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일곱 집사의 선택 6:1-7

1. 사인들 간의 분쟁(1)

몇몇 교인들 간에 일어난 불행한 분쟁은 적절하게 때맞춰 처리되었다(1절).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원망하는 자가 생겼다.

(1) '제자가 더 많아졌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없이 제사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당황하였다. 복음 전파에 대한 제지가 오히려 복음 전파를 촉진시켰던 것이다. 전도자들은 매맞고 위협당하고 치욕을 당했으나 백성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으며, 그들이 고난 중에도 놀랍게 인내하고 기뻐함을 보고 그들을 찾아왔다.

(2) 그러나 제자의 증가가 원망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들이 증가하자 그들은 불평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망한데. 그 원망은 노골적인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가슴을 태우는 것이었다.

1) 불평자들은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와 다른 여러 곳에 흩어져 살다가 절기를 당하여 예루살렘에 왔다가 그리스도의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본토 유대인인 히브리파 유대인에 대하여 불평했다. 이 양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개종전에 서로서로 가졌던 그 사소한 시기심들을 개종한 후에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똑같이 그리스도께 영접을 받으므로 그를 위하여 서로 서로 사랑해야 할 것이다.

2) 헬라파 유대인들의 불평은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진다'는 것이었다. 기독교 교회의 최초의 논쟁은 금전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은 구제하기 위하여 많은 돈을 모았으나 그런 경우에 그 분배에 있어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주기란 어려운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사도들은 불공평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그들은 자기들의 과부가 빠진다고 불공평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 불평은 근거가 없고 부당한 것인 것 같다. 불리한 입장에 선 사람들은 실제와는 달리(헬라파 유대인이 히브리파 유대인과 비교해 보고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무시받고 있다고 시기하기 쉽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결점인데 그들은 시비를 잘 걸고 소란을 일으키고 그들에게 더 많이 주지 않는다고 흠을 잡곤 한다. 시기심과 탐심을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이들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불평의 원인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국가의 관리들이 특별법으로 과부들을 손해에서 보호한 것처럼 구제를 맡은 사람들은 특별히 과부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지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교회에서도 잘못된 일, 부당한 처사, 최소한의 불평거리가 있는 것이다. 최상의 것일수록 단점은 최소가 될 뿐이다.

2.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책(2-6)

지금까지는 사도들이 모든 문제를 처리해왔다. 그러나 이제 사도들보다도 그 문제를 돌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그 일을 맡겼다.

(1) 사도들이 제안한 방법 :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열두 사도는 어떤 문제도 다른 제자들을 빼고 결정하지 않았다. 사도들보다는 이런 세상사에 더 정통한 그들이 가장 나은 조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1) 사도들은 그들의 막중한 사명 앞에서 분열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2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이 일은 사도들에게 주어진 사명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만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해 충분한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교회생활에 관여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는 것이 된다. 그들이 등에 채찍을 맞았다고 해서 이 사명을 버릴 수 없었던 것처럼, 그들의 발 앞에 놓인 돈 때문에 복음전도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복음전도는 사역자의 임무 중 최선의 임무이다. 그는 세상사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또한 하나님의 집의 외적인 일에도 관여해서는 안 된다.

2)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생활을 관장할 일곱 집사를 선택하고자 했다(2절). 이 일은 이제까지 사도들이 해왔던 것보다 더욱 배려되어야만 했다. 따라서 적당한 사람을 택해야 했다. 그리하여 매사가 적절하고 질서 있게 처리되어야만 하고 한 사람이라도 무시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 사람들은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했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이들을 뽑아서 사도들이 안수하여야 했다. 사람 일곱을 택하라. 그들은 정직해야 했다. 즉 비방 거리가 없고, 이웃에게서 성실하다고 인정받으며 신뢰받을 만하고 매사에 공정하다고 인정받아야 했다. 그들은 성령충만해야 했다. 그들은 정직해야 할뿐 아니라 능력과 용기가 있어야 했고, 그로 인하여 성령충만하게 보여야 했다. 그들은 지혜가 충만해야 했다. 즉 정직하고 선한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사려 깊고 분별력 있는 사람으로서 그 일을 부담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어야 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다'는 것은 지혜의 영으로서의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금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충만해야 될 뿐만 아니라 성실하고 검소해야 한다. 제자들이 지명해야만 했다. 너희 가운데서…일곱을 택하라. 그것은 사도들보다는 그들이 그들 내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더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그들에게 봉직을 위하여 안수할 것이었고 그들에게 책임을 맡기고 권위를 부여할 것이었다.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낭비와 부족함이 없도록 돌아보자 한다."

