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으로보는 성경 - 이사야 ②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영이 강림하시는 그날에 전쟁과 살육이 멈추고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다. 여호와가 만민의 기치를 세우시니 흩어진 그분의 백성과 열방이 돌아올 것이다. 여호와가 진노를 그치고 그분의 백성을 안위하시니, 그들은 여호와를 찬송하며 온 땅이 여호와의 아름다운 일을 알게 될 것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11:1~12:6)
메시아의 통치(11:1~12:6)
이새의 줄기에서 나신 메시아가 오시면 완전한 평화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마치 에덴동산으로 돌아간 것처럼 사람과 자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모든 열방은 하나가 된다. 여호와의 백성은 흩어졌던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 엘람과 시날과 하맛, 바다 섬들에서 돌아올 것이다.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남쪽 나일 강 유역에서는 애굽과 바드로스, 구스가 패권을 다퉜다. 동쪽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엘람과 시날이 부상했고, 서쪽으로 하맛과 바다 섬들이 일어났다. 이스라엘의 오랜 경쟁자 블레셋과 동방(아라비아)과 에돔, 모압도 묘사된다. 이 모든 열방이 여호와 앞에 복종하고, 앗수르에 남은 주의 백성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했던 것처럼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그날에는 여호와를 향한 감사 찬양만이 넘쳐 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 활동 시기의 남북 왕조와 주변 국가

남 유다 왕

웃시야=아사랴(52년)

요담(16년)

아하스(16년)

히스기야(29년)

므낫세(55년)

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Ⅱ세(41년), 스가랴(6개월), 살룸(1달), 므나헴(10년), 브가히야(2년), 베가(20년)

베가(20년)

베가(20년), 호세아(9년)

호세아(9년)

앗수르에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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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호세아, 아모스

이사야

이사야, 미가, 나훔

나훔, 이사야, 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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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주변 국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북 이스라엘 왕 므나헴 때, 베가 때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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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과 북 이스라엘 연맹군이 유다 침공,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왕이

아람 점령, 살만에셀 왕이

북 이스라엘 침공

앗수르의 살만에셀 왕이 북 이스라엘 점령, 산헤립 왕이 유다 침공

앗수르바니팔 왕의 지휘관들이 므낫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감


열방 심판(13:1~27:13)

열방을 향한 경고(13:1~23:18)

여호와는 여러 예언자에게 북 이스라엘과 유다를 괴롭힌 열방에 대한 심판 예언을 주셨다(암 1~2장; 겔 25~32장; 렘 46~51장). 이사야 여기 예언을 받았는데 한글 성경은 이를 '경고'로 번역했다. 이는 히브리어 '마싸'를 옮긴 것으로 '부담, 무거운 짐' 등을 뜻한다. 선지자가 받은 예언의 내용이 매우 무겁고 엄하다는 점에서 '엄증한 말씀'(렘 23:33, 38)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또한 선지자가 받았다고 하는 경고는 히브리어로 '목격한 경고'를 뜻한다.


바벨론(13:1~14:23)

여호와가 충동하신 메대가 바벨론을 완전히 허물어 버려서, 한때 영화로웠던 바벨론은 황폐하게 버려질 것이다(13:17~22). 그때 여호와가 긍휼히 여기신 이스라엘 자손은 본토로 돌아올 것이다. 그동안 교만해서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고자 했던 계명성, 바벨론 왕은 스올에 떨어져 조롱을 당할 것이다. 이어서 바벨론에 닥칠 군사적 패배를 묘사한다.


앗수르(14:24~27)

여호와의 땅, 북 이스라엘을 빼앗은 앗수르는 반드시 여호와께 밟힐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가 온 세계를 향해 정하신 경영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경영하신 것을 능히 막거나 돌이킬 자가 없다.


블레셋(14:28~32)

유다의 아하스 왕이 죽자 그동안 유다에 눌려 잔뜩 웅크리고 있던 블레셋은 크게 기뻐한다. 하지만 유다를 대신한 북방의 연기가 몰려와 이들을 집어삼킬 것이다. 북방의 연기는 앗수르를 뜻하는데, 독사와 불 뱀으로 묘사된다.


