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여호와의 날 14:1-7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상하게도 변화무쌍하고 혼합적인 것으로 나타나있다.

(1) 때때로 조수가 그들에게 거세게 밀려오곤 하지만 곧 방향이 바뀌는 것처럼,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도 변화무쌍한 것처럼 보인다.

1)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나타나신다. '여호와의 날이 이를'때(1절) 예루살렘은 정련시키는 불을 통과하여야할 것이다. 로마인들에 의해 '성읍이 함락될'것이며, '가옥이 약탈'되고 '부녀가 욕을 볼' 것이다.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가' 팔리거나 노예가 될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그의 길을 바꾸사 이제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나타나신다. 이는 비록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된다 할지라도 거기서 끝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은 자들은 면하게될 것이다.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사로잡혀간 자들도 다시 돌아오게될 것이다. 유대인들중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성읍, 즉 지상 교회로부터 끊쳐짐을 면하게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열국을 모아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는 그때에 그는 '나가사' 심판으로 '그 열국을 치실' 것이다. 로마 제국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킨후로는 그전처럼 그렇게 번성하지 못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여러모로 그 나라를 치셨기 때문이다. 비록 예루살렘과 성전은 파괴되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모두가 들어올수 있는 교회를 이 세상에서 가지실 것이다(4,5절). 하나님께서는 대적들이 그곳을 황폐케 할때조차도 예루살렘을 세밀히 살피실 것이다. 그날에 그의 말이...감람산에 서실 것이요(4절;참조. 막 13:2). 정련하는 자는, 금을 풀무가운데 넣을때 옆에 서서 그것이 손상되지않도록 지켜보는 법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금인 예루살렘이 정련될때 하나님은 '감람산에 서서' 지켜보실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 예수께서 종종 이 산에 오르심으로써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승천하셨다(행 1:12). 그곳은 우리 주님께서 지상에 계실때에 마지막 발을 디디신 곳이었다. 이 산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의해 한가운데가 갈라져서 '중간에 막힌 담'이 헐어짐으로써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하나로 될 것이다(엡 2:14). 큰 산, 곧 의식법이 유대인들의 개심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앞에서 평지가 되었다. 새로운 생명의 길이 새예루살렘을 향해 열려질 것이다. 갈라진 산중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향하여 그 사이에 '큰 골짜기'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예루살렘과 이방 세상사이에 있을 교제를 위한 큰 길로, 그 길을 통해 이방인들은 자유롭게 복음의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것이며 또한 여호와의 말씀도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와 이방 세계로 자유롭게 들어갈 것이다. '산 골짜기'는 곧 복음 교회로서, 구원받은 유대인들이 날마다 그곳에 더해갔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산을' 골짜기로 만들어 '길로 삼으실' 것이다(사 49:11). 이 골짜기는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있는 자들에게도 이르게될 것이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가까이있는 백성인 유대인들과 더불어 가까이 나아오게될 것이며, 둘은 서로 연합하게 되며 또 그 연합체는 한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버지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될 것이다(엡 2:18).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이루시기위해 영광중에 나타나실 것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5절). 이것은 예루살렘을 멸하시기 위함이거나 아니면 예루살렘의 대적들을 멸하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세상에 그의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라고도 할수 있는데 그것은 '인자의 임함'(마 24:37)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혹은 끝날에 있을 그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일수도 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떤이들은 5절 말씀을 다음과 같은 기도로 생각하기도 한다. "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오시옵소서. 모든 거룩한 자들과 함께 오시옵소서."

(2) 하나님의 섭리는 이상하게도 뒤섞여서 나타난다.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여호와의 아시는 한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어떤이들은 이것이 그 당시부터 메시야의 오심까지 전기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유대 교회는 완전한 평화도 없고 그렇다고 계속적으로 환난에 처하지도 아니하는, 구름이 낀날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은혜와 섭리의 왕국을 다스리시는 통상적인 방법을 보다 일반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즉 의의 태양이 떠오른 곳에는 결코 어두운 밤이 될수 없으나 하늘이 흐림으로 청명하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의 아시는 한날이 있으리니. 이것은 그와 같이 뒤섞인 사건들속에서의 조화와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즉 모든일 가운데는 한가지 같은 목적이 있는 것이다. 어두워 갈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즉 광명한 빛이 있을 것이며 더이상 어두움이 있지않을 것이다. 우리는 저세상에 그러한 상태가 있음을 확신하며 이세상에서도 그러하기를 소망한다. '어두워 갈때'란 곧 모든 일들의 최악의 상태가 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교회의 형편도 가장 개탄할만한 상태로 떨어진때를 말한다.