3) 사도들은 이 말썽 많은 일을 완전히 해결한 후 사역자로서의 임무에만 열중했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4절). 첫째, 복음의 이대(二大) 강령은 말씀과 기도이다. 이것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왕국은 발전되어야 하고 보존되어야 한다.

둘째, 복음 사역자의 가장 큰 임무는 계속 기도하고 말씀을 먹이는 것이다. 그들은 말씀의 사역에 있어서는 사람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입이 되어야 하고, 기도하는데 있어서는 하나님에 대한 백성들의 입이 되어야 한다. 죄인들을 회개시켜 믿게 하고, 성도들을 위로하고 교화시키기 위하여 사역자들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말씀을 전해야만 한다. 또한 사역자들은 단지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은총은 사역자들의 설교 없이도 역사할 수 있지만 사역자들의 설교는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역사할 수 없다. 의심할 바 없이 이들 사역자들은 사도들의 계승자들이며, 끊임없이 기도와 말씀의 사역에 힘써야 한다.

(2) 이 제안은 제자들과 어떻게 합의되었는가. 그 제안은 강요된 것이 아니라 단지 제안되었을 뿐이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5절).

1) 그들은 마땅한 사람을 고르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표가 본문에 명기된 사람에게 모아졌다. 나머지 다른 후보자 유권자들도 이에 순응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은 신자들의 손으로 뽑혔다. 그러나 그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는 역사 하신다. 본문에 일곱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에 관해서 추정해 볼 수가 있다.

첫째, 그들은 그들의 재산을 팔아 그 돈을 공동재산으로 내놓은 사람들일 것이다. 가장 관대하게 자기 재산을 내놓는 사람이 그것을 분배하는 데 가장 적합한 사람일 것이다.

둘째, 일곱 사람은 모두 헬라파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희랍식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이 헬라파의 불평을 막는데 제일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유대교로 개종했었던 니골라도 분명히 그들 중의 한사람으로 뽑혔는데 그 이유는 그가 안디옥 출신의 개종자였기 때문이었다. 첫번째 사람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이었다. 그는 성실하고 용기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에게 성령 즉 은사와 은총이 충만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비범한 사람이었고 모든 선한 일에 있어서 특출했다. 그의 이름은 면류관을 의미했다. 두번째로 기록되고 있는 빌립은 후에 전도자의 직무를 안수 받고 사도들의 동료이자 조력자가 된 사람으로서 특별히 21:8절에 보면 전도자라 불리우고 있다. 설교와 세례를 베푼 그의 사역은 (8:12절에서 보게 되는 바와 같이) 확실히 집사로서가 아니라 전도자의 역할임을 알 수 있다. 마지막에 나오는 니골라는 (유다처럼 일곱 사람 중에서) 제명되어 계시록 2:6,15절에서 보면 되는 바와 같이 니골라당의 설립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은 그가 싫어하시는 일이었다. 그러나 몇 명 초대 교부들은 그에게서 누명을 벗겨 내었으며 다음과 같이 전한다. "비록 그 악하고 불순한 이단이 자신들의 당을 그의 이름으로 불렀지만 그것은 옳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는 단지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처럼 하라고 주장했을 뿐인데 그들이 사악하게 아내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공동으로 아내를 소유해야 한다고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터툴리안이 소유공동체에 대하여 말할 때 아내에 대하여서만은 제외하여 "우리들 가운데 모든 것은 공동으로 소유하나 아내만은 제외한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2) 사도들은 그들을 당면한 문제인 공궤하는 일에 임명했다(6절). 사도들은 그들과 함께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교회의 봉직을 맡은 사람은 교회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사도들은 기도로써 그들에게 축복하시기를 간구하였으며, 안수로써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수여되었음을 그들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또한 이 기도와 안수를 통하여 그들은 그 직무를 실행할 권위를 부여받았다.

