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하나님의 공의 73:1-4
이 시편은 다소 비약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비록 악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번영을 누리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가 특별한 의미에서 이스라엘에게만 선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악인이 번영을 누리는 것으로인하여 시험을 받기쉽다는 이야기를 한다.
(1) 그는 우선 이러한 시험을 당하는동안 굳게 지키기로 결심한, 가장 큰원칙을 제시하고 있다(1절). 욥은 이와같은 시험을 당할때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그의 행동원칙으로 삼았다. '어찌하여 전능자가 시기를 정하지 아니하셨는고'(욥 24:1). 예레미야의 행동원칙은 하나님의 공의였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렘 12:1). 그리고 하박국의 행동원칙은 하나님의 거룩함이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못하시며'(합 1:13). 여기에 나타난 이 시편 기자의 행동원칙은 하나님의 선하심이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에 관하여 수많은 생각을 해왔지만 결국 이것을 그의 원칙으로 받아들였다. "이 모든 것들로 미루어보아 하나님은 선하사 이스라엘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니이다." 이스라엘중 마음이 정결한 자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시지만 그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에게 대했던 것처럼 특별히 그의 교회와 백성들에게 더 선을 베푸신다.
(2) 그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특별히 이스라엘에게만 선을 베푸신다는 신앙때문에 받았던 충격을 이야기한다. 이 충격은 하나님께 속한 이스라엘이 다른 백성들보다 그들에게 더많은 긍휼을 베풀지도 않는다는 의심을 품음으로써 비롯되었다.
1) 그는 이러한 시험을 받고 좌절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극복하기 힘들었다고 이야기한다(2절). '나는 실족할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질시하였음이로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는 선에 대해 흡족히 여겨 왔나이다. 그러나 이제 유혹자가 내 발꿈치를 걸어서 거의 넘어질뻔하였나이다." 닻이 견고한가는 폭풍속을 지나봐야 안다. 그러므로 영원히 살, 수많은 고귀한 영혼들도 일생동안 한번은 급격한 전환기를 맞게된다.
2) 이 시편 기자가 받은 시험은 이러하다. 그는 '악인의 형통함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3절). 저희는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현명하고 선량한 사람들도 이러하나 재난을 당하는데 그들은 마치 어떤 특권에 의하여 누구에게나 임하는 슬픈 재난을 면제받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들은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날' 정도로 편안하게 살고있다(7절). 이 세상에는 그 수중에 물질적인 것을 많이 가지고있으나 그 마음에 저 세상에 속한 것을 전혀 갖지못한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들은 경건치못한 생활을 하면서도 번영을 누리며 재물을 늘리고 있다(12절). 혹자는 이 구절을 "그들은 당대에 형통을 누리는 자들이라"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평안한 것처럼 보인다. 이 사실은 모든 일중에서 가장 납득하기 힘든 일로서 제일 처음에 언급되고 있다(4절). 저희는 죽는때에도 고통이 없고. 즉 그들은 고통스럽게 죽지않는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양심의 고통조차 느끼지 않는다. 인간이 죽은뒤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판단할수 없다. 양과 같은 모습으로 죽음을 맞을지라도 염소가 있는 곳에 머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외적인 번영을 악용하여 더욱 완악해진다. 결과적으로 번영은 그들의 성품을 오만하게 만든다. 삶이 너무 편안하여 그들은 '교만이 저희 목걸이'가 된다(6절). 해몬드 박사는 이 구절을 '교만이 사슬처럼 저희를 묶는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목걸이를 다는 것은 해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목걸이를 달때 그 목걸이는 더이상 장식품이 아니다. 죄인들의 교만은 겉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입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저희는 능욕하며(8절). 또한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한다'(벧전 2:18). 그들은 또한 가난한 이웃들은 압제한다.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6절). 저희는...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8절). 그들은 압제할뿐만 아니라 자신을 정당화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타락했다. 즉 그들은 쾌락과 사치를 탐하는 일에 빠지고 만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다(9절).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멸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만큼 하늘로 손을 뻗치지 못한다. 그들은 단지 하늘에 대하여 경멸의 태도를 취함으로써 그들의 악함을 보일뿐이다. 저희 혀는 땅에 두루다니도다. 그들은 그들을 방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욕설을 퍼붓는다. 그들이 차라리 말을 배우지 않았다면 이와같이 악한 행동을 할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어찌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11절). 무한한 지식을 가지셨으며 모든 지식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께 '지식이 있으랴'라고 말하는 것만큼 무례한 행동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편 기자가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라고 말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12절). 그는 악한 자들이 이와같이 불경건한 행동을 하면서도 번영을 누리는 반면에 선한 백성과 특히 그 자신이 큰고통을 당하고있는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바깥으로 눈을 돌려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큰곤경에 빠져있는 현실을 바라본다(10절). "악한 자들이 감히 이런 소리를 하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오나이다.' 