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으로보는 성경 - 역대하 ③

유다 왕들의 길에서 얻는 교훈
하나님의 사람은 한결같아야 한다. 그러나 유다 왕들은 하나님을 찾고 떠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바벨론에 패망해 포로로 잡혀갔고, 안식과 정화의 기간 70년을 거친 후에야 하나님이 회복의 길을 열어 주신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으로 마치는 인생이 되지 않는 비결은 늘 하나님을 찾고 말씀의 길로 가는 것이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비교

  남 유다 북 이스라엘
왕국 이름 유다 이스라엘
1대 왕 르호보암 여로보암
마지막 왕 시드기야 호세아
왕조의 수 1왕조 9왕조
왕의 수 20명 19명
정권 교체 국왕 살해가 네번 일어남 대부분 암살됨. 쿠데타 발생
선한 왕 8명이 선한 왕으로 평가됨 선한 왕으로 평가된 사람은 없음
지파 구성 두 지파(유다와 베냐민) 열 지파
수도 예루살렘 세겜 → 디르사 → 사마리아
특성 종교. 정치 중심지가 일치됨 종교. 정치 중심지가 분리됨
개혁한 왕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예후만 부분적으로 개혁을 단행함
멸망 주전 586년 바벨론에 멸망당함 주전 722년 앗수르에 멸망당함
기간 345년간 존속(주전 931~586년) 209년간 존속(주전 931년~722년)
포로 귀환 바벨론에서 3차에 걸쳐 포로가 귀환함 .

솔로몬 사후에서 포로기까지(10:1~36:23)
왕국 분열과 유다 왕들(10:1~36:21)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열되고, 역대기는 유다 왕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사후의 이야기가 23장부터 펼쳐진다.

요아스(23:1~24:27)
아합의 딸이요, 여호람의 아내요, 아하시야의 어머니인 아달랴는 6년 동안 유다를 다스린다. 하지만 열왕기와 역대기 기자 모두 아달랴를 유다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아달랴가 집권한 세월은 다윗 가문의 계승자 요아스가 고모인 여호사브앗을 통해 목숨을 건지고 성전에서 자라나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을 뿐이다. 요아스가 일곱 살이 되자, 여호사브앗의 남편인 제사장 여호야다는 레위 사람들을 중심으로 반정을 일으켜 아달랴를 죽이고 요아스를 왕으로 추대한다. 이 쿠데타 과정에서 아달랴의 악행이 드러나는데, 바로 유다 땅에 바알 신당을 세우고 바알의 제사장들을 배치한 것이다. 여호야다와 백성은 우상과 신당을 허물고 바알의 제사장들을 죽인다. 역대기는 요아스의 삶을 '여호야다의 충고를 따라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행한 긍정적인 시기'와 '여호야다 사후에 우상 숭배에 이끌린 부정적인 시기'로 나눈다. 특히 우상 숭배를 반대하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돌로 쳐 죽인 사건을 기록하면서, 왕인 요아스가 반란자들에게 살해된 것이 이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이처럼 왕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 숭배할 때, 하나님 또한 그들을 버리신다는 것을 역대기는 반복해서 보여 준다.

아마샤(25:1~28)
아마샤의 생애도 아버지 요아스처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모두 기록된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을 처단하지만 율법을 준수해 그 자녀들은 해하지 않는다. 또 에돔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충고한 대로 북 이스라엘 군대의 도움을 입지 않고 큰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큰 승리로 마음이 높아지면 은혜에서 멀어지기 쉬운 법이다. 아마샤는 세일 자손의 신들을 자신의 신으로 섬겨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또한 교만해진 나머지 어리석게도 북 이스라엘을 먼저 공격한다. 그 결과 아마샤는 사로잡히고 예루살렘은 함락된다. 아마샤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반역으로 라기스까지 도망갔다가 살해된다.

웃시야(26:1~23)
열왕기에 '아사랴'라고 기록된 '웃시야'도 선하게 시작하지만 악한 결말을 맺는다. 그는 하나님의 묵시를 아는 스가랴의 말을 듣는 동안 형통함을 누린다. 블레셋과 암몬을 쳐서 영토를 확장하고,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며, 친위대와 무기를 갖춘다. 이것은 선대왕이 두 명이나 반란으로 암살된 것을 지켜본 그로서는 당연한 조처였다. 하지만 지혜롭게 행했던 웃시야가 교만해지자, 성전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하려는 악을 행한다. 하나님이 제사장에게만 주신 고유한 권한을 넘본 죄로 그는 나병에 걸린다. 역대기도 이를 하나님의 징계로 해석해,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다'고 설명한다(20절; 왕하 15:5). 웃시야는 별궁에 격리되고, 아들 요담이 아버지를 대신해 왕의 직무를 수행한다.

