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 12:1-8
1. 본장의 표제(1)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들에 대한 본장의 표제가 1절에 나타나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로 곧 거룩한 예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다. 즉 그들의 위로와 유익을 위한 것이다.
2. 하나님에 대한 칭호(1)
그는 세상의 창조주이실뿐만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저항할수 없는 통치권을 가지고 계신다. 그는 '하늘을 펴시며,' 차일처럼 그것을 계속 펴있게 하시고 또 세상끝날까지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는 '땅의 터를 세우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비록 그 터가 바다위에 있다할지라도(시 24:1,2), 더나아가 그것이 공간에 달려있다할지라도(욥 26:7)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 자체의 축에 고정시키신다. 즉 그는 '사람위에 심령을 지으신 자'이시다. 즉 그는 '우리에게 이 영혼을 지으신' 자이시다(렘 38:16). 그는 첫사람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셨을뿐만 아니라 지금도 모든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계신다.
3. 교회를 보호하시리라는 약속(2-8)
교회의 대적들이 교회의 성결과 화평에 대해 어떤 공격을 가해오건 결국 그들은 당황해버리고 말 것이다. 예루살렘은 안전한 가운데 있게될 것이며 그것을 치려던 자들은 위험가운데 떨어지게될 것이다. 이것은 여기서 세가지 비유로 예시되고 있다.
(1) '예루살렘'은 그것을 포위한 모든 자들에게 '혼취케 하는 잔'이 될 것이다(2절). 알렉산더 대왕은 대제사장 야두스를 만났을때 크게 놀라서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것을 단념하였다. 산헤립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때 그는 그곳이 그의 모든 용사들을 잠에 빠뜨리는, 혼취케하는 포도주 잔임을 알았다(시 76:5,6).
(2) '예루살렘'은 그것을 제거하려고 하거나 그것을 옮기려고 하는 모든 자들에게 '무거운 돌'이 될 것이다(3절). 세상에서 저의 나라를 확장시키려고 하는 자들은 예루살렘을, 더나아가 하나님의 교회를 자기들의 계획에 크게 방해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방해가 되지않는 곳으로 치워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제거할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무시한채 세상에 교회를 두실 것이다. 그것은 반석위에 세워진 것으로 '시온산'과 같다(시 125:1). 이 '돌'은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것으로, 그것이 신상을 쳤듯이(단 2:45) '무릇 그것을 드는 자들을' 부술 것이다. 우리 구주께서 자신을 거치는 돌로서 말씀하실때, 즉 자신을 기초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위에 떨어져 그들을 가루로 흩으리라고 말씀하실때(마 21:44) 이 말씀에 대해 언급하시는 듯이 보인다.
(3) '유다의 두목들'은 그들의 대적들가운데서 '나무가운데 화로같게' 되며 '곡식단 사이의 횃불같게' 될 것이다(6절). 그들과 다투는 자들은 그 다툼이, 태우는 불에 찔레와 형극으로 대적하는것 같음을 알게될 것이다(사 27:4). 그 불은 그들을 남김없이 완전히 태울 것이다. 그 대적들은 자신들이 이 불에 대해 물과 같으리라고 생각했겠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 불에 대해 나무같게, 아니(더 잘타는) 곡식단같게 하실 것이다. 초대 교회의 박해자들은 이것이 자기들가운데서 성취된 것을 알았으며, 배교자 줄리앙이 마침내 고백한 말인 "갈릴리 사람이여, 그대가 나를 이기었도다"가 또한 이 사실을 증거한다. "만일 네가 생활에 진력이 난다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라." 이것은 한때 유행했던 당시의 속담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유사들을 얼빠지게 하실 것이며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의 용기를 꺾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4절). 교회의 보병이 대적들의 기병에게 아주 힘겨운 상대가 될것이다. 예루살렘에 다시 사람들이 살 것이며 번성케되리라는 것이 약속되었다(6절). 그들은 같은 기초, 같은 지대위에 새예루살렘을 가지게될 것이다. 그들은 포로생활에서 돌아온후에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복음 교회는 '그 본곳'에 거한 예루살렘이라 할수 있다. 따라서 온세상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모든 곳을 '그 본곳'으로 불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루살렘의 거민들이 하나님의 보호아래서 자신들을 지킬수 있게되리라고 약속되었다(8절). 하나님께서 그 성읍 주위에 "불의 성곽"이 되실뿐만 아니라 "방패"와도 같은 그의 은총으로 각사람을 에워싸실 것이다. 그는 그들이 스스로 돕도록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심으로써 그와 같이 하신다. 그 날에 예루살렘의 가장 약한 거민들이 '다윗같이' 될 것이다. 즉 강하고 뛰어나게 될것이며, 다윗이 친히 그곳을 세웠을때처럼 그곳을 강하게 지킬 것이다.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같을 것이라. 스룹바벨은 이제 다윗의 집에서 첫째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는 지혜와 은총을 부여받게될 것이며 천사처럼 백성들을 앞서갈 것이다(출 23:20).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이었다. 이 당시 다윗의 집은 작고 초라하게 보이며 그 영광은 무색케되었으나 그리스도안에서 다윗의 집은 전보다 더욱 밝게 빛나게 되었다. 성읍과 지방사이에 매우 선한 이해관계가 있으리라는 것이 약속되었다. 지방의 행정관들, 즉 '유다의 두목들'은 성읍민들, 즉 '예루살렘 거민'들을 명예롭게 생각할 것이다. 뛰어난 사람이 다른 뛰어난 사람을 귀하게 여길줄 알게될때 그 나라는 잘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뛰어난 영광을 두시고 계시므로 그를 형제들의 멸시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시다. 유다 족속은 내가 돌아보고(4절).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7절). 장막에 거하는 자들은 많은 위험에 직면하기 쉬우나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거민들앞에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궁정의 신하들과 성읍민들은 지방 사람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즉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며, 먼저 구원하시는 자들을 멸시해서는 안된다. 이 약속은 더나아가서는 복음 교회에 대한 언급이기도 하다. 즉 그안에서는 지위의 고하가, 부하고 가난함이, 속박과 자유함이 그리고 할례와 무할례가 차별되지 않을 것이다.
