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바벨론에서의 구원을 약속하심 52:1-6
(1)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들의 구원을 인하여 기운을 낼것을 말하고 있다(1,2절). "너희는 절망의 잠에서 깨어나라. 기운을 차리고 자신과 서로를 격려하라. 너희는 불신의 잠에서 깨어서 너희위를 쳐다보고 너희주위를 둘러보라. 그리고 그약속들을 들여다보고 너희를 위해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대한 일들에 대하여 기대를 가지라. 너희는 무지의 잠을 깨라."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확신을 주신다.
1) 그들은 포로생활을 통하여 개혁될 것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1절). 그들의 우상숭배하는 관습이 더이상 도입되지 않거나 아니면 적어도 정착하지 못하게 될것이다. 이와같이 복음의 예루살렘은 그리스도의 피와 하나님의 은혜로 깨끗하게 되었으며 참으로 거룩한 도성이 되었다.
2) 그들이 포로상태에서 구원을 받고, 다시는 침략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 대항하여 옴이 없을 것이니라"(본문이 이렇게 해석되기도 함).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진다면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막아서 접근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스스로를 더럽힌다면 안티오커스가 그들의 성전을 더럽히고 로마인들이 성전을 파괴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한동안 평화를 지속할 것이다. "너희는 기뻐할 준비를 하라."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는 곡하는 상복을 입고 나타나지 말라. 얼굴표정을 새롭게 하고, 웃는 얼굴을 하라. 이제부터는 기쁘고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하리라. 너희는 해방될 준비를 하라. 즉 너희의 거만한 압제자들이 너희를 티끌속에서 짓밟거나(51:23), 아니면 너희가 스스로 슬픔에 못이겨 티끌속에 딩굴었지만, 이제 너희는 티끌을 떨어버릴지니라."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2절). "오 예루살렘아! 모든 노예표식을 없애버려라."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즉 "네 자신의 자유를 선언하라." 복음은 공포에 묶인 자들에게 자유를 선언하고 자기들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그들의 임무라고 규정한다. 과거에는 약하고 죄의 무거운 짐에 눌려있었지만 이제 그리스도안에서 해방을 찾은 자들은 그속박에서 벗어날수 있다. 왜냐하면 '아들이 저희를 자유케하면 저희가 참으로 자유하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일어서신다.
1) 그들을 압제하던 갈대아 사람들도 산헤립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10:6,7).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즉 "나와 너희들이 그일로 인하여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도다"(3절). 바벨론 사람들은 그들로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비난하고 욕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를 그토록 오랫동안 거저 가지고 있었으나 결국 너희를 거저 반환할 것이라. 약속된대로(45:13) 너희가 돈없이 속량되리라."
2) 그들은 전에도 유사한 재난속에 빠진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또다시 이 압제자들의 손에 들어가게 된것은 애석한 일이었다(4절). 내 백성이 이왕에 애굽에 내려가서. 즉 이스라엘 백성은 서로의 우호관계로 그곳에 정착하고자 내려갔으나 애굽 사람들은 그들을 종으로 삼고 혹독하게 통치하였다. 그들은 그때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리라고 생각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앗수르 사람들은 공연히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였으며 열지파를 포로로 잡아갔다. 그후에 곧 다른 앗수르왕 산헤립이 스스로 유다의 모든 성곽과 도성의 주인이 되었다. 바벨론 사람들은 자기들의 왕이 앗수르의 한분파였기에 어떤면으로는 앗수르 사람들이라고 불릴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들이 이유없이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한 것이다.
3) 하나님의 백성이 침해를 받았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손상되었다(5절). 내 백성이 까닭없이 잡혀갔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할꼬. 포로된 자들은 너무 기가 죽어서 하나님을 찬양할수 없었다. 옛애굽 사람들이 그들로 한숨짓게 만들었던 것처럼(출 2:23). '그들을 관할하는 자들이 떠들었다'("그들로 부르짖게 만들었으며" :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문맥에 맞다-역주).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애굽에서 행하셨던 것처럼(출 3:7,8) 그들을 구하러 내려오셨다. 열방들은 하나님의 백성보다 자기들이 더강하다는 이유로, 하나님보다 자기들이 더강하다고 하나님을 모독하면서 자기들을 내세웠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건질 능력이 없는양 기고만장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 백성의 압제자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찬양하지도 않고 또 내 백성으로 찬양하게 하지도 않기때문에 내가 그들을 구하러 내려갈 것이라."
