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교회의 임한 핍박 8:1-3
1. 스데반과 그의 죽음으로 인한 결과(2)
(1) 스데반의 죽음을 특별히 기뻐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사울이었는데 그는 후에 바울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1절). 우리는 바울이 자기 자신에게는 수치가 되지만 하나님의 은총에게는 영광을 돌리는 이 사실을 사도행전에 기록하도록 누가에게 지시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2) 한편 다른 사람들 즉 경건한 사람들에게 스데반의 죽음은 슬픈 일이었다(2절). 교회의 몇몇 사람들은 그 매맞고 짓밟혀진 가엾은 스데반의 유해를 거두어 엄숙하게 매장하고 그를 위하여 통곡하였다. 스데반처럼 훌륭한 사람이 죽었는데도 마음에 충격을 받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경건한 사람들은 스데반이 당한 고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살인자들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스데반에게 마지막 경의를 표하였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인 그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예롭게 하신 스데반을 그들도 명예롭게 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2. 교회핍박에 대한 설명(1-3)
교회에 대한 핍박은 스데반의 순교로부터 시작된다. 스데반이 죽으면서 드린 기도와 그가 누렸던 평화가 적들의 마음을 녹여 변화를 일으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실제 그렇게 된 것 같지는 않다. 핍박자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더욱 강퍅해진 것 같았고 그들은 멋대로 행했다.
(1) 핍박의 대상 : 그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였다(1절). 그리스도께서는 특별히 예루살렘에서는 제자들이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언하신 바 있다. 그것은 이 성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사명 받은 자들을 돌로 치는 일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2) 핍박의 주동자 : 젊은 바리새인 사울만큼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핍박자는 없었다(3절). 사울은 교회를 잔멸하는 자로서 교회를 파괴하고 근절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복음을 멸절시키고자 하였다. 사울은 학자요, 신사가 되도록 교육받았으나 자신이 가장 사악한 일을 하고 있음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사울은 각 집에 들어갔다. 아무리 견고한 성안이라도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조차 안전할 수 없었다. 그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거리로 끌어냈다. 그리고 그들을 감옥에 쳐 넣어 고문하고 마침내는 처형했다.
(3) 핍박의 결과 : 그들은 흩어졌다(1절). 그들은 주님의 명령(그들이 너희를 핍박하면 다른 곳으로 가라)을 기억하면서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퍼져 나갔다. 그들의 임무는 예루살렘에서 성공적으로 수행되었고 이제 다른 곳에서 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핍박이 아무리 심해도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버릴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은 다른 곳에서 일하도록 우리를 보내는 수단이 된다. 전도자들은 사도 외에는 다 흩어졌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지만 빙벽을 깨뜨리도록 보냄을 받은 전도자들의 원조요청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갈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Ⅱ. 빌립의 행적 8:4-13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불을 주러 왔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핍박자들은 그 불을 다루는 자들을 흩어놓음으로써 불을 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불은 꺼지는 대신에 오히려 확산되었다.
1. 전도자들의 일반적인 행적(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쌔(4절). 그들은 갈릴리 지방과 사마리아 지방을 두루 돌아다녔는데 그곳은 전에는 통행이 금지된 곳이었다. 그들은 안일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거리를 찾기 위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에게 그 지방들은 낯선 곳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지방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이 이미 활동했던 지역들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이미 거기에 자기들의 기반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2. 빌립의 행적(5-13)
여기에 나오는 빌립은 사도 빌립이 아니라 집사였던 빌립이다. 같은 집사였던 스데반은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갔고 빌립은 전도자의 반열에 들어간 것이다.
(1) 빌립의 설교와 영향
1) 그가 설교한 곳은 사마리아의 중심지였다. 어떤 이들은 이곳이 도시 세겜이나 수가(요 4:5)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접촉하기를 싫어했으나 그리스도는 모든 증오를 없애기 위해 그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2) 빌립이 가르친 내용은 그리스도였다.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5절). 사마리아인들은 요한복음 4:25절에 나타난대로 메시야가 오실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빌립은 그가 오셨으니 사마리아인들은 그를 영접하라고 가르쳤다.
