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5절)
하나님의 사랑 선포 - 말라기의 여섯 설교 중 첫 번째 설교이다. 그는 이어지는 여러 설교에서 세부적인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망각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책망을 기록하였다. 즉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깊은 불신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무엇보다도 이를 먼저 불식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말라기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하나의 증거로 에서의 후손인 에돔의 비참한 운명을 기록한다. 즉 이스라엘은 에돔과 다름없는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특별한 사랑으로 지금껏 보호하셨음을 상기시켰던 것이다(신 4:37; 호 11:1). 사실 오늘날 성도들도 행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불신자보다 특별히 더 뛰어난 점을 발견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은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에 의해서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일상적 행동은 율법에 입각한 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이러한 구원의 은혜에 감동해서 움직여지는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이하에 나오는 여러 가지 말라기의 질책도 이러한 상태까지 성숙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신앙현실에 대한 고발이다.
[1절]
말라기로(히, 베야드 말라기; by the hand of Malachi)란 하나님께서 자신의 메시지를 증거할 도구로 말라기를 사용하시되 기계적이 아니라 지(知), 정(情), 의(意)를 지닌 인격체로서 사용하셨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말라기의 단순하고 효과적인 문답 형식의 문체와 그 자신의 하나님과 백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율법에 대한 뛰어난 식견 등이 본서 요소 요소에 드러나 보인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계시를 발하실 때 대부분 인간을 통해서 할 뿐 아니라 그 개인의 개성과 경험을 사용하시되 오류없이 자신의 뜻을 전달하셨다.
[2절]
사랑하였노라...사랑하셨나이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상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즉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스룹바벨 성전도 완공하였고 황폐한 환경도 복구했지만 이스라엘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인한 것임을 망각하고 오직 형식적인 종교 의식만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사랑'(히, 아하브)이란 70인역에서 헬, '아가페'로 번역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언약을 세우신 근본적인 동기가 조건없는 사랑임을 의미한다(신 7:7, 8; 신 10:15; 렘 31:3).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행위와 상관 없이 그가 모태에 있을 때부터 그에게 주셨던 선택의 사랑이고, 언약의 사랑이고, 주권적 사랑이다(창 25:23; 롬 9:7~13).
[3절]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미워하다'(히, 사네)란 선택의 사랑에 반대되는 말이다. 즉 이것은 단순한 감정적 증오심이 아니라 교리적 의미에서 유기(遺棄; reprobation)를 뜻한다. 우리는 여기서 야곱의 선택과 에서의 유기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에 의한 결과일 뿐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에서가 장자의 기업을 소홀히 여긴 망령된 행실을 저지른 것이 사실이지만(창 25:29~34; 히 12:16, 17), 야곱 역시 하나님 앞에서 많은 죄악을 범했기 때문이다. 그의 산업을...붙였느니라. 이와 같은 에돔의 멸망은 예레미야(렘 25:21), 요엘(욜 3:19), 오바댜(옵 1:5, 8, 9, 15, 16, 18)에 의해서도 이미 선포된 내용이다. 특별히 오바댜는 에돔의 멸망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은 역사상 여러 번 멸망의 위기에서 다시 재기했으나 에돔은 이스라엘과 달리 느부갓네살의 침공으로 멸망된 후 영원히 회복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역사의 배후에서 주권적으로 선택과 유기를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다.
[4절]
그들은 쌓을찌라도 나는 헐리라. 에돔의 자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멸망한 것은 하나님께서 회복을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욥 12:14; 사 22:22; 계 3:7).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돔을 저주하신 까닭은 단순히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에서 제외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에돔이 그 형제 이스라엘에게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겔 35:2~7). 특별히 에돔을 '악한 지경'이라 한 것은 하나님께서 에돔을 저주하신 까닭이 바로 그들의 악행 때문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에돔의 운명을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창 12:3)라는 말씀, 곧 택한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겠다고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말씀의 성취로 볼 수 있다.
[5절]
지경 밖에서. '밖에서'(히, 메알)는 위에서(upon), 넘어서(over, from upon)란 뜻을 지닌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지경을 에돔과 같이 버리지 않고 회복하여 그 '위에서'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또한 11절과 연관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이 이스라엘을 넘어 이방인에게 옮겨갈 신약 시대의 교회를 예언한 말씀으로도 볼 수 있다.
(1:6~2:9절)
제사장들에 대한 책망과 탄식 - 말라기의 두 번째 설교로서 형식적인 제사만을 일삼는 제사장들의 타락에 대한 책망과 하나님의 탄식이 선포되어 있다. 말라기 당시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불순종하고 거짓을 가르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흠 있는 제물과 병든 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자들이었다. 이들의 이와 같은 가증한 행위의 배후에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며 보이지 않는 것보다 현실적인 것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심성이 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사탄이 신앙이 약한 자를 총동하여 일으키는 것으로서 단순히 회피함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회복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신앙의 필요성을 이러한 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이 부분에는 흥왕하게 될 신약 교회의 모습도 예견되어 있다.
