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정의 (오정현 목사)
[이사야 58장 1절~14절]
1절 -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
2절 -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
3절 -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4절 -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5절 -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6절 -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절 -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절 -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절 -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절 -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절 -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12절 -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13절 -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절 -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자본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고, 사회주의는 사회적 정의를 강조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정의는 이런 차원보다 한단계 새로운 것입니다. 이 차원을 알지 못하면 이사야가 말하듯이 하나님 앞에서 정의를 행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실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식의 정의를 가지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는 방향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첫번째로 하나님의 정의는 어렵고 고통당하는 자들과 철저하게 연계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세상이 말하는 일반적인 정의는 사회가 악한 세력들의 영향을 받고 있으므로 불의를 깨뜨리는 방식으로 구조악을 척결하기 위한 정의실천이고, 세상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불쌍해서 도덕적 의무감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한차원 더 올라갑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가장 밀접한 단어는 샬롬입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다”는 말씀에서 보듯이 정의와 샬롬이 연결될 때에만 율법적으로 흐르지 않는 진정한 정의가 되며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인애, 자비하심과 연계되어야 독선으로 흐르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정의와 연결된 샬롬은 나 혼자만의 평화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빈부귀천, 남녀노소, 유무식을 막론하고 전체가 촘촘히 짜여진 그물코 같은 입체적인 공동체이며, 이런 공동체 안에서의 돌봄과 섬김, 사랑과 희생이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정의가 구현되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은 정의롭지 못합니다.
우리가 비록 보통 사람들의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정의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희생하며 섬길때 구조적으로 불의한 세상 가운데서도 민족과 세계를 섬기고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정의는 샬롬과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서는 죄책감과 도덕적 부담감이나 자기중심성에서 오는 공로의식을 주의해야 합니다. 정의를 실천하는 동기가 두려움이나 우월감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세번째,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원천은 예수님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에서 나오며, 이것이 우리에게 전가되어 그 은혜를 가지고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이라는 계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안식일 자체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처럼, 아름다우신 주님으로 말미암는 즐거움으로 공동체를 위해 정의를 실천하고 샬롬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공동체로써 우리가 작은것 하나라도 이웃을 위해 실천함으로 하나님의 샬롬과 예수님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반사하는 반사체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샬롬과 예수님의 아름다운 즐거움의 능력을 가지고 우리 주위의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귀한 도구로 쓰임 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이사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원하기에 능한 자 (사 63:1) (0) | 2013.01.14 |
---|---|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사 43:18~21) (0) | 2013.01.11 |
이것이 최고 성공이다 (사 43:7) (0) | 2012.12.26 |
사랑을 확인하라 (사 43:4) (0) | 2012.12.21 |
내 사랑 금지옥엽 (사 43:4) (0) | 2012.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