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해 책망함 3:1-5
사도 바울은 이곳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받아들이고도 여전히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지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바울은 1절에서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물으며 그들을 책망했다. 그들은 칭의의 수단으로써 그들이 배워 온 복음을 고수하지 않았다. 진리를 알고 또 그것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 진리에 복종까지 해야만 한다. 갈라디아 교인들의 어리석음에 대해 입증할만한 사실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1절). 그들은 십자가의 교리에 대해 배웠다. 주님께서 베푸신 성만찬이 그들 가운데서 행해졌다. 이 두 가지 사실을 통해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밝히 보았다.
(2) 바울은 성령의 역사에 대한 그들의 경험에 호소하고 있다(2절). 그는 그들이 어떻게 이 은사와 은혜를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구별하기를 원하였다. 그렇게 된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이 사실에 대해 진실을 이야기한다면 그들은 후자를 인정해야만 한다.
(3) 그는 그들에게 지난 과거의 행위와 현재의 행위에 대해 생각하도록 촉구한다(3,4절). 그들은 시작은 잘했으나 이제는 율법에다 관심을 쏟았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칭의를 위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율법의 준수를 더함으로써 보다 높은 수준의 완전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복음의 진보 대신에 그 반대 현상을 일으킨다. 그들은 보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는커녕 완전한 비그리스도인이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리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위하여 고통까지도 감당했다. 만일 그들이 지금 복음을 버리게 되면 더욱더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다.
(4) 그는 사역자들이 그들에게 성령을 주고 기적을 행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즉 그는 그 사역자들이 율법의 행위로 그렇게 했나 아니면 듣고 믿음으로 그렇게 하였나에 대해서 그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그들은 사역자들의 행동이 전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후자에 의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주 확실한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입증까지 되었던 교리를 버릴 경우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
Ⅱ.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교리 3:6-18
그는 주로 그들이 거절하였기 때문에 책망받았던 교리에 대해 입증한다.
(1)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사실에 관해 언급함(6절) :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고하게 붙잡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찌어다(7절).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며 그들 역시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8절). 하나님은 믿음에 의한 방법으로써 이방 세계를 의롭게 하실 것이다. 아브라함 안에서 즉 아브라함의 자손인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아브라함이 축복받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이 특권을 받게 되는 것 역시 아브라함과 똑같은 방식에 의한다.
(2) 복음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만 의로워짐 : 복음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을 경우 의롭게 되지 못하는 이유는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들이 그 율법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면 분명 추방을 당하고 정죄를 받게 될 것이다(10절). 율법에 의하면 우리의 생활 상태는 완전해야 하고 인격적이어야 하며 영원히 복종해야 한다. 이에 대한 용어는 12절에서와 같다. 우리의 순종이 보편적이고, 계속적이지 않는 한 우리는 율법의 저주아래 놓이게 된다. 만일 우리가 율법의 범법자로서 그 율법의 저주아래 있게 된다면 율법으로 의롭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후에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13절) 이 저주를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리스도가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시는 방법은 아주 특이하다. 즉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다. 이 의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다 아브라함의 축복 특히 성령의 놀라운 약속에 대한 상속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약속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자신들을 율법아래 두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3)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구약의 특별한 증언들 :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11절). 즉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과 행복을 얻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다'는 말의 의미는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는 뜻이다. 율법은 생명의 조건으로서 완전한 순종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이제 율법은 우리의 칭의를 위한 규범이 결코 될 수 없다.
(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불변성을 주장하는 사도 바울 : 이 언약은 모세의 율법이 주어졌을 때에도 결코 폐기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다(8절). 이 언약의 본래의 뜻은 언약과 유언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나타낸다. 비록 유언의 권리를 주장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유언이 폐기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16절), 바울은 그런 염려가 없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아브라함도 선지자들도 다 죽고 없다. 그러나 이 언약은 아브라함 및 그의 자손과 맺은 언약이다. 사도 바울은 '자손은 그리스도 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거하시기 때문에 이 언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율법은 먼저 있었던 언약이나 약속을 폐기할 수 없다(18절). 만일 유업이 약속에 의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취소하시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후회하실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Ⅲ. 율법을 주신 목적 3:19-29
하나님은 어째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나?
