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유다왕 아마샤의 즉위 14:1-7
아마샤는 요아스의 아들이며 후계자이다.
(1) 그는 성전안에서 어느정도 잘 행하였으나, 다윗과 같지는 못했다(32절). 그는 시작은 잘하였지만 끝까지 밀고나가지 못했다. 우리의 경건한 선배들이 행한 그관습을 그대로 지키는 것은 불충분하다. 오히려 우리는 동일한 신앙과 헌신의 원칙과 동일한 진지성과 결심위에서 그들이 행한 그대로 행하여야 한다. '신당을 제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은 전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우리의 주위를 끈다.
(2) 그는 재판정에서 그의 아버지를 살해한 역적들을 공정하게 처리하였다. 그는 어떤혼란을 야기시킬까 두려워하여, 즉위 즉시 그일을 처리하지 아니하고, 신중하게 '나라가 그손에 굳게' 설때까지 연기하였다(5절). 그러나 모세율법에 분명하게 '아비로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것이라'는 조항이 있었기때문에 '왕을 죽인자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다'(6절).
(3) 그는 전쟁에서는 에돔사람들에게 승리하였다(7절). 에돔사람들은 요람시대에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었다(8:22). 이제 요아스는 그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로 다시 충성을 바치게 하였다. 이 원정에 대한 더상세한 기록은 역대하 25:5절이하에서 볼수 있다.

Ⅱ. 요아스와 아마샤의 대면 14:8-14
왕국분열이후 서너대동안 유다왕국은 이스라엘의 적대감으로인하여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 그리고 아사이후 서너대동안은 이스라엘과 맺은 동맹과 정략결혼 때문에 더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다시 서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것을 보게된다.
(1) 아마샤는 아무런 계기나 싸울이유를 제시하지도 않고 무작정 요아스에게 도전하였다(8절).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즉 "전장에서 우리의 힘을 서로 겨루자." 이렇게함으로 그는 교만하고 뻔뻔스러우며 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떤사람들은 그가 이스라엘왕국을 굴복시키고 유다를 재통일하려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2) 요아스는 그의 도전을 엄히 책망하고, 철회하도록 조언하였다(9,10절).
1) 요아스는 자기를 백향목 즉 고귀한 재목에, 그리고 아마샤를 가시나무 즉 보잘것없는 잡초에 비교하고 또한 자기를 그를 두려워하기는커녕, 그를 경멸하며 자기가 그와 어떤동맹을 맺는것은 백향목이 자기딸을 가시나무와 맺어주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이야기함으로 아마샤의 자존심을 손상시켰다. 그는 옛날 다윗의 집은 이제 예후의 집(비록 유서깊지는 못하더라도)과 나란히 이름불려질 가치가 없는 가문이라고 생각하였다.
2) 요아스는 아마샤의 패전을 예언하였다.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이렇게 가시나무와 백향목과의 협상은 끝이 났다. 마찬가지로 요아스는 자기군대가 쉽게 아마샤를 이길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3) 그는 아마샤에게 그의 도전이 어리석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너는 고작 에돔을 이긴것을 가지고 마치 온세상에서 공포의 대상이나 되는 것처럼 자랑으로 여기는구나"
4) 그는 아마샤에게 이미 얻은 영예로 만족하고, 능력밖에 있는 더많은 것을 잡으려다가 손에 쥔것조차 놓치지말라고 권고하였다.
(3) 아마샤는 자기결심을 고집하였고 결과는 좋지않았다.
1) 그의 군대는 패배하여 흩어졌다(12절). 요세푸스는 아마샤군대가 교전하게 되었을때,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공격다운 공격한번 하지못하고, 모두 도망가기에 바빴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 아마샤는 이스라엘왕에게 포로가 되어 그를 실컷 대면하게 되었다.
3) 개선자는 별저항없이 문이 열린 예루살렘에 입성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벽을 허물고(요세푸스에 따르면, 승리한 그는 전차를 몰고 성벽이 무너진 곳으로 들어갔다) 유다에게 치욕을 안겨주었다.
4) 그는 예루살렘을 약탈하고 가치있는 모든것을 빼앗아가지고, 전리품을 싣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다(14절).

