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11절)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 겸손, 기쁨 - 빌립보 교회로부터 사랑이 넘치는 선물을 받은 바울 사도가 화답의 의미로 기록한 본 서신은 바울 서신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형식으로 쓰였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주제가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 그것은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 간의 사랑의 '교제'이고, '겸손'에 대한 권면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넘쳐나는 '기쁨'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도, 그리고 빌립보 교회가 모두 한 몸이요 한 지체라는 하나의 주제로 귀결된다. 한편, 본문은 본 서신의 서론 부분으로 바울 사도의 일상적인 인사(1, 2절)와 감사와 간구의 기도(3~11절)로 이루어져 있으며,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도리어 성도들의 평안과 영적 진보를 희구하는 참다운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
[1~2절]
바울은 다른 모든 서신에서는 자신의 사도직<살후 서론, 서신서의 인사말과 사도권의 주장>을 밝혔으나 본서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빌립보 교회에는 아무도 바울의 사도직을 의심하는 자들이 없었거나 아니면 개인적인 성격이 강한 서신이므로 굳이 공적인 직분을 밝힐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자신의 직분과 관련하여 밝힌 종이라는 말은 그의 몸과 마음을 모두 그리스도께 바쳤으며 이제는 온전히 그분만을 위해 봉사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이다. 감독들과 집사들은 신약 시대의 지역 교회에 있었던 주요 직분이었다(딤전 3:1~13)<엡 4:11~12, 교회의 직분>.
(3~11절)
감사와 기도 -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제외한 다른 모든 서신서에서 감사와 간구의 기도로 시작한다(고전 1:4; 엡 1:15~16). 본 서신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감사(3~8절)와 간구(9~11절)로써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감사가 우리 생활의 습관이 되어야 하며, 모든 일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며, 이러한 감사는 의무이기 이전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귀한 영적 교훈을 준다<룻 서론, 감사의 요소와 의무>.
[3절]
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회심과 소명,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의 경험 등에 관한 바울 자신의 독특한 신앙 체험을 상기시킨다(행 9:1~9). 모든 성도들 또한 엘리야의 하나님 혹은 바울의 하나님이 곧 자신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왕하 2:14).
[5절]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 이는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전도 사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빌립보 성도들은 주로 물질로 바울의 사역에 동창했다. 그들은 바울의 첫 방문 때부터(행 16:15)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그때까지 지속적으로 동참하였다(4:16; 고후 11:9). 여기서 빌립보 교회의 교제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바 그들의 교제는 복음을 촉진시키는 교제였으며, 자발적인 교제였고, 세상적인 교제와는 다른 성격의 교제이며, 일시적, 즉흥적이 아닌 지속적인 교제였다.
[6절]
하나님의 구원과 성도의 견인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구절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 이 말이 신약에서는 다소 변형된 모습으로 여섯 번 언급되어 있다(1:10; 2:16; 고전 1:8; 고전 5:5; 고후 1:14). 이것은 '주의 날'(살전 5:2)이나 '여호와의 날'(암 5:18~20)과 비슷한 표현이긴 하나, 구약의 표현은 심판에 강조를 두고 있는데 비하여 이 표현은 성도의 소망과 구원에 강조점을 둔 듯한 느낌을 준다<욜 서론, 여호와의 날>.
[7절]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여기서 말하는 '마음'은 감정과 의지를 포함하는 전인격을 일컫는 표현으로,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얼마나 진솔하게 사랑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9절]
사랑이 교회의 필수적 요소이긴 하지만 단순히 맹목적 열정의 표출이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영적 판단력과 도덕적 분별력을 겸비해야만 한다<요일 서론, 성경에 나타난 사랑의 이해>.
[11절]
의의 열매. 이것은 율법에 형식적으로 복종할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 올바른 관계가 맺어질때 산출되는 성령의 열매들이다(갈 5:22~23).
(12~30절)

바울의 소신 - 본문은 본론의 서두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바울의 투옥을 염려하는 빌립보 교인들을 안심시키고 위로하기 위하여 옥중 생활의 경험을 간증한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최대 소원은 복음의 확장이며 이를 위해서는 기꺼이 죽을 수 있다는 소신을 피력함으로써 빌립보 교인들에게 더욱 담대하고 철저하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을 권면한다. 이러한 바울의 간증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과 생각과 목표와 소원이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데 있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롬 14:7, 8).

