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빌립보
빌립보는 마게도냐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한 성읍이다. 빌립보의 위치를 보면, 동으로는 네스토스강, 서(西)로는 스트리몬강, 북으로는 발칸 고지대, 남으로는 심볼론 해변과 접하고 있다. 빌립보의 성은 오르벨로스의 구릉지역에 있으며, 빌립보 성읍은 그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당시 빌립보 성읍은 아시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관계로 무역과 교통의 요지였다. 또한 군사 도로로도 이용되었다.
원래 이 지역의 토착민들은 타소스 섬에서 이주하여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B.C.361년에 아테네의 웅변가 칼리스트라투스가 이곳에 도망하여 정착했다는 설도 있다. 원래 이곳의 지명은 크레니데스라고 했는데 아마 이것은 샘물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게도냐의 필립2세때 이 지역을 확장하고 빌립보로 개칭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B.C.335년 트라키아로 진군할때 이곳을 지나갔다고 아리안은 진술하고 있다. 로마의 파울루스(L.Aemilius Paulus)에 의해 마게도냐를 4개의 구역으로 분할할때 빌립보는 제1구역에 속하게 되었다. 또한 카이사르의 암살자인 카시우스와 부르투스를 B.C.42년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와 옥타비아누스가 쳐부순 곳도 이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안토니우스는 일부 병사들을 이곳에 정착케 한 후 루푸스(.Q.Paquius Rufus)로 하여금 이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다. 루푸스는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콜로니아 빅트릭스 필리펜시움(Colonia Victrix Philippensium)이라고 개칭하였다.
B.C.30년에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격파한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의 군사들에게 추방령을 내리는 대신에 이곳에 정착하도록 허가 했다. 이후 콜로니아 율리아 필리펜시스(Colonia Julia Philippensis)로 부르다가 다시 B.C.27년 콜로니아 아우구스타율리아 필리펜시스(Colonia Augusta Julia Philippensis)라고 개칭하였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이 지역의 원주민들은 트라키아인, 칼리스트라투스인 이었으나 이후 희랍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빌립보가 로마의 지배하에 있다보니 종교 역시 복합종교가 성행하게 되었다. 즉 이집트의 이시스, 로마의 황제 숭배, 흐가바의 아테나, 트라키아의 신 리베르 파테르 등 다양한 신을 숭배하였다.
2. 본 서의 편집 문제
19세기 이후부터 본 서의 편집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특히 3장의 머리에 나오는 어투와 내용이 급변하는 것을 지적하여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본 서가 별개의 두서신으로 편집되었다는 사실로 해명되고 있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빌3:1에 보이는 경고는 앞의 두장에 나타난 어조와 확연히 다르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러한 경고가 다른 부분의 상황과는 다른 분위기에서 돌출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의 다른 서신 중에서도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주고있다. 즉 고전15:58, 살전2:15 이하, 롬16:17-20을 들수 있다. 빌3:1의 급격한 변화는 엄밀하게 분석하면 그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1:28의 내용이 준비가 되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부분이다. 라이투푸트의 제안에 따라 바울이 본 서신서를 써내려가다가 무엇인가에 의해 방해를 받은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성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추론은 어느 정도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아마도 바울이 편지를 쓰고있는 동안에 다른 지역에서 적대자들에 대한 행위의 보고를 들은데서 기인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떠하든지 이 구절이 비평가들로 하여금 본 서의 편집설을 주장하게된 근거가 되었다.
베어(Beare)는 본 서를 세개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는 빌4:10-20은 감사에 대한 편지, 빌1:1-3:1, 빌4:2-9,21-23은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낸 편지, 빌3:2-4:1,10-20은 하나의 독립된 부분으로 보고 있다. 사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여러 편지를 보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본 서가 편집되었다는 설은 신비성이 결여된 것이다.
3. 본 서의 나타난 특별한 문제들
빌2:5-11에 관한 많은 논쟁이 제기되었다. 오늘날에는 초기 찬송가 구절 아니면 기독교 신앙 고백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학설은 로마이어, 베어, 마딘 등에 의해 주장되어 지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미리쓰여진 바울의 서신 중의 일부임이 틀림없다.
또하나는 빌1:1절에 나오는 감독과 집사 문제이다. 그러나 이 서신이 쓰여지기전 이미 감독과 집사의 직분은 있었다. 그리고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4:1)에 나오는 '나'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까지도 명쾌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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