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구덩이에 갇히 예레미야 38:1-13
(1) 예레미야는 자신의 분명한 가르침을 계속 고집한다(3절).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우리니. 비록 기간이 오래 걸린다해도 마침내는 함락될 것이다. 그는 이 성이 구원받지는 못하더라도 백성들만이라도 구하기위하여 그들에게 확실한 길을 제시하는 이 환영받지 못하는 메시지를 계속하여 반복하였다(2절). "갈대아 인에게 가서 사태가 극단에 이르기전에 그들의 자비에 스스로를 맡기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들에게 항복하는 자는 기근과 염병을 피할수 있겠지만 반면에 성안에 있는 많은 무리들은 기근과 염병으로 죽으리라."
(2) 방백들은 계속하여 예레미야에게 적의로 대한다. 그는 조국에 충성하였고 선지자로서의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였다. 비록 지금 왕의 떡으로 생명을 잇고 있다고 하지만 입을 다물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를 핍박하는 자들은 그가 시위대의 뜰을 거닐면서 자유를 지나치게 누리고 있다고 불평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설교하기위해 성전에 갈수는 없다고하나 자기를 방문하러 오는 자들에게 개인적은 대화를 통하여 같은 이야기를 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를 위험한 인물이라고 왕에게 고하며 그가 현치세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있다고 말한다(4절). 이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치아니하고 해를 구하오니. 그보다도 더 예루살렘의 유익을 구했던 자는 없었다. 그들은 그의 설교를 '손을 약하게 하는' 것으로, 즉 그들을 나약하게 만드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약한 자들이 하나님의 충실한 사역자들을 저희 대적으로 간주하는 일은 흔히있는 일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완악하게 행하면 스스로에게 원수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3) 이로인해 예레미야는 왕의 허가아래 구덩이에 갇힌다. 이는 거기에서 그를 죽게하려는 것이었다. 시드기야는 비록 예레미야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임을 확신하였지만, 그것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다. 보라 그가 너희 손에 있느니라. 설령 선한 사람들에게 비밀리에 호의를 베풀지언정 필요한때에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문책당할 일을 많이 지니고있는 것이다. 왕으로부터 이에 대해 보장을 받게되자 방백들은 즉시 가련한 '예레미야를 취하여 시위대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넣었다'(6절). 그것은 깊은 구덩이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를 '줄로 달아 내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구덩이는 더러웠다. '그구덩이에는 물이 없고 진흙뿐이었던' 까닭이다. 그는 목까지 '진흙중에 빠졌다'고 요세푸스는 말하고 있다. 여기에 그를 넣은 자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를 굶주림이나 추위로 죽게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이다. 그를 공개적으로 죽이면 백성들이 자기들을 향하여 분을낼까 두려워하였으므로 그렇게 비밀리에 죽이고자 하였다. 하나님의 수많은 증인들이 이와같은 방식으로 비밀리에 감옥에서 굶주려 죽어갔다. 그리고 시체가 발견되는 날에야 사인이 밝혀지곤 하였다. 예레미야는 이 곤경중에 자신이 무엇을 하였는지 스스로 우리에게 말해준다(애 3:55,57).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주께서 내게 가까이하여 가라사대 두려워말라 하셨나이다.'
(4) 환관 에벳멜렉이 이렇게 불쌍히 고통받는 자를 위하여 왕에게 청원하고 있다. 에벳멜렉은 구스인으로 이스라엘 나라보다도 더 인정과 경외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도 유대인들가운데에서보다도 이방인들중에서 더깊은 믿음을 발견하셨었다. 에벳멜렉은 악한 궁정에서 살고 있었고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공평과 경건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처처에 자기의 '남은 자'들을 두신다. 가이사의 집안에까지 성도들이 있었다. 왕은 탄원과 호소를 듣기위하여 '베냐민 문에 앉아' 있었다. 에벳멜렉은 즉시 그리로 갔다. 사태가 지연을 용납하지 않을정도로 시급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레미야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을 담대하게 증언하였으며 왕에게 그렇게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주저하고 머뭇거리지 않았으며 왕에게 충실하게 고함으로써 왕이 뜻대로 결단내리도록 도왔다. 저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은 악하니이다. 하나님께서는 곤경중에 있는 그의 백성을 위하여 전혀 예기치 못하던 곳에서 조력자들을 일으키신다.
(5) 예레미야를 석방하라는 명령이 즉시 주어졌다. 그리고 에벳멜렉은 그명령이 집행되는지 주의깊게 살펴본다. 왕은 갑자기 놀라웁게도 그의 마음을 바꾸었다. 그리고 방백들에게 맞서 예레미야를 석방하고자 한다. 그는 방백들이 그일을 저지하고자 무리를 선동하지 못하게끔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구해내는데 30명이나 되는 사람을 동원한다(10절). 에벳멜렉은 목적을 이루었으며 즉시 예레미야에게 그좋은 소식을 전하였다. 그가 예레미야를 얼마나 따뜻하게 배려하였는지 특별히 주목할만하다. 그는 예레미야의 팔목에 낡아서 부드러워진 헝겊을 대게 하였는데 이는 그를 끌어올리다가 밧줄로 상하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를 달아내렸을때 밧줄이 팔목을 상하게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헝겊이 진흙속에 빠지지않도록 하기위하여, 그에게 던지지않고 조심스럽게 내려주었다(11,12절). 예레미야는 구덩이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다시 전에 있었던 '시위대 뜰에 머물고' 있다(13절).