[6절]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타락한 제사장들을 책망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밝혀 준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부자(父子) 관계이다(충 4:22, 23; 신 32:6; 사 1:2; 호 11:1, 2).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부성(父性)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구체적으로 계시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공경의 대상임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임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종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렘 50:19, 하나님과 인간 관계의 비유>.
[7절]
더러운 떡. 진설병(출 25:30; 레 24:5)이나 소제의 제물인 무교병(레 2:4)을 가리킨다.
[9절]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본절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더 이상 그들 위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8절의 결론이다. 하나님은 가식적인 행위를 미워하신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취할 행동은 회개와 긍휼하심에 대한 감사이다(삼상 15:22; 시 51:16, 17; 사 1:10~17; 욜 2:12~14; 약 4:6; 벧전 5:5, 6).
[10절]
성전 문은 번제단으로 들어가는 문으로(요 10:1~3), 오직 하나뿐이다. 그런데 원문에는 복수(히, 델라타임)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겔 41:23, 24절에 나타난 것처럼 그 문이 두 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번제단으로 들어가는 그 문은 실제로 닫을 자가 없고 닫아서도 안 되는데, 제사장들은 헛된 제사만을 되풀이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증한 제사장들의 출입을 금하도록 그 문이 닫히기를 원했던 것이다.
[13절]
12절이 7절의 반복인 것과 마찬가지로 본절은 8절의 경고를 다시 강조하기 위해 반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인한 봉사는 큰 기쁨과 위로를 주지만 그것이 상실될 경우 봉사는 참으로 괴롭고 힘들다.
[14절]
서원하는 일. 5대 제사 중 화목제 가운데 하나인 서원제의 제물은 흠 없는 수컷을 드리도록 되어 있다(레 22:18~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유다인들은 흠 있는 수컷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 이는 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를 속이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했다(행 5:1~10). 하나님은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으실 수 없는 분이므로 인간은 그분에 대하여 항상 성실로 임하여야 한다.
# 해설
머리말 (1절)
성전 재건 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광이 임하지 않자 이스라엘은 여호와 신앙에 대한 심각한 회의와 율법에 대한 무시 현상을 나타내었다. 이때 부르심을 받은 말라기의 사명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지 않고 고난이 계속되는 원인이 바로 이스라엘 자신에게 있음을 밝히고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에 설 것을 촉구하는 데에 있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2~5절)
말라기의 첫 번째 예언은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지속적인 사랑을 확증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을 가능하게 했던 하나님의 통치의 섭리와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사랑을 재인식시키기 위해 이스라엘에 대한 주권적 선택과 에서와 그 후손 에돔에 대한 멸망의 예고를 대조시켜 보여 주고 있다.
제사장들의 죄 (6~14절)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도 불구하고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말라기 선지자는 먼저 백성들의 지도자인 제사장들의 병들고 흠 있는 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불경한 마음과 형식적 제사에 치중한 죄악을 고발했다(7, 8, 13절). 제사장들의 이 같은 태도는 하나님보다 제물을 더 사랑하는 데 근거한 것이다. 언약 공동체 내에서 제사장이 차지하는 역할이 중대하였으므로 그들에게 지워진 책임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눅 12:48). 한편 11절은 13, 14절과 대조되며 율법주의의 종식과 아울러 흥왕하여질 신약 교회의 모습을 예견한다(행 19:20).
# 핵심
1~5절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을 주권적으로 선택하신 실례를 들어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다.
말라기 (1절)
B.C. 5세기 말경에 활동한 것으로 짐작되는, 구약 성경의 마지막 선지자이다. 말라기는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된 지 약 1세기가 지나는 동안 안일과 형식과 타성에 젖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신앙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였다(1:3~5). 느헤미야와 동시대의 인물이다.
# 묵상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6절)
부자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부성(父性)은 이스라엘에 대한 절대적 사랑을 계시합니다(출 4:22, 23; 신 32:6). 또한 주인과 종의 관계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경외의 대상이십니다.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로서,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종으로서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제사장들의 죄악(6~14절)
그들은 합당치 못한 제물을 드렸고, 불경한 마음으로 제사를 행하고도 하나님 앞에서 전혀 죄를 깨닫지 못하며 동일한 범죄를 반복했습니다. 이와 같이 선민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제사장이 범죄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타락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서원제 (14절)
화목제 가운데 하나로서(레 7:15, 16), 제물은 흠 없는 수컷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다인들은 흠있는 수컷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를 속이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으실 수 없는 분이므로, 인간은 정직과 성실을 다하여 그분을 섬겨야 합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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