모압(15:1~16:14)

선지자는 이스라엘과 혈연관계인 모압에 대한 애통함을 감추지 않는다. 모압에 기근이 닥치고, 군대는 패망하며, 백성은 포로로 사로잡힐 것이다. 이 일은 여호와가 오래전부터 계획하신 것으로, 3년 내에 이루어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는 주전 734년 일어난 반앗수르 연합 전쟁과 관련된다. 북 이스라엘 왕 므나헴이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왕에게 은을 주고 왕권을 보장받은 이래(왕하 15:13~22),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며 충성하다가 베가 왕 때 반기를 들었다. 아람 왕 르신과 연맹해 유다와 모압 등 주변국까지 압박한 것이다. 하지만 앗수르는 반기를 든 아람과 북 이스라엘 연합군을 단호히 응징한다(왕하 16장). 다메섹을 점령한 후, 반란에 동참한 나바티아와 모압과 에돔을 포위했다. 이사야 선지자가 다른 나라들과 달리 모압의 곤경과 그 백성의 절규에 진심으로 애통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다메섹과 에브라임(17:1~14)

아람과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반란을 꾀한 대가로 보복을 당한다. 반역의 우두머리인 아람 왕 르신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죽임을 당한다. 다메섹은 무너진 무더기가 되고, 야곱의 영광은 쇠할 것이다. 열방의 충돌은 많은 물이 몰려오는 것과 같은 두려운 일이지만 결국 열방은 주님의 꾸짖음에 모조리 도망가 바람 앞에 흩어지는 겨나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처럼 될 것이다.


구스(18:1~7)

구스는 현재와 에티오피아 땅에 세워진 왕조로 애굽에 멸망당한다. 구스 사람들은 예언대로 앗수르를 멸망시키신 여호와께 예물을 들고 나아갈 것이다.


애굽(19:1~20:6)

구스를 차지한 애굽 역시 심판을 면할 수 없다. 내전이 일어나고, 무서운 가뭄이 계속되며, 역병이 돌 것이다. 바로가 어리석은 방백들에게 미혹되어 잘못된 길로 갔기 때문인데, 이는 결국 여호와가 그들로 매사에 잘못 가게 하신 것이다. 애굽은 위축되어 유다를 두려워하는 지경에 이른다. 한편 그날에 애굽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섬기는 다섯 성읍이 있고 그중 하나는 멸망의 성읍으로 불리게 된다. 그런데 여호와는 애굽을 치실지라도 고쳐 주신다. 선지자가 전하는 놀라운 비전은 그날에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 세 나라가 함께 세계 중에 복이 되어 예배로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한편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에 임할 고난을 예표하는 사명을 수행한다. 주전 715년 앗수르의 사르곤 왕이 아스돗을 쳐서 정복한 해에 이사야는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의 손에 넘어가 백성이 포로 됨을 예표하기 위해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닌다. 이 사역은 3년이나 지속되었다. 애굽과 구스의 멸망은 아스돗을 포함한 해변 주민에게 충격이 되었지만 주전 722년 북 이스라엘 멸망 이래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저울질하던 유다의 히스기야 왕을 정조준한 경고이기도 했다. 히스기야 왕은 애굽과 동맹 가능성을 떨쳐 버리지 못하다가 결국 701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받는다(36~37장; 왕하 18~19장).


바벨론(21:1~10)

다시 바벨론의 멸망 예언이 등장한다. 여기서 바벨론을 '해변 광야'(21:1)라고 지칭하는데, 이는 바벨론 남쪽에 있는 걸프 해 때문에 생긴 명칭일 것이다. 선지자는 바벨론에 관한 혹독한 묵시를 보았는데, 바로 바벨론이 메대와 엘람 연합군에게 함락당한다는 것이다.


에돔(21:11~12)

'침묵'이라는 뜻의 '두마'는 에돔의 한 성읍 이름일 것이다. 에돔은 '세일'이라고도 부른다. 두마의 멸망은 우회적으로 서술되며, 구체적인 멸망의 방법과 시기는 나오지 않는다.


아라비아(21:13~17)

드단과 데마는 모두 아라비아의 도시 이름이다. 이들 간에 내전이 일어나 게달의 영광까지 다 쇠멸한다. 앗수르의 산헤립이 게달을 정복한 것은 주전 689년의 일이다.


유다와 예루살렘(22:1~25)

'환상의 골짜기'(the Valley of Vision)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이곳 백성이 죽는 것은 칼이나 전쟁때문이 아니다. 기근이나 질병으로 인한 것일 수 있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 대신 사람을 의지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병기를 쌓고 성벽을 점검하고 식수를 확보하면서도 여호와는 공경하지 않았다. 또 임박한 심판에 회개를 명하시는 여호와 앞에서 먹고 마시며 술에 취했다. 여호와는 이 죄악은 그들이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한다고 선언하신다. 한편 예루살렘에서 큰 문제가 된 범죄는 왕궁 맡은 자 셉나가 저질렀다. 여호와의 성읍과 아무 상관도 없는 자가 왕에게나 합당한 높은 곳의 묘실을 탐냈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그를 결박해 던져 버리시고, 관직에서 쫓아내시며 지위를 낮추실 것이다. 대신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세워 그에게 왕궁을 맡기실 것이다(22:20~23; 36:3; 37:2). 유다의 병폐는 모든 권력이 한곳에 집중된 것이다. 결국 권력이 집중된 곳이 썩어 문드러져 그 위에 걸린 모든 것이 부서져 버린다.