 

Ⅱ. 예루살렘에 대한 축복 14:8-15

 

(1) 예루살렘, 즉 복음적인 예루살렘과 온땅에 축복이 있을 것이 약속되었다.

1) 예루살렘은 세상에 생수를 낼 것이다. 이것은 그곳에서 사도들에게 성령이 부어짐으로써 여호와의 말씀이 열국에 전파되어졌을때 이루어졌다(8절).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사 2:3)이라는 사실은 예루살렘의 영광이었다. 생수가...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이는 마치 강물들이 바다나 기타 다른 곳으로, 혹은 동쪽으로 서쪽으로 흐르는 것과 같다. 복음은 세계도처로 뻗어나갈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각 곳으로 매일같이 전파되어갈 것이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또한 하나님의 권능이 이 생수와 함께하시므로 그것은 여름의 한재나 겨울의 찬서리에 의해서도 결코 마르지않을 것이다.

2) 사람들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왕국은 전우주적으로 통일된 왕국이 될 것이다(9절).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모든 거짓 신들이 버려질 것이며 모든 우상숭배도 폐지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공동체의 중심이 되시듯 성경도 그 공동체의 규례가 될 것이다.

3) 유대 땅과 어머니되는 성 예루살렘은 다시 회복될 것이며 하늘의 특별한 보호를 받게될 것이다(10,11절). 어떤이들은 이것을 유대인들에 대해서만 특별한 은총을 보여주는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복음 교회를 비유적으로 보여준다고 이해하는 것이 더타당할것이다. 교회는 풍성한 소산을 내는 비옥한 땅처럼 될 것이다. 천연적으로 구릉 지대인 전유대 땅이 평지(한글개역에는 '아라바같이 될 것이다'라고 되어있다-역주)처럼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편 림몬까지' 부드럽고 평탄한 골짜기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능력있게 전파되면 오직 여호와만이 높임을 받을수 있게끔 하기위하여 땅이 평평하게될 것이다. 거룩한 땅이 평지가 되듯이 거룩한 성읍에는 백성들이 가득차게될 것이다. 예루살렘은 비천한 상태에서 높이 들리울 것이다. 즉 멸망된 자리에서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전성읍에 거민들이 있게될 것이다. 여기에 그 성읍의 경계가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북동편의 '베냐민 문'에서부터 북서편의 '성모퉁 문'까지 그리고 남편에 있는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북편에 있는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이다. 그곳에 거하는 자는 안연히 살 것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않을 것이다.

(2) 교회의 적들, 즉 예루살렘을 대적하여 싸운 자들에게 심판이 경고되었다. 하나님의 성읍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여 싸우는 자들은 자신들이 곧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것임을 알게될 것이다(12절). 그들은 고통스럽고 고달픈 질병으로 황폐하게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서로 충돌할 것이다(13절). 여호와께서 그들로 크게 요란케 하시리니. 교회를 치려고 연합한 자들은 곧 갈라질 것이며 서로 대적하게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난 그들의 요란은 자체내에서 요란케됨으로 보수될 것이다. 어떤이들은 이것이 로마인들이 유대인들을 멸망시킬때 유대인들가운데 파당과 분쟁이 생겼던 것으로 성취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들의 진중에 있던 물품이나 국가의 재산을 약탈해옴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은 심히 부하게될 것이다(14절). 어떤 주석가는 이 구절을 '유다도 예루살렘에서 먹으리니'라고 읽기도 한다. 백성들은 탈취물을 나누기위해서 사방에서 나아올 것이다. 죄인의 재물은 종종 의인을 위하여 쌓아둔 것이 된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애굽인들의 노략물로 부하게되었다.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의 육축도 주인을 멸망시킨 그 재앙을 같이 당할 것이다(15절).

 

Ⅲ. 교회에 경건함이 있을 것을 약속하심 14:16-21

 

여기에 다음 세가지 사실이 예언되어 있다.