이런 일을 당할때 그들이 어떻게 말할바를 모르는 이유는 '그 백성이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기' 때문이니이다. 그들은 고통의 쓴잔을 맛보는 것에 그치지않고 그 쓴잔을 모두 마시도록 강요당하나이다. 그들은 기뻐하지도 않는 잔의 물 한방울도 남기지못하도록 감시를 받았을뿐 아니라 잔에 한방울의 물도 남지않도록 억지로, 비틀어 짠 물을 마시나이다." 이 물은 바로 그들에게서 강제로 짜낸 물이었다. 이제 그는 그의 눈을 그 자신의 내부로 돌려 그가 당하고있는 고통을 직시하고 있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즉 이런저런 고통으로 시간마다 시달렸다. 그는 이로 말미암아 신앙을 버리고 싶을정도로 강한 시험을 받았다.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어찌알랴. 모든일은 단연코 재수에 달려있는 것, 모든일을 다 아신다는 하나님께 좌우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전지하심에 대해서까지 질문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신앙의 유익에 대해 질문을 하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려는 유혹을 받았다(13절). 내가 내 마음을 정히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것이 실로 헛되도다. 그러나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을 받아 하나님을 보게된다면(마 5:8) 그들은 마음을 청결케 한것이 헛된 일이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Ⅱ. 악인의 종말 73:15-20
이제 그가 어떻게 자신의 신앙을 지키면서 승리를 얻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존경심을 간직하고 스스로를 자제하여, 잘못생각했던 것을 말하지 않았다(15절). 그는 점차로 승리를 얻게되었으며 이것은 그의 가장 큰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그는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한것이 실로 헛되도다'라고 말하고자 했으나 곧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함으로써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다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에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비록 그가 잘못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 악한 생각을 말하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만일 네가 미련하여...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잠 30:32). 한번 말을 하기전에 두번 생각하라. 그 이유는 말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 생각날수 있기때문이며 또 처음 생각했을때의 잘못을 두번째 생각에서 정정할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음을 정히 한것이 헛되다고 말하거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말하는 것은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전체적으로 실족케하는 것이다.
(2) 그는 악한 백성들의 멸망을 예견하고 있다. "나는 이 불가해한 섭리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나 '심히 곤란'하였나이다. 진정 내 추리력으로는 그 의미를 알수 없었나이다." 만일 이세상뒤에 또다른 삶이 없다면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과 하나님의 공의를 도저히 연결해서 생각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17절). 즉 성경을 상고하면서 이 문제를 분명히 깨닫도록 기도를 했을때 그는 비로소 악한 자들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동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로지 멸망을 향하여 달려가기 때문이다. 성소는 시험을 받고있는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끝이 좋은 것은 영원히 좋은 것이 되지만 끝이 나쁜 것은 영원히 나쁜 것이 된다. 악한 자들의 번영은 단명하고 불확실하다. 하나님의 섭리로 그들은 높은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미끄러운 곳'이다(18절). 그들의 멸망은 확실하고 갑작스럽게 임하며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들은 잠깐동안 번영을 누리다가 영원히 멸망을 당한다. 기자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므로 어느누구도 방해할수 없다고 말한다. 주께서 저희를...파멸에 던지시니. 또한 이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19절). 그리고 이것은 결론적으로 최종적인 멸망이다. 저희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번영을 부러워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경멸해야 한다. 주여 사람이 깬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후에 저희 형상을 멸하시리이다. 갈대아 역본에는 '심판날에 저희가 수치와 영원한 멸시를 당하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육체의 안전을 도모하는 잠에서 깨우시고 그들의 형상을 경멸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부자의 형상을 어떻게 멸시하고 있는지 보라.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라'(눅 12:19,20).
Ⅲ. 확고한 신앙 73:21-28
이 시편 기자는 그가 겪었던 극심한 시험을 잘 극복하여 오히려 자기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것을 기술하고 있다.
(1) 그는 자신에 대해 매우 겸손히 생각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스스로를 나무랄수 있게 되었다(21,22절). 내 마음이 산란하여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시험은 바울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와 같은 것이다(고후 12:7). 시기심과 불만을 마음에 품고있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 시편 기자는 이러한 마음을 품었던 것이 그 자신의 무지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나는 내가 알수 있었던 것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앞에 짐승'같이 되었나이다. 짐승들은 현재의 일에만 관심을 쏟을뿐, 결코 다가올 일을 미리 내다보는 법은 없나이다. 그런데 나 역시 그랬나이다. 나는 언제나 그들가운데 하나가 되기를 바랐고 그들과 함께 변화되는 조건에 관심을 기울였나이다. 나는 이같이 '우매 무지' 하였나이다."
