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할례(Circumcision)
할례란 남자 아이가 태어난지 팔일만에 생식기의 껍데기를 끊어내는 의식이다.

1) 구약의 할례
① 의식 : 할례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창17:10-14에서 발견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가정의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명령하셨다. 여기서 할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아브라함과 맺는 방법의 하나라고 설명되고 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들은 이 법을 힘써 지켰다. 심지어 안식일에 할례의 날짜가 해당되더라도 실행할 정도였다. 후기 유대 사회에서는 '모헬'이라는 공적인 직책을 가진 사람이 이 의식을 집행하였다.
② 의의 : 고대 근동 지방에서 할례를 실시한 민족이 이스라엘만은 아니었다. 이집트나 미디안, 암몬 등의 족속들 가운데서 할례는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그러나 이런 이방 민족의 할례는 단순히 입문식이나 성년식의 다양한 부분들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이방인들의 할례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의 상징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또한 이스라엘 자손의 영적, 육체적인 계속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출애굽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마음의 할례를 권고 하였다(신10:16). 또한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같은 선지자들도 마음의 할례를 강조하였다(렘4:4 ; 겔44:7).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한 이행을 강조한 것을 말한다.

2) 신약의 할례
신약에 와서 할례라는 단어는 세 가지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첫째.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 개종자들이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함으로 안디옥에서 다툼이 일어났다(행15:2). 이 문제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이방인 개종자들은 다시 할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해결되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로 문제를 삼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갈5:2 ; 갈6:15).
둘째, 바울은 할례를 영적인 차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다(롬2:28,29). 육체적인 할례는 모세의 율법에 대한 완전한 준수가 없으면 효력이 없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롬2:25). 아브라함을 예로 들면서 아브라함의 의가 할례에 의존하지 않고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롬4:1-2).
셋째, 바울은 할례를 옛 언약으로써 묘사하며 장차 올 새 언약의 상징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2. 칭의(Justification)

1) 칭의사상
칭의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뜻이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과 의를 얻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 율법의 행위를 포기한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값없이 의롭다 하시는 것이 복음이라고 가르쳤다. 인간 본성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 문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가 그에 대한 해결책이 된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 있는 의를 객관적으로 주실 때 사람이 그것을 주관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언제나 율법의 완성이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하심과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 안에 계시는 성령의 생명에 의해 이루어진다.

2) 구약에 근거한 바울의 칭의사상
바울은 그리스도 사건을 본질적으로 칭의사상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 근거는 구약에서 찾았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아브라함의 모습은 주로 창15:6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신칭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기본적인 본문은 합2:4이다. 하박국에 나타나는 칭의의 개념은 개인적인 의를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충성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 공의를 베푸심에 있어 의로운 판단을 하심으로써 의를 성취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 시편에서 반복되고 있는 사상이다. 이 사상은 자주 인간의 의를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중요한 접촉점을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의 백성을 위해, 그리고 그분의 백성 안에서 의를 세우시기 위해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3) 바울 이후의 사람들
이신칭의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은 루터와 칼빈 등에 의해서 종교개혁의 신학적인 근거가 되었다. 특히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와 '오직 은혜로'를 역설했던 루터의 주장과 선택에 관한 개혁자들의 가르침에 의해 강조되었다. 그러나 일부학자들은 이런 개혁자들의 성향을 반대해서 이신칭의가 바울 신학의 중심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사실에 기초해서 바울이 이것을 주장했듯이 율법과 관련해서 논의될 때에 비로소 그 의미가 완전히 드러난다.
칭의는 두 서신 모두에서 논의되고 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은 민족적인 혈통을 따지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데 있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동등하다(롬3:29,30).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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