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으로보는 성경 - 이사야 ④

내 백성을 위로하라!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죄로 인해 징계하시지만, 결국 회복과 소망의 미래를 약속해 주신다. 이스라엘은 그 노역의 때를 마치고 그들의 죄악이 사함을 받으면, 이방의 빛이 되어 온 열방이 하나님을 알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가깝게는 고레스를 일으키셔서, 멀리는 메시아를 보내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이사야 한눈에 보기

본문

1~12장

13~27장

28~35장

36~39장

40~55장

56~66장

요점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열방에 대한
심판

반역하는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

히스기야
이야기

이스라엘의
구원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

 

40~53장의 시대적 배경

이사야 후반부인 40장 이하는 전반부 1~39장과는 예언의 목적과 문체가 확연히 다르다. 또한 앞부분과는 달리 이사야 선지자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40장 이하의 시간적 배경은 예루살렘과 성전이 멸망하고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때다. 이스라엘을 포로 상태에서 해방시킬 사람이 등장한다. 곧 바사(페르시아) 제국 고레스왕이다. 소수 민족에게 관대했던 고레스왕은 유다 민족에게도 자기 땅으로 돌아가 그들의 신을 섬길 기회를 준다. 마치 출애굽과 같은 은혜가 도래한 것이다. 이에 선지자는 유다 백성에게 여호와의 위로를 상기시키며, 그분의 구원에 감사하라고 격려한다.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주전 556~539년)이고,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벨사살(단 5:1)을 그의 아들로 본다. 나보니두스는 다소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데, 선대왕으로부터 왕좌를 찬탈하기 이전의 출신과 성장 과정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왕위 찬탈 이후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종적을 감추기도 했다. 일부 문서에 나보니두스가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에 있는 '테마'라는 오아시스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벨사살이 바벨론의 왕으로 불리는 까닭은 이 기간에 아버지를 대신해 섭정했기 때문인 듯하다. 어쨌든 나보니두스도, 벨사살도 바벨론 백성에게 인기가 없었다. 주전 539년 바사 군대가 바벨론까지 진격하자, 바벨론 백성은 왕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고 스스로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고 전해진다.

 

바벨론에서 돌아오리라(40:1~48:22)

위로와 응답(40:1~41:29)

이사야 1~39장은 죄를 범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경고며, 마지막 39장은 히스기야왕의 허물 때문에 유다의 모든 소유가 바벨론으로 옮겨지리라는 예언을 담았다. 이어지는 40~66장은 심판으로 인한 바벨론 포로 생활과 그 이후 회복에 대한 메시지다. 40장의 예언은 39장의 내용으로부터 약 150여 년을 건너뛰어 포로 중에 있는 유다 백성을 위로하는 말씀을 다룬다. 이제 죄로 인한 노역의 때가 끝나고 죄악이 사함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외치는 자의 소리'가 나타나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칠 것이다. 이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 역할은 메시아의 출현을 알리기 위한 엘리야의 역할로 해석되었다. 신약에서는 세례 요한이 그 역할을 한다고 본다. 외치는 자의 사명은 소리를 높여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게 하는 것이다.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여호와는 양 떼를 모아 들여 보호하시는 선한 목자다. 하나님과 같은 분은 없다. 그분은 창조자시며 능력자시다. 피곤함과 곤비함을 모르시고 명철이 한없으시기에, 피곤하고 무능한 자에게 능력과 힘을 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형편에 처하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 또한 하나님은 미래를 주관하시는 분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아시고 말씀해 주신다. 목공과 철공이 만든 우상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벙어리일 뿐이다. 이런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구원을 베풀겠다고 약속하신다. 그 구원은 한 사람, 바사왕 고레스를 일으키는 것으로 시작될 것이다(41:25).

 

여호와의 종(42:1~25)

이방에 정의를 베푸는 인물로 여호와의 종을 소개한다. 잔인하게 열방을 정복했던 바벨론에게 그는 여호와의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받으셔야 마땅한 찬송을 우상에게서 빼앗아 올 것이다. 이처럼 여호와의 종이 정의를 가져오는 모습은 여호와가 원하시는 일에 눈멀고 귀먹었던 종 이스라엘과 대조적이다.

