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빌닷의 권면
시작은 미약하나 그 후일은 창대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칙이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욥8:7). 예수께서도 나중이 더 창대해지는 것을 가리키셨는데,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에서 찾을수 있다. 즉 겨자씨가 처음에는 미약하게 시작하지만 후일에는 창대하여 큰 나무로 성장하는데 새들이 둥지를 짓고, 지나가는 들짐승들이 쉴만한 그늘을 드리우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이처럼 급속히 성장하여 창대해 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작보다 나중이 더 좋아지는 비결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욥8:5),전능하신 이에게 빌어야 한다. 여기서 부지런히 구하라는 rhvt(테쉐헤르)는 '새벽에 구하라'는 뜻으로 오직 하나님을 제일로 알고 그분께만 구하라는 의미이다.
둘째, 청결하고 정직하여야 한다. 경건 생활에 있어서 청결은 언제나 수위로 꼽히는 요소이다. 왜냐하면 청결은 하나님을 제일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그분의 간절한 명령이기 때문이다(약3:17; 요일3:3). 또한 신앙은 이렇게 깨끗한 양심 속에서만 자리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바른 성도라고 하면 딤전3:9처럼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것이다.
2. 중보자를 갈구하는 욥
욥9:32,33에서 욥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서 중재하실 중보자를 간절히 바란다. 이렇게 구약의 백성들은 장차오실 중재자이신 메시야를 간절히 사모하였다.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는 참사람임과 동시에 참하나님이시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는 완전한 중보자라고 할수 없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한다(롬9-5; 요일 5:20). 또한 신약에서 예수를 '주'라고 부른것도 구약의 '여호와'를 가리킨다. 구약의 여호와란 말이 칠십인역(LXX)에서는 전부 kuvrio"(큐리오스; 주)로 번역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는 의는 하나님의 의이며, 이러한 의를 입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예언되었다(렘23:6). 한편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피조물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4세기경의 아리우스(Arius)였다. 즉 그리스도가 없는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죄되었으며, 후에는 다신론을 주장하는 이론으로 격하되고 말았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스스로 영적인 결손을 초래함이요, 그리스도 의에 또 다른 것을 추구하려는 우를 범하게 하는 것이다.
3. 내세에 관한 욥의 확신
1) 세상을 바라보지 않음
욥은 그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부인에게까지 배신을 당했다. 따라서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곧 세상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내세에 대한 강한 확신을 고백한다. 세상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확실한 내세관을 가질수 없다.
마6:22-24에서도 이를 증거하고 있는데, 눈이 어두우면 온통 어둠 속에서 살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겸하여 세상을 섬길 수는 없다. 따라서 밝은 영적 생활을 위하여 당연히 하나님의 거룩한 빛을 선택해야하며, 그때라야 미래에 관한 확신을 가질수 있다.
욥은 이처럼 세상에 대한 눈을 닫음으로 하나님을 볼수 있었던 것이다.
2) 순결한 생활
욥은 자신의 순결함을 자신했다. 때문에 욥23:12에서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라는 말을 자신있게 할수 있었던 것이다. 순결한 자는 내세에 대한 확신을 가지며 내세를 내다볼 수 있느니 영안을 가진다(히12:14; 요일3-3). 따라서 거룩한 주의 백성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깨끗하고 순결한 생활을 함으로써 내세에 관한 확신을 가질수 있을 것이다.
4. 삶이 어려운 이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매우 곤비한 인생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욥도 한때는 모든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한몸에 입는 삶을 살았지만 그러나 자신의 곤비함을 고백했던 것이다(욥10:1). 이처럼 인생이 곤비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우리의 삶을 죄악된 목적을 위해 사용할때 인생은 곤비해진다. 즉 인생의 곤비함이 그릇된 삶의 대가로 나타나는 것이다.
둘째,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자기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일에는 무관심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환경에 대하여 대단한 불평을 가지게 될 것이며, 급기야는 곤비한 인생을 살게 된다.
셋째, 육신의 고통과 질병, 건강의 악화는 인생을 곤비하게 만든다(욥7:3). 육신은 성령의 거하는 전이며, 모든 인생은 이것의 관리자이다. 따라서 아무렇게나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잘 보존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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