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빌닷의 첫번째 논술〔1〕 8:1-7
(1) 빌닷은 욥이 말한 것들로 욥을 책망한다(2절). 그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흥분되어 있었던 듯하다. 따라서 그는 이제까지의 욥의 말이 올바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네가 어느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느냐"라는 한마디의 말로 욥의 모든 말을 일축해버린다. 뿐만아니라 그는 욥의 말을 광풍에 비교하고 있다.
(2) 빌닷은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해오신 일이 올바른 것이었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지금 이 사실을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욥은 빌닷이 추측했던 것같이 하나님을 비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적어도 그는 여기에서처럼 욥의 자녀들을 비난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1) 그의 견해는 일반적으로 옳았다. 즉 하나님은 심판을 굽게 하시지 않으며 또한 정하여진 공의의 법칙의 그 어느것도 어긋나게 하지 않으신다.(3절).
2) 그러나 그는 욥의 자녀들이(그들의 죽음이 욥을 매우 고통스럽게 한것 중에 하나였는데) 어떤 사악한 악행을 저질렀기때문에 그 당연한 결과로 불행을 당하게 된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욥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굽게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인정했다. 그렇다고해서 그의 자녀들이 어떤 큰범죄로인해 죽게 되었다고 생각할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범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특별한 고통이 언제나 특별한 죄에 대한 처벌은 아니며, 때때로 특별한 은총에 대한 시험일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판단할때 우리는 우리 구주께서 말씀하신 것처럼(눅 13:2-4) 좀더 호의적인 면을 택해야 한다.
(3) 빌닷은 만일 욥이 그 자신의 말대로 정직했다면 그의 현재의 고통에 대한 좋은 결말을 반드시 볼수 있으리라고 욥에게 말한다.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4절). "그러나 만일 네 자신이 청결하고 정직했고 그 증거로서 지금 네가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순종한다면 머지않아 모든 것은 잘되어 갈것이라"(5-7절). 이것은 다음 두가지의 의미로 해석될수 있다.
1 )욥의 환난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욥이 위선자이고 사악한 자라는 것을 나타내기위한 의도로 받아들일수 있다. 이점에서 빌닷은 옳지않았다. 왜냐하면 선한 사람도 연단을 위해, 매우 극심할뿐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는 고난을 당할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 고난이 생명을 위한 것이라면 영원의 관점에서 비교해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빌닷은 그것을 순간과 관련시켜서 보았던 것이다.
2) 욥을 격려하고 권면하여 그가 그처럼 절망에 빠지지않도록 하려는 의도로 볼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욥에게 만일 올바르게 행하기만 한다면 여전히 희망은 있으며 머지않아 좋은 날들을 볼수 있을 것이라는 밝은 전망을 들려주고 있다. 그렇지만 빌닷은 욥이 그날들을 볼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미심쩍게 여기고 있었다. 욥은 현재 자신에게 남겨져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해서 자신이 이전처럼 형통하게 될수는 없으리라고 단정해서는 안되었다. "비록 너의 시작이 통에는 양식이 조금밖에 없고 항아리에는 기름이 조금 담겨 있을정도로 가난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이 그것을 크게 채워주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은총과 위로로써 그의 백성들의 영혼을 풍요케하는 방법이다. 즉 그것은 한꺼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씩 오는 것이다.