(2) 그는 이제 그가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할 근거를 찾았다(23절). "내가 우매무지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며 주의 은혜를 받았나이다. 그리고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그는 시험을 받을때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나이다'라고 말했었다(14절). 그러나 이제 격렬하게 불평을 늘어놓았던 자신의 태도를 고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징벌하실지라도 버리지는 않으셨나이다. 인생의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주와 함께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이따금씩 내게 고통스러운 일을 보내셨지만 내가 광야에서 길을 잃지않도록 여전히 내 오른손을 붙들어 주셨나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영원한 생명을 보증해 주신다면 우리는 더이상 불평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나는 거의 실족할뻔 하였고 내 발은 아주 상하여 회복하기 힘들게 되었으나 주께서는 내 오른손을 붙드셔서 나를 넘어지지 않게 하셨나이다."
(3) 그는 악한 일로부터 그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서 그를 천국으로 인도해주실 것을 바라고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쓰는 편지에 그렇게 말했었다(딤후 4:18). "주께서 내 손을 잡아 주셨사오니 나를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것처럼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실' 것이니이다"(24절). 이 시편 기자는 시험을 당했을때 자기의 생각을 더 좇으려 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교훈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무를 지키라고 지시하실때, 그는 현재 우리를 당혹케하는 모든 모호한 섭리를 훗날 이해시켜 주실 것이며, 또 상당히 큰시험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시다.
(4) 이로 말미암아 그는 더욱더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었고, 하나님을 주로 선택함으로써 큰확신과 위로를 받게되었다(25,26절). 전에는 고통스러운 일을 당할때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이제 이러한 신앙을 가짐으로써 그 고통은 한결 가벼워지고 쉬워졌다.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면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을 향해 성별된 한 영혼의 숨결과 하나님안에서 얻는 안식에 대한 내용을 대하게 된다. 하늘에서는 주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시편 전체를 통해서 볼때 이 구절만큼, 한 영혼이 하나님께 대하여 경건하고 헌신적인 애정을 표현하는 구절도 거의없다. 영혼을 지으신 하나님만이 그 영혼을 행복하게 하실수 있다. '주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라고 기록된 것처럼,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고한 행복이 되신다면 우리는 그를 주로 선택하고 섬겨야 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품고 그외의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하늘에서는 주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자 없나이다. 이 말은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는 하늘뿐 아니라, 많은 친구가 있고 현재 많은 관심을 쏟고있는 이땅에도 소망을 품거나 사모할자가 없다는 뜻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많은 사람들이 육체와 마음의 쇠잔함을 경험했고 우리도 그것을 각오해야 한다. 육체는 병과 늙음과 죽음으로 쇠잔해질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26절). 기자는 육체보다(육체는 일단 쇠잔해지면 아무런 구제방법이 없다) 영혼에 관심을 가진 자로서 속사람을 강건케 하기위한 의도에서 이 말을 하고있다.
(5) 그는 모든 악한 백성들이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될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는 성소에서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것을 항상 마음에 간직한다(27절).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전능자께서 떠나기를 바라며, 그와 멀리 떨어져있는 자들은 반드시 멸망을 당하게 된다.
(6) 그는 하나님께 매달리고 신뢰하기로 스스로 다짐한다(28절). 우리가 하나님께로 다가갈때 하나님도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그 만남은 행복한 결실을 맺는다.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이 좋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의 생명은 "그 진리가 내게 좋다"고 말할수 있도록 자신에게 그 진리를 적용하는데 있다. 만일 악한 자들이 일시적으로 번영한다해도 결국 멸망을 당하게된다면 우리는 그들과(참조. 146:3-5) 세상적인 번영을 신뢰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뢰해야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번영에 초조해하거나 겁을 먹지말아야 한다.
# 핵심
73:1-28
이 시편을 지은 아삽은 다윗 당시에 성가대를 이끌었던 찬양 대장이다. 아삽은 본시편을 통하여 악인의 번성과 의인의 고난이라는 부조리한 문제를 다룬다. 그는 이같은 현실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포기할뻔하는 심각한 갈등을 겪었지만, 끝내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의로우신 심판을 믿는 겸허한 자기고백에 이르고있다.
# 묵상
교만의 목걸이와 강포의 옷 ( 73:6 )
본문은 악인들이 형통하게됨에 따라 어떠한 삶의 태도를 갖게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목걸이는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기위한 장식물로서, 악인들은 교만한 자신의 모습을 통하여 자신이 특별한 인물인듯이 행세합니다. 또한 옷은 몸을 치장하는 것입니다. 곧 악인은 포악과 강포를 행함으로써 자신들의 허무한 탁월성을 과시하려 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주님만 믿고 악인의 실상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않으면 성도는 위기를 만나게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악인 ( 73:11 )
악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침묵을 보고 심판이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인생을 살피십니다(계1:14). 그리하여 악인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고후5:10).
시인이 깨달은 하나님의 계획 ( 73:17 )
시인은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거룩한 처소, 성소에서 악인의 최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았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교제할때 참지혜를 얻고 올바른 판단을 할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분의 계시에 의존할때 하나님의 심오한 경륜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의인의 삶 ( 73:18 )
의인은 일시적으로 고난에 처하지만 그의 인생은 견고한 바위처럼 안전합니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안에서 참평강을 누리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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