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으로보는 성경 - 역대하 ②

평안과 승리,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
하나님은 온 땅의 주권자요 전능하신 분이다. 하나님을 찾으면 전능자가 함께하시는 복을 누리지만,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그를 버리신다. 택하신 자녀를 향해 한결같으신 하나님처럼, 성도는 일평생 하나님 앞에 신실해야 한다. 세상 조류에 흔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찾는 일에 힘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큰 상급으로 응답하신다.

성막과 성소와 성전

성막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명령대로 성막을 지었는데, 이는 이동식 성전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 주시는 곳이어서 '회막'이라고도 했고(출 27:21; 33:7~11), '장막'(출 25:9; 33:7; 대상 6:48), '증거막/증거의 성막'(출 38:21; 민 1:50; 10:11), '여호와의 성막'(민 16:9), '증거의 장막'(행 7:44; 계 15:5), '성소'(출 25:8), '여호와의 집'(삼상 1:7), '세상에 속한 성소'(히 9:1)라고도 불렀다. 성막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시고 그들 가운데 임재하심을 상징했다(출 25:8). 그래서 항상 이스라엘의 진 중앙에(민 2:2), 그리고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 세워야 했다. 지성소에 안치된 언약궤에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 만나 항아리, 십계명을 넣었다. 이것들은 부활과 생명이 되신 예수님(요 11:25~26), 하늘의 참양식이신 예수님(요 6:35), 말씀이신 예수님(요 1:14)을 상징한다.

 

성소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 성막을 둘 장기 거처가 생겼다. 실로와 벧엘이 대표적인 곳이다. 상황에 따라 성막 전체 대신 언약궤만 이동하기도 했다. 특히 사사 시대에는 언약궤를 전투 현장에서 앞장세우기도 했다. 왕국이 분열된 후, 여로보암은 언약궤가 머물렀던 벧엘과 최북단의 단을 북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로 삼았고, 예루살렘에 안치된 언약궤에 맞서 금송아지상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냈다.

 

성전

다윗은 예루살렘 천도 후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두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 싶어 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했고, 이 성전은 주전 586년 바벨론 군대에 의해 파괴됐다. 언약궤 역시 이때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약 70년 후 스룹바벨을 위시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한다. 볼품없고 초라했던 성전은 몇 차례 보수 공사를 거친다. 헤롯 대왕이 감행한 성전 확장 공사가 대표적이다. 두 번째 성전은 유대인의 반란을 계기로 주후 70년 로마군에 의해 무너졌다.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두 성전이 모두 아브월 9일에 무너졌다고 한다.

 

솔로몬 성전 평면도

 

 

솔로몬의 통치(1:1~9:31)

성전 건축(2:1~7:22)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봉헌한다.

 

성전 봉헌(6:1~7:22)

솔로몬 즉위 4년 둘째 달(시브월)에 시작된 성전 건축은 7년 후인 열한째 해의 여덟째 달(불월, 왕상 6:38)에 끝났다. 이후로 왕궁 역사가 이어지고, 일곱째 달인 에다님월에 봉헌식이 열린다(왕상 8:2; 대상 7:10). 솔로몬왕은 먼저 하나님의 언약궤를 지성소에 들인다. 이때 하나님의 전에 구름이 가득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가운데 솔로몬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셨던 말씀대로 자신이 성전을 완성했다고 선포한다. 또 제단 앞 놋으로 만든 대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손을 편 채 기도한다.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하나님께 성전에서 백성이 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길 간청한 것이다. 간구 내용은 모두 일곱 가지 경우로 제시된다.

① 범죄 : 악한 자와 공의로운 자에게 행위대로 갚으소서.

② 패전 때 : 백성의 죄를 사하시고 이 땅에 돌아오게 하소서.

③ 비가 내리지 않을 때 : 백성의 죄를 사하시고 비를 내리소서.

④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을 때 : 사유하시고 행위대로 갚으소서.

⑤ 이방인이 기도할 때 : 응답하시고 만민이 주를 경외하게 하소서.

⑥ 적국과 싸우러 나갈 때 : 백성을 돌보소서.