3) 빌립은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로서 기적을 행하였다(6절). 그 기적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가 일으킨 기적을 보았고 또 전해들었다. 그는 사단의 권세를 쳐부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 증표로서 그가 더러운 영들을 향하여 주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명령했을 때 그 영들은 그들이 거하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나왔다(7절).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에 순종하는 곳에는 악령이 거할 수 없다. 이것이 사람의 몸에서 더러운 영이 떠나간다는 말의 의미이다. 이때 그것들은 '크게 소리지르며' 나갔다. 그들은 강력한 힘에 압도되어 강제로 본의 아니게 내쫓기는 것이다. 또 빌립은 혼란한 세상을 치료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았다. 그 증표로서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 즉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러한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였다.
4) 사마리아인들이 빌립의 말을 경청하였다. 무리가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6절). 그들은 처음에는 주의를 환기시키는 기적에 이끌렸으나 점차 복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일반 대중은 빌립에게 주의를 기울였는데 그들은 제 각기가 아닌 일심으로 뭉친 무리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5) 그들은 빌립의 가르침을 듣고 만족하였다. 또 복음은 그들에게 많은 감화를 주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8절). 그래서 저희가 믿고 남녀가 세례를 받았다(12절).
첫째, 빌립은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가르쳤다. 그리고 그는 그 왕국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설교했다.
둘째, 사람들은 그의 말에 관심을 가질뿐만 아니라 그것을 믿고 그것이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셋째, 그들은 믿고 세례 받았다. 유대교회에서는 오직 남자들만이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이 세례의식은 여자들에게도 허용되었다. 왜냐하면 남자나 여자나 모두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에 가입되기 때문이다.
넷째, 이것은 대단한 기쁨을 가져왔다. 어떤 곳이든지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대단한 기쁨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만든다. 왜냐하면 복음은 만백성에게 전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기 때문이다(눅 2:10).
(2) 이 사마리아의 도시에서 복음이 그토록 놀랍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1) 마술사 시몬은 그곳에서 대단히 활동적인 사람으로 사람들에게서 상당한 관심을 얻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악에서 떠나는 것이 선을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사마리아인들은 최근에 마술사(마구스라는 이름이 의미하듯이)시몬의 뒤를 좇게 되었는데 그는 이들을 대단히 놀라게 했다.
첫째, 사단의 기만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이 성에서 마술을 행하여 왔다.' 시몬은 자신을 굉장한 인물로 생각하였다. 자칭 큰 자라 하니(9절). 그는 백성의 삶을 교정해 줄 의도가 전혀 없었고 단지 사람들이 자기를 하나님의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믿도록 만들었다. 교만과 야망 그리고 허세는 세상이나 교회에 있어서 무수한 실책의 원인이 되어 왔다. 사람들은 그가 기뻐하는 대로 행하였다. 그들은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그를 존경하였다(10, 11절). 그들은 말하기를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였다. 무지하고 경솔한 사람이 마치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인 양 사단의 권세로 행한 잘못을 살펴보자. 사단의 권세가 그의 마술로 인해 그들에게 보여졌다. 그는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였고'(9절), 그들은 '마술에 놀랐다'(11절). 마술로 그는 사람의 마음을 놀라게 했다.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을 얻어 사람들이 시몬을 따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것을 알지 못할 때는 그 마술에 영향을 받았지만 빌립의 참된 기적에 접하게 되었을 때는 어느 것이 참된 것이며 어느 것이 가짜인지 분명하게 알았다. 그들이 시몬과 빌립의 차이를 알게 되자 시몬을 떠났다.
둘째, 하나님의 은총의 능력은 더욱 크다.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은총으로 사단에 사로잡힌바 되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복종하게 되었다. 최악의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자. 마술사 시몬에게 현혹되었던 사람들조차 믿게 되기 때문이다.