4)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건지심으로 자기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신다(6절). "내 이름이 이와같이 욕을 당하였으므로 내가 일어서리라." 그러므로 내 백성은 내 이름을 알리라. 즉 "내 이름이 여호와임을 알리라."

Ⅱ. 해방으로인한 기쁨 52:7-12
유대 백성을 바벨론으로부터 건지심과 7절 내용의 복음전파에 대한 적용(바울사도에 의한, 롬 10:15)은 그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로인한 인류의 구속에 관한 하나의 모형과 예표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암시해 준다.
(1) 여기서 그것을 기쁨으로 환영받아야할 하나님의 큰축복으로 말해지고 있다.
1) 그들에게 해방의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이 예루살렘 주위에 둘러선 산들을 넘어올때 그들은 성대한 환영을 받을 것이다(7절). 그들은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소수에게 형제들이 곧 그들에게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말해주기위해 예루살렘으로 직접 갔거나 아니면 사자들을 보낸 유대인들중 어떤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시온에게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고 말한 것은 하나의 증거로서 선포되어진 것이었다. 우리는 이말을 복음전파에 적용시켜야 한다. 이것은 평화와 구원의 선포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진실로 기쁜 소식이며, 우리의 영적 원수들에 대한 승리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영적 속박에서부터 해방됨을 선포해주는 좋은 소식인 것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맨처음 이소식을 가져오셨으며(눅 4:18;히 2:3), 본문도 그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갈보리 산위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그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2) 시온의 파숫꾼들이 기뻐할 것이다(8절). 파숫꾼들은(62:6) 하나님께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세상에서 찬송이 되게 하실 그때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며 하나님께 계속해서 기도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성곽위에 세우신 사람들이다. 그들은 망대위에 서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을 기다렸다(합 2:1). 따라서 좋은 소식이 왔을때 그들이 맨먼저 그것을 받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 그들의 찬양에 동참하도록 하기위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할 것이다.' 그들은 예언과 사실, 약속과 성취사이의 정확한 일치를 보게될 것이다. 즉 그들이 눈과 눈을 마주대하고 보듯이 하나님의 약속들이 하나하나 성취되는 것을 볼것이다. 그리고 한분 하나님께서 약속을 말씀하시고 그약속에 대한 성취를 이루신 사실에 대하여 만족하게 여길 것이다. 앞절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또한 복음시대에 적용하면, 이것은 복음사역자들 위에 성령을 부어주심에 관한 약속이라고 할수 있다. 이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서 그들을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신다. 따라서 그들은 의견이 완전히 일치될 것이며 보편적인 구원에 관한 위대한 일에 대해 하나가 될것이다. 그때에 시온의 황폐한 곳은 기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놀라온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9절).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예루살렘의 구속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기쁨이다(눅 2:38). 하나님은 이것에 대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10절).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즉 그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과시하셨다.
(2) 자유가 선포될때, 하나님의 백성은 가능한한 빨리 서둘러서 바벨론에서 나와야했다.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11절). 즉 "떠나라, 바벨론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한 곳이 아니라"(스 1:5). 그리고 이것은 아직까지 죄와 사단의 속박가운데 있는 모든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들에게 선포해 놓으신 그자유를 활용하라고 하시는 부르심이기도 하다. "너희는 주의해서 바벨론의 오염은 어떤 것이라도 너희에게서 떨어버리라."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너희는 너희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지하라"(12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그들은 적당하게 서둘러야 하였으며, 마치 추격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소심하고 믿음이 없이 서둘러서는 안되었다. 고레스는 그들을 명예롭게 석방시킬 것이며, 그들은 명예롭게 귀환하고 숨어서 빠져나오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앞에 행하시며. 즉 하나님께서 그들 선두를 인도하시고 후미를 보호하실 것이다.

Ⅲ.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서술 52:13-15
본문에서 시작되어서 다음장 끝까지 이어지는 이 예언은 이 이상 분명할수 없을만큼 명백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유대인들 중에는 이것을 예레미야에 관한 예언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약간 있었지만, 고대 유대인들은 이것을 메시야에 관한 예언으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전도자 빌립은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이내용은 다른 사람아닌 바로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한 것이라는 사실을 논쟁의 여지가 없게 만들어 놓았다(행 8:34,35).
