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유다왕 아사랴의 즉위 15:1-7
(1) 아사랴는 어려서 왕위에 올랐고 오랫동안 다스렸다(2절). 그리고 열심과 용기를 내어 산당을 없애지 못한일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옳은일을 행하였다(3,4절).
(2) 5절의 특별한 기록(하나님께서 문둥병으로 그를 치심)은 역대하 26:16절이하에 그이유와 함께 훨씬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거기에는 아사랴통치 전반기의 영화로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물론 후기의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나와있다.
첫째로 그는 문둥병 환자였다.
두번째로 하나님께서 그가 제사장직무에 대하여 뻔뻔스러운 월권행위를 했던 죄를 벌하시려고 문둥병으로 그를 치셨다.
세번째로 그는 '죽는날까지' 문둥이가 되었다. 우리는 그가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았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다른사람에 대한 경고로, 끝까지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수밖에 없다.
네번째로 그는 별궁에 거하였다. 문둥병은 율법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규정되었기 때문에, 왕이라도 굴복하고 율법을 준수해야만 했었다.
다섯번째로 궁중일과 국사를 그의 아들이 대신 통치하였다. 그리고 아사랴에게 이처럼 자리를 대신할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자신에게는 위안이 되었고, 나라에는 복이 되었다.

Ⅱ. 이스라엘의 다섯왕들 15:8-31
이스라엘왕국의 전성기는 예후가 정권을 잡고있을 동안이었다. 예후와 그의 세명의 후계자들이 치세할동안, 이스라엘에는 타락이 계속되고 비참한 재난이 많이 있었지만, 왕위는 순조롭게 계승되고, 왕은 천수를 다하고 죽었으며, 국사도 어느정도 수행되었다. 그러나 이시대는 끝나고, 우리가 본문에서 보는 약 33년간의 역사는 상상할수 있는 최대의 혼란에 빠진 이스라엘의 실정을 묘사하고 있다.
(1) 여러차례에 걸친 불행한 혁명으로 인하여 정말로 악한세대라고 불리울만한 시기였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과 자비 두가지로 시험하셨으며, 하나님의 종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설득을 하시고 강권하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회개하지 아니하고 고치지도 않았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들에게 합당한 재난을 주셨다.
2) 하나님은 예후에게 그의 자손들이 4대까지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으리라는 기쁜약속을 하셨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상 어느왕가에도 보여주지 않은 전무후무한 큰은총이었다. 하나님은 바알숭배와 아합의 집을 멸한 예후의 충성을 이와같이 보상하였다. 그러나 예후의 집에 악이 가득찼을때, 하나님은 그집을 '이스르엘의 피'라고 불리우는 피흘림으로 보수하셨다(호 1:4).
3) 이 다섯왕은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 모두 같지는 않았으나 우상을 보존하는 일에는 한결같았으며, 백성들도 그렇게 하는것을 좋아하였다.
4) 이들은 한명만 제외하곤 전부 선왕에 대하여 음모를 꾸미고 살해하였다. 살룸, 므나헴, 베가, 호세아, 이들은 모두 반역자와 살인자로서 왕이 되었다. 악한자는 다른 악한자에게 채찍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모두 스스로 멸망한다.
5) 국가요인들의 야심은 그국가를 불행하게 만든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한성읍 디르사가 나타난다. 이도시는 그주변에 있는 모든마음들과 함께, 이 반역자들중 한사람에게 잔인하게 파괴당하였다(6절).
6) 이스라엘이 국내의 문제로 이와같이 분열되어 있을때 앗수르의 두왕이 차례로 올라와서는(19,29절) 마음대로 약탈하였다.
7) 이것은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하여 포로로 잡혀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이일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통치자 호세아 9년에 일어났다. 만일 그들이 이혼란과 방황의 시대에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았더라면, 이최후의 멸망은 방지될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 이들의 치세를 간단히 살펴보자.
1) 여로보암의 아들 사가랴는 유다왕 아사랴, 혹은 웃시야 38년에 통치하기 시작하였다(8절). 명망있는 역사학자 가운데 몇사람은, 이스라엘 국내의 혼란과 불화로인하여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 사가랴사이에 22년 혹은 11년동안 왕위가 공석이었다고 주장한다. 사가랴는 왕위를 제대로 굳히기전에 폐위되었다. 그가 불과 6개월동안 다스렸을때, 살룸이 백성들의 동의를 얻어서 그를 '백성앞에서 쳐' 죽였다. 이것은 사가랴가 백성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하여 예후의 가계는 끝났다.