Ⅲ. 아마샤의 죽음 14:15-22
여기 불과 몇절안에 세사람의 왕이 무덤으로 갔다. 첫째로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이 죽고(15,16절) 둘째로 유다의 아마샤왕이 죽었다. 그는 그를 정복했던 이스라엘왕보다 15년을 더살았다(17절). 그는 자기신하들에게 살해되었다. 그의 악정으로인하여 신하들은 왕을 미워하고 예루살렘은 왕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오르게 되었다. 이것은 왕의 어리석음과 허세때문에 성벽이 치욕스럽게 허물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마샤는 라기스로 도망갔다. 우리는 그가 거기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숨거나 보호받았는지는 알지못하지만, 결국 거기에서 살해되었다(19절). 셋째로 아사랴가 아마샤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때, 그는 네살밖에 되지 않았기때문에 12년동안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그가 16세가 될때까지 정치는 섭정하에 있었다. 그는 무척 오랫동안 통치하였지만(참조15:2) 그의 통치기록은 다 건너뛰어 갑자기 끝나버렸다(22절). 아사랴가 엘닷을 건축하였다. 엘랏은 에돔족속에게 속한 땅이었다.

Ⅳ. 이스라엘왕 여로보암2세 14:23-28
이것은 여로보암 2세의 치세기록이다.
(1) 그의 치세는 길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왕들중에서 최장의 통치기간이다. 사십일년을 위에 있으며(23절). 그러나 그와 동시대사람, 유다왕 아사랴는 그보다 더긴 52년간을 다스렸다. 이 여로보암은 아사가 통치한 기간만큼 통치하였는데(왕상 15:10), 한사람은 선하였고 다른 한사람은 악하였다. 사람의 성품은 수명이나 외적인 번영을 가지고 측정할수 없다.
(2) 그의 성품은 다른왕들과 동일하였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여로보암의 모든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24절). 그는 송아지숭배를 계속하였다. 어떤죄가 옛부터 내려오는 습관이라고해서, 하나님께서 그죄를 덜악하게 보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3) 그러나 그는 다른 대부분의 왕들보다 번창하였다. 그가 한편으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지만, 다른한편으로는 그안에 선한것이 있었던것 같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셨다.
1) 예언으로 그를 인정하셨다. 하나님은 갈릴리사람 아밋대의 아들 요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이것은 그의 충성스러운 사역자가 계속 백성을 다스리는동안에는 하나님께서도 그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은 요아스의 손을 강하게 한 엘리사를 데려가시고 요아스의 아들을 격려하기위해 요나를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신 일, 그리고 그가 도망갔고, 그후 니느웨로 가면서 짜증을 부리던 일은 아마도 그가 젊었을때의 일인것 같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후에 요나를 자비의 사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신 것은 그의 실수와 여러가지 어리석음을 다 용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하나님의 위임장은 곧 용서를 의미한다.
2) 보호하심으로 인정하셨다. 여로보암의 군대가 승리한 사건은 여호와의 말씀에 의한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지경을 회복하되' 북쪽 하맛에서부터 아라바 바다에 이르기까지 모든 변경성읍과 촌락을 회복하였다(25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승리의 복을 주신 이유는 두가지이다.
① 이스라엘의 고난이 극심하였기 때문이다. 이 고난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 되었다(26절). 적들이 지배하는 촌락에 살던 사람들은 비참하게 억압받는 노예생활을 하였고, 나머지 지방 주민들도 적들의 잦은침입과 약탈때문에 가난하게 되었다.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 비참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로 위안을 얻도록 하자.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신 심정과(사 63:15; 렘 31:20), 하나님의 마음은 긍휼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시 86:15)을 알수 있다.
② 하나님께서 아직까지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27절). 이말씀을 북방 열지파의 분열로 이해한다면, 머지않아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시고 실행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완전한 근절이라고 이해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지 않으셨고, 또한 하려고하지도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이름은 아직까지 복음 이스라엘속에서 여전히 세상에 있으며, 세상끝날까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4) 여기에 여로보암 통치의 결말이 설명되어 있다. 우리는 28절에서 그의 전력과 그가 어떻게 싸웠는가에 대한 기록을 본다. 이스라엘에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예언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었으나 이제 비로소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호세아가 예언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여로보암이 통치할때이다. 그는 예언을 기록한 최초의 선지자이며, 따라서 호세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여호와의 말씀의 시작'이라고 부른다(호1:2). 동시에 아모스가 예언하고 그예언을 기록하였으며, 그후 곧 미가, 그리고 아하스와 히스기야시대에 이사야가 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자신을 증거하셨다.

