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선한 목자와 충성된 양 (박한응 목사)

 

[요한복음 10장 1절~15절]

1절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절 -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절 -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절 -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절 -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절 -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절 -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절 -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절 -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절 -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절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절 -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절 -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절 -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절 -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목자가 되셔서 양된 우리들을 인도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예수님이 사시던 유대 나라에는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나 참 목자를 사칭하는 삯군 목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에 최고의 전통과 신앙을 자랑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을 책망하셨다.
  - 마태복음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 마태복음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이 시대에도 거짓 그리스도와 삯군 목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시대는 말세가 가까워서 오히려 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곳곳에 사이비 종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가고 또 극성을 부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순수한 우리 기독교의 지도자들도 어쩐 일인지 자꾸만 퇴색되어 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런가 하면 교인들도 자꾸만 순수성을 잃고 퇴색되어 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면 분명 하나님의 약속하신 은혜와 축복을 받을텐데 그렇지를 못하고 자꾸만 인본주의로 흐르고 자기중심적으로 변하고 있다.

1. 선한 목자는 어떤 목자인가?
  1) 양의 이름을 불러 인도하는 목자라고 했다. (3절)
참 목자, 곧 선한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부른다. 이는 항상 양의 관심을 가지고 양을 잘 보살핀다는 뜻이다. 그래서 목사들은 교인들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제단에서 기도한다.
그러다가 어떤 교인이 교회를 등한히 하고 세상길로 가면 더욱 소리 높여 부른다. 그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양을 찾는 목자에 대한 비유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 누가복음 15:4~7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2) 양들의 앞서가며 양들을 인도하는 목자이다. (4절)
선한 목자는 양들의 뒤에서 모는 것이 아니라 앞서서 간다. 그러면 양들이 목자를 따라간다. 앞서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다. 믿음과 신앙이 앞서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생활도 성도들보다 앞서가야 한다. 경제적으로 앞서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교인들의 생활을 앞서서 이끌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또 감사 생활도 앞장서서 한다.
  3) 양들에게 꼴을 얻도록 하는 목자이다. (9절)
선한 목자는 양들에게 항상 부드러운 꼴을 먹여주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 오늘의 양된 성도들이 먹는 꼴은 말씀이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설교가 반을 차지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설교를 들어야 한다. 말씀을 듣지않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로마서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말씀의 꼴을 먹어야 믿음도 자라고 신앙이 자란다. 우리들의 육신도 영양소를 잘 섭취를 하여야 하는데 편식을 하거나 음식을 잘 먹지 못하면 영양실조에 걸리게 된다. 영양실조에 걸리면 온갖 질병이 침투해 들어온다. 고치기가 어렵게 된다.
우리들의 믿음도 말씀의 꼴을 먹지못하면 영양실조에 걸리게 된다. 믿음이 영양실조에 걸리게 되면 신앙이 병들게 된다. 신앙이 병들면 나태하고 게으름에 빠지게 된다. 또 죄를 짓게 된다. 죄지으면 지옥 간다.
  4) 양들에게 생명을 얻게하는 목자이다. (10절)
선한 목자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는 목자이다. 삯군 목자는 오히려 양들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서 양의 가죽을 쓰고 달려오는 이리와도 같다. 양의 생명을 얻게 한다는 것은 양들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영원한 영생을 얻도록 인도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삯군 목자들은 양들이야 어찌 되었든지간에 목회를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양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양들을 지키는 보호 본능이 없다. (12절) 
  5)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목자이다. (11절)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어린양 된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의 본을 보여 주셨다.