2) 그후 선왕을 살해한 살룸은 평화롭게 다스렸는가? 아니다. 그렇게하지 못하였다(13절). 그는 한달정도 통치하고 살해되고 말았다. 므나헴은 살룸의 모반에 분격하였든지, 아니면 그의 전례를 보고 용기를 얻었든지 몰라도, 살룸이 전왕에게 행한대로, 살룸에게 행하였다. 즉 살룸을 거기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14절).
3) 므나헴은 십년간 그나라를 다스렸다(17절). 그는 자기백성중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굴복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잔인하여, 그들의 성을 칠뿐만 아니라 '그가운데 아이밴 부녀를' 가를 정도였다(16절). 그는 이렇게 잔인한 수단으로 백성들을 위협하여 자기편으로 만들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앗수르의 왕이 그를 치러왔을때, 그는 첫째, 백성들을 거의 신뢰하지 못했기때문에 감히 앗수르왕을 대적할수 없었다. 따라서 막대한 대가를 치루고 평화를 살수밖에 없었다. 둘째, 그는 '나라를 자기손에 굳게 세우기위하여' 도움이 필요하였기때문에, 자기를 따르지 않는 백성들을 탄압하는 일에 앗수르왕이 돕는다는 것을 조약에 포함시켰다. 이렇게하여 그는 이번에는 앗수르왕의 손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앗수르군대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많은 전리품을 얻었기때문에 용기를 얻어, 머지않아 다시와서는 모든것을 약탈해 버린다.
4) 므나헴의 아들, 브가야는 아버지의 대를 이었으나, 두달을 다스린후 베가의 반역으로 살해되었다.
5) 베가는 반란으로 정권을 잡아 20년간이나 왕위에 있었다(27절). 그의 폭력행위는 오랫동안 그의 머리로 되돌아오지 않았지만, 결국 오고야 만다. 르말랴의 아들인 베가는 이 왕들중 누구보다도 국외에 이름을 떨쳤다. 그는 유다왕국에게는 큰두려움의 대상이었다(사 7:1절이하). 그러나 그는 앗수르왕에게 왕국의 상당한 부분을 빼앗겼다. 하나님은 이것으로 그가 예루살렘과 유다를 공격했던 것을 벌하신 것이다. 그는 이일후에 곧 분노한 방백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베가가 유대를 침공하는동안, 자기나라를 다른 외국군대에게 노출시켰다고 그를 미워하였던것 같다. 호세아는 이것을 이용하여 베가를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그는 확실히 왕위에 대한 야심이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와같은 때에 왕관을 얻기위하여 반역자들처럼 모험을 감행하셨다. 아마 현자라면 왕관이 길거리에 있어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호세아는 왕관을 얻기위하여 모든것을 내걸고 모험하였고 그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었다.

Ⅲ. 유다왕 요담의 치세 15:32-38
유다왕 요담의 치세에 대하여 간단한 기록이 나온다.
(1) 그는 아주 선하게 다스렸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34절). 요세푸스는 요담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경건하였으며, 공익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았다고 주장하면서 그를 아주높이 평가하였다. 비록 산당을 헐지는 않았지만, 백성들을 거기에서 끌어내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전을 가까이 하게하기 위하여 성전에 상당히 관심을 기울이고 성전대문을 더높게 건축하였다. 집권자들이 죄악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하여 하고싶은 모든일을 할수 있을때는, 경건과 미덕을 중진시키고 장려하는 일을 그만큼 더많이 해야한다. 즉 그가 죄악의 산당을 헐어버릴수 없을때 하나님의 집의 '윗문'을 높이 쌓고, 더아름답게 하였다.
(2) 요담은 중년기에 죽었다(33절). 이 기록을 볼때 다윗의 년수, 즉 70만큼 산 유다의 왕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아사의 나이는 모르지만 웃시야는 68세까지 살았고, 므낫세는 67세, 여호사밧은 60세를 살았다. 이 세왕은 최장수한 자들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50세도 살지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요담왕은 41세에 죽었다.
(3) 그의 시대에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르말랴의 아들이 동맹을 맺고 유다를 공격하였다. 이동맹은 아하스 원년의 유다에 큰위협이 되었다. 이것을 본 왕의 마음은 동요되고, '그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다'(사 7:2).

# 핵심
15:1-7
유다왕 아사랴의 통치가 간략하게 기록되고 있다. 그는 에돔, 블레셋, 암몬을 정복함으로써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와 비슷한 위세를 떨쳤지만, 말년에는 스스로 교만해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대하 26장).
