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2:1-10

 

그리스도교가 처음 전파되던 때부터 유대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된 사람과 이방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된 사람 사이에는 견해의 차이가 있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위한 사도였으나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였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여행한 2차 전도 여행을 이야기하고 있다(갈 2:1-10).

(1) 그는 1차 전도여행(갈 1:18)을 한 후 14년이 지난 뒤에야 2차 전도여행을 했다(행 2:1,2). 이곳에서 14년이란 대체로 1차 전도여행 후 14년을 말하지만 일부의 학자들은 그의 회심 이후 14년 혹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후 14년을 말하기도 한다. 그가 다른 사도들에게 의존하지 않았다는데 대해서 몇 가지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곧 그가 다른 사도들과 오랫동안 떨어져서 복음에 대해 그들에게 묻는 일이 없이 순수한 그리스도교를 전파하였다는 것이다. 14년 후에 내가 …올라갔나니. 만일 이곳에서 언급한 여행이 사도행전 15장에서 기록된 것과 같은 여행이라면 우리는 왜 바나바가 그와 동행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즉 그는 안디옥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바울의 동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디도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자가 되었을지라도 그는 이방태생이며 무할례자였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와 동행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유대인들의 교리와 그 의식은 지엽적인 것임을 나타내주려는 것이다. '그는 계시로 인하여 올라갔다.' 사도 바울이 종종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를 받는 은총을 입은 것은 그의 특권이었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나아갈 바를 분명히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에 따라 인도하시는 대로 자신을 맡겨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2) 바울이 예루살렘에 있었을 때의 행동에 대한 설명(2-10절)

  1)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사사로이 한 것은(2절). 이 말 속에서 우리는 그의 신실하고도 신중한 모습을 보게 된다.

   ① 그는 이방인 가운데서 전파해왔고 또 계속해서 전파하고 있는 교리에 대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신실한 태도로 설명을 해주었다.

   ② 그는 분별있고 조심스럽게 설명하였다. 그는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오히려 사사로이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가 이와 같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한 이유는 그의 반대자들을 동요시킬 경우 지난날의 노력으로 이룩한 성과가 삭감되거나 장차의 노력이 방해를 받지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의 목적은 그의 교리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인정을 받던 받지 않던 상관없이 가장 권위있는 사람들에 의해 인정받는 것으로 충분했다.

  2) 그는 자신이 전했던 교리를 확고하게 고수하였다. 그는 비록 헬라인인 디도와 동행했으나 그에게 억지로 할례를 받도륵 강요하지 않았다. 사도들은 전혀 할례를 주장한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이 누렸던 자유를 시기하여 몰래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 있었다. 만일 그들이 바울을 설득시켜 디도에게 할례를 베풀도록 하였다면 그들은 다른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일이 용이하였을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을 모세율법의 멍에에 예속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의 진리가 그들 가운데 항상 있게 하기 위해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다. 그는 모세의 의식을 찬성하는 자들에게 굴복하려 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 그 자유를 굳건히 지키고자 했다.

  3) 바울은 비록 다른 사도들와 친교를 가졌으나 그들로부터 어떤 지식이나 권위를 받은 것은 아니다(6절). 그들이 먼저 사도가 되었다고 해서 그가 그들과 동등한 사도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그가 전에 계시에 의해 알았던 것외에는 아무 것도 그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그가 그들에게 전한 교리를 반대하지도 않았다.

  4) 다른 사도들은 바울의 신적 사명과 권위를 충분히 확신했으며, 따라서 그를 그들의 동료 사도로 인정했다(7-10절).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처럼 바울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자로'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그들과 동등한 자격을 부여했으며 그들이 할례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 나라로 가야한다는데 동의했다. 그리하여 그 회의는 완전한 조화와 일치 속에서 끝났다.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교리와 행위를 모두 인정했으며, 바울도 본래 힘써 행하였던 가난한 자를 생각하도록 권하는 것외에는 아무 말도 더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의 자비에 대한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에게만 그 자비를 한정해서는 결코 안되며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자비를 베풀 수 있도록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Ⅱ. 베드로에 대한 바울의 책망 2:11-21

 

(1) 바울은 안디옥에서 사도 베드로와 나누었던 또다른 대화와 그곳에서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갈라디아인들에게 알린다(11-14절). 다른 곳에서는 그들 사이에 좋은 조화와 일치가 있었으나 이곳에서는 바울이 베드로를 반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1) 베드로의 실수 : 베드로는 이방 교회에 왔을 때 그들의 요구에 응하여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유대인 몇 명이 예루살렘에서 그곳으로 오자 그는 그곳을 떠나 물러갔다. 이곳에서의 그의 실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들 중의 한 사람인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회식에 유혹되었다. 다음의 사실을 유의하라.

   ①훌륭한 사람에게도 나약함과 변덕스러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들도 인간을 기쁘게 하려는 지나친 염려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는 일에 망설이는 경향이 있다.

   ②나쁜 본보기, 특히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들의 나쁜 본보기는 큰 영향력을 지니게 된다.

  2) 베드로에 대한 바울의 책망 : 바울은 베드로의 처사를 보고 그와 같은 행동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책망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기가 죽어 머뭇거리고 있었으나 그는 그의 소신대로 단호하게 행동했다.

(2) 그는 여기서 복음의 근본 교리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칭의가 율법의 행위에 기인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이 교리는 바울이 이방인 가운데서 전파하였던 교리이며 지금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교리인데 이 교리를 확증하는 것이 이 서신의 주요 목적이다. 이에 대한 바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처사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곧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우리가 의로워진다는 말이 거짓인가? 만일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면 율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바울은 이 사실을 더 강조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부인을 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17절). 즉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한 교리를 받아들이게 하였으나 우리는 그 교리에 의해 의롭게 되기는커녕 계속적으로 죄인으로 남아 있게 된다면 그는 죄를 짓게 하는 자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히 그 말을 부인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불완전하고 효험이 없는 칭의의 길로 인도하셨다는 생각을 금하신다"고 바울은 말했다. 그러므로 그는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18절)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죄 아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2) 바울은 그 자신의 판단과 행한 바를 우리에게 알린다.

   ①'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그는 칭의는 율법을 행함으로써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또한 희생제물이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음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그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써 모든 희생제물은 그리스도 안에서 필요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비록 '율법에 대하여 죽었지만' 그 자신을 율법없는 자로 생각지는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향해 살기 위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복음의 교리는 의무에 대한 멍에를 약화시킨 것이 아니다. 그것을 더욱 강화시키고 확고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비록 율법에 대하여 죽었지만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새롭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함이었다.

   ②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대하여 죽은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살았다(20절).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새 사람은 살아 있다. 죄는 억제되고 은혜는 소생된 것이다. 나는 살았으나 산 것은 내가 아니다. 그는 은혜를 통하여 위로와 승리를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은혜는 그 자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부터 왔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그는 죄에 대해 죽으려고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여하였으며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고 그리스도의 생명에 관여했다.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0절). 그는 외형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과 같이 살았으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법칙 즉 그를 지지해 주는 높고 고귀한 원칙을 가지고 살았다.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그 믿음으로 살게 된다.

  3) 그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교리를 통하여 두 가지 큰 난제를 해결했다.

   ①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않았다.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행위에 의한 것이라면 은혜는 더 이상 필요없게 된다.

   ②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이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소용없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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