3. 이로 인한 교회의 발전(7)

교회에서의 문제가 질서 있게 처리되자 신앙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사도들은 전보다도 더욱 말씀 전하기에 힘썼기 때문에 복음은 널리 퍼져 나갔다. 사역자들은 세속적인 일에서 떠나 그들의 임무에만 몰두함으로써 복음이 흥왕하는데 더욱더 공헌할 것이다. 기독교인의 수가 많아졌다.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그리스도가 지상에 계실 때, 그의 사역이 예루살렘에서는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도시에서 많은 개종자가 나오게 되었다. 하나님은 가장 악한 곳에도 자기 백성을 남겨 놓으신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복음을 반대했거나 반대와 관련이 있는 자들이 믿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온 것 같다. 그들은 언제나 서로를 신뢰하며 격려해 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리스도 앞에 그들의 이름을 버리고 개종하기로 동의했던 것이다. 허다한 무리의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들의 편견을 극복하고 이 도에 복종하였다. 그들은 복음의 도리를 수용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진리의 힘에 매혹되었다. 그들은 복음의 명령과 교훈에 기꺼이 복종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그들의 신앙의 성실함을 보여 주었다.

 

Ⅱ. 스데반에 대한 참소 6:8-15

스데반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의 직무를 성실하고 신실하게 수행한 사람이었다. 그 직무를 맡게 되었을 때 그는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은 일에도 충성하여 더욱 신뢰를 받게 되었다. 본문에서 우리는 그가 아주 명예로운 직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1)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함으로써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였다(8절). 그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믿음이 강한 자는 권능도 충만하게 되는데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를 위해 역사하기 때문이다. 믿음에 의해서 우리는 자신을 비우고 그리스도로 채워야 한다.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스데반은 이 일들을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 앞에서 행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기적은 사람들의 가장 엄밀한 검사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2) 그는 기독교를 반대하는 자들과 기독교에 대해 변론하였다(9,10절). 그는 고지에 선 논쟁자로서 기독교에 봉사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포도원지기나 농사꾼으로서 기독교에 봉사했던 것이다.

1) 본문을 통해 우리는 그의 적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9절). 그들은 헬라파 유대인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신앙생활을 실행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계속 방문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과 수고가 필요했다. 이런 사실들이 그들로 하여금 값싸고 쉽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사람보다 유대교에 더 철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리버디노인 사람의 회당이라는 회당에서 온 자들이었다. 로마인들은 그들을 리버티 혹은 리버티니(자유라는 뜻)라고 불렀는데 로마에 귀의한 사람들 또는 노예로 태어났으나 자유인이 된 사람들을 지칭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리버디 노인들을, 바울처럼(27,28장)로마 시민권을 얻은 유대인들로 생각한다. 한편 구레네인, 알렉산드라인의 회당에 속한 자들과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생계의 수단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거주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각 나라마다 그들의 회당이 있었는데 마치 그것은 런던에 프랑스인 교회, 독일인 교회, 덴마크인 교회가 있는 것과 같다. 이제 각 회당에 속한 자들은 기독교의 목적의 선함이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스스로 잘 운영되어 나가자 논변의 힘으로 기독교를 붕괴시키는 일에 착수했다. 그것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법이었으며, 어떤 종교든 논쟁을 허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왜 스데반과 논쟁했는가? 왜 사도들과 논쟁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사도들은 무식하고 무지한 사람이라고 경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스데반은 학자로 성장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명예롭다고 생각했다. 또 그들이 사도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아마도 그들은 공격적인 도전을 했던 것 같으며 이때 스데반이 사도들의 대변자로 지명된 듯하다. 스데반은 교회의 집사였고 매우 영리하고 명쾌한 젊은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스데반과 논쟁한 것은 그가 그들과 열성적으로 논쟁하였고 그들에게 확신을 주려했기 때문인 듯하며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사명이었다.

2) 본문에서 우리는 그가 어떻게 논쟁했는가를 알 수 있다(10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그들은 자기들의 입장을 주장하지도 답변하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앙을 갖게 되지는 않았지만 혼란을 일으켰다. 그들이 스데반에게 대항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당할 수 없었다고 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이 단지 스데반과 논쟁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와 함께 하시는 그들이 경쟁할 수 없는 상대인 하나님의 영과 논쟁하였던 것이다.

(3) 분개한 그들은 스데반을 체포하였다(12-14절). 결국 그는 그의 피로서 자신의 변론을 확신시켜야 했다. 논쟁으로 그에게 대답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그를 죄인으로 고소하여 거짓 증언자를 세우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위증을 시켰다. 즉 그들이 해야할 말을 지시하고 맹세하게 했다.

1) 그들은 정부와 군중이 다같이 그에게 대적하도록 충동질하였다(12절). 그들은 백성을 충동했다. 산헤드린이라면 그를 가만히 놔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그를 대중 폭동으로 쓰러뜨리려고 했다. 또한 그들은 장로와 서기관을 충동질하여 그에게 대적케 하려 했다. 그것은 백성들이 그를 보호한다면 그들의 권위로 그를 제압할 수 있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양면 공격을 통하여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2) 그들은 그를 법정으로 데리고 갔다.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문자 그대로, 그들은 먹이를 덮치는 사자처럼 그에게 달려들어 그를 사로잡았다.

