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라!
[시편 121편 1절~2절]
1절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절 -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확실히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는 나무가 삭막함을 더해 주는 겨울보다는 온갖 꽃과 잎이 돋아나 화려함을 더해가는 봄에 볼 거리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우리가 세상의 아름다움이나 세상의 크고 두려운 현실들에 시선을 빼앗겨서 진정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눈에 선한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몇 해전 부흥회를 마치고 경춘선 기차를 타고 오는데 마침 큰 폭우가 와서 홍수가 나고 개울마다 물이 범람해서 소용돌이 치며 흘러가고 있는 때였습니다. 그때 마침 창밖을 보니까 한 열살쯤된 소녀가 무섭게 흘러가는 개울물만 계속 바라보더니 그 물에 빠져 휩쓸려 떠내려가 머리가 두어번 올라왔다 들어갔다 하더니 그냥 떠내려 가는 것을 보고 매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의 눈이 세상의 물결을 바라보고 땅만 내려다 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눈을 들어서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볼 때 하나님께로부터 도움이 온다고 시편 기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땅을 내려다 보고 진흙만 바라보기 때문에 큰 문제인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영의 눈을 우러러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가 받는 도움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1.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신령한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 15)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해 갈 때 광야에서 하나님을 반역하며 범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죄에 대해서 심판을 내리셨는데 즉 진 중에 불뱀을 보내서 그 뱀들이 사람을 물어 죽게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뱀에게 물려 죽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들이 구원받을 길을 예비하사 모세로 하여금 구리 뱀을 진정으로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아 그것을 바라보는 자마다 죽음의 심판에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뱀에게 물려 죽어가던 사람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와서 그 구리뱀을 바라봄으로써 즉시 치료받고 나음을 얻었습니다.
이 사실은 사단에게 물려 죄의 독으로 죽어가는 인간이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세상과 자신만을 바라봅니다. 그리하여 '나는 다른 사람보다 의로우니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의는 하나님 앞에 더러운 걸레와 같다고 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육체가 아무도 없다(갈 2:16)고 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선행을 바라봅니다. '나는 선하고 깨끗한 생활을 하니까 나는 그리스도가 필요없어 그리스도는 사악한 죄인들을 위해서 죽었지 나는 그들과는 다르니까 나는 예수가 필요 없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다같은 죄인입니다. 큰 돌도 물에 넣으면 가라앉고, 작은 돌도 물에 넣으면 가라앉는 것같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배에 올라타지 않으면 다 심판을 받고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악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자기는 그들보다 낫기 때문에 구원받은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과 하나님의 문제이지 자신과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그 무엇이 자신을 구원해 주리라 기대하며 땅의 것들만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바라보면 구원의 소망이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그에게 맡기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찰스 스펄젼(Charles H. Spurgeon) 목사가 16살 때 그는 어느 주일날 12명 모인 조그마한 교회에 들렀습니다. 그날 아침 그 교회에는 목사님도 안계시는 데 평신도가 설교하면서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바라보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손가락으로 스펄젼 목사를 지적하면서 '이봐요 청년, 예수님을 바라보시오. 그가 당신을 구원할 것이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날 아침에 구원을 받아 훌륭한 목사가 되었고 19살 때 벌써 런던에서 큰 회중에게 설교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이 시간 즉시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 평안을 얻습니다.
사나운 파도가 몹시 이는 바다에서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무서워서 벌벌 떠는데 한 어린 소녀가 조용히 앉아 재미있게 놀고만 있습니다. 그래서 '넌 무섭지 않니!'하고 물었더니 '아뇨'라고 대답하면서 '우리 아빠가 이 배를 운행하고 계시니까요' 하더랍니다.
여러분! 인생의 파도가 당신을 때리고 당신을 곤고하게 만듭니까? 공포와 불안이 밀려 옵니까? 그러면 당신의 아버지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당신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홍수 심판 때 노아가 탄 방주는 3층이었는데 하나님은 노아에게 1층이나 2층에 창을 내라고 하시지 않고 3층 지붕 바로 밑에 내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송장이 떠다니는 시뻘건 파도를 바라보지 말라고 하는 뜻에서였습니다. 오직 위로 난 창문을 통하여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고해 바다에서 파도가 밀려올 때, 시험의 홍수가 밀려와서 두려움이 닥쳐올 때 파도를 보지 마십시오. 전능하시고 완전한 구원의 보장이 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어두운 그림자로 가득차 있습니다. 질병, 슬픔, 의심, 불만의 그림자가 있고 늙어가는 데 대한 공포, 죽음과 그 후의 문제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를 뒤덮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빛도 있는 법입니다. 당신의 눈을 참빛이 되시는 하나님께 돌리고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면 아무리 캄캄할 때에도 평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세상을 내려다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만을 우러러 보시기 바랍니다.
