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산헤립의 침입 36:1-10
백성들이 의무를 다하고 있을때에도 환난과 고통을 당할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해나가고 있을때, 더 잘하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완전한 단계에까지 진력하도록 재촉하시기위해 하나님께서 고통을 더하신다하더라도 우리는 의아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원수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두렵게 하여, 특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떠나도록 위협하여 그들을 정복하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랍사게도 여기에서 히스기야를 요란한 말로 비방하였다. 그는 히스기야가 자기 주인 앗수르 왕에게 도저히 대항할 능력이 없는 자라고 희롱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영혼의 원수들을 대항하여 터를 굳게 지키기위하여 우리의 심령을 지킬 필요가 있다. 원수들이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할때 그들은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행할 위임을 받은 것처럼 행동하기 쉬우며 이것은 또한 흔히있는 일이다. 랍사게도 실제로는 여호와를 '거스려' 올라왔지만, 감히 '내가 이제 올라와서 이땅을 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없음이겠느냐'라고 말할수 있었다(36:10).

Ⅱ. 산헤립의 교만 36:11-22
공사는 모사들과 방백들이 상의할 일이며, 이것을 백성에게 알리는 것은 옳지못하다. 따라서 비열하게 백성들을 부추켜서 자신들의 통치자를 대적하게 하는 일은 부당한 처사이다. 남을 비방하는 거만한 자들은 상대방이 정중하게 이야기하면 더거칠게 나오기 마련이다. 히스기야가 보낸 사신들은 랍사게에게 더이상 정중하게 말할수 없을정도로 정중하게 말하였다. 청컨데...종들에게 말씀하고. 그러나 이말에 그는 더 신이나서 거친 말로 떠들었다. 사단이 사람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떠나게 할때, 자기에게 굴복한다면 상황이 훨씬 호전되리라고 속삭인다. 세상과 정욕은 우리에게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와 언약을 맺자. 우리에게 굴복하고 우리와 동업하자.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 포도를 먹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우리를 기만하는 말이며, 우리를 가장 비참한 포로와 노예로 삼으려고 하면서도 자유를 가장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하여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이방의 잡신들과 비교하는 것보다 더어리석은 행위는 없으며, 더 큰모욕도 없다. 이방 잡신들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위대하신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다. 이방 잡신들은 인간의 상상의 소산물이며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다. 교만한 죄인들은 자신이 다른 피조물들과 비교할수 없는 위대한 존재이므로 창조주에게 필적할만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자기들이 여러나라들을 정복하였고, 이제는 만군의 여호와도 자신들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구해내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질그릇 조각이 땅의 질그릇 조각과는 다툴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토기장이와 다툴수는 없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할때도 있다. 히스기야는 이렇게 명하였었다. 대답지 말라. "너희가 그의 입을 막을수 없으므로, 그일을 하나님께 맡기라." 사자들은 '잠잠하여 한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지만',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이름이 멸시받은 것에 격분하여 자신들의 옷을 찢었다.

# 핵심
36:1-22
앗수르왕 산헤립이 B.C. 701년경 베니게를 점령하고 블레셋을 멸절시킨후 예루살렘을 포위한 사실을 배경으로 한다. 산헤립의 보냄을 받은 랍사게는 유다에게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
고대인의 전쟁과 신(36:18)
고대인들은 전쟁을 치를때 자신이 믿는 신의 보호아래 싸운다고 생각했으며, 승리했을경우 자기 신의 영광이 된다고 여겼다. 앗수르인들도 이와같은 사고방식을 따라 전쟁에서 승리했을경우 그들이 신봉하는 신인 앗술(Asshur)에게 영광을 돌렸다고 생각했다. 이와같이 고대인들은 한나라의 존립 여부가 그나라의 수호신의 능력여하에 좌우된다고 믿었으며, 한나라가 다른 나라에게 군사적으로 패배하는 것은 곧 그나라의 신이 상대국의 신보다 열등하고 약하기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묵상
랍사게 ( 36:2 )
랍사게라는 이름의 뜻은 ‘잔을 드는 장관’으로 앗수르왕 산헤립이 다르단 랍사리스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보내 히스기야에게 항복하도록 요구하게 한 앗수르 대장의 칭호입니다(왕하18장). 다르단 다음가는 고관인 그는 유다와 아람 말을 할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유다말로 히스기야와 백성들을 위협하고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를 모욕하는 말을 해서 항복을 유도하고자 했습니다.
산당과 제단을 없애버린 히스기야의 교훈 ( 36:7 )
종교개혁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과 아세라 목상을 없애고,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분향하던 폐습을 없애버렸습니다(왕하18:4). 이에 대해서 랍사게는 올바로 알지못하고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여러 제단을 없앤 것으로 알고 유대인들이 스스로가 성소를 없애 관계를 단절해버린 여호와를 의지하느냐고 비웃었습니다.
앗수르의 포로정책 ( 36:16, 17 )
앗수르가 취했던 정책은 포로민들을 이주시키고 혈통을 뒤섞어 앗수르에 동화시키려는 정책입니다. 주전 722년경에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동화되어 생겨난 사람들이 바로 사마리아인들이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앗수르의 이러한 혼혈정책, 포로민 이주정책을 두려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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