2) 더욱 놀라운 일이 한가지 더 있다. 시몬도 믿고(13절). 그는 빌립이 참된 가르침을 전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 자신이 기만적인 기적의 농간을 부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가 더 잘 판단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빌립의 가르침이 참된 기적에 의해 확고해졌음을 알았다. 그는 확신이 깊어지자 '세례를 받았다.' 빌립이 실수로 그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생각할 근거는 없다. 탕자였던 자가 다시 탕자가 될지 모른다 하더라도 일단 집에 돌아왔을 때는 기쁘게 맞아들여야만 한다.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은 하나님만의 특권이다. 교회와 그 사역자는 자비의 판단만 내려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는한 최상의 것을 바라야만 한다. 그가 얻은 확신은 빌립과 함께 있는 동안은 계속되었다. 그러므로 한때는 스스로 큰 자라고 내세우던 그가 이제는 복음 전도자의 발아래 앉아 있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아무리 사악한 자라해도 종종 아주 선해질 수 있는 법이다. 그 확신은 기적에 의해 생기고 유지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신의 진리의 증거를 보고 놀라지만 그 진리의 힘을 경험하지는 못한다.
Ⅲ. 베드로가 마술사 시몬을 책망함 8:14-25
열두 사도가 예루살렘이 함께 있었는데(1절) 그곳으로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14절)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식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마리아인들에게 전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사도들이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14절). 열두 사도들은 빌립에게 용기를 주고 그의 손에 힘을 주기 위해 탁월한 두 사도를 사마리아로 파견했다.
1. 사도들의 바른 인도(16)
사도들은 신실한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을 인도했다.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16절). 그 비범한 능력은 성령의 임재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었다. 그 안에서 그들은 기쁨과 만족을 얻었다(8절). 진실로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드리고 거룩하게 만드는 성령의 은사를 경험한 사람은 그들을 빛나게 해줄 장신구가 없더라도 불평하지 않고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사도들은 현재의 섭리를 완전케 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려고 작정했던 것이다. 그들이 저희를 위하여 기도하니(15절). 성령은 우리 자신에게도 내리지만 (눅 11:13),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임재한다. 우리는 그들의 영적인 생활이 풍부해지기를 간구하는 사람들, 즉 우리의 자녀들이나 친구나 목회자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새롭게 하는 성령의 은사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이러한 모범을 통해 용기를 얻는다. 사도들은 사마리아인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하였다. 이 상징적인 행위로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였다.' 옛부터 안수는 축복을 기원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사도들도 이들을 축복했다.
2. 마술사 시몬을 버림(18-25)
(1) 시몬의 사악한 음모는 그의 위선으로 인해 들통났다(18,19절).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받는 것을 보고(18절). 그는 기독교란 고차원적인 마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도들과 같은 명예만 탐했을뿐 기독교 정신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명예를 위하여 능력을 바랐다. 그는 사도들에게 대단한 모욕을 주었다. 그는 사도들이 돈을 좋아하여 돈만 주면 무엇이든지 다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기독교를 대단히 모욕하였다. 그는 마치 기적이 마술에 의해 일어난 것처럼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가 예언의 대가를 목적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스스로 한껏 자만에 빠져 있음도 드러났다.
(2) 그의 제안이 거절됨(20-23절)
1) 베드로는 그에게 그의 죄를 지적해 주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20절). 그는 이 세상의 재물을 과대 평가하여 그것으로 죄사함과 성령의 은사와 영생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반대로 그는 성령의 은사를 과소평가 하였다. 그는 사도들의 권능도 의사나 법률가의 조언처럼 돈을 많이 지불함으로써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2) 베드로는 그에게 자신의 죄로 인해 형성된 그의 인격을 보여 주었다. 베드로는 명료하게 지적해 주었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21절). 우리는 우리의 마음 먹은대로 행동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옳지 못하면 우리도 잘못된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열려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아시고 판단하시며 이를 통하여 우리를 판단하신다.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우리의 고결함이 하나님 앞에서 입증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 파멸의 길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나 그리스도의 영예를 목적하지 않고 그것을 그 자신을 위하여 이용하려고 했다.