 

여호와의 새 일(43:1~28)

이스라엘은 포로지에서 현재의 불확실성 가운데 두려워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신다. 여호와가 용서와 구속을 베푸시는 것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영원불변하다. 이스라엘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위해 이스라엘의 죄와 허물을 잊고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신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위해 새 일을 행하실 것이다. 여호와가 앞으로 행하실 새 일은 과거 출애굽의 역사와 비교할 수 없는 새롭고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은 장차 바벨론을 멸하시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들을 내는 일은 인간에게는 놀라운 기적이나, 하나님께는 매우 작은 일이다. 이스라엘을 여호와를 찬송하는 백성 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신다.

 

여호와의 종(44:1~45:25)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더불어 성령의 부으심을 약속하신다. 성령이 아니고는 여호와를 알 수도 없고 회개할 수도 없으며, 그분을 예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심으로 온 세상에 여호와와 같은 신이 없음이 전파될 것이다. 여호와만이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다른 신은 없다. 하나님은 말 못 하는 우상과 견줄 분이 아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시고, 인간을 인격적으로 사랑하시며 용서하시는 참신이다. 우상은 철공이 철과 숯불로, 목공이 붓과 대패로 만든 형상물에 불과하다. 그것은 신이 아니며, 아무 가치도 의미도 없는 모조품일 뿐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참신이신 하나님 말씀에 마땅히 귀 기울여야 한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여호와가 일으켜 세우신 사람의 이름이 밝혀진다. 그는 '고레스'다. 고레스를 통해 포로로 끌려갔던 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고 이들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될 것이다. 고레스는 '목자'(44:28), '기름 부음 받은 자'(45:1) 등으로 묘사된다. 이사야서 후반부는 고레스의 승리로 모든 열방이 여호와를 예배하게 되리라고 할 만큼 그에게 찬사를 쏟아붓는다.

 

바벨론 심판(46:1~47:15)

바벨론에 임한 심판을 묘사한다. '벨'은 바벨론의 수호신으로 '므로닥', '마르두크'라고도 한다. '느보'는 벨의 아들이다. 바벨론이 자랑하던 도시 문명과 함께 그들이 섬기던 우상들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바벨론 백성은 순식간에 닥친 재앙 속에서 모욕과 수치를 당할 것이다. 교만하고 패역한 나라는 오래가지 못한다.

 

요약과 반복(48:1~22)

앞에서 다뤄진 주제들이 한 번 더 요약되고, 반복된다. 먼저 하나님의 새 일을 소개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정죄가 이어진다(1~11절). 한마디로 이스라엘은 목이 쇠심줄 같고 이마가 놋처럼 완고한 자들이다. 이들 앞에 펼쳐질 하나님의 새 일은 이들이 과거에는 결코 듣지도 알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모태에서부터 배역한 자라 불릴 정도로 하나님 뜻을 어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을 위해 그들을 시험하시고 연단하셨다. 이어서 하나님의 속성이 소개된다(12~16절). 하나님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시며, 그분만이 홀로 참신이다. 그 하나님이 바벨론에 임할 일을 결정하셨다. 끝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행하실 일이 예고된다(17~22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벌하신 것은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악한 자들을 벌하실 것이다.

 

종의 노래

이사야서에서 '종의 노래'로 알려진 본문은 크게 네 군데다(42:1~4; 49:1~6; 50:4~9; 52:13~53:12). 이들 본문이 말하는 '종'이 누구인지를 두고 많은 견해가 있다. 우선 이 종이 개인인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문맥에 따라서 개인이기도 하고 이스라엘 전체이기도 하다. 한편 구속사적 관점으로는 이 '종'이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본다. 마태는 이 본문을 들어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설명한다(마 8:17). 또한 베드로는 이사야서가 말하는 '종'의 고난을 나무(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채찍에 맞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일치시킨다(벧전 2:24). 무엇보다 예수님 스스로가 자신을 이사야서의 '종'과 연결해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림받으리라 예언하셨다(눅 9:22).

 

고레스는 누구인가?

