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를 찬양함 118:1-18
몇몇 다른 시편과 마찬가지로 이 시편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가득차 있는 다윗의 심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1) 다윗은 첫머리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 송축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각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아야 한다고 권면한다(1절). 제사장과 일반 백성들, 그리고 유대인들과 다른 개종자들은 모두 그 선하심을 인정하며 한마음으로 감사의 노래를 불러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혹시 더이상 할말을 찾지 못하겠거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하고 노래하면 된다. 이는 그 백성이 사는날동안 끊임없이 경험한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는 것이다.
(2) 또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특별히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다는 점을 잊지않고 있었다. 다윗은 살아있는 날동안 무수히 많은 역경을 해쳐왔는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깊이 체험하였던 것이다. 한때 어려움을 겪다가 높은 지위에 오르게된 사람들은 이전에 자기가 처했던 불우한 상황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비참한 지경에 빠져 어려움을 겪던때의 일을 하나도 잊지않고 있었다. 다윗은 오랫동안 '고통중에' 있었고 '미워하는 자'가 많아 괴로움을 당했었다(5,7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순박한 심령의 소유자에게, 이러한 일은 실로 슬픈 일이 아닐수 없다. 열방이 나를 에워쌌으니(10절). 다윗이 처음 왕위에 올랐을무렵에는 블레셋을 비롯하여 모압, 아람, 암몬 등 이스라엘 근방의 나라들이 모두 일어나 다윗을 괴롭혔다. 그들은 다윗과 대항하려는 목적으로 서로 연합하였다. 적의에 가득차서 광포했던 그들은 한때 우세했었다. 다윗은 그 상황을 가리켜 '저희가 벌과 같이 나를 에워쌌으나' 하고 묘사해 놓았다. 실제로 그들은 벌과 같이 떼를 지어 독이 가득한 침으로 다윗을 쏘았었다. 그러나 벌이 침을 쏘고 난뒤에 생명을 잃는 것처럼 그들도 이일로 말미암아 파멸을 당하고 말았다. 다윗은 다음 두가지 이유로 고통에 빠지게 되었다.
1) 사람의 음모로인하여 상처를 입었다(13절). 네가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여기서 '너'라함은 다윗의 대적자를 말한다).
2)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허락하셨다(18절).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사람의 음모는 다윗의 파멸을 기도한 것이지만 여호와의 경책하심은 그를 훈계하려는 뜻에서 진행된 것이다. 다시말해서 사람이 그 마음의 적대감으로 다윗을 밀쳐 넘어뜨리려 한 반면 여호와께서는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자애로움으로 경책하셨다는 뜻이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은 심히 경책하시는 중에도 다윗의 기도를 들어주셨다(5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내가 구하는 것보다 더많은 것으로 채워주셨도다. 즉 여호와께서는 기도할때 내마음을 크게하시사 기대하지도 못했던 큰응답을 허락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헤치려던 무리의 음모를 수포로 돌아가게 하셨다. 그들이 꾸며놓은 계획은 모두 '가시덤불의 불같이 소멸'되고 말았다(12절). 가시덤불에 불이 붙으면 잠깐동안 큰불꽃을 일으키며 요란스럽게 타오르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사그러들고 말기때문에 생각했던 것만큼은 위험하지 않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호하사 그 생명이 죽음의 문턱에 들어설때마다 구원하시곤 하셨다(18절).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도다. 그이유는 여호와께서는 대적하는 무리의 뜻을 따라 그의 생명을 저버리실리가 결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하는 다윗의 외침은 그가 오랫동안의 체험을 통해 그편이 훨씬 안전하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증거가 된다(8,9절). 다윗은 언제나 이 믿음을 가지고 대처해 나갔기때문에 마침내 승리를 거둘수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는 내편이시라(6절). 우리가 하나님편에 서면 하나님도 우리편이 되신다. 하나님과 함께하며 그이름을 위해 일하는 자는 하나님께서도 그사람과 함께하시며 도움을 베푸실 것이기 때문이다(7절). 여호와께서 내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중에 계시니. 이와같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강건해진 사람은 마땅히 그이름을 찬양해야 한다. 곧 하나님께서 함께하사 그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경험한 자는 마땅히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힘과 찬양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세주가 되사 우리를 구원해주실 것이다. 다윗은 자기가 계속해서 위로를 얻고, 승리하며, 생명을 보존할 것을 확신하면서 승리의 노래를 부른다.
첫째, 다윗이 위로를 얻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알아보자(15절). 의인의 장막에 기쁜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이는 곧 그와 그의 집에 기쁜소리가 있을 것이라는 뜻을 나타내준다. 땅위에서 의인이 거처할 곳은 볼품없이 초라한 장막에 불과하다. 이곳 세상은 성도들이 '영원히 거할 성읍'이 아니기때문에 장막에 잠시 머무는것 뿐이다. 그러나 이 장막은 악한 자들이 거하는 궁성보다 한결 평안하다. 왜냐하면 그 장막안에는 하나님을 믿는 생활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 장막안에는 구원의 은혜가 있다. 구원의 은혜가 있으니 자연히 하나님안에서 영원히 기뻐할만한 이유를 가지게 되고 이로인하여 기쁨의 '소리'가 울려나오며 찬송과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이다.