둘째,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23절). 이것은 솔직한 표현이다. 우리가 영혼과 영원에 과하여 다룰 때는 솔직하게 취급하는 것이 가장 좋다. "내가 보니"라고 베드로는 말했다. 위선자의 위장은 여러 번 밝혀진다. 늑대의 본성은 양의 가죽을 쓴다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제 시몬이 보여준 성격은 진실로 모든 사악한 자들의 본성이다. 그들에게는 악독이 가득하다. 그들은 불의에 매어 있다. 그들은 죄의 책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에 매어 있고 죄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사단의 지배에 매어 있다.
3) 베드로는 그의 운명에 대하여 두 가지로 예언한다.
첫째, 그는 세상의 재물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20절). 베드로는 경멸과 분노의 심정으로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네 은과 함께 사라져라. 우리는 너와 상관할 것이 없다." 우리는 돈 때문에 악행을 저지르도록 유혹 받을 때, 돈이란 썩어질 것임을 알아야 한다. 베드로는 그가 그런 마음을 계속 품는다면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그에게 경고한다. "너의 돈은 멸절된 것이며 너는 그 돈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네 은과 함께 네가 망하리라는 것이다."
둘째, 그가 과소 평가했던 영적 축복을 그는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21절). 너는 성령의 은사를 절대로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네가 기독교를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한 생계 수단으로 생각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그에게 선의의 충고를 한다(22절). 그는 시몬에게 화는 내었지만 그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① 충고 내용 : 그는 회개해야만 한다. 그의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렇게 행하지 말아야 한다. 그의 회개는 특별해야만 한다.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22절). 그는 실수라든가 잘못된 열성 때문이라고 변명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사악한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말이나 행동으로 실수한 사람은 될 수 있는한 회개함으로써 다시는 잘못을 행하지도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에게 회개하게 하시고 그 회개로 인해 용서해 주십사고 기도해야 한다. 회개자는 기도해야만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열망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마술사 시몬은 다른 죄인들과 마찬가지로 회개와 기도를 통해서만 이 사도들의 영적 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② 베드로가 시몬을 격려함 :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22절). 우리는 마음의 생각으로 많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바로 그것을 회개해야 하며 같은 잘못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마음의 생각은 비록 악하다 할지라도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 베드로가 '혹'이라는 말을 썼을 때 그것은 회개의 진실성을 의심한 것이지 그의 회개가 참되었을 때의 용서를 의심한 것이 아니다.
③ 시몬이 사도들에게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함 :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24절).
첫째로, 베드로의 말이 그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그는 사도들에게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둘째로, 그러나 아직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는 기도해 달라고 간청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스스로 기도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사도들이 임무를 마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기사가 본문에 나온다. 사마리아의 성에서 그들은 설교자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들은 주의 말씀을 증거하였으며, 또한 다른 사역자들이 전한 말씀을 확고히 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도상에서도 사도들은 순회전도자가 되었다. 곧 그들은 사마리아의 여러 마을을 지나면서 복음을 증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아주 작은 촌락의 주민에게도 관심을 가지신다. 따라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Ⅳ. 빌립과 에디오피아인 8:26-40
본문에는 어느 에디오피아인 내시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1. 빌립이 에디오피아인을 만남(26,27)
전도자 빌립은 지시 받은 길로 가다가 이 에디오피아인을 만나게 되었다(26절).
(1) 천사가 빌립의 갈 길을 지시하였다.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가라(26절). 사역자들이 이동하거나 거주하는데 관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은 진실로 그를 따르는 자에게 길을 지시하신다. 빌립은 유대사막을 지나서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가야만 했다. 그는 사막을 지나가야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거기서 무슨 일을 찾아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그곳으로 보냄을 받았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역자들에게 뜻밖의 곳에서 기회를 얻게 하신다.
(2) 빌립은 그 지시에 복종하였다(27절). 그는 아무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일어나 갔다.
