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자의 두려운 위엄만 부각하는 반쪽 신앙
[욥기 37장 14절~24절]
14절 -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
15절 - 하나님이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로 번쩍거리게 하시는 것을 그대가 아느냐
16절 - 그대는 겹겹이 쌓인 구름과 완전한 지식의 경이로움을 아느냐
17절 - 땅이 고요할 때에 남풍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의복이 따뜻한 까닭을 그대가 아느냐
18절 - 그대는 그를 도와 구름장들을 두들겨 넓게 만들어 녹여 부어 만든 거울 같이 단단하게 할 수 있겠느냐
19절 - 우리가 그에게 할 말을 그대는 우리에게 가르치라 우리는 아둔하여 아뢰지 못하겠노라
20절 -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찌 그에게 고할 수 있으랴 삼켜지기를 바랄 자가 어디 있으랴
21절 - 그런즉 바람이 불어 하늘이 말끔하게 되었을 때 그 밝은 빛을 아무도 볼 수 없느니라
22절 - 북쪽에서는 황금 같은 빛이 나오고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
23절 -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24절 -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 명령으로 움직이는 번개와 구름의 경이로움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전능자를 찾을 수 없고, 하나님의 권능은 크시며, 그분은 공의를 굽히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깨달으라 (14~20절)
인간은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극히 일부만 알 뿐입니다. 그러나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고 요청합니다(14절). 그는 '아느냐'와 '할 수 있느냐'라는 수사학적 질문을 던집니다(15~18절). 이는 욥이 답변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엘리후의 진술은 하나님의 발언(38~41장), 곧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무능을 극명하게 강조하는 내용과 유사하기에 이를 예비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엘리후는 무능하고 무지한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 어떤 말로도 대항할 수 없으며, 섣불리 말하다가 삼킴을 당한다고 경고합니다. 엘리후는 사람이 쉽게 가까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엄위하신 속성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긍휼의 하나님은 무지하고 무능한 인간을 찾아오시고, 만나 주십니다.
* 하나님의 '엄위하심'만을 강조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내게 하나님은 언제든 가까이할 수 있는 분인가요, 섣불리 가까이하기 어려운 분인가요?
2. 하나님을 경외하라 (21~24절)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 앞에 인간은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도 밝은 빛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21절), 북쪽의 빛과 두려운 위엄은 빛의 현현과 함께 드러나는 하나님의 위엄을(22절) 말해 줍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위엄 앞에서 사람이 취할 태도는 '하나님 경외'라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이 하나님께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 '경외'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욥에게 말씀해 주십니다(38:1). 엘리후의 발언은 "하나님의 권능이 크고 정의로우신데,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합니다. 욥과 같이 고난당하는 이에게 진정한 답변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 발언을 마무리하면서 엘리후가 '하나님 경외'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랑으로 경외하는 것과 두려움으로 경외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오늘의 기도
저 높고 넓은 하늘에 구름을 겹겹이 쌓으시는 창조주의 손길이 얼마나 오묘한지요! 구름이 물러나 햇빛이 찬란히 드러나게 하시듯, 주님이 제 삶의 먹구름도 걷어 주실 줄 믿습니다. 어느 순간에도 살아 계신 주님의 존재를 느끼며, 완전한 지식으로 일하시는 주님을 경외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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