둘째, 다윗의 승리에 대해 살펴보자.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높이 들렸으며(15절). 어떤사람은 뒷부분을 여호와의 오른손이 '나를 높이 드셨도다'하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다윗의 생명에 대해 어떻게 서술되어 있는지 알아보자(17절). "무서운 음모를 꾸며 생명을 빼앗으려 하는 자가 많아도 '내가 죽지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이로써 내 생명은 여호와의 권능과 긍휼하심을 선포하면서 살아가게될 것이로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선포하면서 그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찬양하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삼고자 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의 생명을 보존해주신 목적도 바로 이것때문임을 명백히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Ⅱ.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118:19-29
이 부분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겸손히 낮아지셨다가 영광중에 높이 들리울 것이 예언되고 있다. 아울러 그의 고난과 뒤에 올 영광에 대해서도 서술되어 있다. 따라서 훗날 사도 베드로가 대제사장과 서기관앞에서 그중의 한구절을 인용하였을때 아무도 성경을 잘못 적용하였다고 비난하지 못했던 것이다(행 4:11).
(1) 이 귀한 예언의 서론이 나온다(19-21절).
1)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의 영광을 찬송하기위하여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기를 원한다. 의의 문이라함은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문을 말한다. 의의 문이 열리면 '그리로 들어가서' 지성소에 나아가 '여호와께 감사'해야 한다. 오늘날의 성도들은 지성소에 들어갈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2) 다윗은 그 문이 자기에게 열려질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20절).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이 여호와의 문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문이다. 이 문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인생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게 되었으며 찬양을 드릴수 있게되었다. 예수는 곧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발견할 자가 아무도 없다(요 14:6).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두드렸으나 굳게 닫혀있었던 의의 문이 마침내 열리려하는 것을 보고 다윗은 기쁜 마음으로 노래하였다.
3) 다윗은 이 은혜가 놀라와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돌리겠다고 언약하였다(21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실날에는 이렇게 멀리있었던 자들도 그 사실을 보는 것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야할 근거를 찾아냈었다.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안에서, 메시야의 임재를 위해 그렇게 간구하던 구약시대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구세주가 되실 분을 보내주시리라는 것을 깨달을수 있었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나온다(22,23절). 그런데 이 내용은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 적용해도 별무리가 없을 것이다. 사실상 다윗은 사울왕과 그 신하들이 버린 돌이었으나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에 의해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사람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이 내용은 확실히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다. 전체적인 내용이 다음과 같다.
1) 예수께서 처음에는 지극히 낮은 자로서 세상에 오실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건축자의 버린 돌'이 되실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사람의 손으로 하지아니한 뜨인 돌'이다(단 2:34). '건축자의 버린 돌'이란 표현은 예수께서 유대의 지도자들과 그 백성들에게 배척당하게 될것이라는 의미이다(행 4:8,10). 실제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된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빌라도앞에서 가이사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다고 외침으로써 예수의 존재를 완전히 '부인'하였다(행 3:13).
2) 그러나 결국 예수께서는 높이 들리우실 것이다. 다시말해서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실 것이라는 뜻이다. 즉 예수께서는 용도면에서나 가치면에서 어떤것보다도 더귀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예수께서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실때 비로소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하여 하나의 거룩한 교회를 이룰수 있다. 머릿돌이 없이는 건축물이 완성될수 없다. 그러므로 머릿돌이신 예수께서는 '믿음의 시작이요 마지막'으로서 모든 것위에 뛰어나신 분이라고 확신할수 있다.
3) 그 과정에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손길은 예수께서 가시는 길을 따라 늘 함께하셨다. 물론 예수께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셨다. 이것이 곧 '우리 눈에 기이한바'가 되었던 것이다. 원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호칭가운데 '기묘'라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언제나 놀라울 뿐이지만 예수께서 행하시는 구속의 사역만큼 신비한 일도 없다.
(3)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기뻐 환호하는 모습이 서술된다.
1) 먼저 '이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니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함으로써 그앞에 영광을 돌려야한다(24절). 간혹 이날을 버림받은 돌이었던 예수께서 높이 들리우는 순간으로 곧 부활의 그때를 기념하여 지키는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을 볼수 있는데 이들의 생각도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고 하겠다. 아무튼 이부분은 그리스도인이 지켜야할 안식일에 관한 규례이다. 이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즉 다른 날과 달리 거룩하고 특별한 날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을 위해 이날을 정해주셨다. 이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그날이 정해졌다는 것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것을 기념하면서 기뻐하리라는 의미이다. 안식일이란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기뻐해야할 날임이 분명하다.
