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을 품지 말라

[에베소서 4장 25절~27절]
25절 -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절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절 -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여러 해 전에 대령이 소장을 권총으로 쏴 죽이고 재판을 받아 사형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동기는 사단장이 대대에 순찰왔다가 잘못했다고 연대장을 부하들 보는 앞에서 지휘봉으로 때리고 구두발로 걷어차고 때리자 그것을 참지 못한 연대장이 권총을 뽑아 사단장을 쏴 죽였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연대장의 심정을 이해하고 동정은 했지만 결국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일시적인 모욕과 수치를 참지 못해서 결국 남도 죽이고 자기의 생명도 잃고 말았습니다. 그 두 가정에는 얼마나 큰 불행이며 국가적으로는 또 얼마나 큰 손해입니까?
이렇게 분노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며 더욱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혈기와 분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교회의 덕을 파괴하고 거룩한 생활을 해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좌우간 분노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모든 면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며 합당치 않은 일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이런 거친 마음과 성격은 사랑과 거리가 먼 것이라고 했으며, 요 15:12절에도 "내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주님의 계명에 어긋나는 것이며, 마 5: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했는데 화를 내는 것은 온유한 마음과 배치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온유하셨습니까? 누구라도 가까이 할 수 있고 쉽게 말을 걸 수 있도록 온유하셨습니다. 화 내는 것은 예수님의 모습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살전 5:26절에는 "항상 기뻐하라"고 했는데, 분노하면서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마 5:22절에서도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된다"고 했는데 이 말씀에도 어긋나는 성품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했는데 분을 내는 것은 온전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활을 하는 데 방해가 되고 성결한 생활에 반대되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분을 내지 않으려면 단순히 참으려고만 해서는 안되고 분을 내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그 병을 먼저 치료해야 되는 것입니다. 맹장염에 걸려서 열이 나는데 근본 치료는 하지 않고 아스피린만 자꾸 먹는다고 해결이 되겠습니까? 열을 내는 것은 속에 병이 있다는 징후이지 그것 자체가 병은 아닙니다. 분노의 징후를 나타내는 근원을 알아서 치료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분노의 감정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1. 주관적인 생각을 버리십시오.
모든 일에 자기 주관을 갖고 확신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되면 자기의 주관이나 생각이 채택되지 않거나 방해를 받으면 참을 수 없어서 분을 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예수님으로 충만한 것이 아니라 자아로 가득 차 있다는 증거입니다. 즉, 분을 내는 것은 그 원인이 바로 고집센 주장과 지나친 주관성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관이나 생각이 존중을 받지 못하고 거절당하여서 타격을 받을 때는 분을 내는 대신에 주님의 은혜로 받아들이면서 "주여, 이것은 주님께서 내 주관을 깨뜨려서 겸손하게 만드는 일이오니 순종하겠습니다"하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의견이 좌절될 때 주님이 하신 일로 알고 겸손히 무릎 꿇고 기도해야지 분을 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주관과 의견을 억지로 통과시키고 밀고 나가려는 자아가 깨어지고 해결되면 분을 내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주관적인 고집과 자아는 아무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2.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교만입니다. 자기를 남보다 우월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우러러 보고 존경해 주지 않으면 화가 나서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좋게 여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모두 자기를 좋게 말해 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자기 도취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찬양을 받고 싶은 것이며, 중요한 존재, 고귀한 존재, 영적인 존재로 알아주지 않으면 모욕을 느끼고 불안해 하게 됩니다.
아이들도 똑똑하다, 예쁘다, 공부 잘한다, 혹은 재능이 뛰어나다고 칭찬만 자꾸 받으면 교만해지고 자기 도취에 빠져서 손님들이 와서 칭찬해 주지 않으면 불안해 하고 화를 내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칭찬만 듣고 존경만 받는 것보다는 멸시와 천대로 받고 수치와 모욕을 받는 것도 때로는 교만과 자기 도취의 병을 치료하는 데 유익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조롱과 비방을 받고, 시련을 받아도 '하나님, 이번에 당한 경멸과 조롱과 비방, 모욕과 저의 교만을 고쳐주시기 위한 것임을 알고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몇 년 전에 순복음 기도원에서 전국 청년 초청금식 성회가 열려서 강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수 천 명이 시간마다 은혜받고 불 받았다고 간증을 하며 우러러보니까 우쭐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방안에 있자니 답답해서 우쭐한 마음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더니 많은 학생들이 칭찬하고 우러러 보아 우쭐했는데 어떤 여학생이 '강사님은 멀리 봐야지 가까이서 보니까 별것 아니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아멘, 감사합니다. 뚝배기 같은 인간인데 내 안에 보배가 나타난 것 뿐입니다.' 사실 거룩한 단에서 설교할 때 성령님이 함께하시니까 괜찮아 보이는 것 뿐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하시옵소서 감사히 받겠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꺼이 자기를 낮추면 화낼 힘조차 없게 됩니다. 못된 성격도 제 힘을 잃게 됩니다. 자기를 너무 우월한 존재로 생각할 때 화를 내게 됩니다.