이것이 바로 순교 정신이다. 목자는 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양이 목자를 위해서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래서 참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항상 순교 정신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2. 착한 양은 어떤 양인가?
양도 양 나름이다. 양이라고 해서 모두가 순진하고 착한 것은 아니다. 교인들 중에서도 목사를 괴롭히고 나중에는 목사를 내쫓는 교인들도 있다. 기왕이면 좋은 양이 되어야 한다. 어떤 양이 좋은 양이 되겠는가?
  1) 목자의 음성을 잘 듣는 양이다. (4절)
좋은 양은 목자의 음성을 잘 들을줄 아는 양이다. 비록 미물의 짐승일지라도 자신을 지켜주는 목자의 음성을 잘 듣는다. 그러나 가끔씩 목자의 음성을 듣지않고 오라고 불러도 오지않고, 앞서가는 양들을 따라가라고 하여도 가지도 않는 양들이 있다. 그래서 목자의 마음을 졸이게 하고 애타게 하는 양들이 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양이다. 우리의 목자는 예수님이시다. 그 예수님을 대신하는 목자가 바로 우리의 목사님이다. 믿음이 온전하고 신앙이 바른 성도는 자기의 교회의 목사의 말씀을 잘 분별하여 듣는다.
지금은 말세가 가까워서 세상에는 비슷한 삯군 목자가 많이 나왔다. 모습도 비슷하고 목소리도 비슷하다. 능력도 행하는 것 같다. 그러나 참 목자와 거짓 목자의 분별을 잘해야 한다. 그리고 목자의 음성을 잘 분별하여 들어야 한다.
  2) 목자를 잘 따라가는 양이다. (5절)
짐승 중에 개나 고양이나 말과 같은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방향을 감지하는 기능이 발달이 되어서 길을 잃어도 곧 찾아올 수 있어도 양은 방향감각이 둔한 동물이기 때문에 양처럼 쉽게 길을 잃어버리는 동물도 없다. 그래서 양은 한번 길을 잃으면 다시 길을 찾아오기란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목자의 인도함이 없으면 끝없이 유리방황하다가 결국 맹수들에게 찢겨서 죽기가 십상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참 목자되신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릇 행하여 죄악의 구렁에 빠진 우리 인간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양된 우리들은 항상 목자되신 예수님을 잘 따라가는 양이 되어야 한다. 양은 목자를 따라가지 않으면 길을 잃게 된다. 길을 잃게되면 곧 멸망이다.
  3) 삯군 목자를 따라가지 않는 양이다.
세상에는 거짓 선지자도 많이 있고 삯군 목자도 많이 있다. 참 목자와 삯군 목자를 잘 분별하여 삯군 목자를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삯군 목자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
    ① 삯군 목자는 물질에 집착이 심하다.
      - 그래서 성도들과 물질적인 돈 거래를 많이 한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이런 저런 그럴듯한 이유로 물질의 요구를 많이 한다. 돈을 빌려달라는 등 또는 무엇을 사는데 도와달라는 등, 또는 성도들이 무슨 어려운 일을 당할때에 그 문제를 해결하여 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요구한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거절을 하지 못하고 응하게 된다. 성도와 목회자간에는 절대로 물질적인 거래가 있어서는 안된다.
    ② 명예에 집착을 한다.
      -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목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외의 모든 명예는 엄격히 말해서 필요치 않다. 오히려 목회에 지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감리사 선거나 무슨 선거가 있으면 돈을 써가면서 그것을 하고 싶어서 야단들이다.
    ③ 사생활이 투명하지를 못하다.
      - 목사는 항상 사모님과 함께 다니고 함께 행동을 하여야 한다. 그래야 오해도 받지 않는다. 이상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목사의 행적이 투명하지 못하면 항상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그래서 참 목자는 항상 사생활이 투명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목사는 거의 삯군 목자일 가능성이 많이 있다. 그래서 이 마지막 말세 때에는 목자를 잘 따라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좌우로 치우치거나 딴전을 보면 안된다. 삯군 목자를 따라가면 결국 물질적으로, 심적으로, 신앙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당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헤어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면 오늘의 말씀을 정리해 보겠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우리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양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선한 목자만 따라가는 양과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
왜 좋은 양이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은 목자의 음성을 잘 듣고 목자를 잘 따라가는 양을 좋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원하신 목자이신 예수님을 잘 따라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왜 선한 목자만 따라가야 하는가?
선한 목자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대신하여 교회마다 세워주신 목사를 따라가야 한다. 양들은 목자를 믿고 따라야 한다. 양이 목자를 의심하면 어찌하는가? 목회를 하면서 가장 어렵고 괴로운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아니다. 불신자들의 핍박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바로 교인들이 목사의 진심을 몰라줄때 가장 힘들고 괴로운 것이다.
  - 갈라디아서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양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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