이스라엘 주변 국가


두로와 시돈(23:1~18)

바다를 매개로 상권을 쥐고 흔들던 두로의 성읍들은 황폐해진다. 무역이 무너지면서 권력을 잃은 두로는 잊혔다가 다시금 기어나는 존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70년이 차고 나면 여호와가 두로를 돌보시므로 두로도 여호와를 예배하게 될 것이다.


그날에 대한 묵시(24:1~27:13)

유다와 북 이스라엘을 비롯한 열방에 대한 심판 예언(13~23장)에 이어 세계를 향한 최후의 심판 예언이 선포된다. 여호와는 '높은 곳에서 높은 군대'를,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실 것이다. 그리고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등극하실 것이다. 유다 땅에 일어날 범죄에 대한 심판뿐만 아니라 미래의 구원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이 단락은 작은 묵시록과도 같다.


세계를 향한 최후 심판(24:1~23)

땅과 바다와 천상의 권세들에 대한 심판이다. 선지자는 세계 민족 중에 일어날 심판 가운데 여호와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땅끝에서부터 노래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시온 산의 연회(25:1~12)

앗수르 군대, 즉 포악한 나라가 멸망하고 나서 온 민족이 시온 산에서 열리는 큰 잔치에 초대받은 광경이 나온다. 여호와는 만민에게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한 맑은 포도주를 대접하신다. 이 산에서 모든 가리개가 제거되고 사망이 멸하며, 모든 얼굴에서 눈물이 씻기고 여호와의 백성은 수치를 면할 것이다. 여호와를 반대한 모압은 이 산에서 초개처럼 밟히며 오물통에서 헤엄치게 될 것이다.


승리한 유다(26:1~21)

유다 땅에 울려 퍼질 승전가를 기록한다. 여호와는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도록 지키신다. 영원한 반석이신 여호와는 백성이 섬기던 다른 신들을 모두 멸하실 것이다. 주를 앙모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은 잉태한 여인이 산고를 겪으며 부르짖는 것과 같다.


택하신 백성을 향한 구원 계획(27:1~13)

여호와는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고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신다. 이에 여호와의 백성은 마침내 제대로 결실하는 포도원이 된다. 그날에 여호와가 유브라데 강에서 나일 강까지 온 열방을 과실 떠는 것같이 하셔서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손을 불러 모으시고 예루살렘 성산에서 예배하게 하실 것이다.


반역하는 백성에게 주신 말씀(28:1~35:10)

에브라임과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28:1~29:24)

세 번 등장하는 히브리어 '호이'(28:1; 29:1, 15)는 '화 있을진저', '슬프다' 등으로 번역되는 감탄사다. 선지자가 에브라임(28:1~6)과 예루살렘(28:7~29:24)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슬픔을 토로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에브라임, 곧 북 이스라엘은 술에 빠졌다. 재판하는 자들과 제사장과 선지자들까지 독주에 빠져 비틀거리며 잘못된 환상을 말하고 재판할 때 실수했다. 그들이 지나간 발자취에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다. 게다가 이들은 이사야가 전하는 지식과 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전에 주셨던 예언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은 자들에게 이제 여호와는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말씀하실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간 자들은 결국 넘어지고 부러지며 붙잡힐 것이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 역시 에브라임의 지도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사망과 언약하고 거짓을 피난처로 삼은 지도자들은 재앙이 밀려와도 두려워할 줄 모른다. 그러나 여호와는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으시고 정의를 달아 보이시며 거짓을 소탕하시고 사망과 맺은 언약을 폐하실 것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농사에 빗댄다. 여호와의 경영이 기묘하며 지혜가 광대하다고 말한다. 여기 등장하는 작물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나는 대표적인 허브와 작물들이다.