3. 나만 높아지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어떤 영역, 어떤 부문에서만은 딴 사람은 조금도 올라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자기만 높아지기를 원하는 생각 때문에 화를 내게 됩니다. 다윗이 골리앗 대장을 죽여서 승전하고 돌아왔을 때,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하는 말을 사울 왕이 듣고 불쾌하여 심히 노했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삼상 18:8절에 보면 사울 왕도 왕이 되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기만 아득한 꿈을 꾸며 자기만 인기 얻으려는 사람은 타인의 실패에는 기뻐하고 타인의 성공에는 슬퍼합니다. 질투는 세상일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일, 교회 일에도 많이 일어납니다. 자기만 높아지려는 사람은 형제의 몰락에는 기뻐하고 형제의 성공에는 못마땅해 하고 트집을 잡습니다. 이것은 가장 비열한 태도입니다. 저열한 심성입니다. 타인이 화를 당할 때, 그것을 기뻐하면 자기도 그 일을 당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파멸을 기뻐한다면 사단의 정신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단의 마음을 가졌다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다른 사람이 파멸을 당할 때 함께 짐을 져주기는 커녕 기뻐하고 좋아한다니 얼마나 야비하고 저열한 일입니까? 무엇 때문에 이런 마음이 생길까요? 자기 도취의 감정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비틀거리고 자기만이 우뚝 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남도 잘되고 높아지기를 소망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영국 어느 대학에 1, 2등을 다투는 라이벌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1등 하는 사람은 동양사람이고 2등 하는 사람은 영국 사람이었습니다. 영국 사람의 친구들이 '너는 좀더 열심히 해서 1등을 하게 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학기말 시험을 치르고 보니 또 동양학생이 1등을 하자 친구들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의아해 했습니다. 나중에 1등한 학생이 발표하기를 내가 아파서 열흘 동안 병원에 있을 때 2등 하는 학생이 늘 노트필기 한 것을 가지고 와서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는 공부 벌레가 되어서 일등은 했지만 인격으로는 저 친구의 반도 따라갈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모든 교수와 학생들이 더욱 그 영국 친구를 존경하고 우러러 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무시당하고, 나만이 높아지기를 원하는 마음을 제어해야 합니다.

4.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십시오.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모든 관심과 애정의 초점을 전부 자기에게만 둡니다. 먹고 자고 일하는 것, 심지어 교회 일하는 것까지도 모두 자기 이익만 위해서, 자기 인기만 위해서 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자애(self­love)가 손해나거나 상처를 입게 되면 불같은 분노를 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는 것이지 내가 잘나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라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조금만 손해나게 건드리면 화를 내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타인의 일에 무관심하게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타인을 위해 고통도 감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을 때에야 우리는 억울하게 손해를 보고 시달림을 받아도 불안과 동요를 느끼지 않고 화를 내지 않게 됩니다.

5. 세상 물욕에 대한 생각을 버리십시오.
이런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물질과 돈이기 때문에 모든 자아를 물질과 돈에만 둡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물건이 부서지거나 분실되면 틀림없이 화를 내게 됩니다. 자기의 것을 조금만 건드려도 화를 냅니다.
창피스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그 전에는 부흥회를 가게 되면 '이 부흥회 끝날 때가 되면 사례비를 얼마나 주려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연말 예산 세울 때도 그런 마음이 생겼으나 이제는 어디 가도 그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적게 주거나 안 주면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이 되고, 많이 주면 많이 쓰고 바칠 수 있으니 감사한 것입니다. '내 생활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이지, 사례비 좀 많이 받고 적게 받는 것에 달려있는 것이냐'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자아(self)가 깨어지고 부인하면 화를 낼 수 없게 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 당신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나 좋은 일이며 나의 못된 자아를 처리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인 줄 믿고 순종하고 받아드리나이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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