 

요담(27:1~9)

열왕기와 역대기 모두 요담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해 태평성대를 누린 것으로 묘사한다. 요담은 성전을 보수하고 유다 산중의 성읍에 진영과 망대를 건축하며 암몬으로부터 조공도 받는다. 실상 세계사에서 이 시기는 디글랏빌레셀 3세가 이끄는 신앗수르 제국의 부상을 목전에 둔 일촉즉발의 시대였다.

 

아하스(28:1~27)

주전 736년 요담의 통치 시기에 아람 왕 르신과 북 이스라엘의 베가가 연합해 앗수르에 반란을 일으킨다. 아하스가 왕위에 오른 주전 732년은 이 전쟁이 마무리된 시기인데, 역대기는 이 전쟁의 피해를 아하스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이는 악한 왕 아하스를 비난하기 위함일 수 있다. 아하스가 자녀를 불살라 우상에게 바치며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이방 풍속을 따르는 등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기는 하나님이 아람과 북 이스라엘이 그를 치도록 하셨다고 규정한다. 아하스가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을 원군으로 불러들여 아람과 북 이스라엘 연합군을 물리친 일도 비판한다. 이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은 일이라고 본 것이다. 아하스는 당시 세계정세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친(親)이방 정책을 펼친 듯하다. 역대기가 아하스를 비난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이방의 원조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이방 민족과 그들이 섬기는 이방 신들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요 우상 숭배다.

 

히스기야(29:1~32:33)

솔로몬 사후, 역대기가 가장 비중 있게 다루는 왕이 히스기야다. 히스기야는 '그의 조상 다윗'의 행실을 따라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행한 왕으로, 성전을 정화하고 성전 봉사자들을 재배치한다. 또 수많은 희생 제물로 제사를 드리고 큰 부와 영광을 소유한 점에서 솔로몬을 떠올리게 한다. 히스기야의 가장 큰 업적은 유월절을 부활시킨 것이다. 유다뿐만 아니라 에브라임과 므낫세 땅에도 편지를 보내 유월절을 지키게 하며, 그 후에는 유다 성읍 곳곳에 있는 우상과 우상 제단을 없애는 열의를 보인다. 역대기는 이 모든 일을 '충성된 일'(32:1)이라고 평가한다. 열왕기는 히스기야 시대에 있었던 앗수르 산헤립의 침공을 비중 있게 다룬 반면, 역대기는 이 사건에서도 히스기야의 신실함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산헤립의 신하가 하나님을 모욕하고 예루살렘 거주민을 괴롭힐 때, 히스기야가 이사야와 함께 부르짖어 기도한다. 이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앗수르 군대를 멸하신다. 산헤립이 아들들에게 암살된 것은 유다 침공으로부터 상당히 먼 훗날의 일이지만, 마치 이 사건의 직접적인 결과인 것처럼 기록한다. 한편 역대기는 히스기야의 치부에 대한 기록을 축소한다. 히스기야의 죄를 적나라하게 기술하지 않고, '마음의 교만'이라고만 표현한다. 바벨론 왕의 사신들에게 왕궁의 보물과 무기를 보인 일(왕하 20:12~15)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훗날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하는 것을 히스기야 탓으로 돌리지 않으려 한다.

 

므낫세(33:1~20)

열왕기는 유다 왕조의 멸망 원인을 므낫세의 악행에서 찾는다(왕하 21:10~15). 이렇게 악한 왕이 어떻게 55년간이나 나라를 통치할 수 있었을까? 이는 유다 왕들의 재위 기간 중에서 가장 긴 기간이다. 므낫세가 권력을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정세에 민감하게 적응했기 때문일 수 있다. 므낫세는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새로운 패권국으로 성장한 신앗수르 제국에 반기를 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성전 보물을 압류하고 백성에게 엄한 세금을 매겨서 제국에 조공을 바치고 안위를 보장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므낫세의 친이방 외교 정책은 필연적으로 이방 신들을 예루살렘에 끌어들이게 된다. 그리하여 유다에 우상 숭배가 또다시 반복된다. 심지어 므낫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우상을 하나님 성전에 갖다 두기까지 한다. 그리고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꾀어 우상 숭배에 빠뜨린다. 이에 하나님이 징계의 손을 드신다. 그런데 역대기는 므낫세와 관련해서 열왕기에 없는 내용을 덧붙인다. 앗수르 군대 지휘관들이 므낫세를 결박해 바벨론으로 끌고 갔는데, 거기서 그가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는 것이다. 이때 '바벨론'은 아직 나라가 강성해지기 전이므로, 앗수르의 지배를 받고 있던 바벨론 지역을 가리킬 것이다. 어쨌든 므낫세는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함으로 은혜를 입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후 성전의 우상과 우상 제단을 모두 제거하고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해 하나님께만 제사드리는 놀라운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 이처럼 므낫세는 악한 왕이었지만 회개했기에 재위 기간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역대기에 기록된 므낫세의 이야기는 나라를 잃고 포로로 잡혀갔던 백성에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긍휼의 은총을 구할 이유를 제시한 셈이다.