(1)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들은 자기들이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한 것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신 까닭임을 깨닫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경배를 드릴 것이며 경의를 표할 것이다(6절).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중에 대부분은 그의 발등상이 되었으나 나머지 적들은 그의 친구가 될 것이다. 그들은 경배하기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곳이며 또한 그리스도와 그의 중보의 모형이라 할수 있는 성전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복음적인 경배가 여기서 '초막절을 지키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초막절은 세상을 경멸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두가지 큰은총이 특별한 방식으로 예시되어 있다(느 8:17). 우리는 온갖 제물을 가지고 우리의 성전되신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한다. 이는 오직 그안에서만 우리의 영적인 희생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벧전 2:5). 그들은 '해마다' 올라갈 것이다. 기독교인의 매일매일의 삶이 곧 '초막절'의 날이며 특별한 의미로는 여호와의 날이다.

(2) 복음적인 경배의 의무를 무시하는 자들은 그것으로인해 그 대가를 치르게될 것이다.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17절). 어떤이들은 이것을 비유적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즉 하늘의 교훈의 비가 내리지않을 것이며 따라서 이 교훈과 함께오는 은혜의 비가 내리지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방편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에게 은혜의 축복을 내리지않는 것과 목자의 장막에서 떠난 자들에게 푸른 초장을 거절하는 것은 공의로운 일이다. 만일 하나님을 향한 우리 마음이 메말라 열매를 맺지못한다면 땅도 당연히 우리에게 그와 같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애굽 땅에 있는 태만한 자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들에게 그 경고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비가 내리지않는다 할지라도 나일강이 있어서 땅을 비옥하게 하기 때문이다(18,19장). 그러나 결과적으로 마찬가지의 재앙이 있게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강의 창일함을 막으실수 있는 분이시다. 이는 구름이 끼지못하도록 하심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비없이 살수 있는 자들이 하나님없이 살수 있다고 할수는 없는 것이다. 태만은 죄다. 정해진때에, 즉 아직 기회가 있을때에 '숭배하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은 죄와 가까와지게 된다.

(3) 성결이라는 단어의 성격이 전처럼 제한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말은 단지 대제사장의 이마에 쓰여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와 같이 특정인의 전유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린바된 '산 성전'일뿐만 아니라 그를 섬기는 일에 종사하는 영적인 제사장들이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전보다 더풍성하게 성결하고 거룩케하시는 성령의 부으심이 있을 것이다. 평범한 자들에게까지 성결이 있게될 것이다. 말고삐나 심지어 말의 장식물조차도 하나님께 드리운바 될 것이다. 말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행자들은 그들의 말고삐에 그 글을 기록하여 그것으로 말을 끌고가며 또 자신들도 이 원칙에 따라 인도할 것이다. 집안의 기구들도 또한 하나님께 드리운바 될것이며 예배하는 일에 쓰이게될 것이다. 그들이 보통 사용하는 잔들은 희생 제물의 피를 받거나 혹은 전제를 드릴때에 포도주와 기름을 붓는데 사용한 '제단앞 주발'이 될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이 식탁을 위해 사용한 그릇들은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식사는 희생 제물처럼 보일 것이다. 즉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식탁에 배설된 것과 잔에 채워진 것을 먹고 마실 것이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그들이 고기를 삶는 솥들과 그들이 마시는 잔들이 그리될 것이라. 이 그릇들로 그들이 먹고 마신 것은 그들의 몸을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양육시킬 것이다. 또한 이것들로 그들은 후하게,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할 것을 내어줄 것이라." 그럴때 비로소 '여호와께 성결'이 된다. 그와 같이 참된 성결이 있을때 사람들은 의식적인 성결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쏟지않게될 것이다. 즉 '제사드리는 자가 와서' 이 보통 그릇들을 취하여 그것으로 희생 제물들을 삶으므로 그것들과 '제단앞 주발'과의 구별을 없앨 것이다. 복음 시대의 진정한 예배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것이다(요 4:21). 이곳이나 저곳이나 모두 하나님께 받아들여질만한 곳이 될 것이며 이 그릇이나 저 그릇이나 모두 하나님께 받아들여질만한 그릇이 될 것이다. 그들의 성물가운데에는 그것들을 더럽힐만한 어떤 부정한 것도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그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어떤이들은 이것을 "다시는 장사하는 자들이 있지않을 것이다"라고 읽기도 한다. 이는 가나안 사람이 때때로 장사하는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말씀이 그리스도께서 두번에 걸쳐 성전으로부터 사고파는 자들을 내쫓으셨을때 성취되었다고 생각한다. 세상끝날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부정한 것들을 그의 나라에서 쫓아내실 것이다. 이 일은 결코 그전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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