[12~13절]

당시 로마에는 천 명을 단위로 한 아홉 개의 보병대로 구성된 궁정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임무 중의 하나가 죄수들을 감시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윤번제로 돌아가면서 죄수들을 감시하였는데 그 감시 방법이 독특해 죄수와 간수를 같은 사슬에 묶어 두었던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2년간의 옥중 생활 동안 많은 간수들에게 복음을 증언할 수 있었을 것이다(행 28:20; 엡 6:20).

[14절]

형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그들 역시 핍박 가운데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바울로 말미암아 시위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소문은 그들에게 큰 용기와 담대함을 주었을 것이다.

[15~18절]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 두 종류의 전도자가 뚜렷이 대별되어 언급되고 있다. 하나는 선한 목자이며 다른 하나는 투기와 분쟁을 일삼는 순수하지 못한 삯꾼 목자이다. 이 삯꾼 목자들은 비록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복음을 전했으나 복음의 내용만큼은 변질되지 않았던 것 같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바울이 그들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19절]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구원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감옥으로부터의 석방과 영적인 구원인데 여기서는 23절과 25절의 내용으로 보아 현재와 미래의 구원을 동시에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절]

본절은 재판의 마지막 결과를 기다리는 바울의 늠름한 모습을 보여 준다. 특히 온전히 담대하여라는 표현은 그가 하나님께 혹은 확신감 등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만약 성령의 도우심이 없다면 이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용기 있는 증언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성도들의 삶에 동행하심으로 용기와 담대함을 주시고 있음을 보여 준다.

[21절]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합된.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그의 행동의 동기와 삶의 목표 그리고 힘의 근원이셨다(고후 4:10; 고후 5:15; 갈 2:20; 골 3:4).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죽음은 곧 그 연합의 완성을 의미하므로 유익일 수밖에 없었다.

[22절]

사람이 극한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 얼마만큼 그 생활이 계속될 것인지 또한 죽음으로라야 고통이 끝날 것인지 초조해 하게 되지만 바울은 이와 정반대로 생사의 문제를 완전히 초월해 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는 어느 쪽이든 유익이었기 때문이다.

[23~24절]

바울 개인적으로 볼 때는 죽는 것이 더 좋고 성도들 편에서 볼 때는 살아 있는 것이 더 유익이었다. 이와 같은 상반되는 가치 중에서 바울은 자신보다 성도들에게 좋은 방편을 선택했다. 죽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까지 오직 형제들의 유익을 위한 편만을 따르기로 결심하는 바울에게서, 우리는 전적 헌신의 구체적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2:17).

[25절]

바울이 어떠한 연유에서 이러한 확신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추측건대 주위의 정황과 아직 남아 있는 자신의 지상 사역의 과제에 근거한 개인적인 확신일 것이다.

[27절]

일심으로는 성령 안에서 하나 됨을 뜻한다고 볼 수 있으나(엡 4:3), 이어서 나오는 '한 뜻'이라는 단어와 연관시켜 볼 때 언행 심사의 일치를 묘사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행 4:32).

[28절]

대적하는 자. 빌립보 교회의 대적자에 대해 바울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으나 아마도 빌립보 지방에 거주하던 소수의 유대인들과(행 17:5, 13) 이교도 등의 외부의 적이었던 것 같다. 빙거(憑據)의 보다 명확한 의미는 '명백한 사실에 토대한 증명'이다(고후 8:24). 바울 사도가 이 말을 한 의도는 성도들이 핍박과 고난을 자기 신분 확인의 기회로 삼도록 하며, 의인과 악인의 최종 운명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바 고난은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축복임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

[29절]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성도들에게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며, 동시에 이것은 성도들만이 누리는 축복이요 특권이다(약 1:3, 4; 벧전 1:6, 7).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고난은 신앙을 연단시키는 방편이며(욥 23:10)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히 13:12~15).

[30절]

바울이 빌립보에서 당한 고난에 대해서 빌립보 성도들은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잘 알 뿐만 아니라 현재 그가 당하고 있는 고난의 소식도 여러 경로를 통해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1:12; 2:26). 빌립보 교인들 역시 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고 있었으며 이 고난을 통해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한 '싸움'에 동참하고 있었다<엡 6:10~20, 성도의 영적 전쟁>.

 

# 해설

문안인사 (1~2절)

수신자을 한 개인이 아니라 빌립보 전교회로 밝히고 있는 본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있는(엡 1:22; 골 1:18) 세 직분, 즉 감독들, 집사들, 성도들을 두었던 신약 교회의 전형(典型)을 보여주고 있다.