한편 선지자는 아리엘을 위해 슬퍼한다. 아리엘은 다윗의 성읍 예루살렘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화로'를 가리키기도 한다. 즉, 유다 백성이 성전에서 희생 제물을 태우는 각종 제의 행위는 그들의 마음이 담기지 않은 헛된 예배여서 여호와께는 뜨거운 화로밖에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입술로는 여호와를 공경한다고 하지만 마음은 멀리 떠난 자들이다. 패역함이 어찌나 심한지 토기장이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진흙과 같다. 열방의 복이 되리라고 여호와가 선택하신 자손은 여호와의 손이 행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사야 길라잡이 ②

심판을 통한 영적 정화와 갱생

김회권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교차되는 하나님의 심판과 위로

이사야 11~29장을 관통하는 주제는 '심판을 통한 영적 정화와 갱생'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은 선민과 만민(이방인)을 가리지 않고 집행된다. 하나님은 열방을 통해 선민 북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을 심판하시지만, 두 나라를 침략한 열방의 죄악 또한 그냥 넘기지 않으시고 심판하신다. 그러나 심판받는 열방도 소돔과 고모라처럼 재기 불가능하게 파멸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회복시키신다는 암시가 곳곳에 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다.

1) 11~12장은 하나님의 심판이 지나간 그 자리에 움 돋는 하나님 나라를 묘사한다. 장차 다윗의 위에 앉을 이상적인 왕 메시아에 의해 하나님의 거룩한 산 시온에는 공평과 정의, 평화와 안전의 나라가 세워질 것이다. 앗수르 제국에 멸망당해 열국으로 흩어졌던 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가 다스리는 시온으로 귀환해 통일 된 이스라엘의 이상을 실현할 것이다. 그리하여 시온에서 다시 하나가 된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열국 앞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구원 역사를 증언할 것이다.

2) 13~23장은 바벨론, 앗수르, 모압, 에브라임과 다메섹, 구스와 애굽, 블레셋, 두마, 아라비아, 예루살렘, 두로와 시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한다. 하나님 백성을 포함해 그들과 인접한 열방에 대한 정화적 심판 예언들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온 열방 민족들의 죄는 북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과 같다. 약자를 학대하고 이웃 나라를 침략하는 무신론적 교만과 영적 무지와 어리석음이 선민과 만민 모두를 하나님의 심판대로 몰아간다.

3) 24~27장은 이사야의 작은 묵시록이라 불리는 독립적 단원이다. 하나님은 열방의 지배자들인 '땅의 왕들'을 치시는 동시에 하나님 백성의 원한을 풀어 주실 것이라는 구원 약속을 담고 있다. 24~25장은 열방과 땅의 왕들을 치시는 하나님의 심판 행적을 말하고, 26~27장은 하나님 백성인 유다와 에브라임의 회복, 위로, 신원을 예언한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헛되이 받지 않고 심판을 통해 영적 쇄신과 성숙을 경험한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앗수르와 애굽으로 쫓겨 간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시 예루살렘 성산으로 되돌아와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한다. 하나님 백성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열방으로 흩어지지만, 열방이 심판을 받는 중에 하나님의 산 시온으로 복귀하게 될 것이다.

4) 28~29장은 소위 '앗수르 단락'(the Assyrian cycle, 28~33장)의 서론이다. 주전 705~701년 유다의 반(反)앗수르 봉기 전후에 있었던 긴박한 상황에 대한 신학적 분석을 담고 있다.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스스로 불러온 유다 지도층의 죄악을 규탄한다. 교만과 영적 무지로 이미 망한 북 이스라엘의 길을 따른 유다는 임박한 심판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파국적인 재앙을 맞이한다.

인간의 죄악이 아무리 참혹해도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과 무궁한 자비를 소진시키지 못한다.


'거룩한 삶'을 누리게 하는 필수 매뉴얼

11~29장에 나타난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않으시는(시 103:10~13), 무궁한 인애와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분의 은총은 평생에 걸쳐 지속된다(시 30:5; 합 3:2 참조). 물론 하나님은 죄악을 참지 않으시며 반드시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 불꽃을 피할 나라와 민족은 없다.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이 가장 먼저 엄혹한 심판을 받는다.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로 쓰였던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 선민과 만민 모두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아래 있다(롬 3:19~20). 그러나 하나님의 이 거룩한 심판 집행 중에서도 그분이 택하신 북 이스라엘과 유다를 용서하시고 다시 시온으로 그 백성을 모으신다. 갱생의 길로 이끄시는 것이다. 열방 중 일부 나라에도 갱생과 회복의 약속이 명시적으로 주어진다(애굽, 두로, 앗수르). 실로 인간의 죄악이 아무리 참혹해도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과 무궁한 자비를 소진시키지 못한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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