Ⅱ. 시드기야와 예레미야의 담화 38:14-28
왕은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예레미야를 그의 대적들의 손에 넘겨주려고 하였으나(5절) 이제는 그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1)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 대하여 존경하는 마음을 품었다. 예레미야가 다시금 구덩이에서 구출되었을때 그는 하나님의 조언을 구하고자 은밀하게 사람을 보낸다. 왕은 그를 '여호와의 집 제 삼문(어떤 역본에는 '주입구'로 되어있다)에서' 만났다. 이문이 여호와의 집안에 있었는지 들어가기전의 입구에 있었는지 확실치 않다(4절). 아마도 왕은 자신이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원하고 있으므로, '여호와의 집'에 대한 경외심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던 듯하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에게 '한일'을 물었다. 이것은 오히려 '한말씀'으로 해석해야할 것이다. "나는 예언의 한말씀, 지혜와 위로의 말씀, 곧 여호와께로서 받은 한말씀을 묻고 싶노라(37:17). 그대가 받은 말씀은 무엇이든지 일호도 내게 숨기지 말라. 최악의 것이라고해도 내게 말하라." 그는 보다 기뻐할만한 답변을 듣고 싶어한다. 마치 마음이 한결같으신 하나님을 변덕스러운 마음의 하나님으로 생각한 듯하였다.
(2) 예레미야는 왕에게 권고를 하기전에 먼저 그에게 다짐을 받고있다(15절). 내가 이일을...아시게 하여도 왕이 단정코 나를 죽이지 아니하시리이까. "나는 왕이 그러실까 두려우니이다. 당신이 방백들이 하자는대로 할때에 내가 무엇을 기대할수 있겠나이까?" 예레미야는 자기가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피로 물들일까봐 주저한 것이 아니다. 단지 임무를 행함에 있어서 우리는 자신을 보존할 모든 합법적인 수단들을 사용해야만 한다는점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도들도 역시 그러했었다. 예레미야는 왕에게 유익한 권고를 주고자 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토굴속에 가두도록 내어주어 고통스럽게 하였던 그의 무자비에 대하여 비난하지 않았다. "왕이 들으시겠나이까"라고 그는 묻고있다. "확실히 왕께서는 들어야 하나이다. 나는 당신께서 결국 이권고를 따르시는 것을 보게되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나이다. 그리고 이날에 당신의 평강을 위한 일들을 당신께서 알게된 것을 기뻐하시기 원하나이다." 반면에 어떤이들은 이구절을 절망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가령 내가 왕을 권한다할지라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리이다. "당신께서 듣지 않으시리라고 우려할만한 까닭이 있기에 내 생각은 혼자 간직하고 있겠나이다." 시드기야는 그에게 아무런 답변도 하지않았으며 또 그의 권고를 듣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으려했다. 오직 그는 선지자의 안전에 대해서만 왕의 말로써 그에게 약속한다.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아니하겠고 네 생명을 찾는 그사람들의 손에 붙이지도 아니하리라(16절). 이일에 대한 시드기야의 맹세는 엄숙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이영혼을 지으신' 분, 곧 나에게 내 생명을 주셨고 너에게 너의 생명을 주신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내가 설혹 내 생명이 생명의 주이신 그에게 몰수되어질 것을 안다고하여도 너의 생명을 부당하게 취하지 아니하리라."
(3) 예레미야는 왜 왕이 그조언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면서 권고한다. 그권고는 예레미야 자신의 지혜나 정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어진다. 정치가로서가 아니라 선지자로서, 예레미야는 반드시 왕과 그성이 '바벨론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들에게 나가서 할수 있는한 최상의 계약을 체결하도록 조언한다(17절). 이것은 그가 백성들에게 권한 것과 같은 조언이었다(2절;21:9). 즉, 하나님의 심판에 순복하라는 것이었다. 왕이 이권고를 취하도록 설득하기위하여 예레미야는 그앞에 선과 악, 생명과 죽음을 제시한다. 만일 항복한다면 그는 자기 자녀들을 칼날로부터, 예루살렘을 화염으로부터 구해내는 것이 된다. 만일 왕이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기만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하게될 것이다. 이 성이 불사름을 입지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그렇지만 그가 완고하게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그의 집과 예루살렘은 모두 황폐해질 것이다(18절).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죄인들의 처지이다. 만일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와 다스림아래 복종하면 그들은 살것이다.