⑦ 적국에 패해 사로잡혀 갈 때 : 죄를 뉘우치면 용서하소서.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자 하나님은 불을 내려 모든 제물을 사르셨다. 그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확증해 주신 것이다. 왕과 백성이 제사를 드리는 동안 레위인들은 다윗 시대에 만들어진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스라엘 회중은 성전 봉헌식과 더불어 초막절을 지키며 즐거워 한다. 이후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이 성전을 그분께 제사하는 곳으로 삼았다 하시며, 다윗에게 주신 언약대로 솔로몬의 왕위를 견고하게 하리라 약속하신다. 하지만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그 백성을 약속의 땅에서 뿌리 뽑아 버리고 거룩한 성전도 버려 만민의 웃음거리로 만들겠다고 하신다.

 

솔로몬의 행전(8:1~9:31)

20년 만에 성전과 왕궁을 완공한 이후, 국경과 주요 지역에도 견고한 성읍들을 건축한다. 부역에 동원된 이들은 이스라엘 중에 남아 있던 이방인들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감독의 직임을 맡는다. 솔로몬은 모세의 명령대로 일과와 절기에 따른 제사를 드리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반열대로 섬기게 했으며, 하나님의 전 공사를 무사히 마쳤다. 또 에돔 항구들을 거쳐 바닷길을 개척해 오빌에서 금을 얻기도 했다. 이에 솔로몬의 소문을 들은 스바 여왕이 방문한다. 향품과 보석을 싣고 온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한다. 솔로몬의 큰 지혜를 확인한 여왕은 예물을 바치고 돌아간다. 한편 바닷길 너머에서 들어온 백단목으로 수금과 비파 등 악기를 만든다. 결과적으로 솔로몬의 소유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늘었다. 이스라엘은 태평성대를 보냈다. 얼마나 부유했는지 잔과 대접들도 모두 순금으로 만들었고, 은은 너무 흔해 귀금속으로 치지도 않았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서 40년을 다스린 후 죽는다. 열왕기는 솔로몬이 지나치게 많은 처첩을 거느리고 이방 여인들을 사랑해 우상 숭배에 빠졌다고 기록한다(왕상 11장). 하지만 역대기는 솔로몬이 말년에 이방인 아내들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돌아섰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의 행적에 오점이 될 만한 일들은 가급적 생략한 것이다.

 

솔로몬 사후에서 포로기까지(10:1~36:23)

왕국 분열과 유다 왕들(10:1~36:21)

역대기는 솔로몬 사후 분열 왕국 역사를 거의 유다 왕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북 이스라엘 왕들은 유다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만 언급된다. 왕들에 대한 기록은 열왕기보다 훨씬 짧고,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역대기의 목적은 다윗의 가계가 끊어지지 않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백성에게 그들만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남은 자임을 확신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북 이스라엘의 배신과 배교를 지적하는 한편 거기서 예루살렘으로 내려온 사람들을 칭송한다. 이는 분열 왕국 시대에 남 유다에서 산 사람들에게만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한편 역대기는 유다 왕들에 대해서 흑백 논리처럼 서술한다. 통치 기간에서 선한 시기와 악한 시기를 나누는 식이다.

 

르호보암과 왕국의 분열(10:1~12:16)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왕위 즉위식을 위해 세겜으로 간다. 세겜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땅의 경계로, 유다 지파에 호의적이지 않은 지파의 영토였다. 그런데도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르호보암이 세겜까지 간 것은 에브라임 지파의 반발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솔로몬을 대적했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도 애굽에서 돌아와 있었다. 이들은 솔로몬이 요구했던 부역을 줄여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충고를 저버리고 동년배 젊은 신하들의 말을 따라 더 혹독한 부역을 부과하겠다고 한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여로보암에게 열 지파를 떼어 주신다는,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해 하신 말씀의 성취였다(왕상 11:29~33).

북쪽 열 지파가 배반하자 르호보암은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역대기는 왕조의 분열이 르호보암의 잘못이라기보다 북쪽 지파들의 배신에 따른 결과라는 데 중점을 둔다. 또 그 배신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역대기는 성전 재건을 독려하는 이들이 기록했고, 사마리아인은 성전 재건에서 아무런 지분도 얻지 못했다(스 4:3).

