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부를 드리는 믿음
[요한복음 18장 1절~14절]
1절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2절 -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3절 -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절 -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절 -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6절 -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절 -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9절 -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0절 -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절 -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12절 -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3절 -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4절 -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1.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지 못했던 가룟 유다의 행동은 무엇이며, 그가 예수님을 배신한 장소는 어디입니까?(1~3절)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 위해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사람들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안내합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반응했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3년간 예수님께 제자로서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사탄의 미혹을 받아,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기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분의 인격과 영성을 체험하고, 말씀을 듣고 모든 기적과 표적을 목격했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유다는 두 가지 면에서 어리석었습니다. 첫째, 그는 자신의 유익을 얻고자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예수님에게서 유익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하자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둘째, 3년간 예수님과 함께했지만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유다에게는 사역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유익에만 집착하게 되면 예수님을 놓치게 됩니다. 주님을 일 중심으로 만나면 그분의 성품과 인격을 놓치게 됩니다. 사역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이며 존재감입니다. 유다의 배신은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배신입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 그분 자체를 거절한 어리석은 배신입니다. 인생에 위기가 찾아올 때 믿음의 진위가 드러납니다. 유다는 위기 앞에서 어리석게도 자신의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2.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때로 실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에게 행한 일은 무엇입니까?(10절)
베드로는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쪽 귀를 베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제자였습니다. 그는 유다와 함께 3년간 예수님에 대해 많은 것을 목격했습니다. 베드로가 유다와 다른 점은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좋아했고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체포당하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체포되실 때 위험을 무릅쓰고, 대제사장들이 보낸 사람들에게 대항했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그의 사랑과 충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도 미숙한 면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충성심은 있었지만, 예수님을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의도하시는 생각과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하시려는 주님을 방해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동기는 선했지만 결과는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가로막는 격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충성된 제자일지라도 예수님의 생각과 뜻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베드로와 같이 주님의 길을 막는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3.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입니까?(11절)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사명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모든 믿음의 종들이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예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위해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십니다. 사명은 자발적인 선택이며, 위대한 희생입니다. 이 사명에 수반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고난을 넘어 하나님의 위대한 꿈이 성취될 것을 믿을 수 있기에 십자가의 선택이 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의 믿음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두고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며, 기꺼이 자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잔은 메시아로서 겪어야 할 수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강조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주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해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드렸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깊은 사랑과 신뢰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예수님의 신뢰는 십자가에서 극치를 이룹니다. 예수님은 숨을 거두시면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심으로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4.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했지만, 그것이 고난의 길임을 알았을 때 순종하기를 망설이거나 미룬 적이 있습니까? 함께 나눠 보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이 ‘당할 일’을 아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이 고난의 길임을 이미 알고 계셨음에도 묵묵히 그것을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라는 고난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시면서 조금도 흔들리거나 당황하거나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이 이처럼 당당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고난의 길을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면서도 고난 앞에서 망설이고 주저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에라도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자신 앞에 놓인 고난에 관심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사명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5. 예수님은 체포당하시면서 제자들은 놓아줄 것을 요구하십니다. 교회나 직장에서 일할 때 동역자들을 보호하며 사랑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체포당하시면서도 사랑하는 제자들을 걱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존중하셨으며 사람들을 깊이 배려하셨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희망을 주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 방향이며, 핵심입니다. 교회에는 사명이라는 명목 아래 희생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건강한 사역은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살아나며 회복하게 됩니다. 사역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지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역을 하기 원한다면 동역하는 사람들을 돌보신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의 안전보다 제자들의 안전을 먼저 걱정하고 배려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제자들을 이용하거나 부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셨고 존중해 주셨습니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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