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21절)
이단에 대한 경고 - 지금까지 바울은 매우 부드러운 어조로 본서를 기술하여 왔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어조가 바뀌어 본서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따라서 혹자는 본서가 바울의 서로 다른 두 편지의 편집물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문맥의 전후 관계를 살펴보면 내용상의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그 견해는 신빙성이 없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과 도덕 폐기론자(쾌락주의)들을 경계하는 동시에 자신의 간증을 서술함으로써 성도들로 하여금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지고 살 것을 권면한다. 한편 본문은 율법의 근본 정신은 사랑이며 이 정신을 외면한 채 율법의 외형적 준수에만 그치는 것은 은혜의 복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며(1~9절),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은혜에 준하는 윤리적 성결의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교훈해 준다(17~21절)<고후 서론, 은혜란 무엇인가?>.
[1절]
같은 말. 전에도 여러 번 언급한 이단에 대한 경고를 여기에 다시 언급한다는 말이다<요일 41~6, 이단의 정체>. 인간 본성의 완악함과 연약함을 생각할 때, 성도는 동일한 교훈일지라도 날마다 거듭 상기함으로써 말씀의 생활화를 도모해야 마땅할 것이다.
[2절]
개. 보통 경멸, 책망, 공포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신 23:18; 삼상 17:43; 삼상 24:14; 잠 26:11). 행악하는 자들. 이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순수한 교훈을 왜곡하려는 자들의 열정과 노력을 가르킨다. 손할례당. 할례의 근본 정신을 망각한 채 율법의 외형적 준행만이 구원의 절대 조건임을 고집하는 자들을 말한다.
[3절]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할례는 내적인 것으로 사실상 거듭남,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중생을 의미한다. 외적으로 할례 받은 유대인이든 그렇지 않은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오직 성령에 의하여 내적으로 변화받은 자만이 참 할례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4~6절]
바울의 배경-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유대주의자들을 반대하는 이유가 그들을 시기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그들이 유대인의 혈통과 관습을 자랑한다면 그 역시 똑같은 자격과 신분을 지니고 있음을 알림으로써 그가 이 특권을 소유하지 못해서 유대인으로서의 특권을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사실 율법적으로 드러난 바울의 외적인 조건과 신분은 조금도 흠잡을 데가 없이 완벽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를 이루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사실<갈 서론, 이신득의 이해>을 그는 이미 체험하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유대적 우월 의식과 외형적 율법 준수로부터 과감하게 탈피할 수 있었다(갈 2:16; 갈 3:11).
[7~8절]
중생은 모든 가치관의 변화를 의미한다. 환언하면 그리스도 중심의 가치 체계가 새로이 형성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거듭나기 전에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고 신뢰하던 세상적인 것들이 무가치하고 해로운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이 체험을 하였다. 나아가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필수적으로 겪는 공통된 경험이다.
[9절]
본 구절은 '이신 칭의'에 관한 언급이다. 즉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의(義)는 율법의 준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롬 3:20~22). 다만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율법의 준행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감사의 결과요 열매이다<약 서론, 행함과 믿음>.
[10절]
바울은 부활의 권능을 체험을 통하여 알기를 원했다. 이 체험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믿는 자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신의 옛 삶을 죽이고 그리스도와 완전히 연합함을 뜻한다(롬 6:4~11). 이 체험의 연속이 끊임없이 성장하는 성화(聖化)의 과정이다(21절; 롬 8:29; 고후 3:18).
[11절]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이는 의인과 죄인 모두 부활하는 둘째 부활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믿는 자들만이 부활하는 첫째 부활을 의미한다(계 20:4~15).
[12절]
구원에는 소명에서 영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가 있으므로 회심(回心)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모두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이 특별히 이 부분을 언급하게 된 것은 아마도 빌립보 교인들 가운데 행위와 의식을 주장하는 유대주의에 반발하여 구원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하는 극단적인 완전주의자들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목적을 계속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자각시키고 있다.
[13절]
잊어버리고. 과거의 기억을 지워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이 자신의 미래와 구원에 대한 관심을 빼앗아 진보를 방해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14절]
푯대. 최종의 목표 지점을 의미한다. 특히 영적 경주에 있어서 이것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구원의 완성을 말한다. 이 푯대와 상은 의미상 거의 동일하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인간의 노력의 대상으로, 후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선물로 본 것이다.
[15절]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 완전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성숙한 성도들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 좇아가는 자이다. 만일 무슨 일에...나타내시리라. 설혹 성도들 중에 바울과 견해를 달리하는 자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을 열어 진리를 깨닫게 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시 25:14; 마 7:7; 눅 19:26).
[16절]
성도들의 신앙 수준은 다 같을 수 없으므로 자신의 신앙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든지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최선을 다해 영적 성장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히 6:11, 12).
