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레미야 28장 1절~11절]
1절 -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 기브온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2절 -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3절 -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4절 -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5절 -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선지자 하나냐에게 말하니라
6절 -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니라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가 예언한 말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되돌려 오시기를 원하노라
7절 - 그러나 너는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잘 들으라
8절 - 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9절 -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 받게 되리라
10절 - 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고
11절 - 모든 백성 앞에서 하나냐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

1. 선지자 하나냐가 한 예언의 요지는 무엇입니까?(2~4절)
바벨론 사람들이 약탈한 성전의 모든 기구들과 여고냐(여호야긴 왕), 포로가 되어 끌려간 사람들이 유다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여호야긴 왕(여고냐)과 많은 사람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전에서 사용하는 기물들도 약탈했습니다. 그리고 시드기야를 자기의 꼭두각시로 세워 놓은 후 돌아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다 왕국의 명맥은 유지되고 있었지만, 바벨론이 유다에 지운 멍에는 너무나도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이때 선지자 하나냐는 하나님이 유다에 지운 바벨론이라는 멍에를 꺾으시고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시며, 약탈당한 성전의 기물들을 되돌리실 때가 되었다고 예언했습니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무더운 여름날의 냉수처럼 유다 백성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치하에서 혹독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징용으로 끌려갔습니다. 귀중한 것들을 약탈당해 보았기에 유다 백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억눌린 사람들에게 멍에를 꺾어 주시겠다는 메시지는 오랫동안 기다리던 귀한 것이었습니다.

2. 유다의 멸망을 예언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지만, 예레미야가 진정으로 간절히 바랐던 것은 무엇입니까?(6절)
하나냐가 하나님이 유다의 멍에를 꺾으실 것이라는 예언을 하자 예레미야는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라고 기원합니다. 비록 망국을 예언했지만 그도 간절히 유다의 회복을 기다렸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그는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그렇기에 그 역시 유다 왕궁이 바벨론의 압제에서 벗어나길 소망했습니다. 하나냐의 예언대로 바벨론이 지운 멍에가 꺾이고 포로들이 귀환하며 성전의 기물들이 돌아오길 진정으로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이와는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죄 많은 유다를 심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타락과 우상숭배, 하나님을 떠난 삶을 징벌하시기로 하나님은 이미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바벨론을 채찍으로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냐의 예언은 유다 백성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냐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바람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였습니다. 반대로 참된 선지자였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기에 하나냐의 거짓 예언이 참이 되길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는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그것을 전해야 하는 것이 예레미야의 큰 아픔이었습니다.

3.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인지 아닌지 알게 되는 시점은 언제입니까?(9절)
예레미야는 하나냐가 바벨론이 지운 멍에가 꺾일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후 그에게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루어지지 않는 말씀이라면 우리는 그분을 믿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성취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대언하는 사람이 예언자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면, 그의 말은 반드시 성취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냐는 포로 되었던 유다 백성이 돌아올 것이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가 진짜 하나님의 종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가 전한 메시지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듣기 좋은 내용의 메시지라고 하더라도 성취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가짜요, 그 말을 전한 사람도 가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냐의 메시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그가 전한 말이 거짓임이 확증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말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정죄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4. 하나냐의 예언과 예레미야의 예언 중 사람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는 예언은 누구의 예언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냐는 하나님이 그들의 멍에를 꺾으시고 포로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의 기물들도 원래 자리에 놓이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언을 들은 유다 백성의 가슴이 얼마나 뛰었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헤어졌던 가족을 다시 만날 것이며, 거룩한 성전 기물이 돌아옴으로 민족적 자존심도 회복될 것입니다. 하나냐의 예언은 유다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면에 예레미야의 예언은 유다 백성의 귀를 자극했습니다. 정말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나라가 멸망하여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이라는 예언, 남아 있는 예루살렘마저 폐허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기뻐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의 예언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감정을 자극했습니다. 만약 이 두 메시지를 앞에 놓고 어떤 예언을 선포하겠냐고 묻는다면 세상의 모든 예언자들이 하나냐의 예언을 선택할 것입니다. 듣는 이들이 기뻐하고 환영할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많은 예언자가 갈등합니다. 사람들의 박수를 받을 것인가,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전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참 예언자인 이유는 그가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5. 하나냐의 예언이 말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까?
하나냐의 예언은 듣는 이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기를 추구하는 거짓 예언자일 뿐이었습니다. 그가 전한 말씀은 유다 백성이 모두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도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말이나 바람이 현실로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이를 충족시키는 조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냐의 예언대로 백성과 성전 기물이 돌아오려면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의 멍에를 꺾으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제멋대로 살면서 그렇게 되길 바라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시드기야 왕이 통치하던 당시의 유다 백성이 살아가는 모습과 행동은 하나님이 은혜를 허락하시기에 너무나도 죄악된 모습이었습니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요, 바람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시도록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냐의 예언처럼 되기 위해서는 모든 유다 백성의 회개와 변화된 삶이 필요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모두 말뿐이었습니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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