# 핵심
14:1-22
유다왕 아마샤는 초기에는 비교적 하나님께 충실했고 에돔과의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승리후에 곧 교만해져서 북이스라엘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다 패배했고, 결국은 모반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 묵상
유다왕 아마샤의 행적 ( 14:3 )
역대 유다왕들 가운데 드물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칭찬을 들었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악행을 범했습니다. 결국 아마샤는 기회주의적이고 회색주의적인 신앙행태를 취한 것입니다. 정함이 없이 혼합된 신앙성향을 지닌자는(약1:8)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수 없습니다.
아마샤의 패배 ( 14:8-14 )
이미 얻은 승리로인해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으로 늘 패망만을 가져옵니다(잠16:18). 물론 아마샤가 담대하게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선전포고를 했지만, 이는 아마샤가 지난번 에돔과의 일전을 통해 큰승리를 얻어 자신의 힘과 군사력을 지나치게 과신했기 때문입니다.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분명 유다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개입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아마샤가 이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면 결코 교만하거나 과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삶에 있어 하나님을 늘 염두에 둔 인생은 실패하거나 멸망하는 법이 절대 없습니다.
아마샤의 최후 ( 14:17-22 )
모반으로인해 쫓기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대하25:27). 하나님을 버린 사람은 죄의 종이 되어 죄에 의해 심판을 받게됩니다. 어떤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인생의 실패와 멸절 ( 14:17-22 )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기 때문입니다(창3 :11-19).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 인생들을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멸망에 이르지않도록 하기위해 당신의 일꾼들을 보내어 경고하시고 책망하시는 열심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여로보암의 통치 ( 14:23-27 )
그는 여로보암 1세가 아니라 요아스의 아들로서 41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그의 인간적인 업적은 뛰어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합니다. 성경은 일반적인 역사를 기록하지 않고 하나님이 역사하신 구속사를 중심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비록 인간적으로는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해도 하나님앞에서 악을 행한 사람의 역사는 짧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 14:27 )
이는 이스라엘의 이름을 남겨두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은 ‘그가 하나님으로서 다스릴 것이다’라는 뜻으로, 야곱에게 주어 대대로 그의 자손에게 불리게한 이름입니다. 또한 이는 영적으로 구원받은 이들을 표현하기도 합니다(롬9:6-13).

# 해설
아마샤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 14 )
이제 다시 유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에 요아스왕이 있듯이 남유다에도 요아스왕이 있는데, 이 왕의 아들이 아마샤였습니다. 아마샤는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에 따라 나라를 통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달랴 통치이후에 쇠퇴해졌던 국력을 어느정도 신장시켰습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인해 많은피해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1. 아마샤의 유다통치
1) 아마샤의 즉위
요아스가 이스라엘의 왕이 된지 1년후에 아마샤는 유다의 9대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이때 아마샤의 나이는 25세였습니다. 아마샤는 선왕인 요아스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숭배하는 산당을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중에는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샤는 다윗왕조의 시조이자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부족하였던 것입니다.
a.아마샤의 즉위 (왕하12:21)
b.산당에서 제사하는 백성들(왕하16:4)
2) 에돔과 전쟁을 한 아마샤
아마샤는 등극하자마자 자신의 부친인 요아스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습니다. 이 신복은 요사갈과 여호사바드를 가리킵니다. 당시의 관습대로 하자면 왕을 죽인 신복들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가족들까지도 몰살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마샤는 그 신복들만 죽이고 자식들은 살려두었습니다. 이는 아마샤가 모세의 율법을 실천했던 것이고, 하나님의 공의를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한편 아마샤는 에돔과 전쟁을 하였습니다(참조, 대하25:5-16). 이전쟁은 사해계곡에서 발생했는데 아마샤가 대승하여 에돔사람 일만을 죽이고, 에돔의 수도인 셀라도 취하였습니다. 아마샤는 셀라를 욕드엘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바로 이곳이 그유명한 성채도시인 페트라였습니다.