한편 배신한 북 이스라엘과 전쟁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까스로 전쟁 위기를 벗어나고, 르호보암은 유다 땅을 방비하기 위해 성읍을 건축한다. 이 시기 북 이스라엘에 있던 제사장과 레위인을 비롯한 신실한 사람들이 '여호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유다로 내려온다. 여로보암이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해임하고, 벧엘을 비롯한 산당에서 우상 숭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 3년간 선한 통치를 했던 르호보암이 강성해지자 율법을 버린다. 온 이스라엘이 죄에 빠지니, 하나님은 애굽 왕 시삭을 통해 그들을 치신다. 하지만 르호보암과 방백들이 다시 겸비함을 보시고 유다를 완전히 멸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겸손히 회개하는 자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분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비야(13:1~13:22)

아비야의 통치 기간에 있었던 주요 사건은 북 이스라엘 여로보암과의 전쟁이다. 전쟁에 앞서 아비야는 북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긴 연설을 한다. 유다와 싸우는 것은 하나님과 싸우는 것이므로 멈추라는 것이다. 유다는 병력이 두 배나 차이 나는 이스라엘 군대를 이기는데, 하나님이 그들 편이 되셨기 때문이다. 열왕기가 아비야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반면, 역대기는 왕국 분열의 책임이 있는 여로보암을 징계하기 위해 하나님이 아비야를 사용하신 것처럼 그린다(13:16).

 

아사(14:1~16:14)

아사왕이 선과 정의를 행하는 10년 동안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누린다. 구스의 대군도 물리친다. 아사가 전쟁을 마치고 돌아올 때 오뎃의 아들 아사랴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그분이 함께 해 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신다고 경고한다. 아사는 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자 우상을 빻아 불사르고, 어머니를 태후 자리에서 폐할 정도로 하나님께 신실했다. 덕분에 아사왕 35년까지 다시 전쟁이 없었다. 아사왕 36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침공한다. 열왕기에 따르면 바아사는 아사왕 3년에 왕위에 올라 아사왕 26년에 죽는다(왕상 15:33; 16:8). 두 성경 본문의 진술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알 수 없다. 한편 역대기는 선견자 하나니의 입을 통해 아사왕이 하나님 대신 아람의 벤하닷을 의지한다고 비판한다. 아사왕은 이 말을 듣고 돌이키는 대신 선견자를 옥에 가두고 백성도 학대한다.

 

여호사밧(17:1~20:37)

역대기는 여호사밧의 통치를 비중 있게 다룬다. 열왕기는 이 시대에 있었던 아합과 엘리야의 대결에 초점을 맞추지만, 역대기에서는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 때 엘리야가 잠깐 언급될 뿐이다(21:12). 여호사밧은 아합과 혼인 동맹을 맺은 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그는 길르앗 라못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 뜻을 묻지만, 패배를 전하는 미가야의 예언을 듣고도 전쟁에 참여한다. 전쟁 부분에서 아합은 이름 대신 '이스라엘 왕'으로 기록된다. 그는 아람 군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죽는데, 이는 하나님의 섭리다.

여호사밧은 귀국하다 악한 자를 도왔다는 이유로 선견자 예후에게 비판받는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유다 전역을 다니며 공정한 재판을 하고, 예루살렘에서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사역을 격려하며 선을 쌓는다.

한편 역대기는 모압과 암몬을 무찌르려는 여호사밧의 의지를 대단히 높이 칭송한다. 이는 역대기가 기록될 당시 이 민족들은 유다의 회복에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하는 것만으로 모압과 암몬과 세일산 주민을 멸할 수 있었다.

 

여호람(21:1~12)

여호람은 아합의 딸 아달랴를 아내로 맞아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셔서 여호람을 멸하시지 않는다. 이때 에돔이 배반하고 유다의 지배를 벗어나 골칫거리가 되고, 엘리야 선지자는 편지를 통해 왕이 우상 숭배한 결과를 경고한다. 결국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유다를 침략해 여호람의 아내들과 아들들을 죽이고, 여호람은 탈장으로 죽는다.

 

아하시야(22:1~12)

여호람의 아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된다. 열왕기는 이 시대에 있었던 예후의 반역과 아합 및 이세벨의 죽음에 초점을 맞춘다. 아하시야는 전쟁에서 다친 아합이 아들 요람을 병문안하러 갔다가 반역을 일으킨 예후에게 쫓기고, 므깃도까지 도망치다 병거에서 죽는다. 반면 역대기는 사마리아에 숨어 있던 아하시야를 무리가 예후에게 데려가서 죽였는데, 여호사밧을 생각해 장사 지내 주었다고 기록한다. 어쨌든 아하시야는 아합의 딸인 어머니 아달랴를 통해 아합의 집같이 악을 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달랴는 아들이 죽자 유다 왕국의 씨를 진멸하고 스스로 왕이 된다. 그러나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인 여호사브앗이 조카 요아스를 살린다. 하나님이 다윗과의 언약을 지키시고, 항상 등불을 주신 것이다(삼하 7:16; 왕하 8:19). 요아스가 하나님의 전에 숨어 있던 6년 동안 아달랴가 유다를 다스린다.