앗수르의 1차 침략(15:19)
앗수르왕 불(Pul)은 디글랏빌레셀 3세를 바벨론식으로 일컫는 이름이다. 당시 앗수르는 디글랏빌레셀 3세의 통치하에 점차로 강력한 제국을 형성하여 최강국으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앗수르에서 발굴된 디글랏빌레셀의 통치연대기에는, 그가 사마리아의 므나헴을 비롯하여 여러왕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 묵상
아사랴의 통치 ( 15:1-7 )
아사랴는 웃시야라고도 불리며 아마샤의 뒤를이어 52년간 유다의 왕으로 통치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했으나 산당에서 분향하는 일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문둥병의 상징 ( 15:5 )
인간의 죄와 부패를 상징하는 질병입니다. 문둥병원균은 육체를 서서히 허물어버리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합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은 인간을 절망과 사망으로 서서히 이끕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에 식언치 않으십니다(민23:19). 아사랴가 문둥병을 얻은이유도 제사장이 해야할 일을 대신하였기 때문입니다(대하26:16-21). 나라가 부강해지고 모든일이 잘되자 아마샤는 교만해져서 제사장을 무시하고 여호와께 분향하려 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규례를 무시하는 죄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 개개인이 제사장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왕들의 공통점 ( 15:18, 24, 28 )
그들은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처럼 우상숭배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들은 모두 여로보암을 기준으로하여 평가되었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계속적으로 죄를 향해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옛사람을 따라사는, 썩어질 구습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 하나님을 좇는 생활을 해야합니다(엡4:22). 또한 유다의 왕들에 비하여 볼때, 계속적으로 왕가가 바뀐것을 알수 있습니다. 유다의 경우 왕들이 살해되어도 살해자들이 처형되고 다윗왕가의 후계자가 왕위를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전왕을 살해하고 그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유다왕 요담의 통치 ( 15:32-38 )
요담은 웃시야의 아들로 16년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주변의 왕들이 악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선을 행했습니다. 곧 전에는 우리가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빛의 자녀답게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엡5:8-9).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하신 자의 삶은 주변에 어떤 악영향이 있어도 끝까지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요담의 주요업적 ( 15:35 )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열심의 증표로 성전윗문을 건축했고, 여러성읍들을 증·개축했으며, 외적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등 다방면에서 공적을 들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하는 자는 가만히 앉아 하나님을 바라보지만 않고 자기가 할수 있는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을 소망합니다. 내게 주어진 달란트로 최선을 다할때 하나님께서는 일한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계22:12).

# 해설
몰락하는 이스라엘 ( 15 )
여로보암 2세가 죽은이후에 이스라엘은 급격하게 몰락하게 됩니다. 여로보암 2세이후의 통치자들의 지도력 부재로 나라가 크게 혼란해졌습니다. 또한 계속해서 이어지는 혁명은 이스라엘 왕조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멸망의 그늘만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반면 다윗왕조를 계승하는 유다는 이스라엘보다 상황이 호전되어 갔습니다.
1. 아사랴의 유다통치
1) 아사랴의 즉위
유다는 아마샤가 반란군에 의해 살해되자 그의 아들인 아사랴가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27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아마샤는 '웃시야'로도 불렸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이스라엘에 포로로 잡혀갔을때부터 시작하여 총 52년간을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a.아사랴의 즉위(대하26:3-4)
b.아마샤의 살해(왕하14:19)
2) 문둥병에 걸린 아사랴
아사랴는 비교적 선한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사장들만이 할수 있는 분향하는 일을 하다가 여호와의 진노로 문둥병에 걸렸습니다(참조, 대하26:16-21). 결국 그는 남은 여생을 별궁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아사랴는 자신의 교만한 행위로 평생을 탄식속에 살게되었던 것입니다. 아사랴의 문둥병으로인해 나라는 그의 아들인 요람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a.아사랴의 교만(대하26:16)
b.부정한 병인 문둥병(레13:46)
3) 아사랴의 죽음
문둥병으로 후회와 탄식속에 살던 아사랴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사실 아사랴는 유다의 왕들중 많은 업적을 지닌 영향력있는 왕이었습니다. 그의 업적은 대하 2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엘랏을 건축하고 암몬족속에게는 조공을 받았으며 블레셋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또한 군대를 재조직하고, 여러지역을 요새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가 죽은뒤에는 이웃나라들과 연합하여 앗수르의 위협에 공동대처하기도 한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제사장의 사역에까지도 손을 댄 교만으로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말년에는 비참한 나날을 보내게된 것입니다.