[17절]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도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고 권면한 적이 있다. 이러한 권면은 자기를 추켜 세우는 교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 자신의 생활과 신앙 자세를 본받으라는 말이다 이러한 신령한 자부심은 뭇성도들을 영적 진보로 매진케 하는 강한 지도력을 발휘케 한다.
[18절]
십자가의 원수. 이들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바울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전후 문맥으로 볼 때 십자가의 은총을 무시한 유대주의자보다 뒤에 언급된 도덕 폐기론자로 보는 것이 좀더 바람직하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도 도덕 폐기론적 사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율법이 폐기되었으니 성도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모든 죄와 허물을 덮기에 충분하다며 죄를 합리화시키는 두 가지 사상이다.
[19절]
저희의 신은 배요. 이것은 육신적인 욕망에 빠져 절제하지 못하는 쾌락주의자들을 언급하는 말이다(롬 16:18; 고전 6:13; 유 1:11).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죄악 된 생활을 오히려 영광스럽게 여기고 자랑하는 것은 도덕 폐기론자들의 특징이다(엡 5:12).
[20~21절]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땅은 나그네 길이요 잠깐 스쳐지나가는 노정에 불과하다(히 11:13; 벧전 2:11). 그러기 때문에 성도의 소망은 본향인 하나님 나라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가 세상에 미련과 소망을 두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한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성도가 아니다(요일 2:15~17). 낮은 몸. 이것은 죄 짓기 쉬운 욕망, 죽음, 질병, 고난 등에 대해 무방비한 상태로 있는 육체를 말한다. 영광의 몸이란 그리스도의 재림 때 부활할 몸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썩지 아니할 몸'이며 '신령한 몸'이다(고전 15:42~44).
# 해설
거짓 교훈에 대한 경고 (1~16절)
앞서 2장이 전체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윤리적 자세를 강조했다면, 3장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지적, 영적, 사상적 재무장을 강조하고 있다. '종말로'라는 위기 의식을 담은 서두가 암시하듯 본장은 그 분위기가 이전과는(1, 2장) 달리 경직되어 있는바,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위협하는 두 사상, 즉 유대주의와 도덕 폐기론주의에 대해 자신의 간증을 들어 그 허구성과 무가치성을 폭로하는 한편, 푯대를 향하여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히 3:14) 잡고 신앙으로 계속 정진할 것을 촉구한다. 한편, 바울은 거짓된 가르침을 좇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의 사욕 때문임을 지적한다(딤후 4:3, 4).
두 인생의 종국(終局) (17~21절)
3장 전반부 내용(1~16절)의 결론 부분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와 거짓 교훈을 따르는 자들의 비교 대조를 위하여 바울은 땅과 하늘, 멸망과 영광 등을 대조시킨다. 여기의 다른 두 인생의 지위는 단순히 이 땅에서의 순간적 차이가 아니라 새 세상에서의 영원한 차이를 초래하는 엄청난 것이다.
# 핵심
1~21절
율법적 형식에 치중하는 율법주의자들과 육신의 쾌락을 좇는 도덕 폐기론자들을 경계하며, 위대한 천상의 소망을 가지고서 일로 매진할 것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 (6절)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었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하는데, 바울이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었을까?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다거나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는 당시의 랍비들에 의해 해석된 것과 같은 율법을 누구보다도 철저히 준수했음을 언급했을 뿐이다.
# 묵상
'이식득의' 진리 배경 (1~11절)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강하게 주장했던 이유는, 당시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던 유대의 율법주의자들, 즉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과거 율법주의자로 살았던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고백하여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고난과 부활에 동참해야 함을 알렸습니다.
바울의 이력 (4~6절)
바울은 이스라엘 사람으로,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자요,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의 교육을 받은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 교회를 핍박한 자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바울의 신앙 고백 (7~21절)
바울은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해로운 것으로,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여길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다른 것들보다 가장 고상하며(고전 1:18~25), 구원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이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신앙은 예수님을 직적 체험한 신앙이요, 위엣 것을 찾는 신앙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원수 (18~19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란 도덕 폐기론자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율법의 멍에를 벗어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참 자유를 방종의 기회로 생각하는 사람이요, 믿음으로 구속함을 얻는다는 은혜의 원리를 왜곡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육체의 정욕대로 살고 부끄러워해야 할 짓을 서슴없이 행하며, 하늘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적 가치관에 의해 움직이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생은 결국 멸망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21절)
그리스도의 재림시 성도들의 몸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형체와 같이 변화됩니다. 죽은 성도는 부활을 통해서, 살아있는 성도는 들림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의 몸으로 변화를 입게 됩니다. 이 영광의 몸은 썩지 않는 신령한 몸입니다(고전 15:42~44).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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