 

아몬(33:21~25)

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재위 2년 만에 암살된다. 열왕기와 역대기는 반역자들을 제거하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옹립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기록한다(왕하 21:24; 대하 33:25). 이들이 어떤 세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요시야가 벌인 개혁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요시야가 죽고 나서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옹립한 세력이며, '그 땅의 백성'이라고 언급되기도 한다(36:1).

 

요시야(34:1~35:27)

요시야는 8세에 왕위에 올랐다. 따라서 어린 왕 배후에서 통치를 도운 세력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의 목표는 유다의 신앙 회복이었을 것이다. 요시야는 재위 8년에 비로소 다윗의 하나님을 찾고, 재위 12년에 유다 전역에서 우상을 제거한다. 재위 18년에는 성전을 수리하는데 이때 율법책을 발견하고, 율법이 가르치는 대로 준행하기에 이른다. 특히 유월절을 지키고, 제사를 회복한다. 역대기가 요시야의 개혁과 율법책 발견을 얼마나 중시하는지가 그 세세한 설명에서 드러난다. 요시야는 바벨론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갈그미스로 진군하는 애굽왕 느고를 막으려다가 죽는다. 그는 느고의 입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않았다.

 

유다의 마지막 네 왕(36:1~21)

'그 땅의 백성'이 요시야를 대신해 아들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는다. 애굽 왕 느고는 여호아하스를 재위 3개월만에 포로로 끌고 가면서 엄청난 벌금도 탈취한다. 애굽 왕은 여호아하스를 대신해 요시야의 둘째 아들 엘리아김을 왕으로 삼으면서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꾼다. 역대기에서는 열왕기(왕하 24:1~7)와는 달리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김을 재위 11년 만에 포로로 끌고 가면서 성전 기구들을 탈취했다고 기록한다. 느부갓네살은 다시 3개월 10일 만에 여호야긴을 포로로 끌고 가면서 성전의 귀한 그릇들을 탈취한다. 그리고 여호야긴의 숙부 시드기야를 왕으로 삼는다. 시드기야란 이름은 느부갓네살이 붙인 것으로, 시드기야의 원래 이름은 맛다니야다(왕하 24:17). 왕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왕과 그 나라에 대한 소유권을 드러내는 표식이다. 유다의 마지막 왕들은 자기 이름조차 지키지 못할 만큼 정복자들에게 휘둘렸던 것이다. 시드기야 재위 11년, 마침내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유다 백성과 성읍은 갈대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어간다. 백성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고 그 땅에서 70년을 보내게 된다. 역대기는 이 포로기를 정화의 시간으로 본다. 예배가 무너지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로 성전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이 멸망했지만, 70년이라는 정해진 기한이 지난 후에는 성전을 정화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역대기가 7년째 되는 해에 땅을 쉬게 하는 '안식년'을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포로 생활을 통해 하나님 백성은 안식년을 보낸 것이다. 이제 악한 이방 왕들의 통치에서 벗어나 회복될 시간이 다가온다. 백성이 본토로 돌아와 새로운 성전이 열릴 것이며, 땅은 다시 소출을 낼 것이다.

 

유다의 마지막 네 왕

원래 이름 혈족 관계 정치적 입장 통치기간 폐위시킨 왕
여호아하스 여호와가 붙드심 여호아하스
(여호와가 붙드심)
요시야의
넷째 아들
반애굽 3개월 애굽 왕 느고
여호야김 여호와가 세우심 엘리아김
(하나님이 세우심)
요시야의
둘째 아들
애굽이 세운 왕권, 느부갓네살을 배신했다가 보복당함 11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여호야긴 여호와가 세우심 여고냐, (여)고니야
(여호와께 위임받은 자)
여호야김의 아들 바벨론에 복종함 3개월
10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시드기야 여호와는 정의이심 맛다니야
(여호와의 선물)
요시야의
셋째 아들
애굽과 동맹을 모색하다가 바벨론에 끌려감 11년 바벨론왕
느부갓네살

고레스의 귀환 명령(36:22~23)

역대기의 결말은 에스라서의 시작과 거의 동일하다. 이는 두 책의 연관 관계를 보여 주는 증거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바사(페르시아 제국) 시대가 새롭게 열렸다. 바사 왕 고레스는 세상 만국을 통치하는 권한을 하나님께 받고, 유다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도록 허락한다. 역대기는 하나님 백성이 고토로 돌아오게 되었음을 기록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함으로 회복될 이스라엘의 미래를 보여 준다.

