대한 보장이 없습니다. 오직 불안과 어려움가운데 생을 마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기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따르며 지키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의 사랑을 받는 비결은 바로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열려있으며 누구에게나 보장되어 있습니다.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며 단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a. 여호와의 규례를 지킴(신10:13).
b.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심(롬4:6).
3) 요나의 표적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합니다. 예수가 메시야라면 표적을 보여서 믿을수 있게하라는 것입이다. 그러나 다른 표적은 필요치 않습니다. 오히려 메시야를 정치적인 왕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가르침이 필요할 뿐입니다. 요나의 표적은 그들에게 메시야가 어떠한 분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지고 해결하시는 분입니다. 그를 따를때 그로부터 구원을 받게 됩니다.
a. 그리스도 부활의 예표(마12:39-40).
b. 회개케 함(욘3:9-10).
3.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
1) 몸의 등불은 눈
사람들이 자신이 옳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려고 여러가지 외식을 행하지만 진정으로 의로운 사람은 자신의 삶과 행동을 통해서 이웃들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그 마음속에서 빛이 비추어 다른 사람에게 비추이는 등불같이, 선한 사람은 그의 선함으로 이웃에게 선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이요, 의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른 삶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온전한 모습을 갖추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a. 근면(잠31:18).
b. 사람 앞에 비춤(마5:15).
2) 외식하는 자들
하나님의 백성들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마음의 모든 것까지 깨끗해야 합니다. 외식으로 모습을 꾸미고 위장한다고해서 그 마음의 악독한 것을 감출수는 없습니다. 진정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본성이 변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형식에 매여서 본질을 왜곡시키고 다른 이들을 비방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게될 것입니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입니다. 내용이 없어지면 형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릇에는 내용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여러 형식들은 내용을 전하기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진정한 마음으로 형식에 우리의 내용을 담아야할 것입니다. 우리를 바라보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a. 입술로만 하나님을 존경함(막7:6)
b. 예수가 정죄하심(마23:15)
3) 다른 이의 길도 막는 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알고있는 짧은 지식으로 예수를 평가하고 판단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저주를 가져왔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저주하시되 의로운 피에 대한 값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죽음과 멸망이 선포되는 것입니다. 더이상 돌이킬수 없고 완전히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멸망에 이르게 하는 자들이라는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a. 망령된 행위(삿20:10)
b. 허물과 죄악(렘30:14)
결론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의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과 규례를 지키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복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들에게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항상 함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그에게 나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의 얼굴을 향하여 복주실 것입니다.
# 핵심
11:1-13
예수님이 기도의 모범을 제시하면서 올바른 기도 자세에 대해 교훈하신 내용이다.
모범적인 기도(11:1-4)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의 모범이다. 마태복음에 수록된 내용(마 6:9-13)에 비해 누가의 기록이 간결하지만, 주된 내용은 일치한다. 성도는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적 자녀로 거듭난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여야 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려야 한다. 또한 기도 내용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가운데 그 도우심을 간구하되, 이기적 욕구 충족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추구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 묵상
예수님의 기도 모범 ( 11:2-10 )
‘아버지여’는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를 나타내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최고의 경외심의 표현이며, ‘나라이 임하옵시며’는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대망한 것입니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우리의 필요를 위해 끊임없이 간구하는 것이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는 자신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태도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는 항상 경성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세를 가르칩니다. 여기에서 바른 기도의 원리를 볼수 있는데 이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구한다는 것은 결핍을 알고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즉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끊임없이 구하는 것은 살아있는 신앙의 증거입니다.
구하는 자의 축복 ( 11:11-13 )
천부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불순한 동기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성도들이 잘못 구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더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좋은 것, 즉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말씀 준수의 중요성 ( 11:27, 28 )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주님을 밴 태와 먹인 젖보다 복되다는 말은 육신적으로 예수님을 낳은 모친 마리아보다 영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자가 더 주님과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영적 관계임을 가르칩니다.
악한 세대의 표적 ( 11:29-32 )
예수님께서는 악한 세대에게 보여주실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나타냅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유대인이라는 혈통을 중시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맞아주시는 사랑의 주이십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몸의 등불인 눈을 성하게 가져야 합니다. 눈은 마음의 창입니다. 그 눈의 초점이 어디에 맞추어지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격과 영혼이 밝거나 어두워지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의 눈을 생명되신 예수님께 모으도록해야 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문제점 ( 11:37-52 )
정결법에 따르면 바깥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를 매우 중히 여겼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형식적인 의식보다 속이 깨끗해야함을 더 강조하셨습니다. 이러한 종교 지도자들의 죄성은 전도된 가치관, 교만, 외식, 책임 전가, 무자비, 배타성 등이었습니다.
십일조보다 더 중요한 것 ( 11:42 )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눈에 보이는 계율과 행위는 중시했지만 보이지 않는 의(義)나 인(仁), 신(信)은 무시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꾸중하며 저주하셨던 것입니다.
비난받은 율법사 ( 11:45-52 )
이들이 예수님께 비난받은 까닭은 지기 어려운 짐을 남에게 지우고,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남도 못들어가게 막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형식적인 위선, 허세와 교만, 외식, 율법주의 그리고 진리를 핍박하며, 독선적이고도 배타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누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 13장 - study (0) | 2018.12.30 |
---|---|
누가복음 12장 - study (0) | 2018.12.29 |
누가복음 10장 - study (0) | 2018.12.27 |
누가복음 9장 - study (0) | 2018.12.27 |
기쁨과 감격으로 맞을 구세주 예수님의 성탄 (눅 2:25~38) (0) | 2018.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