Ⅱ. 빌닷의 첫번째 논술〔2〕 8:8-19
빌닷은 엘리바스처럼(4:7) 과감하게, 의인중에는 그렇게 끊쳐진 자가 아무도 없다고 말하려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빌닷은 하나님께서는 사곡한 자들을 이세상에서 수치와 파멸에 처하게 하시며, 또한 그들의 번영을 단축시키심으로써 그들의 경건이 거짓임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이 원칙이, 파멸당한 사람은 무조건 사곡한 자로 간주되어야함을 입증하는지에 대하여서는 그는 언급하려 하지 않는다.
(1) 빌닷은 '열조의 터득한 일'에 호소함으로써, 사곡한 자의 모든 소망과 기쁨을 반드시 멸망에 이르고야 만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는 자기 자신의 판단이나 친구들의 판단을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뿐이라 지식이 방매하니(9절). 빌닷은 옛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라고 말한다. 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10절). 그들의 시대에는 언제나 사곡한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내렸다는 것이다. 패트릭 주교는 주장하기를, 아브라함이 그두라에게서(창 25:2) 낳은 아들 수아의 후손인 수아 사람 빌닷은, 이처럼 역사를 인용하여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는 태도속에서 신실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보장된 하나님의 축복의 상급에 대하여 특별한 존중심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2) 빌닷은 몇가지 비유법을 사용해서 이 진리를 예증하고 있다.
1) 사곡한 자의 소망과 즐거움이 왕골 혹은 갈대에 비유되고 있다(11-13절). 왕골과 갈대는 진펄과 물에서 자란다. 사곡한 자는 거짓되고 부패한 기초에서가 아니면 그의 소망을 얻을수가 없으며, 바로 이 거짓되고 부패한 기초가 그의 소망을 유지시키고 살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바로 왕골이 진펄이 없이는 자랄수 없는 것과 똑같다. 그는 자기 소망의 기초를 이세상에서의 번영, 그럴듯한 종교적 가식, 이웃들의 좋은 의견, 그리고 자기가 좋다고 여기는 자신의 생각들에 두고있는데, 사실상 이것들은 그가 자기 확신의 근거로 삼을만한 튼튼한 기초가 되지못하는 것들이다. 얼마동안은 그것이 푸르고 화려하게 보일지 모르지만(갈대는 다른 풀잎보다 크게 자란다), 그것은 곧 시들어서 다른 풀보다 일찍이 말라버린다(12절). 즉 '이런 것은 아직 푸르러도' 잠시후면 말라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같고(13절). 그들은 갈대와 똑같은 길을 걷는다. 사곡한 자의 소망은 없어지리니.
2) 사곡한 자들은 '거미줄' 혹은 '거미의 집'(다른 역본에 이렇게도 표시됨)과도 같다(14,15절). 사곡한 자의 소망은 그 자신의 환상의 산물이며, 단지 그 자신의 공로와 충족함에 대한 스스로의 독단에서 생겨난 것이다. 꿀벌의 활동과 거미의 활동사이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 부지런한 그리스도인은 근면한 꿀벌과 같이 천상의 이슬인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모든 평안을 얻는다. 그러나 사곡한 자는 교활한 거미와 같이 하나님에 관한 자신의 거짓된 전제, 곧 하나님도 자기와 같은 존재이리라는 생각으로부터 자기의 위로를 엮어낸다. 마치 거미가 자기의 거미줄을 좋아하듯이 그도 역시 자기가 엮어낸 위로를 즐기며, 그것으로 자신을 두르고 그것을 자기의 안식처라고 부르며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굳게 잡는다. '손에 잡힐만하여도 왕국에 있는 도마뱀'이라는 잠언이 있다(잠 30:28). 이처럼 사곡한 자는 외적인 형통의 충만함과 굳건함속에서 육신적인 세속의 것들에 의해 얽어매임을 당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집을 자기 궁전으로 삼고 그속에서 스스로 자만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집을 소제하실때에 사곡한 자의 집은 마치 거미집이 빗자루에 쓸려나가듯이 사라져 없어지고 말것이다.
3) 여기 사곡한 자는 무성하고 뿌리가 튼튼한 나무에 비교되고 있는데, 이 나무는 비록 스스로 말라죽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손쉽게 잘려지고 그 자리가 더이상 알지못한바 된 것이다. 이 나무는 동산 울타리에 의하여 보호를 받으며, 동산의 토양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서 그 양분을 마음껏 흡수하면서, 그 뿌리가 돌가운데로 들어갔으므로(17절) 폭풍우에도 결코 뽑힐것 같지않는 푸르고 무성한 모습을 자랑했다(16절). 그것은 왕골처럼 진펄과 물속에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견고한 땅에서 자란다. 이와같이 사곡한 자도 그가 이세상에서 번영할때에는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무가 '그곳에서 뽑히어'(18절) 쓰러지고 잊혀져버리는 것을 보라.

Ⅲ. 빌닷의 첫번째 논술〔3〕 8:20-22
빌닷은 여기서 자기가 말해야할 것을 몇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1) 만일 욥이 완전히 정직한 자라면 하나님께서는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다(20절). 비록 지금은 그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돌아오실 것이며, 그의 입이 '웃음으로 채워질' 것이다(21절). 그리고 이때 그를 사랑하는 자들은 그와 더불어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그를 미워하고 그의 넘어짐을 자기의 승리로 삼은 자들은 자기들의 거만함을 부끄러워하게될 것이다.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는 잠시 버림을 당할는지는 모르지만, 영원히 버림을 당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2) 그러나 만일 그가 사곡한 자이며 행악자라면, 하나님은 그를 도우시지 않고 도리어 현재의 재앙가운데에서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실 것이다(22절). 악인의 장막이 조만간에 없어지리라는 자들만이 영원히 안전하다(시 90:1;91:1). 죄는 그 죄를 짓는 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파멸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빌닷은 은밀하게 주장하고 있듯이) 그의 가족이 파산했고, 현재 절망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욥이 확실히 불경하고 사곡한 사람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지도 않고 너그럽지도 않은 일다.

# 핵심
8:1-22
빌닷이 욥의 말을 듣다못해 강력한 어조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도 역시 죄가 모든 고난의 원인이라는 전통적인 신념을 강변하였다.
왕골(8:11)
파피루스를 가리킨다. 파피루스는 물에서 자라는 식물로서, 고대에 종이를 얻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과거에는 습지에서 흔히 볼수 있었지만, 지금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줄기의 높이는 3-6m, 종 모양처럼 생긴 예쁘장한 꽃을 피운다. 상자나 배(출 2:3; 사 18:2), 샌들, 혹은 옷과 밧줄을 만드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뿌리는 가난한 이들의 음식으로 이용되었다. 성경도 파피루스에 적어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하였다.

# 묵상
빌닷의 변론 ( 8:5-7 )
빌닷은 욥의 고통을 물리적인 면에서만 이해했으며, 단순한 원칙론에 입각해서 하나님을 도식적으로 인과응보의 주체로만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욥이 특정한 부분만 회개하면 축복이 회복되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회복의 은총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하나님의 은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욥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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