 

역대하 길라잡이 ②

함께 믿음의 순례를 완주할 동역자

김수정 LA미성대학교 (America Evangelical University) 구약학 교수

 

성전의 평화와 안녕에 주목하는 책

역대하는 솔로몬이 왕이 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솔로몬이 정성 들여 예루살렘 성전을 지은 후 봉헌하자, 하나님이 영광 가운데 임하심으로 그 성전을 인정해 주신다(대하 2~7장). 그러나 솔로몬과 그의 뒤를 이은 왕들은 주변 국가들을 의식하면서 우상 숭배하는 일에 마음을 빼앗긴다. 하나님의 성전에 가증한 우상들을 들여놓더니, 끝내는 그 성전이 불타고 백성은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비극을 맞는다(8:1~36:21, 참조 왕상 11장). 그러나 역대하가 어떻게 끝나는지 주목하자, 하나님이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린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시자, 고레스는 유다 포로민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러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린다(36:22~23). 이것이 역대하 마지막 내용으로, 이는 역대하가 주목하는 것이 하나님이 계시하는 성전의 평화와 안녕임을 보여 주는 분명한 증거다. 즉, 성전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과 동행하기로 약속한 백성이 어떻게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고 실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품게 되는지를 유다의 흥망성쇠 역사를 통해 보여 주고자 하는 책이 역대하다.

 

연약한 왕들을 바로 세우는 조언자들

그렇다면 역대하는 이 성전의 평화와 안녕을 책임져야 했던 왕들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역대하에는 다윗이나 모세, 요셉이나 다니엘과 같은 영웅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 사람을 본받으면 되겠구나." 하고 모델로 삼을 만한 인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역대하는 왕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약함'과 '악함'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하나님께 받은 지혜로 백성을 잘 다스릴 것 같았던 솔로몬이 백성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우고(10:4), 여러 번 실수 끝에 견고한 믿음을 갖게 된 것 같았던 르호보암이 다시 넘어진다(12:1~5). 하나님께 온 마음을 바친 것 같았던 아사가 하나님의 종을 핍박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16:1~14), 죽음의 전쟁터에서 겨우 빠져나와 다시는 악인과 함께 일을 도모하지 않을 것 같았던 여호사밧이 다시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 연합해 일을 그르치는 것(20:35~37)을 우리는 씁쓸한 얼굴로 마주한다. 무너진 성전을 수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히스기야도, 우상들을 불사르며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자 했던 요시야도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 뜻을 분별하지 못해 넘어지는 것(32:31; 35:21~25)을 우리는 역대하를 통해 본다. 누가 이 실패의 대열에서 비켜서서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만 섬겼노라."라고 말할 수 있는가?

역대하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명료하다. 악한 길에서 돌아와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라는 것이다(7:14).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역대하 전면에 드러난 메시지라면, 그 이면에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메시지가 하나 더 있다. 유혹과 핍박이 쉴 새 없이 다가오는 인생길에서 우리는 조언자 없이 스스로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이 인생 여정을 순전한 믿음으로 완주하는 것이 보장되어 있지 않기에, 누구와 함께 어디에서 신앙 생활을 해 나갈 것인지를 심사숙고하라고 역대하는 우리에게 엄중히 말한다. 르호보암에게, 아사에게, 여호사밧에게, 히스기야에게, 그리고 요시야에게 하나님 말씀을 대언했던 선지자들을 기억하라. 그 왕들이 그들의 말을 하나님 말씀으로 경청했을 때, 그리고 반대로 그들을 무시하고 핍박했을 때 각각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기억하라는 것이다.

천성을 향해 순례 길을 걸어갔던 「천로역정」의 주인공 '크리스천'에게는 '신실'이라는 믿음의 동역자가 필요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믿음의 좁은 길을 걸어가라는 예수님의 명령(마 7:14)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에게 오늘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역대하를 읽는 우리는 마음속에 소박하나 아주 간절한 소원이 생기는 것을 느낄 것이다. "저와 함께 이 믿음의 순례를 완주할 동역자를 찾게 해 주소서." 이것이 역대하를 읽으면 읽을수록 '교회'라는 두 글자가 새삼 소중하게 가슴에 와 닿는 이유일 것이다.

 

인생 여정을 믿음으로 완주하도록 누구와 함께 어디에서 신앙생활을 해 나갈 것인지를 심사숙고하라.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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