2. 내시에 대한 설명(27)
그는 외국인, 즉 에디오피아 사람이었다. 에디오피아인들은 비천한 민족이라고 경멸을 당했으며 자연이 그들을 저주하기나 한 것처럼 검은 피부를 가졌다. 그러나 복음은 그들에게도 전해졌고 하나님의 은총은 그들에게도 나타났다. 그 내시는 자기 나라에서는 능력있고 권세있는 자였다. 내시란 직위는 왕궁의 수상이나 재산관리인을 의미한다. 그는 '큰 권세가 있는' 자였으며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 밑에서 권세를 누렸다. 그는 그녀의 모든 국고를 맡아 보고 있었으며 여왕은 그를 굉장히 신임하고 있었다. 많은 자가 권세있다 존귀하다 불리우지 아니하며 그렇게 불리우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는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온 개종자였다. 이로 미루어 시바 여왕 시대 이후 이 나라에도 진실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해졌다고 짐작할 수 있다.
3. 빌립이 내시와 동행함(28-31)
빌립은 내시와 동행하면서 그가 사막으로 보내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1) 빌립은 이 여행자와 동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여행자는 예루살렘에 머물렀었는데 그곳에서는 사도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총은 그를 설득하였으며, 사막에서 그를 사로잡아 감동시키셨다. 빌립은 그의 귀에 속삭이시는 성령에 의해 이 명령을 받았다.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29절). 우리는 노상에서 우연히 알게된 사람에게도 좋은 일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감화를 줄 수 있는 이방인에게 너무 소극적이어서는 안되겠다. 우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2) 빌립은 그가 병거에 앉아서 성경을 읽는 것을 보았다. 빌립이 달려가서 글 읽는 것을 듣고(30절). 그 내시는 성경, 즉 이사야서를 읽으면서 여행의 지루함을 잊고 시간을 귀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도 경건의 훈련에 힘써야 한다. 그러한 모범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거룩한 임무를 위하여 시간을 이용하는 것은, 즉 매순간을 유익하게 보내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성경연구에 힘쓰는 자들은 지식을 향상시키는 올바른 길을 알고 있다.
(3) 빌립은 그에게 적합한 질문을 했다. 읽는 것을 깨닫느뇨(30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어느 정도 성경을 이해하지 않는한 성경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
(4) 도움이 필요했던 내시는 빌립에게 동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31절).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대답했다. 그는 친절하게 질문을 받아들이고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하고 대답했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가르침을 받아야할 필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그는 가르침을 매우 열망하는 사람처럼, 그래서 지도해 줄 사람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처럼 대답했다. 성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지만 그렇다고 성경을 내던져 버리지 말고 쉬운 것부터 이해하도록 힘써야 한다. 지식과 은총은 점진적으로 증대되는 것이다. 그는 빌립에게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하고 청했다.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필수적으로 지도자가 필요하다. 좋은 서적도 있고 좋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령의 은혜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해야 한다.
4. 내시가 읽은 성경 말씀(32-35)
내시가 인용한 성경 말씀과 빌립이 설명해준 내용은 이러하다.
(1) 그가 읽은 곳은 이사야서 53장으로 본문에는 두 절이 인용되어 있다(32,33절). 그들은 70인역으로 읽었는데 히브리어 원서와는 좀 다른 부분이 있다. 히브리 원문과 큰 차이가 있는 곳은 다음 구절이다. 즉 히브리 원문에는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왔으니'라고 되어 있는데 본문에는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라고 되어 있다. 즉 그는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할만큼 그들의 눈에 비천하고 보잘것없이 보였다. 그들은 그가 결백하다고 선언했으나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였다. 그는 철저히 낮아지셨으며 굴복 당하였다. 그래서 낮은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메시야에 관해서 예언한 것이었다.
1) 그는 희생제물로 바쳐지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가서' 죽으리라는 것이다.
2) 그는 부당하게 죽임을 당할 것이며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고' 생명을 빼앗기리라는 것이다.