3) 그들은 그를 모함할 준비를 갖추었다.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니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11절). 이 거룩한 곳에 율법을 거스려(13절).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의 성전과 관습에 대하여 행하겠다고 하신 바를 그에게서 들었기 때문에(14절) 위와 같은 이유를 댄 것이었다. 그를 모함하여 맹세한 사람들은 거짓 증언자라고 불리우는데 그것은 그들의 증언에 진실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를 잘못 적용하고 곡해하였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일반적인 고소는 그가 모독적인 언사를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모독적인 언사를 그치지 않는다"고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 말은 그가 관명을 항거하고 경고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에게 경고했으나 그는 듣지 않고 지금까지 말하고 있다." 스데반의 핍박자들은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하나님의 명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들은 스데반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고소했다. 그러나 스데반이 모세를 모독했는가?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 전도자들은 모세를 모독하는 듯한 말을 결코 하지 않았다. 따라서 스데반이 모세 모독죄로 고소된 것은 부당한 것이었다. 이 고소가 어떻게 지지 받고 입증되었는가? 모든 사람들이 그가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않는도다'(13절)라고 하였지만 증거가 욕되자 그 고소는 점차 위축되었다. 또한 스데반은 이 거룩한 곳을 모독하였다고 고소당했다. 그리스도는 그들이 그들의 사악함으로 인하여 성전을 더럽히고 있던 때에조차 성전의 명예를 훼손케 하는 단어를 사용하셨다는 이유로 모독자로 비난받으셨다. 그는 율법을 모독했다고 기소되었다. 이 고소도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고 고소했다. 그러나 그는 성전이나 율법을 모독했다고 고소당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나사렛 예수께서 이곳을 헐 것이다. 즉 성전을 헐 것이다. 예루살렘을 헐 것이다."고 말했다. 그가 어떻게 말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거룩한 곳이 영속하지 못하리라고 말한 것이 무슨 모독인가? 나사렛 예수께서 그들의 처소와 국가를 파괴하실 것이라고 전한 그가 모독자인가? 오히려 그들이 그에게 감사해야 되지 않을까? 그는 '이 나사렛 예수가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시리라'고 말했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파괴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완성시키러 오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규례를 고치신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 좋게 발전시키고 확립시키기 위함이었다.

(4) 스데반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가 나타난다.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보호하셨는지 소개되어 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15절). 재판관이 죄수의 안색을 살펴보고 때때로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제 그가 순교의 면류관 앞에 섰을 때 그의 생애에 이때처럼 기뻤던 적은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의 얼굴에는 동요되지 않은 고요함과 담대한 용기가 서려 있었으며 온화함과 장엄함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말하기를 그의 얼굴은 천사와 같다고 했던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신비한 광채와 밝음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실한 증언자를 명예를 높이시고 그의 핍박자와 심판관들을 당황하게 하신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그를 보고. 그들은 그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지혜와 거룩함은 사람의 얼굴을 빛나게 하지만 그것이 가혹한 멸시 속에서 인간을 건져내지는 못한다.

 

# 해설

집사의 임명 ( 6 )

본장에서는 예루살렘 교회의 전혀 새로운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집사직이 생겨나고 일곱 집사들을 안수하여 세웠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성공적인 확장이 있을 때 교회 내에는 어려운 문제들이 뒤따르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교회는 더욱 왕성하여지고 증인의 삶을 더욱 힘있게 살아가게 됩니다.

 

1. 택함받은 일곱 집사들

1) 갈등

본문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의 예루살렘 교회의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보게 되는 예루살렘 교회는 두 그룹의 교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즉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파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팔레스타인 본토 출신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헬라파 유대인들은 헬라어를 사용하고, 바나바처럼 대부분 팔레스타인 바깥 지역 출신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공동 기금을 가지고 매일 가난한 교인들에게 필요한 물질을 배분해 주었습니다. 가난한 교인 중에는 자연히 과부들이 높은 비율을 차지했을 것입니다. 헬라파 교인들은 히브리파 과부들과는 달리 자기의 과부들이 구제 대상에서 빠지자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인 배경때문에 차별 대우를 받는다고 느꼈습니다. 이로 인해 갈등이 표면화되었던 것입니다.

a.교회의 분쟁(고후12:20)

b.구제(눅12:33)