고레스는 '태양'과 관련된 이름이다. 페르시아(현재 '이란')가 서남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와 인도 등 3개 대륙에 걸쳐 최고 전성기를 구가한 주전 6세기경 아케메네서 왕조의 시조다. 고레스왕 때 메대와 바벨론과 아나톨리아(현재 '터키')를 정복했다. 특히 그는 주전 539년, 바벨론을 함락시킴으로써 전통적으로 바벨론왕에게 주어지는 이름인 '바벨론과 수메르와 아카드와 왕'이라는 이름을 차지했다. 이상적이고 자비로운 군주의 모범으로 알려져 있는 그에 대해서는 폭군인 외할아버지를 피해 양치기 손에서 비밀리에 자랐다는 신화가 전해진다. 성경에서는 역대하(36:22), 에스라(1:1), 다니엘(1:21), 이사야(44:28; 45:1)에 등장한다. 히브리어 발음은 '코레쉬'다.

주전 539년경에 고레스왕이 내린 조서(스 5:13)가 유물로 남아 있다. 이를 '고레스 실린더'(Cyrus Cylinder)라 부른다. 1879년 이라크 영토인 바벨론 지역의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고레스 실린더는 점토로 만든 원통형에 아카드어로 기록되어 있다. 고레스왕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새로운 질서와 평화를 가져왔다는 승전보인 동시에, 신의 명령으로 이 땅의 종교를 회복하고자 하는 고레스의 포부와 사명을 기록했다.

 

그분이 구원하시리라(49:1~53:12)

여호와의 종(49:1~50:11)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부름받고 복중에서부터 기억된 이스라엘에 대해 말한다.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들에 빛을 비추고 여호와의 구원 능력을 세상에 전하는 종으로 택함받았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악한 종으로 변질되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빛이 되는 대신 조롱을 당했고, 이방을 구원하는 대신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여호와는 다시 그들을 구원하신다. 어머니가 젖먹이 자식을 잊을 수 없듯이 여호와는 결코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신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빼앗긴 것을 다시 찾고, 여호와가 자신의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심을 알게 될 것이다.

50장은 또 다른 종에 대해 노래한다. 그는 학자와 같은 지혜가 있어 선한 말로 지친 사람들을 격려하며, 수염이 뽑히고 뺨을 맞고 침 뱉음을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다. 이는 우리 죄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모욕을 겪으신 예수님의 모습과 유사하다.

 

이스라엘의 회복(51:1~52:1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며, 그의 후손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아 구원하셨지만, 예루살렘은 멸망의 길을 걸어왔다. 그들은 주님 손에서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시고 비틀거린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시온은 다시 아름다운 옷을 입을 것이다.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있어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을 알게 될 것이다. 52장 마지막에 언급된 여호와의 종은 고난받으나 존귀하게 되어 열방을 놀라게 할 것이다.

 

고난의 종(53:1~12)

53장은 메시아 예언의 절정이다. 여호와의 종은 우리가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 그는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멸시와 매와 고문이었다. 그가 당하는 고난은 끔찍하다. 그는 이런 고난을 받아 마땅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가 받은 고난은 '우리' 때문이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그가 고통스러운 찔림과 상함을 겪었다. 우리의 평화와 나음은 그가 당한 징계와 채찍의 보상이다. 여호와의 종은 우리 때문에 상처를 입고 짓밟혔다. 우리가 하나님께 되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대신해 형벌을 받은 것이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잠잠한 어린양과 같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메시아는 적으로부터 백성을 구원하는 무장한 전사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종은 무력을 내려놓고 겸손과 희생으로 원수와 싸운다. 그 결과 그는 존귀한 자들과 강한 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눌 것이다.

 

유다와 포로와 해방 역사

 

시기

시대 배경

주요 내용

1차 포로

주전 608~
605년

애굽과 바벨론의 전쟁, 유다의 여호아하스왕이 애굽으로 잡혀감

다니엘 등이 바벨론에 잡혀감

2차 포로

주전 597년

느부갓네살왕의 보복, 여호야긴왕이 바벨론으로 잡혀감

에스겔 등 3,023명이 바벨론으로 잡혀감(렘 52:28)

3차 포로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시드기야왕은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잡혀감

비천한 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유력자 832명이 바벨론으로 잡혀감(렘 52:29)

4차 포로

주전 581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철저히 약탈당함

745명이 잡혀감(렘 52:30)