3. 새 힘을 얻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여러가지 시험과 유혹과 근심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연약합니다. 시편 기자는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온다'고 하나님을 우러러 보면서 새 힘과 도움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날의 필요한 힘을 약속하셨지 한꺼번에 모든 것을 준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한 날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지 일주일의 양식을 구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것은 오늘의 힘, 오늘의 양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루하루 돌보아 주십니다. 마 6:34절에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일주일 후, 일년 후의 것 때문에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불신앙의 죄입니다. 홍해 바다를 건널 때 오십 리나 백 리 밖에서 갈라지게 한 것이 아니라 그 앞에까지 온 다음 지팡이가 닿을 때에야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요단강 물은 발이 물에 닿을 때에야 비로소 갈라졌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근심하는 것의 대부분이 불필요한 과거나 미래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간순간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필요한 새 힘을 그때마다 주신다고 했습니다.
사 40:29,30절에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4. 바른 행동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우리를 위해 창조하시고 또 운행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게 될 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을 기억하게 될 때에, 자연히 우리는 '나는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첫째, 사랑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여러분,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뵙고 내려와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실을 기억하실 줄 압니다. 이런 전설이 있습니다. 삭개오가 늙어서 해가 뜰 아침이 되면 산보를 하곤 했습니다.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아침 산보를 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그의 아내가 하루는 몰래 뒤를 밟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삭개오가 바로 그 뽕나무 곁으로 가더니 물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두 팔로 그 나무를 어루만지면서 중얼거리기를 '이 나무가 내 영혼을 사랑하는 예수님께로 인도한 나무야' 하면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또한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형제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전에 어떤 사람이 돈도 많고 지식도 많은데 마음엔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고 싶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그에게 한약을 갖다 주면서 '이것으로 일곱사람만 치료해 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죽으십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 약을 가지고 죽어가는 사람 일곱명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때에 약을 갖다 준 사람이 '당신 죽을 준비가 다 되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는 '아니요, 이제 나는 인생의 참된 의미를 발견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참 의미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위로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볼 때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헌신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전에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황제에게 충성하는 한 사람을 체포했습니다. 그때 한 장교가 그를 총살하라고 명령을 내렸더니 그는 두려워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총살 당하려고 하더랍니다. 너무나 침착한 태도에 화가 나서 부하에게 '그 사람의 손에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의 N자를 낙인 찍어주고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의 첫 자인 N자를 손에 새기고 죽이려 했더니 그 사람이 도끼를 들어 그 손을 찍어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 몸에 어느 부분도 우리 황제에게 속하지 않은 것이 없노라'고 호통을 치더랍니다. 그것이 충성입니다. 헌신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과연 자신의 전체를 드려서 하나님께 헌신된 삶을 사십니까? 혹 아직도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은 부분이 여러분에게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끊어버리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충성 헌신하십시오.
셋째, 봉사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한 소년이 비가 오는 날 자기 숙모님 댁을 나오면서 우산을 쓰려고 붙잡았더니 숙모가 펄쩍 뛰면서 하는 말이 '얘야, 그건 쓰면 안돼. 우리가 그 우산을 23년 동안 간직해 오면서 한 번도 적셔본 일이 없단다. 이제 그 우산을 적시는 것은 원치 않아' 하면서 빼앗더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이와같이 묵혀만 둡니다. 재능과 힘을 하나님을 위해 쓰지 않습니다. 농 속에 숨겨둔 비단보다 마루에 쓰여지는 걸레가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무슨 봉사를 하고 있습니까?
천로역정에서 기독도가 소망이라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 나는 죄인이었습니다. 술주정뱅이요 못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하늘을 쳐다보다 내 무거운 죄의 짐이 벗겨져 나갔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내게 1,000갈론의 피가 있다면 그 피를 다 예수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를 믿고 처음 은혜를 받았을 때 바로 이런 심정이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처음의 그 감격과 감사로 주님께 한결 같이 봉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하면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한없는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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