(1) 율법은…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19-20절). 이스라엘 백성도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죄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들에게 자신들의 죄를 확신시켜 주었다. 율법은 또한 그들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하려고 주어졌다. 그리고 율법은 이처럼 때가 차기까지의 범죄로 인하여 주어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약속된 자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히 나타났을 때 모세에 의하여 주어진 율법은 폐기되는 것이다. 비록 자연법으로서의 율법은 언제나 유효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법적 언약의 구속과 그 공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율법은 인간들에게 그들의 죄가 많음을 보여줌으로써 약속의 필요성을 알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께로 향하도록 인도할 뿐이다. 약속은 하나님 자신에 의하여 직접 주어지는데 반하여 율법은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주어졌다. 그러므로 율법은 약속을 폐기하려고 의도되어진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20절). 따라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보다 오래 전에 한 약속을 폐기하신다고는 결코 상상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약속을 폐기하신다는 사실은 그의 진리와 신실함에 모순되는 일이다. 모세는 단지 중재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에 의하여 주어진 율법은 약속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2) 율법은 사람들에게 구세주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주어졌다(21-23절). 율법은 결코 약속과 모순되지 않는다. 율법의 의도는 인간들의 범죄를 드러내게 하고 그들에게 율법의 의보다 더좋은 의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함이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다(22절). 율법은 죄인들의 상처를 드러내었을 뿐이지 결코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지는 못했다. 율법의 큰 의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믿는 자들에게 약속을 주려 함'이었으며, 그들을 위한 의의 성취에 있어서 율법의 불충분성을 깨닫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어서 약속의 은혜를 얻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3) 율법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도록 의도 되어졌다(24-28절). 그들은 감금 상태에 있는 죄인처럼 율법의 공포와 규율아래 감금되어 있었다. 이 결과로 인하여 그들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을 때 더 용이하게 그를 영접할 수 있게 되었다. 율법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길을 잃어버린 바 되어있는 것을 깨닫게 하며 또 그들이 의를 지키기에 연약하고 불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에 적당하다. 이와 같은 율법은 그들의 몽학선생이 되어 미성숙의 상태에 있는 그들을 훈계하고 다스리게 되었고 그들의 종이 되어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였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그들의 후견인의 인도하에 학교로 가듯이)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몽학선생인 율법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칭의와 구원의 참된 길로 인도되도록 훈련받았다. 사도 바울은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다고 덧붙여 말한다. 즉 우리는 이전과 같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주는 율법이 더이상 필요없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그의 옛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사실은 그의 옛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낸다. 율법은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게 하고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갖도록 격려하는데 충분한 도움을 주었다.
2) 유대인들이 율법의 의도를 잘못 생각한 점에서 그들의 큰 과오와 어리석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들은 율법의 행위에 의하여 의롭게 되기를 기대한 반면에 율법은 그들을 의롭다고 규정하기 위함이 아니고 그들에게 그 자신의 죄와 구세주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수단임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3) 율법보다 우월한 복음의 유익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이제 미성숙 단계에 있는 어린아이로 취급받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성숙한 아들로 대우를 받고 있다. 이 사실에 대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계속 설명하고 있다.
①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26절). 참 그리스도인이 복음아래서 누릴 놀라운 특권은 그들이 더이상 종으로 간주되지 않고 아들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녀의 일원이 되도록 허용되었으며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도록 인정되었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27절)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그들이 세례를 받을 때 고백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예속된 자가 된 후에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았다. 세례는 이제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정을 받는 엄숙한 의식이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27절). 복음아래에서 세례는 구약의 할례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로 세례 받은 우리는 그의 죽음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즉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고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자주 기억할수록 그것은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될 것이다.
②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은 모든 참 그리스도인이 공통으로 누리고 있다. 율법은 유대인과 헬라인을 구별하였고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모두 같은 입장에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진실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어떤 민족이든 또 남자와 여자 할 것 없이 또 그들의 신분이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누구나 그리스도에게 용납되며 그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③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으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되었다. 즉 우리는 아브라함의 참된 자손이 되며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되고 그 결과로 큰 축복과 특권을 가질 자격을 가지게 되었다.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이 그들로부터 진리와 복음의 자유를 탈취하려는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처사는 이치에 맞지 않으며 현명치 못한 처사라고 말한다.
'갈라디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라디아서 5장 - 매튜헨리 (0) | 2014.05.20 |
---|---|
갈라디아서 4장 - 매튜헨리 (0) | 2014.05.20 |
갈라디아서 2장 - 매튜헨리 (0) | 2014.05.20 |
갈라디아서 1장 - 매튜헨리 (0) | 2014.05.20 |
갈라디아서 6장 - study (0) | 2014.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