해방의 서막

주전 561년

바벨론 에윌므로닥왕 원년

여호야긴왕이 옥에서 석방됨(렘 52:31)

구원의 선포

주전 539년

바사 고레스왕 원년

각 소수 민족에게 자기 땅으로 돌아가라는 칙령이 선포됨

 

이사야 길라잡이 ④

정의와 공의의 실현, 하나님 나라의 완성

김창대 안양대학교 구약학 교수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 약속

이사야서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는 '시온에 거하는 백성이 정의와 공의를 행함으로, 열국이 그들의 정의와 공의의 빛을 보고 찾아와 하나님 자녀가 되도록 한다.'라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 당시 시온은 창기처럼 타락해 정의와 공의가 실종되었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사 1:21). 정의와 공의의 부재로 결국 시온은 신바벨론에 멸망당하지만, 훗날 회복되어 종말에 모든 산보다 높게 세워질 것이다. 그날에는 율법이 지향하는 정의와 공의가 시온에 충만해 열국이 시온을 찾아오게 될 것이다(21:1~4). 이런 하나님의 청사진과 맞물려 이사야 40~53장은 시온의 회복을 선포한다.

이사야 40~53장은 포로 생활을 통과하면서 낮아진 백성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증언하고, 시온으로 대변되는 하나님 나라가 회복되어 거기에 거하는 백성이 놀랍게 변화될 것을 예언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인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못해 포로로 끌려간 백성에게 시온의 회복 메시지는 신기루로 비쳐졌다. 이런 불신의 벽 배후에는 정의와 공의를 행할 능력이 그들 자신에게 없다는 두려움이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야 40~53장은 두 축을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시한다. 첫째는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 사역을 통해 그분 백성을 시온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은혜다(49~53장). 둘째는 시온에 돌아온 백성에게 성령을 부으셔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시는 은혜다(44~45장).

 

고난받는 종과 성령의 부으심

이사야서는 고난받는 종의 사역을 말하기 전에 수사법적 전략으로 성령의 부으심을 먼저 이야기한다. 이로써 포로 생활이라는 어둠의 터널에 갇혀 방황하는 백성에게 그들이 반드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의로운 자가 되어 본토로 귀환한다는 희망의 빛을 전달한다(44:2~3; 45:8, 25). 40장이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1절)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구약에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왕,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와 같이 '특별한 사람'에게 한정되었고, 성령은 사람들에게 내주하시기보다 사람들로부터 멀리 계시는 형태로 역사했다. 이에 반해 종말에 부어지는 성령은 '모든 언약 백성'에게 임할 것이다. 성령의 부으심은 새 언약의 선물로서 새 언약의 혜택을 믿는 모든 자가 누릴 것이며, 성령의 내주하심은 하나님이 사람들 속에 거하시는 방식이 될 것이다(59:21). 이런 맥락에서 신약도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이 모든 사람 속에 거하실 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요 7:38~39).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새 언약의 수혜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 먼저 시온을 회복하고 그 회복된 시온에 백성을 인도하는 사명을 누가 감당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등장하는 인물이 '여호와의 종'이다(42:1~4; 49:1~6; 50:4~9; 52:13~53:12). 하지만 여호와의 종은 이 일을 감당하면서 뺨까지 맞는 수모를 겪는다(50:6, '나의 뺨을 맡기며'). 이런 상황 가운데 53장에서 신적 인물인 메시아가 등장해 여호와의 종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대속의 죽음을 통해 백성을 의롭게 하고(53:11,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시온으로 인도해 새 언약을 체결하는 인물로 그려진다(54장).

결국 이사야 40~53장은 고난받는 메시아의 대속적인 희생과 성령의 부으심으로 종말에 새 언약의 수혜자인 성도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그분의 뜻인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자로 변화될 것을 웅변적으로 강조한다. 즉, 성도의 구원 목적은 최종적으로 시온으로 대변되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있음을 일깨워 준다. 이런 점에서 이사야서는 오늘날 성도에게 귀중한 보고(寶庫)다. 이사야 40~53장은 구원이 단순히 천국을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좇아 '하나님 나라'라는 공동체를 세우고, 모든 이를 하나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임을 교훈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은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 완성에 있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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