 

역대하 길라잡이 ①

솔로몬의 지혜와 르호보암의 힘

김수정 LA미성대학교 (America Evangelical University) 구약학 교수

 

솔로몬이 '부와 권력의 왕', '성전을 지은 지혜자' 등으로 세상에 잘 알려진 만큼이나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아버지 그늘에 가려져 무능한 왕으로 평가받는다. 출발부터 북쪽 열 지파 지도자들로부터 위협적인 도전을 받은 그는 '지혜'롭지 못한 판단으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라는 분단의 역사를 만들었다.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후광 속에서 권위적인 왕권을 구축해 나갈 수 있었다면, 열 지파를 빼앗기고 두 지파와 함께 남겨진 유다 왕 르호보암은 성취의 기쁨보다는 나머지마저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통치를 시작한다.

그러나 포로지에서 귀환해 역대하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당시 독자들이나 지금 역대하를 읽는 우리가 일그러진 우리 자화상과 닮았다고 느끼는 인물은, 능력자 솔로몬이 아니라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다. 르호보암처럼 출발점부터 삐거덕거리다가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그로 인해 많은 고초를 겪고 포로지에서 돌아온 역대하 시대 독자들과 오늘 우리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솔로몬에게는 없고 르호보암에게는 있는 것

두 왕을 비교할 때, 솔로몬에게는 없고 르호보암에게는 있는 것이 무엇일까? 놀랍게도 완벽해 보였던 솔로몬에게는 그의 옆에서 조언을 해 주고 그가 가는 길을 견책해 줄 수 있는 선지자들이 없었다. 나단 선지자나 사독 제사장은 다윗을 도와 그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한 인물들이지, 솔로몬에게 조언하고 솔로몬이 그들의 말에 경청해 자신의 계획을 수정했다는 기록은 성경에 없다.

솔로몬 이야기에서 없는 것이 또 있다. 이 최고 지혜자에게는 불행하게도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성찰의 공간이 마음에 없었기 때문에, 회개 또한 일어나지 않았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한 후에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하신 말씀인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7:14)는 역대하에서 유명한 구절 가운데 하나다. 이 말씀을 직접 들은 솔로몬은 그의 말년에 과연 그 악한 길에서 떠났는가?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찾았는가?

역대하는 이 말씀을 실천해 여러 번 위기에서 구원받은 이가 솔로몬이 아닌, 부족하고 어리석은 르호보암이었음을 은근히 강조하는 듯하다. 르호보암은 북쪽 열 지파 지도자들을 격노하게 하는 결정을 함으로써 겨우 목숨만 건진 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두 지파의 왕이 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그가 무모한 복수심과 의욕으로 북 이스라엘을 공격하려 했을 때,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가 그를 말렸다. 이에 르호보암은 하나님 뜻에 순종해 그의 길을 돌이켰다(11:1~4). 그가 자기 뜻을 하나님 뜻에 맞추고 돌이켰을 때,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고자 하는 경건한 자들이 유다로 내려와 그를 도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다(11:13~17). 르호보암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교훈을 잊어버린 르호보암은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그 결과 애굽의 침공을 받게 된다(12:1~2). 여전히 대처 능력이 없었던 르호보암에게 하나님은 선지자 스마야를 통해 불행한 사태의 원인을 말씀하실 뿐 아니라, 르호보암에게 들을 수 있는 귀와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신다(12:5~7).

이는 하나님께 죄를 범해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수치를 겪었으나, 르호보암과 함께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포로지에서 돌아와 겸손히 그분의 얼굴을 찾는 역대하 독자들과도 함께하실 것임을 보여 준 것이다. 이것이 르호보암이 성숙해 가는 과정이요, 포로 귀향민들이 일어설 수 있는 전환점이며, 우리 모두의 진정한 영성이 성숙해 가는 과정이다. 어설픈 지혜가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겸손함을 빼앗아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이라고 불러야 한다. 진정한 지혜자는 자신의 창조자가 자신의 구원자임을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낮추는 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말씀을 받아들여 돌이킬 수 있는 마음을 주신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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