(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 그리스도를 임명하셨음을 인정하신다. 그는 그일에 임명되었다. "그는 '내 종'이라 내가 그를 고용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붙들리라." 그리스도는 그의 일에 있어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고 아버지의 나라의 유익을 위해 봉사하였다. 내 종이 형통하리니(혹은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리니). 이는 '지혜와 총명의 신이 그위에 강림할' 것이기 때문이다(11:2).
(2) 하나님께서는 그의 비하와 존귀에 관하여 간단하게 보여주신다. 그의 근심때문에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다.' 그가 채찍질당하고 뺨을 맞으며 가시관을 썼을때, '그수치와 침뱉음을 피하려고 얼굴을 돌리지 않았을때,'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다.' 그는 '간고의 사람'이었다. 그의 간고는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낮추었기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높이시고 높이셨던가! 이것을 표현하는데 세가지 단어가 사용되었다(13절). 받들어 높이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즉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며, 사람들이 그를 찬양할 것이고, 또한 그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가장 높은 자보다 더높이, 하늘보다 더높이 되실 것이다. 열방이 그를 인하여 더 낮게될 것이다. 이는 '그가 그들에게 피를 뿌렸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안에서 한샘이 열렸기때문에(슥 13:1), 뿌려진 피가 그들의 양심을 깨우쳐 그들을 정결케할 것이다. 그는 이일을 세례를 통하여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도들을 보내셔서 모든 민족들에게 세례를 주고 물을 뿌림으로써 제자를 삼게 하셨을때 이약속이 성취되었다.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15절). 즉 그들은 이전에 하던 식으로 그리스도를 반대하여 그들의 입을 열지못할 것이다. 그들은 겸손과 존경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말씀과 율법을 받게될 것이다.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것이요. 복음은 열왕과 열방들의 경의를 불러일으킬 일들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발산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또한 깨닫게될 것인데, 이것은 이전에는 그들에게 전파되지도 또 그들이 듣지도 못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육적인 유대인들처럼 자신들의 환상에 따라 메시야를 찾는 자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셨으며, 약속된대로 메시야를 찾는 자들에게 그 기대이상으로 충족시켜 주셨다.

# 핵심
52:1-15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거두어질때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회복되어 영화롭게 되는,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대목이다.
값없이 팔린 이스라엘(52:3)
하나님이 선민의 불의를 징계하실 도구로 사용하기위해 바벨론에게 권세를 허락하셨지만, 바벨론은 스스로의 정복욕에 사로잡혀 그들을 지나치게 압박하였다. 유다를 정복한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정복한 앗수르와 마찬가지로 잠시 권세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망각하고, 그권세를 남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폭력은 필요이상의 가혹한 횡포이며, 약소민족을 괴롭히는 제국의 교만이며, 궁극적으로는 선민을 멸절시켜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무산시키려는 사단의 궤계가 그배후에서 작용한 것이다(14:12-14).

# 묵상
목의 줄을 스스로 풀 시온 ( 52:2 )
이말은 시온 예루살렘 특히 포로들을 염두에 둔 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자유케 될것임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여호와의 구원이 가까우니 힘을 얻으라고 격려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속량된 방법 ( 52:3 )
이스라엘은 값없이 팔린 것처럼, 돈없이 속량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인해서 우리는 값없이 거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돈없이, 값없이 얻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값싼’ 것이 아니므로, 은혜받은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생활의 열매가 요구됩니다.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는 말씀의 의미 ( 52:8 )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신다’고 하는 것은 포로의 귀환과 예루살렘의 재건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눈이 마주본다’는 것은 그토록 오랫동안 기대하고 고대하던, 그러나 현실로는 이루어질것 같지않던 일들이 이제는 눈으로 볼수 있는 현실이 된다고 하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나라의 도래 곧 이스라엘의 해방이 눈으로 볼수 있는 현실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10절).
종의 형통함 ( 52:13 )
KJV에 의하면 ‘형통’이란 ‘신중하게 처신하다’, ‘번영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는 ‘뜻을 이루다’ 곧 ‘구원사명을 완수하다’라는 뜻입니다. 형통함의 결과로 종은 높이 들리고 존귀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사람과 같이 되었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존귀하게 하셨습니다(빌2:5-11). 낮추는 자를 높여주시는 하나님의 법칙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종의 모습 ( 52:14, 15 )
그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놀랄 지경이었습니다. 종의 이러한 모습은 열방중에서도 지극히 작고 보잘것없는 이스라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때문에 그종의 모습이 비웃음을 받을정도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그종의 사역으로인해서 열방이 놀래고 입을 다문다고 하는 것은 그가 존귀해질 것임을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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