(4) 시드기야는 선지자의 권고를 거부한다(19절). 만일 그가 하나님의 권세와 지혜, 선하심에 대하여 합당한 경외심을 가졌더라면 그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깨닫는 즉시로 묵묵히 따랐을 터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권고보다도 자기 자신의 어떤 신중한 생각을 우선으로 여긴다. 그가 제시하는 것이란 이것이 전부이었다. 나는...두려워 하노라. "갈대아인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니라. 그들의 방백은 명예로운 사람들이기때문에 두렵지않으나 이미 갈대아인들에게 항복한 유대인들이 두려우니라. 자기들이 항복하는 것을 그렇게도 반대하였던 내가 저희를 뒤따른 것을 볼때 그들은 나를 비웃을 것이다. 그리고 '너도 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고 말한 것이라." 설혹 항복하는 것이 그가 상상하는 최대의 실수가 된다고할지라도 그는 하나님께 대한 복종으로, 그리고 자기 가족과 성의 보존을 위하여 결연히 그일을 감행해야 했다.
(5) 예레미야는 왕에게 권고한 것에 이어서 끈덕지게 그에게 조른다. 그는 왕에게 만일 왕이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면 그가 두려워하는 일이 임하지 않으리라고 보증한다(20절). 그무리가 왕을 그들에게 붙이지 아니하리이다. "그들은 당신을 신분에 알맞게 대우할 것이니이다." 원하옵나니...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소서. "나의 이말이 곧 그의 음성이므로 청종하면 왕이 복을 받으리이다." 예레미야는 만일 왕이 복종치 아니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것인지 그에게 말한다. 그것은 왕자신이 '갈대아인의 손에 붙여지리라는' 것이었다. 그가 설령 도망하기를 바랄지라도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23절). 왕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될 것이었다. 네가 이 성으로 불사름을 입게하라 하셨나이다. "왜냐하면 조금만 양보하고 자신을 부정하면 저지할수 있을터인데 당신이 그리하지 않은 때문이니라." 그는 분명코 계속 고집을 부렸던 것에 대하여 마땅한 비난을 받게될 것이며, 그것도 여자들에게서 받게될 터이었다(22절). 이와같이 시드기야는 여자들에게 조롱을 당하게될 것이며, 그때에 그의 모든 아내들과 자녀들은 정복자들의 제물이 될것이었다(23절).
(6) 시드기야는 이회합을 비밀에 붙이고자 한다(24절). 너는 이말을 사람으로 알게하지 말라. 그는 예레미야의 권고에 반대할만한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건만 그것을 따르려하지 않았다. 시드기야는 그일을 비밀로 하는 것에만 관심을 쏟았다. 이는 예레미야의 안전을 위함이 아니요, 자신의 신망을 생각해서이다. 예레미야는 방백들이 자기에게 물을때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에 대해서 지시받는다. 그는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자기를 돌려보내지 말도록 왕에게 간청하였다고 말하여야 했다(25,26절). 그리고 그는 방백들에게 그렇게 말하였으며(27절), 그것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 핵심
38:1-28
예레미야가 적의 손에서 극적으로 구출된 사건과 시드기야왕이 예레미야의 마지막 권고를 무시한 사실을 드러낸다. 이사건들은 애굽 원군을 패퇴시킨 바벨론 군대가 다시 예루살렘을 포위공격했던 B.C. 588년에 일어난것 같다.
# 묵상
예레미야에 대한 처형요구 ( 38:1 )
스바댜, 그다랴, 유갈, 바스훌 등이 예레미야의 처형을 요구하였습니다. 바스훌의 아들 그다랴는 전에도 예레미야를 착고에 채운 자입니다(20:1-6). 이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애굽을 의지하여 시드기야로하여금 바벨론에 반역하도록 선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레미야에 대한 고소 ( 38:4 )
예레미야에 대한 고소내용은, 예레미야가 백성의 평안을 구치아니하고 해를 구하며 그가 이같이 말하여 성의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악한 방백들 ( 38:6 )
방백들은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져넣었습니다. 이웅덩이는 우기에 빗물을 받아두었다가 비가 오지않는 5월에서 10월사이에 사용하기위한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물이 없어 진흙으로 가득찬 곳에 생수의 근원이시며 진정한 샘이신 여호와를 아는 예레미야가 빠져있었습 니다. 이는 종교적 미로에 빠져있는 이스라엘을 보여줍니다.
구원받는 예레미야 ( 38:7-13 )
왕궁환관 구스인 에벳멜렉이 위기에 처한 예레미야를 구하게 됩니다. 에벳멜렉이라는 이름은 문자적으로 ‘왕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었으며, 그가 예레미야를 구했기때문에 하나님도 그를 환난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39:15-18).
시드기야의 불신 ( 38:14-23 )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비밀리에 불러서 앞으로 되어질 일들에 대하여 물어봅니다. 예레미야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많은 백성이 죽게 되고 성은 멸망하게될 것이라고 말하고, 항복하면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사람들이 두려워 항복할수 없다고 말합니다. 시드기야는 눈앞에 보이는 두려움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보지못한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두려움보다는 보이지않는 더 큰두려움임을 생각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에게 부탁하는 시드기야 ( 38:24-26 )
시드기야는 방백들의 비난이 두려워 예레미야와 대화한 내용을 방백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시드기야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지도자로서 잘못된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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