3) 그는 인내로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것이다. '털깍는 자 앞에 선 양'처럼 잠잠하였고 도살꾼 앞에 선 것처럼 '그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 주 예수처럼 인내한 예는 절대로 볼 수 없다. 고소 당하고 핍박당한 때도 그는 침묵하셨다.
4) 그러나 그는 영원히 살 것이며 그 연수는 셀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우리는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라는 말을 "그는 하늘에서 셀 수 없는 세월을 영원히 사실 것이다"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2) 내시는 '선지자가 이 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하고 물었다(34절). 이 질문은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다. "이 예언자가 자기도 다른 예언자들처럼 오해를 받을 것을 예견하고 자기에 대해서 한 말인가? 아니면 타인을 말한 것인가?" 그는 빌립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이 질문을 던졌다.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이다.
(3) 빌립은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에 관한 복음의 신비를 그에게 전했다.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35절). 이것이 빌립의 설교 내용의 전부이다. 본문에서 우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든지 길을 행할 때에든지' 좋은 목적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말하는 일례를 볼 수 있다.
5. 내시가 세례를 받음(36-38)
(1) 내시는 자기에게 세례를 베풀어 줄 것을 정중히 청하였다.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38절). 내시는 그 물을 보고 세례 받을 것을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연하게 보이는 섭리를 통하여 그의 백성에게 그들의 의무를 상기시켜 주신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생각지 못할 것이다. 내시는 얼마동안 빌립이 합당하게 여긴다면 지금과 같은 적절한 때에 세례를 받고자 하였다.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그는 세례 받겠다고 강요하지 않았고 "여기 물이 있으니 세례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우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빌립이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세례받기를 원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엄숙히 봉헌하고 헌신하고자 할 때에는 서둘러야 하며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간이 가장 좋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 내시는 그의 안에서 역사하시는 훌륭한 감화력이 식거나 감퇴될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즉시 그의 영혼이 주님과 연합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2) 빌립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네가 마음을 온전히 하여 믿으면 가하니라.(한글개역 성경에는 37절이 빠져있고 난외주에 삽입되어 있다-역주) 그는 마음을 다하여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머리로 복음의 진리를 이해함으로써 동의할 뿐만 아니라 복음의 조건에 대해 의지적으로 동의함으로써 마음으로 믿기 때문이다.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고 마음으로 수락해야 되기 때문이다. "네가 진실로 마음을 다하여 믿는다면 너는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고 세례 받음으로써 교회에 가입할 수 있다."
(3) 내시의 신앙고백 : 그것은 짧았으나 포괄적이고 매우 적절하였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들인줄 믿노라(난외주에 삽입된 37절). 그는 참 하나님의 예배자 앞에 서있었고 그래서 이제 그와 해야할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약속된 참 메시야라는 것을 믿었다. 또 그리스도가 예수 즉 그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한 유일하신 구세주이심을 믿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들이시며, 아버지와 같은 본성을 지닌 아들로서 하나님의 본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
(4) 내시가 세례를 받음 :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38절). 그곳은 그가 여행 중에 만난 가장 훌륭한 휴식처였다. 둘 다 물에 내려가(38절). 그들은 관습에 따라 맨발로 발목이나 정강이부분까지 물을 이르도록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빌립은 그에게 물을 뿌렸다. 빌립은 마술사 시몬에게 속은 적이 있었지만 이 내시가 즉석에서 신앙고백을 하였을 때 세례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설혹 위선자들이 교회에 몰려와서 후에 우리에게 슬픔을 주고 말썽을 일으킨다 해도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하신 이상으로 그를 받아들이는데 엄격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변절에 대하여 책임을 질 것이기 때문이다.
