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느헤미야서의 특징
에스라가 역대기의 속편인 것처럼 느헤미야서도 에스라의 속편이다. 그 세권 모두는 아마도 같은 저자에 의해 쓰여졌던 것 같으며, 하나의 연속적인 연대사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 역대기가 앞부분 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 책은 느헤미야에 대한 영웅적인 파란만장한 이야기와 에스라의 인도로 제2진이 도착한지 13년 만인 B.C. 444년에 포로로 잡혀있다가 돌아온 제3진의 귀환을 기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관원이었던 느헤미야는 왕에 의하여 유다의 새로운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느헤미야와 그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 바사의 수도인 수산에서 귀환한 반면에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사람들은 바벨론에 귀환하였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을때 제사장이자 서기관인 에스라는 그의 성서인 율법서를 가지고 신앙을 가르치고 있었다. 느헤미야의 주요 임무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예루살렘을 강한 도시로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바사 왕으로부터 권위를 받아서 정부 비용으로 요새를 건립하고 전에 그 성벽의 건립을 연기하게 하였던 강한 이웃들의 적의와 음모에 저항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왔다.
원래의 히브리 성서는 느헤미야서와 에스라서가 한권의 책이었다. 그것들은 원래의 히브리 성서를 헬라어 번역자들이 번역한 칠십인역에서도 한권의 책으로 되어있었고, A.D.390-405년에 번역된 제롬의 라틴어역 성서인 벌게이트(Vulgate)역이 나왔을때까지도 역시 한권의 책이었다.
2. 저자에 대한 새로운 고찰
느헤미야서의 저자는 알려져있지 않다. 유대의 전통에 의하면 역대기-에스라-느헤미야 3부작의 저자는 제사장이자 1서기관인 에스라였다고 하는데, 에스라는 모세 율법에 대한 뛰어난 작가이자 학자였으며, 자기 시대에 가장 특출한 교사이자 설교가였다. 그러나 느헤미야서는 느헤미야 자신이 썼다고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느헤미야서 가운데 자주 등장하는 1인칭 화법은 주인공 느헤미야가 본 서의 저자라는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 한다(느1:1-7:5; 느12:27-42; 느13:4-31). 뿐만 아니라 본서에 나타나는 생동감 있는 표현과 자세한 통계자료는 본 서의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본 서를 썼을 것이란 사실을 보여주는바 자료들을 참조하여 기록하였음이 확실하다(느7:5-73; 느12:1-26).
3. 역사적 배경
느헤미야가 '술 맡은 자'의 신분으로 섬겼던 아닥사스다 1세는 에스더를 왕비로 삼았던 아하수에로(Xerxes)의 아들이었다. 아닥사스다 1세가 왕위에 오르기 8년전인 B. C. 473년 3월 8일에 부림절이 제정되었다. B. C. 457년 봄에 에스라는 아닥사스다의 축복을 받으면서 유대인들의 한무리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듬해 봄까지 이방 민족들과의 결혼 풍습을 백성들 사이에서 근절시켰다.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은 에스라가 주도한 부흥 운동의 한부분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분노한 르흠과 심새는 아닥사스다에게 재건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그러자 왕은 새로운 조서를 내릴때까지 역사를 중지하도록 명했다. 이 조서를 손에쥔 르흠과 심새는 예루살렘으로 급히 올라가 성벽을 허물고 성문을 불태우면서 강제로 역사를 중지시켰다(스4:23; 느1:3). 느헤미야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 이유도 이러한 비극적인 소식 때문이었다. 느헤미야서는 B.C. 445년 12월에서 B.C. 425년까지 최소 20년동안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B. C. 425년 무렵 느헤미야는 B.C. 433년이래 자신이 자리를 비운사이 예루살렘과 각지에 퍼지기 시작한 여러가지 악습을 척결하고자 다시 귀국하였다.
4. 느헤미야 성벽 재건의 신학적 의의
이스라엘의 무너진 성전과 성벽을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통해 성전을 회복시켰으며, 에스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권위를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 느헤미야는 성을 재건하고 유다 민족의 정치·사회적인 제반 여건을 충실히 재정리하였다.
폐허가 되었던 성벽이 재건됨과 동시에 그 성은 견고해져 가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하여 인구가 점차 늘어나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불의는 하나님 말씀의 권능으로 제거되었다. 그러나 이 회복은 엄밀한 의미에서 온전한 회복이 아니었지만, 이러한 잠정적인 회복은 그리스도를 통한 완성된 삶에의 구원을 필요로 하며,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삶의 근원적 관계가 궁극적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다시말하자면 느헤미야의 개혁적 회복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나타날 공의를 지칭하는 예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느헤미야가 회복시킨 예루살렘 성벽은 장래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도래하고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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