a.그자식은 죽이지 말라(신24:16)
b.염곡에서의 승리(삼하8:13)
2. 아마샤와 요아스의 싸움
1) 화를 자초한 아마샤의 교만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아마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과 싸우기로 결심하고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에게 이를 통보하였습니다. 사실 유다는 이스라엘의 아합이후로 이스라엘의 종속국노릇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은 우화적인 이야기를 통하여 아마샤의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그리고나서 먼저 유다를 공격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과 유다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25km 떨어진 벧세메스에서 전쟁을 하였는데 그결과는 이스라엘의 대승이었습니다. 유다군대는 후퇴하고, 아마샤는 생포되었습니다. 요아스는 예루살렘성벽을 파괴하고 성전과 왕궁에서 많은 귀중품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그리고 많은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사마리아에 끌려갔습니다. 결국 아마샤도 잡혀갔기에 그의 아들인 아사랴가 유다를 통치하였습니다.
a.아마샤의 죄악(대하25:14)
b.아마샤의 교만(대하25:19)
2) 요아스의 죽음
요아스의 죽음은 왕하13:12-13절에 이어 또다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는 죽어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었습니다. 이때에 포로로 잡혀있었던 유다왕 아마샤는 석방되어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요아스가 죽자 그의 뒤를이어 요아스의 아들인 여로보암 2세가 즉위하였습니다.
a.이스라엘왕 역대지략(왕하15:31)
b.여로보암의 즉위(왕하13:13)
3) 아마샤의 죽음
유다는 아마샤가 이스라엘과 무리한 전쟁을 일으키고 크게 패하자 정치, 경제, 사회 전분야에서 큰혼란을 맞이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가운데 일부 무리들은 아마샤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중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아마샤는 유다의 남부국경에 있는 옛수도 라기스까지 도망갔으나, 거기서 반란군에게 잡혀 죽음을 당했고 그의 시체는 다윗성에 장사되었습니다. 유다는 아마샤가 포로로 잡혔을때부터 그의 아들 아사랴가 16세 나이로 통치하기 시작하다가 아마샤의 죽음이후로는 독자적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아사랴는 오빌과의 무역을 위해 아카바만에 엘랏을 건축하기도 합니다.
a.라기스(수10:3)
b.엘랏(왕하16:6)
3. 여로보암 2세의 이스라엘 통치
1) 여로보암 2세의 즉위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이 죽자 그의 아들인 여로보암 2세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이때 유다는 아마샤가 15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이전의 어떤왕들보다도 장수한 왕으로서 41년간을 통치하였습니다. 특별히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할즈음에 주변강대국들은 어려움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여로보암 2세는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이스라엘을 크게 부흥시켰습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는 크게 성공한 여로보암이었으나, 그는 영적으로는 그의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한 실패자였습니다. 따라서 본서의 저자는 왕들을 신앙적인 면에서 평가하고 있었기에 여로보암 2세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로보암 2세의 41년간의 통치도 간단하게 기록되었던 것입니다.
a.여로보암 2세의 즉위(왕하13:13)
b.계속되는 여로보암의 죄악(왕하15:23-24)
2) 이스라엘을 부흥시킨 여로보암 2세
사실 이스라엘은 아람의 하사엘왕때부터 아람의 학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고통이 요아스때부터 호전되기 시작하여 결국은 여로보암 2세때에 아람의 손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를 회복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솔로몬시대에 확장되었던 영토들을 모두 복원시켜 북쪽 하맛어귀에서부터 남쪽 아라바 바다까지 넓은 영토들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토확장은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파한 요나선지자에 의해 계시되었던 것입니다.
a.요나선지자(욘1:1)
b.솔로몬당시의 영토(왕상8:65)
3) 여로보암 2세의 죽음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할때에 아람은 앗수르의 공격을 받아 국력이 쇠퇴해진 가운데 있었습니다. 또한 앗수르도 북방 우라르트민족의 계속되는 침략과 무능한 지도자로인한 내부갈등이 심화되어 국력이 약해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주변강대국들의 약세를 틈타 여로보암은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과 하맛을 침략하였습니다. 본래 이들 도시는 다윗과 솔로몬때에 이스라엘 영토였습니다. 여로보암 2세는 그밖에 여러지역들을 되찾고 이스라엘을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그후 여로보암 2세도 죽음을 맞이하여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a.다메섹을 회복한 일(삼하8:6)
b.유다에 속했던 하맛(대하8:3)
결론
에돔에게 승리했다는 기쁨에서 비롯된 아마샤의 교만한 마음은 민족적인 재앙만을 야기시켰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비참한 죽음만을 몰고 왔습니다. 여기서 한사람의 지도자가 올바르게 선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여로보암 2세의 업적에 관하여 간략하게 기록된 본문을 보면, 인간을 평가하는 하나님의 관점이 우리들과는 크게 다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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