2) 이제 높이 들리우신 구세주 예수를 맞이할때 즐거운 마음으로 호산나 찬송을 불러야할 것이다(25,26절). 호산나 찬송을 부르는 것은 '왕이여 만세를 누리옵소서'(Vivat rex)라고 환호함으로써 새롭게 보위에 오른 자를 위해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같다. 원래 '호산나'의 뜻은 '내가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이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이 구세주가 나의 구세주가 되게하소서. 이세상에 머무는동안에 구세주의 날개아래 보호를 받으며 그의 기뻐하시는 종으로 인정받게 하소서. 또한 마음속의 더러운 정욕과 싸워 이기게하시며 주의 긍휼하심을 힘입어 자신의 소욕을 넉넉히 다스릴수 있게 해주소서. 여호와여 세상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구세주도 지켜주소서. 구세주의 이름을 거룩하게하사 '그나라가 임하게 하시며 뜻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소서." 그러므로 '사람들은 저를 위하여 항상 기도'해야 한다(72:15). 다시말해서 여호와의 정하신 날, 그 나라안에 들어가 즐거워할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날로 번창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일을 쉬지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장엄한 노래와 예식으로 구세주를 맞이할때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종으로서 맡은바 직분을 수행해야 한다(26절). 그날에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하고 찬양함으로써 왕으로 임하시는 예수를 축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오실때 우리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여호와의 축복을 받은이여, 속히 오소서. 주의 긍휼하심과 성령이 임하사 이생명을 당신의 소유로 삼으소서" 하고 외치며 기쁨으로 영접하여야 한다. 또한 성도들은 주의 교회가 재림의 날에 대비하여 날마다 성장하며 올바르게 양육되기를, 그리고 속히 임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가 속히 오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그이름으로 세우심을 받았을뿐만 아니라 진실로 주를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해 축복을 선포할 의무도 지니고 있다(엡 6:24).
3)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귀한 희생의 재물을 주셨으므로 이제 그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제를 드려야 한다(27절). 우리에게 비취셨으니. 이는 우리에게 빛을 보여주셨다는 의미로서 인생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하나님에 대해 알게하시고 그뜻이 무엇인지 깨달을수 있게 해주셨음을 뜻한다. 그런가하면 우리를 빛나게 하셨다는 의미로서 하늘나라의 영원한 빛을 볼수 있다는 소망을 우리에게 주사 우리 영혼에 빛이될 기쁘고 즐거워할만한 이유를 주셨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처럼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줄로 희생을 제단 뿔에' 매야 한다는 것이다. 이 희생은 율법에 정해진 규례를 따라 죽여서 피를 제단 뿔에 뿌리게 된다. 여기에서 이 구절은 특별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볼수 있다. 다시말해서 죄의 사슬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자신의 몸을 제단뿔에 묶어놓고 기도와 찬양의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풀이할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제물로 드리되 죽이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찬송을 바치는 경우를 가리켜 '거룩한 산제사'라 한다(롬 12:1).
4)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마지막을 장식한다. 또한 사람들을 향하여 자기와 함께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부르자고 권한다(28,29절). 하나님의 은혜로 온인류가 크게 기뻐할 소식을 접하게 되었으니 모두 모여 감사의 찬송을 부르자는 것이다. 이 기쁜소식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로 오시는 것을 뜻한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온인류가 함께 '여호와의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하고 찬양하게 되었다. 이노래의 처음과 마지막이 동일한 것은(1,29절) 여호와의 영광은 모든 찬송의 시작과 끝이요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 핵심
118:1-29
절기에 부르는 시편들(113-118편)가운데 마지막에 속한다. 예수님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때 군중들이 외쳤던 기쁨의 노래구절이 26절과 비슷하다(비교, 눅 19:38; 요 12:13). 메시아를 예언한 시편이다.

# 묵상
담대한 신앙 ( 118:6, 7 )
시인이 담대한 신앙을 가질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속적인 인자와 자비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우주의 모든 능력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을 생각할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있다는 사실은 우리로하여금 가장 든든한 확신을 갖게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환난중에도 믿음하나로 담대할수 있습니다.
메시야의 비하와 존귀 ( 118:22-29 )
시인은 자신의 고난과 구원을 소개하면서 메시야의 고난과 영광에 대한 현격한 예언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시인은 먼저 성령의 영감을 통하여 모퉁이 돌이 되기위해 버림받아야 하는 그리스도의 운명과,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환호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미리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구원의 날을 기쁨으로 지키는 끊임없는 축제로 이해하며 버림받은 돌이 존귀하게 높여지는 안식을 기념하며 축하합니다.
구원의 머릿돌 ( 118:22 )
버린돌이 머릿돌이 되었다는 의미는 하찮게 취급된 것이 나중에 존귀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신약에서 그리스도는 승귀하심으로 구원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마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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