a.별궁에 홀로 살았던 아사랴(대하26:21)
b.열왕의 묘실에 장사되지 못함(대하26:23)
2. 몰락하는 이스라엘
1) 스가랴와 살룸의 통치
여로보암 2세의 뒤를이어 그의 아들 스가랴가 북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조상들처럼 우상숭배를 계속했습니다. 결국 그는 6개월동안 통치를 하다가 살룸에 의하여 공개적으로 암살당했습니다. 스가랴의 죽음은 예후왕조가 4대만에 끝나리라는 예언의 성취였습니다(참조, 왕하10:30).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살룸도 결국은 한달동안의 통치를 끝으로 므나헴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므나헴은 왕으로 즉위한후 디르사와 사마리아 근처의 딥사를 공격했습니다. 이유는 그곳 사람들이 므나헴을 왕으로 인정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므나헴은 자기에게 불순종하는 자에게 어떤형벌이 내리는지 본을 보이기위해 임신한 부녀자들까지도 죽이는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않고 행했습니다.
a.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암7:9)
b.예후왕조에 대한 예언(왕하10:30)
2) 므나헴과 브가히야의 통치
므나헴은 유다왕 아사랴 39년에 왕이되어 10년동안 악한통치를 하였습니다. 그의 배교행위는 조상들 못지않게 악했던것 입니다. 어느날 앗수르의 강력한 지도자들중에 한왕인 디글랏빌레셀 3세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디글랏빌레셀 3세는 '불'이라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사실을 안 므나헴은 부자들에게 각각 은 오십세겔씩을 토색하여 은 천달란트를 불에게 조공으로 바쳤습니다. 이대가로 므나헴은 왕위를 지속할수 있었습니다. 그후 므나헴은 죽어 그의 아들 브가히야가 등극하였는데, 그역시도 우상숭배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브가히야는 50명의 병사를 이끌고온 베가에 의해 왕궁호위소에서 살해되었습니다. 이때 왕자인 아르곱과 아리도 살해당했습니다. 이제 베가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a.앗수르왕 불의 공격(대상5:26)
b.왕궁호위소에서의 죽음(왕상16:18)
3) 베가의 통치
베가가 즉위하던 때는 유다왕 아사랴가 52년째 통치하던 해였습니다. 그도 선왕들처럼 하나님앞에서 사악한 일들을 계속 행했습니다. 베가는 므나헴이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기위해 이용한 세금제도 등을 비방하면서 반앗수르 정책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는 곧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셀의 공격을 야기시켰습니다. 앗수르왕은 많은땅을 빼앗았고, 또한 백성들을 앗수르로 잡아갔습니다. 이러한 패배로인해 호세아는 베가에게 반역하여 그를 죽여 버렸습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최후의 왕이될 호세아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물론 호세아는 앗수르에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a.디글랏빌레셀왕(대하28:20)
b.아벨 벳마아가(삼하20:14-15)
3. 요담의 유다통치
1) 요담의 즉위
유다는 아사랴(웃시야)를 이어 그의 아들 요담이 통치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2년째 베가가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요담은 선한 왕으로 16년간을 통치했으나 선왕들처럼 산당은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요담은 특별히 성전의 윗문을 개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밖에 요담이 계획한 건축과 암몬족속의 정복은 대하27:3-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a.요담의 즉위(대하27:1)
b.성전윗문의 건축(대하27:3)
2) 요담의 죽음
요담이 유다를 다스릴때 이스라엘은 베가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당시의 국제정세는 앗수르의 통치하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베가왕은 반앗수르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람왕 르신과 협약을 맺고 앗수르에 대항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동참을 강요하기위해 르신과 연합하여 요담이 다스리는 유다를 공격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요담도 죽음을 맞이하여 그조상 다윗성에 열조와 함께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요담을 이어 아하스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a.아람왕 르신(왕하16:5)
b.르신과 베가(사7:1)
결론
이스라엘의 왕조는 계속되는 반역으로 정치, 경제, 사회가 불안해지고, 주변강대국들 특히 앗수르의 공격은 이스라엘의 앞날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웠습니다. 이러한 혼란의 원인은 바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서의 저자는 이스라엘왕들을 언급할때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라는 사실을 반드시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유다의 왕들도 여호와앞에서 선하게 나라를 다스렸으나 산당들은 제거하지 못한 약점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로인해 유다도 여러가지 많은 어려움을 겪게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절대적인 순종과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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