Ⅱ. 기도와 회개의 영을 부어주실 것을 약속하심 12:9-14
여기서 '그날'이라 함은 곧 예루살렘이 보호되고 구원되는 날을 말한다. 즉 영화로운 날을 뜻하는 것으로 마카비가의 시대에 유대인들이 그들의 대적과 싸워 거둔 승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일수 있겠으나 더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어두움의 권세에 대해 승리를 거두시고 큰구원을 이루신 '복음의 날'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1)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이루실 영광스러운 사역 : 예루살렘을 치러오는 열국을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9절). "열국이 예루살렘을 치러오나 그들 모두가 멸망케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해서 사망의 권세를 가진자를 멸하고자 힘쓰셨으며 또한 멸하셨다. 그러므로 재림때에 그는 그들을 완전히 파멸시키실 것이며 이때 사망 그 자체도 그 승리가운데 삼키운바 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가운데서 이루실 은혜로운 사역 : 그가 그들의 대적들을 멸하고자 힘쓰실때 그는 그들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큰긍휼을 베풀고자 하실때 그가 하시는 첫번 일은 그들로 간구케하는 것이다. 이 약속은 이사야 44:3절에 있듯이 모든 선지자에게 주어질 성령의 은혜에 관계된 것이다. '내가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내리리라'는 이사야 44:3절의 말씀은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셨을때(요 7:39) 성취되었다. 이 축복은 '다윗의 집'에, 즉 뛰어난 사람들위에 부어졌다. 그들이 뛰어났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보통 사람들인 '예루살렘 거민'에게도 부어졌다. 교회는 예루살렘, 곧 하늘의 예루살렘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와 교제를 나누는 모든 참된 신자들은 이 예루살렘의 거민들이다. 그리고 이 약속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의 신을 부어주실 것이다. 그 신은 첫째, 성결케하며 은혜롭게 하는 은총의 신이며, 둘째, 우리로 기도하도록 가르치고 돕는 간구의 신이다. 내가 은총의 심령을 부어주리니. 그 은사의 한 결과는 그들이 애통하리라는 것이다. 애통은 결국 기쁨으로 끝나는 것이며 축복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애통하는 것은 성령의 열매로, 영혼안에서 은총이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봄으로 기인된 애통이다.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이같이 그리스도께서 찔리시리라는 것이 예언되었으며 그 구절은 십자가 상에서 그리스도의 옆구리가 찔리심으로 성취되었을때 인용되어졌다(요 19:37). 우리가 그를 찌른 자라고 말해지고 있다. 원래는 유대인들에 대해서 말해진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죄인된 우리 모두에 대해서 말해진 것이다. 참으로 죄를 회개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죄때문에 찔린 자로, 그리고 자신들에 의해서 찔린 자로 본다. 그들은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죄를 인해서 애통할 것이다. 그 사랑하는 자녀, 곧 장자를 위하여 부모가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깊은 슬픔이면서도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한 애통은 다른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한 사랑에서 나오는 참된 회개자의 애통이다. 그것은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은 것이다.' 그곳은 선한 왕인 요시야가 죽음으로 큰애통이 있었던 곳이다(11절). 그들은 이렇게 외쳤었다. '우리의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애 5:16).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시다. 그는 우리의 죄때문에 죽으셨다. 그때문에 우리는 슬퍼해야만 한다. 총회에서 대표들이 그 땅을 위해 애통할뿐만 아니라(사사기2:5절에서처럼, 그때 그곳은 '보김,' 즉 "애통하는 자들의 곳"이라고 불리어졌다),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할 것이며'(12절)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애통할 것이다'(14절). 네 가문이 여기에 본으로 예시되어 있다.
1) 두 가문은 왕의 가문이다. '다윗의 족속'이라 함은 곧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가문을 말하며 '나단의 족속'이라 함은 다윗의 또다른 아들의 가문을 말함이다(눅 3:27-31).
2) 두 가문은 거룩한 가문이다. '레위의 족속'은 하나님의 지파였으며 특별히 지칭된 '시므이의 족속'은 그안에 속했던 가문으로 레위 지파의 한 혈통이었다(대상 6:17). 왕족들이 치리중에 범했던 죄를 슬퍼해야 하듯이 선지자들은 거룩한 일에 대해 범했던 죄를 슬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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