6. 빌립과 내시가 헤어짐(39,40)
빌립과 내시는 즉시 헤어지게 되었고 이것은 이 이야기의 다른 부분처럼 놀라운 것이다. 그들이 물에서 올라가자마자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갔다. 그것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간 순간에 일어난 것이었다(39절). 빌립에게 내린 이기적인 역사는 그의 가르침을 확실히 해주었고 그가 기적을 행한 것만큼 효과가 있었다. 그가 이끌어 가므로 내시는 그를 다시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내시는 그의 사역자를 잃었지만 다시 성경 읽는 일로 되돌아갔다.
(1) 내시는 혼연히 자기의 길을 계속 갔다. 고향에는 그가 해야할 일이 많이 있었으므로 그는 서둘러야 했다. 그렇게 하는 일은 기독교와 어긋나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기독교를 자신의 세상사에 연관시킬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기뻐하였다. 그의 삶 속에서 이처럼 기뻤던 적은 없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뻐했다.
1) 그 자신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사실이다.
2) 그 좋은 소식을 그의 고향 사람들에게 전하여 그들로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2) 한편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났다(40절). 그러나 빌립은 어느 곳에 있든지 게으르지 않았다.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40절). 그리고 그곳에서 거주하였다. 가이사랴에 그의 집이 있음을 알 수 있다(21:8).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회 전도사로서 신실하게 이행했던 그는 마침내 정착할 곳을 얻은 것이다.
# 해설
흩어진 교회의 복음 전파 ( 8 )
스데반의 죽음으로 인해 예수님의 교훈과 행위가 유대주의로부터 확실하게 구분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새로운 이스라엘이라는 점이 지적된 것입니다. 본장에서는 기독교에 큰 핍박이 임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교회의 큰 시련이 시작된 것입니다.
1. 교회에 임한 핍박
1) 흩어진 성도들
스데반의 죽음으로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슬퍼하는 경건한 사람들이 그를 장사했습니다. 공회는 기독교를 해로운 종파로 선포했고, 이것을 근거로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가장 적극적인 핍박자는 공회의 임명을 받고 그 명령을 시행하던 사울이었습니다. 이때에 제자들은 여러 도시로 피신해 갔습니다. 대부분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피신했고 어떤 이는 다메섹과 다른 곳으로 피신했습니다.
a.여러 형태의 핍박(히11:36)
b.제자들의 흩어짐(마10:23)
2) 사마리아 성의 기쁨
그 흩어진 성도들은 두루다니면서 복음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사마리아에서는 특별히 빌립이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사마리아 성은 이방 도시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로 갔다는 사실은 당시 교회가 이방 선교를 심각하게 생각했다는 증거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본받아 행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에게 호감을 주는 선교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는 오랫동안 서로 적대시해 왔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무리가 빌립의 말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복음이 전파된 곳에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사마리아 성에도 기쁨이 넘쳤습니다.
a.표적(요2:23)
b.영적인 기쁨(요16:22)
3) 마술사 시몬
사마리아 성에는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시몬은 마술을 행하며 사마리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자칭 하나님의 대변자 혹은 대리자라고 하여 사람들을 미혹케 했습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라 그를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빌립의 전도로 믿게되자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능력에 놀랐습니다.
a.예수를 믿고 세례 받음(막16:16)
2. 베드로를 만난 시몬
1) 사마리아의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
사마리아에서의 빌립의 성공이 예루살렘에 알려지자 예루살렘 교회는 기쁨과 놀라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음을 알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곳으로 보내서 선교 사역자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들의 사역은 사마리아 교회에 새로운 계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게된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기를 기도했습니다. 이는 아직 한사람도 성령을 받은 일이 없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만을 받은 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기도와 안수는 사마리아인들 가운데서 빌립의 사역을 확증했습니다. 또한 사마리아인들에게는 그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해묵은 반목이 이제 그리스도의 새 질서 안에서 깨끗이 사라졌음을 특별히 확증하는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증거는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와 그들에게 안수할 때 임했습니다. 성령께서 오순절날 사도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임하실 때와 같은 방식으로 곧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a.성령받기를 기도함(행2:38)
2) 성령에 대한 시몬의 오해
성령의 능력으로 이전에 원수였던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빌립의 기적은 시몬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사도들이 안수할 때 일어난 결과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때, 그 현상은 볼 수 있고 또한 들을 수 있게 나타났으므로 시몬이 주목해 보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사도들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마술 이상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능력을 돈을 주고 사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시몬이 가진 신앙의 진실성에 의문을 던지면서 그의 세속적인 야망을 책망했습니다.