2) 일곱 집사

이 불평이 사도들의 귀에 들리자, 그들은 모든 제자들을 불러 무제를 관장할 정직한 사람 일곱을 세울 것을 지시했습니다. 사도들로서는 전념해야 할 복음 전파라는 일이 있었던 까닭입니다. 온 무리가 사도들의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택하였습니다. 곧,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웠습니다. 사도들은 이들에게 기도하고 안수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집사직의 시작이며, 집사직은 필요에 의해 설립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곱 집사의 직무는 디아코니아 즉 공궤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집사들의 직무가 말씀의 선포보다는 실제적인 사랑을 베푸는 직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a.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눅1:15)

b.기도하고 안수함(딤후1:6)

3) 교회에서의 사도들의 의무

집사를 세움으로 인해서 사도들은 말씀의 사역자로서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말한대로 였습니다. 여기에서 사도들의 전도와 교훈의 목적은 청중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믿게 하고 그들의 신앙을 더욱 깊게 하는데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했을 뿐만 아니라 제자의 수가 더욱 많아졌습니다. 또한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는 실로 깜짝 놀랄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도들이 열심히 사역한 증거도 됩니다. 일반 제사장들은 대제사장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훨씬 낮은 계급에 속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예외 없이 복음을 배척했지만, 일반 제사장들 중 많은 사람들은 겸손하고 경건한 사람들이어서 교회에 많은 수가 가입을 했던 것입니다.

a.하나님의 말씀(골1:5)

b.말씀에 복종함(롬1:5)

 

2. 스데반의 사역

1) 스데반 집사

누가는 특별히 일곱 집사 중 스데반 집사의 사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스데반은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습니다. 더구나 그는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 지혜, 믿음, 은혜 그리고 권능으로 충만했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들은 과부를 위해 애쓰는 스데반에게 능력을 더했습니다. 여기서 참으로 뛰어난 지도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a.순교하는 스데반(행7:59)

2) 회당에서의 변론

스데반은 또한 놀라운 변론가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적들은 그의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능히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회당에 모여서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했습니다. 회당의 구성원들은 북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길리기아에서 온 자들이었습니다 스데반을 몰아내려고 회당의 사람들은 은근히 사람들을 시켜 그를 비난하게 했습니다. 주 예수에 반대하여 불만을 품은 자들이 그러했듯이, 그들은 스데반을 신성 모독죄로 고소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을 충동하여 스데반을 체포해서 산헤드린 공회에 그를 넘겼습니다. 스데반은 성전으로 상징되는 옛 체제와 예수님에 의해 시작된 새 체제가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제에 대한 스데반의 주장은 자연히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스데반을 고소한 내용은 스데반이 유대의 관습들을 그리스도가 철폐했다고 주장함으로 모세를 모독했고, 또한 하나님이 좌정해 계시면서 예배를 받으시는 성전을 헐라고 주장함으로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의 성전 파괴 예언을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모세의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의 의미도 논리적으로 확고히 파악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a.거짓 증인들(막14:56)

b.성전을 헐음(마26:61)

3) 스데반의 얼굴

모든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스데반의 대답을 들으려고 스데반을 주의해서 쳐다 보았습니다. 그때 그들은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를 죽이려고 고소한 거짓 증인들과 그를 죽이려고 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스데반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리 가운데 있는 양과 같고 비둘기같이 순결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a.성도의 생애(빌2:15)

b.빛나는 얼굴(고후3:7)

 

결론

현대 교회들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며 제도적인 교회에서 은사적인 교회로의 변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권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다름 아닌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을 갖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 핵심

6:1-15

예루살렘 초대 교회가 급성장하면서 봉사 사역 전담자들이 필요하여 일곱 집사가 선출되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은 스데반이다.

집사(deacon, 6:1-6)

헬라어 ‘디아코노스’는 ‘섬기는 자’, ‘종’을 가리킨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교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직분자가 ‘집사’이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가 성장하면서 사도들의 직무가 과중해지자 역할 분담을 위해 세운 일곱 직분자들이 집사의 효시이다. 바울은 딤전 3:8-13절에서 집사가 갖추어야 할 신앙과 인격에 대해 교훈하였다.

 

# 묵상

초대 교회의 일곱 명의 사역자 ( 6:2-5 )

초대 교회는 사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하는 일에 힘쓰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 일곱명의 사역자들을 더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교회 안의 문제는 초대 교회처럼 성도들이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은혜로운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세움받은 이들의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며 칭찬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여기서 우리는 사람을 세우는 기준이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적인 부가 아니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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