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레미야서의 진정성

본 서가 예레미야에 의해서 선포되었으며 기록되었다는 뚜렷한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렘1:1; 렘36:18), 현대의 합리주의적 비평가들은 본 서의 어떤 부분들이 예레미야 자신과 그의 비서 바룩에게 속했음을 부인하였다. 그 저작권을 부인하는 몇몇 구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렘10:1-16 : 포로로 있는 유대인들을 이사야서의 어투를 사용해 우상 숭배자로 공격했다.
② 렘17:19-27 : 에스겔서와 제사 법전 즉 본 서보다 조금 후대의 작품들과 유사하게 안식일 준수를 강조했다.
③ 렘30,31장 : 포로후 시대의 특징이라고 볼수 있는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기대와 에스겔 18장에 있는 개인적 책임을 강조하였다.
④ 렘51:41 : 바벨론을 아트바쉬(Athbash) 용법을 사용해 쉐삭(Sheshakh)으로 표현했기 때문인데 아트바쉬 용법은 후대의 문학적인 기교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후대의 작품으로 몰아붙이는 모든 기준들이 증명되지 않는 가설 위에 서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예레미야와 에스겔 사이에 큰 시대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는 가설 역시 정당화시키기 어렵다. 왜냐하면 성경 기록에 따르면 이 두선지자는 동시대에 사역을 했고, 예레미야의 후반기에는 최소한 같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2. 예레미야의 소명에 대한 비평가들의 견해

이 책의 표제에 해당하는 렘1:1-3을 제외하면 1장은 예레미야가 겪은 경험 즉 예언자로서의 소명을 받고 그 소명을 확인하고 나아가 그것을 명백히 했던 그 경험들을 기술하고 있는 주제 단원이다. 이 자료는 의심할 여지없이 예언자 자신의 회고록에 그 출처를 두고있는데, 원래 그가 B. C. 605년에 받아쓰게 했던 두루마리의 서론으로 결합시켰는지도 모른다. 이 자료는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므로 그러한 목적에 아주 합당했을 것이다.
그후 이 장은 1-25장에서 볼수 있는 예레미야의 수집극의 서론이 되었고 지금은 예레미야서 전체의 서론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주제가 통일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장은 원래부터 하나의 단위는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경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경험을 말하고 있다. 다시말해 이 장은 원래 각각 다른 상황에서 나와 독자적으로 전용되던 말들을 결합한 것이다. 그의 소명 자체는 렘1:4-10에 묘사되어 있으며, 예레미야와 여호와의 대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예를 들면 이사야의 소명(사6장) 혹은 에스겔의 소명(겔 1-3장)과 같은 유사한 기사들과 비교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예레미야의 소명을 편집자에 의해서 편집하여 재구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벨하우젠(Wellhausen)이후 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자행되었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의 비평은 본 서를 쓴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렘1:1-3에서 자신의 신분과 고향 그리고 사역 시기를 소개함으로써 본 서의 출처와 시대적인 배경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렘1:4-10에서는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는가를 선포하여 예언의 신빙성을 확인해 주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예언사역을 소개함에 있어서 자신의 신적 권위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소명을 기록했던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비평하는 자세는 재고되어야 한다.

3. 두가지 환상에 대한 비평적 견해

비평학자들은 예레미야의 소명에 대해서 비평했듯이 렘 11-16장에 묘사되어 있는 두가지 환상에 대해서도 비평을 쉬지 않는다. 그들은 두환상에 대한 묘사를 이렇게 평가한다. 두환상은 예레미야의 활동에 있어서 비교적 초기에 일어났으나 약간 후대에 일어난 것이다. 그중에 초점을 말놀이(Word play)에 두고있는 첫번째 환상은 예레미야에게 여호와가 자신의 말이 이루어지는지 지켜보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다 주었다. 두번째 환상의 경우 이 마지막 부분이 원래의 형태에서 약간 확대된것 같으며 운율이 군데 군데 모호하다. 따라서 두개의 환상기사는 원래는 렘1:4-10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두번째 환상이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로 나에게 임하였다"라는 말로 시작된다는 사실(렘1:13)은 이 두환상이 본래부터 함께 전승되었으나 소명 기사와는 별도로 전승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저자 자신이 그 예언을 수용하면서 그것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계속적으로 임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4절과 11절, 13절은 예언의 연속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것을 분석해보면 부르실때에 말씀이 임했고, 그후에 또다시 두번이나 말씀이 임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그리고 예레미야에게 두환상을 주신 이유가 전승되었느냐, 편집되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다의 임박한 멸망을 인지시켜서 선지자의 사명을 장려하는데 있었다. 그러므로 두환상은 하나님의 신탁의 방법이며, 소명 기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편집된 본문도 아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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