a.돈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사55:1)
b.바르지 못한 마음(시78:37)
3.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
1) 천사의 지시와 빌립의 순종
사마리아에서의 대대적인 전도를 성공리에 마친 빌립은 주님의 지시로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나있는 가사 길로 향했습니다. 그 길은 광야 길이었습니다. 그 길에서 그는 한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에디오피아는 지금의 누비아(Nubia), 즉 나일강 첫번째 폭포와 수단의 수도 카드툼 사이에 있는 나일 계곡입니다. 본문의 에디오피아인은 에디오피아 간다게의 재무 장관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유대인의 신앙과 생활 방식을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대순례 절기들 가운데 한 절기에 참석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이사야서 두루마리를 구했고, 돌아가는 길에 그것을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빌립이 이 내시를 만났습니다. 읽는 부분은 이사야 53장의 글이었습니다. 에디오피아인으로서는 그 글이 이해가 안 되었고, 고난 당하는 사람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a.바른 예배(시96:8)
b.성령의 인도하심(삿6:12)
2) 내시의 세례 받음
그때 빌립이 다가온 것입니다. 내시는 빌립에게 본문의 말씀을 설명해 줄 것을 간청했고, 빌립은 예수께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어떻게 성취하셨는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에디오피아인은 성령의 깨우침을 받고 흐르는 물을 보자 빌립에게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빌립은 그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들은 헤어졌습니다. 에디오피아인은 본국으로 돌아갔고, 빌립은 북쪽으로 돌이켜 지중해 연안을 따라가면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마침내 가이사랴에 이르렀습니다.
a.영적인 가르침(눅24:27)
결론
빌립은 영혼 구원에 있어서 모범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에게는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고 하나님과 교제하였으며 성령의 지도아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사마리아에서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 핵심
8:1-13
스데반의 순교이후 핍박에 직면한 교인들은 유대와 사마리아 전역에 흩어졌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이방 선교를 가능케 했는데 그 전(前) 단계가 바로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이다.
복음 전도(8:4)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복음이며, 자신의 사명은 이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고백했다(20:21,24). 베드로도 하나님이 자신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셨다고 밝혔다(15:7). 예수님이 승천하시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 역시 복음 전도이다(마 28:18-20). 성경은 오고 오는 세대의 모든 성도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대사명이 전도임을 일러준다. 따라서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전도에 힘쓰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다(딤후 4:2).
# 묵상
스데반의 순교 영향과 빌립의 전도 ( 8:4-8 )
남은 사람들이 두루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핍박을 피해 흩어졌으나 성령의 충만을 받아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던 것입니다. 한편 사마리아 성에 내려간 빌립은 더러운 귀신을 쫓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를 낫게 하는 등 수많은 이적을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빌립의 전도 활동으로 인해 사마리아 온 성에 복음이 전해지고 기쁨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사역 ( 8:25 )
이 두 사도는 사마리아 여러 촌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들의 목적지는 사마리아 성이었지만 성령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인근 마을까지 복음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의 구원 ( 8:26-39 )
주의 사자는 빌립에게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명했습니다. 여기서 사마리아 지역 선교에 있어 가사 지역에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그곳이 광야임에도 불구하고 빌립이 명령에 따른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도 주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빌립은 가사로 가다가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면서도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었고, 병거 안에서도 이사야의 글을 읽을만큼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자신을 애타게 찾는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내시는 빌립의 가르침을 받은 후 세례받기를 원했습니다. 세례는 물로 몸을 정결히 씻는다는 형식적인 의미보다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모든 생애를 온전히 바치겠다는 각오를 의미합니다. 즉 내시는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면서 세례를 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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