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레스의 원통형 비문
고레스의 유대인 포로귀환 허가 내용이 기록된 원통형 비문(Cyrus Cylinder)이 바벨론 성 발굴적업 도중(1879-1882) 고고학자 호르무르즈 라삼(Ho-rmuzd Rassam)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비문의 내용은 다음의 두부분으로 나눌수 있다.
① 전반부 : 고레스는 자신이 바벨론의 국가 신인 말둑(Mar-duk) 신의 소명을 받아 바벨론을 정복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② 후반부 : 고레스는 말둑 신의 명령에 의해 바벨론에 있는 모든 포로민을 고국으로 돌려보냈으며, 자기들의 신전을 건축토록 허가했고, 또 과거 포로민의 신전에서 탈취한 모든 재산도 돌려보냄으로써 말둑 신의 명령을 완수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덧붙여 말둑 신에 대한 경의 표명과 함께 포로민들의 신들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하면서 그 신들의 자기에게 축복하도록 기원했다.
2. 구약 시대의 화폐 사용
구약 시대의 화폐 발전의 단계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① 물물교환(物物交換) : 화폐가 사용되기 이전에 사람들은 주로 물물 교환을 통하여 자신이 필요한 일용품들을 구입했다. 이때 주로 교환된 품목은 양, 소, 나귀 등의 육축과 곡식, 기름, 포도주 등이었다. 당시의 종교적 행사에서 신에게 바치는 제물 중 육축을 가장 귀하게 여겼던 것도 육축이 물물 교환의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② 금속조각 사용 : 육축이나 곡식을 교환하는 방법은 가치의 변동이 심하고 번거로웠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은 금속을 이용하여 필요한 물품들을 매매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주로 사용된 것은 동(銅)이었으며, 은이나 금은 보다 큰 거래를 위해 사용되었다. 아브라함 시대부터 은이 돈으로 사용되었음을 기록(창13:2; 창24:35)하고 있는데, 이 당시에는 은으로 돈을 주조해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은덩어리를 무게로 달아 가치를 정했다.
③ 주조한 화폐의 사용 : 이상의 단계보다 더 발전된 단계는 금속의 무게와 순도를 도정으로 확인해서 사용하는 단계, 즉 주화의 사용이었다.
3. 금속 주화의 사용
이스라엘 사람들이 최초로 주조 화폐를 사용한때는 아마도 바벨론 포로귀환 이후인듯 하다. 즉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에서 통용된 '다릭'이라는 금화의 영향을 받아 비로소 돈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도 이스라엘 자체 내에서 화폐를 만들어 썼던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나 그리스의 주화를 같이 통용한 것에 불과하다. 한편 유대인의 주화 사용에 영향을 준 '디릭'은 활과 창을 가지고 있는 왕의 초상이 새겨져있는 것으로 주조 화폐의 초기 국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에스라의 회계 보고서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스8:26, 27), 은이나 금이 모두 화폐로 주조되어 통용된 것이 아니라 은이나 금 자체로써 통용되었음을 알수 있다. 유대인들이 독립적으로 화폐를 만들어 쓴 것은 B. C. 138년경 마카비 시대였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성전 주화'(Temple-coin)라 불리는 은화가 유대인들에 의해 사용되었는데, 이 은화는 성전세를 바치는데만 주로 사용되었고, 일상의 화폐는 로마의 데나리온(Denarius)이었다.
4. 고레스의 조서
바벨론 제국을 정복함으로써 근동의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한 바사(Persia) 제국의 고레스(Cyrus) 왕은 피정복민들에 대한 유화 정책을 펼쳤다. 즉 그는 앗수르나 바벨론의 왕들이 그랬던 것처럼 피정복민들의 강제 이주를 추진하기보다는 오히려 피정복민들로 하여금 각자 본토에 거주할 수 있도록 관용을 베풀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고레스의 조서에 위해 B. C. 605년 제1차 포로로 끌려간 이후 거의 70년 동안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들도 팔레스틴으로 귀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에 두차례에 걸친 유대인 귀환이 있게 되는데, 고레스의 유대인 귀환조서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라는 지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고레스의 조서 내용을 효율적인 식민 정책의 일환으로만 평가절하 하는 견해도 있지만, 이것은 확실히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시켰기 때문에 비롯된 결과였다.
비록 고레스의 관용 정책이 유대인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바사 제국의 모든 피정복민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었다 할지라도 앗수르 제국이나 바벨론 제국의 그 어떤 왕에게서도 진례를 찾아보기 힘든 종교적 관용 조치가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결국 선민 이스라엘이 영원하며, 다윗 가문이 그 위(位)를 잇게 되리라는 다윗 언약(삼하7:4-17)을 신실히 지키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의지의 발현이라 할수 있다.
결국 이 고레스의 조서로 인해 유대 백성들은 B. C. 586년에 멸망했던 국가를 50년만에 재건하게 된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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