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구속사의 주체이시다. 이런 하나님은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시공에 구애를 받지 않고 전역사에 임재하시고 이를 홀로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임재와 사역에 의하여 역사는 예수의 구속의 법을 중심으로 택한 성도의 구원을 위하여 한순간도 중단되지 않고 연속되는 구속사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본 연구에서는 다시 한번 언급되고 있는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예언과 이스라엘과 열방 가운데서 남은 자의 회복과 남은 자가 누릴 기쁨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1. 예루살렘의 죄악(습3:1-8)
스바냐는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이미 습1:14-18에 언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또다시 예루살렘의 심판을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예루살렘 거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이런 예루살렘 백성들의 죄악을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 깨닫고 돌아오기를 원하셨나?
1) 예루살렘의 죄악으로 인한 심판
이미 앞에서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예루살렘의 죄악을 언급하고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는 것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함으로써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즉시 회개케 하기 위함인 듯하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로써 예루살렘 거민들의 죄악상을 지적하고 있다. 그들의 죄악은 패역, 더러움, 포학이라는 삼중적 죄악이다. 그러나 이러한 삼중적 죄악은 서로 연결되고 얼킨 하나의 죄악이다. 즉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배반함으로써 종교적,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그 결과 서로 물고 찢고 죽이는 포학한 자들이 된 것이다. 더욱이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방백들, 재판장, 선지자, 제사장들이 더욱 타락했으니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이처럼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범죄하여 타락하게 되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먼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하나님은 이방 민족의 심판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셨으나 그들은 오히려 더 패역해져 갔다.
2) 성도로서의 책임과 의무
남유다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이었다. 그러나 선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부름 받은 우리도 날마다 성도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서 하나님의 징계 대상이 되지 말아야 겠다.
2. 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습3:9-13)
남유다와 열방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언급이 끝나고 이제 여기서는 지금까지의 심판의 메시지와는 달리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다. 즉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구원 이전에 이방의 남은 자에 대한 구원 언급이 먼저 나오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또한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은 유다의 무엇을 원하시는가?
1) 영적인 정화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구원 언급 이전에 이방의 남은 자에 대한 구원 언급이 먼저 나오는 것은 종말의 때에 육적 이스라엘보다 이방인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먼저 하나님께 돌아와 이스라엘의 남은 자의 구원에 기여할 것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롬11장). 또한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 유다의 영적인 정화를 기대하신다.
2) 믿는 자의 도리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습3:13)고 하였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 자로서 언제나 올바른 행실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반성해 보아야 겠다. 또한 아름다운 말과 선한 행실로 주님을 믿는 자로서의 아름다운 인품을 드러내야 하겠다.
3. 남은 자가 누릴 구원의 기쁨(습3:14-20)
본문은 본 서에 있어서 종결부에 해당된다. 여기서 여호와의 날에 이방과 이스라엘 백성의 남은 자가 누릴 구원의 기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런 본문의 예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습3:20에서 '그때에'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1) 예언의 이중적 의미
본문의 예언은 1차적으로는 유다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귀한(B. C. 537년)을 예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장차 주의 재림으로 인해 친히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는 날 그의 백성들이 세계 각 곳에서 모여들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그 때의 기쁨을 가리킨다. 그리고 습3:20에서 '그 때에'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쓴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구원과 축복의 날을 간절히 사모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이다.
2)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본문은 남은 자들이 누릴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하루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의 우리의 모습이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얼마나 기쁨을 드릴 만한 것인가 반성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날마다 나로 인하여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죄악에 치우치지 않아야겠다.
남유다와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인 '여호와의 날' 사상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비록 선민이라 할지라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이스라엘과 열방 가운데서의 '남은 자'의 사상은 우리에게 선민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 이방 민족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구약성경에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만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유대 편협주의의 모습만 나타났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방 민족 가운데서도 남은 자가 있다는 것은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구속사의 장으로 한걸음 더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세계 만민의 구원이 예언되었고,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성취되고 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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