사도와 성도의 애정 어린 교제 (3~11절)

빌립보 교회를 개척했던 바울의 목자적 관심을 보여 주는 본문은 현재의 감옥 생활까지 지속된 그들과의 교제에 대한 감사(3~5절), 자신의 고난 참여의 확신(6, 7절), 영성을 위한 기도(8~11절) 등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본문은 본 서신의 말미(4:14~18)에 언급되었듯이 빌립보 교인들이 선교 사역을 위한 헌금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힌 지금까지도 계속 보내 준 감동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빌립보 교회와 노사도 바울 간의 순수한 형제 사랑은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시금석이며, 또 사랑은 말과 혀 뿐만 아니라 죽음까지 서로 동참하는 실천적인 것이어야 함을 잘 보여 준다(요일 2:10; 3:16, 18; 4:20).

신앙의 관용 (12~18절)

초대 교회 내에서도 현대 교회와 마찬가지로 분쟁과 파당이 있었다. 이는 불완전한 인간이 모인 곳에는 필연적으로 있는 현상이다. 본문은 이처럼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일부 교계 인사가 그를 비방한 사실에 대한 바울의 관용적 대응이다. 그들이 오해하고 비방하면서 바울에 대한 경쟁심으로 복음을 전파한 사실은 개인적으로 보면 바울에 대한 인격 침해로서 바울이 분노해야 마땅하나, 바울은 그런 소아적(小我的) 차원을 넘어 자기를 비우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사실을 기뻐하고 있다.

신상의 용기와 소망 (19~26절)

앞 단락이 투옥된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에 대한 반응이라면 본문은 염려하는 자들에 대한 반응이다. 이러한 그의 고백은 죽으면 영광스런 최후의 상급을 받을 순교자요, 살면 사랑하는 성도에게 유익을 줄 선교 사역을 할 수 있다는, 생사를 초월한 신앙의 용기와 소망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 24~26절에서 바울은 사도로서 지속적인 사역을 희망하면서도 만약의 경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 기회를 이용하여 성도로서의 바른 자세를 다시 한번 교훈하고 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 (27~30절)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서 복음 사역에 대한 일체적 협력(27절), 담대한 신앙 고수(28절), 적극적인 고난 수용의 태도(29, 30절)등의 교훈은 그저 입으로만 내빝는 단순한 설교가 아니라 감옥에 갇힌 노사도의 절절한 음성이기에 더욱 큰 감화력을 갖는다.

 

# 핵심

1~11절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인사와 그들의 영적 성장 및 평안을 간구하는 내용이다. 또한 바울은 자신의 복음 사역을 위해 협력했던 빌립보 교회에 깊은 감사를 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써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전한다.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자신의 곤경을 염려하지 않고 도리어 성도들의 안녕을 희구하는 바울의 차원 높은 신앙 인격을 보여 준다.

건강과 부의 복음 (29절)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는 구약적 축복(건강과 부 등)을 받기도 한다(신 28장; 마 6:33). 그러나 육체적 건강과 물질적 부를 반드시 보상받는다고 하는 것은 위험한 가르침이다. 때로 병들거나 가난한 자는 믿음이 적어서 그렇다는 식으로 비판받는데, 이런 가르침을 그럴싸한 영성으로 가려진 인본주의적 물질주의일 뿐이다. 눅 12:15, 21; 딤전 6:5~11, 17, 18절 등은 이런 가르침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 묵상

그리스도 예수의 종 (1절)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란 자신의 몸과 영을 그리스도에게 바쳐 그분만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헬라어로는 '둘로스'라고 합니다. 종이라 표현한 곳은 로마서 1:1절과 디도서 1:1절인데, 이 말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절대 소유물이며 그리스도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성경 안의 복음의 표현 (5절)

성경에서는 복음을 진리의 말씀(엡 1:13), 십자가의 도(고전 1:18), 하나님의 비밀(엡 3:9), 생명의 말씀(빌 2:16), 천국 복음(마 24:14), 구원의 길(행 16:17), 아름다운 소식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사 40:9).

바울의 생사관 (20~21절)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게 한다'라는 생사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복음을 위해서는 죽음까지도 부사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믿음의 진보를 위해 전력을 쏟겠다는 의미입니다. 성도들의 삶은 죽음도, 고난도 그리스도께 속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때 이 고난은 성도에게는 구원이요, 대적에게는 멸망임을 확신하고 좌절하지 말고 담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 (27~28절)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한 뜻으로 신앙을 위해 협력하고, 대적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고난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성도들의 신앙을 연단시키며 결국에는 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어야겠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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