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해의 신앙

오네시모에 대한 바울의 언급은 은혜로 가득차 있다. 오네시모는 골로새 교인 중 한사람인 빌레몬의 종으로 있다가 도망친 노예였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노예로 취급하지 않으며 오히려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골4:9)로 여기고 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집에서 탈출하여 로마에 이르게 되었으며, 바울과 함께있는 성도들에게 받아들여지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여 주님 백성의 일원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빌레몬서를 통해서 바울이 오네시모가 용서함 받고 용납되어서 노예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한 형제로서 받아들여지기를 원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오네시모와 빌레몬 사이에 진정한 화목이 있기 전에는 그들이 결코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해 나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오네시모는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배상을 해야만 하였고, 빌레몬는 주님의 용서하심을 본받아 그를 용납해 주어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는 삶 가운데 오네시모와 같은 경험들을 수없이 해왔으며 이전에 우리는 그같은 자로 지내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빌레몬이 취해야 할 입장에 대해서도 강조해야 한다. 우리는 가끔씩 자신의 잘못을 구하고 용서를 바라는 사람들을 보게된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직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때에 우리를 통해서 용서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에게는 바울과 같은 중재자가 꼭 필요하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오네시모에 대해 언급한 말을 살펴보자. "네게 저를 돌려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 저를 내게 머물러 두어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내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저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를 인하여 저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하고"(몬1:12,13,15-17). 이와 같이 바울이 중재하는 내용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회심하였다는 확신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사랑을 몸소 나타내 보였으며, 또한 골로새 교인들도 그에게 자기처럼 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라이트푸트(Lightfoot)는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그 사람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노예로서가 아니라 형제로서 추천되었으며, 더이상 부정직하거나 불성실한 자로서가 아니라 신실한 자로 소개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멸시의 대상이 아니라 온전한 사랑의 대상으로 소개되었던 것이다. 바울의 도움으로 인하여 오네시모는 그처럼 될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성령으로 가득찬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된것이다. 인간 빌레몬의 종이었던 그가 영광스럽게도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영애를 얻게된 것이다. 더욱이 빌레몬과 오네시모는 주종 관계나 적대 관계에서 떠나 형제 관계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2. 오네시모

골4:9에 따르면 오네시모는 골로새 출신이었다. 바울의 변호의 결과로 교회의 유익한 일원이 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는 주인 빌레몬의 금품을 훔쳐 로마로 도망했다. 당시 대도시 로마는 범죄인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 회심하였다(몬1:10), 바울은 그를 사랑하여 곁에 두고 같이 있기를 바랬으나 그가 빌레몬의 노예인 이상 그를 주인에게 돌려보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화해 편지를 써서 빌레몬에게 보낸 서신이 빌레몬서이다. 낙스는 오네시모가 에베소의 감독 재직시에 바울의 서간집 수집과 발행의 책임을 맡았다고 상정함으로써 그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 오네시모는 본 서신이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강렬한 관심 때문에 빌레몬에게 보내진 이 짧은 편지가 포함되었다는 것을 보증하였다. 본 서신은 기독교회 안에서 노예 제도의 전반적인 문제에 완연하게 집중하도록 야기시킨다. 사도는 원리에서 조차 탄핵의 의미가 없다. 그는 당시에 현존하였던 상황을 다루고 있다. 그는 빌레몬이 오네시모에 대해 했던 소유권 주장은 당연한 것으로 취급하여 그 신분에 대해서는 논박하지 않은채 두었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문구 하나에서 바울은 주종 관계의 특성을 변화시킨다. 오네시모는 더이상 노예로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귀환하는 것이다. 기독교인 상전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한 형제를 당시의 등용되는 용어상의 의미로 '소유한다'는 것은 명백히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비록 현존하는 사회 질서가 정치적 혁명없이 기독교에 의해 즉각적으로 변화될 수는 없지만 기독교의 주종 관계는 변화되어서 결국 폐지되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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