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②
권능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를 받으시고 사탄의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신 후 갈릴리로 가셔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안식일마다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 말씀에 권위가 있어 듣는 이들이 놀랐다. 또한 온갖 병자를 고쳐 주시니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갔다. 예수님은 자신을 보내신 분이 하나님임을 선포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충성스럽게 전파하셨다.
사역의 시작 (3:1~4:13)
시험 (4:1~13)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3:21~22)은 성령 충만한 채 돌아오셔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다(히 4:15).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시험을 받고 죄를 짓느냐 마느냐는 우리 반응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마귀는 예수님을 하나님에게서 돌아서게 하려고 했다. 이것이 시험의 본질이다. 삶을 더 안락하게 만들고, 자신을 더 드러내며, 유익을 더 추구할 수 있는, 저항하기 어려운 유혹이 찾아올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있다. 이런 시험에 맞서 성경 말씀(신 8:3; 6:13, 16)으로 대응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갈릴리 사역 (4:14~9:50)
나사렛과 가버나움 회당 (4:14~44)
예수님은 갈릴리로 돌아가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회당 두 곳에서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이 기록되는데, 한 곳은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회당이고, 다른 한 곳은 가버나움 회당이다. 회당 예배에는 순서가 있다. 몇 번의 기도가 이어진 후에 구약성경 낭독이 있고 설교가 이어진다. 명망 있는 유대인 남성은 누구나 성경을 읽을 자격이 있다.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프타라(예언서)를 받으시고 설교하셨다. 선입견 때문에 예언자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예수님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시자, 화가 난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동네 밖 낭떠러지까지 끌고 갔다.
가버나움 회당에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놀라움으로 받아들이며, 귀신들이 예수님의 권능을 알아보고 쫓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열병에 걸려 죽어 가는 시몬의 장모와 수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다. 무리는 떠나지 못하시게 예수님을 만류했지만, 예수님은 다른 동네에도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떠나셨다.
제자와 병자 (5:1~39)
게네사렛 호수(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은 그물을 씻고 있는 어부들을 부르셨다. 시몬과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한편 예수님은 나병 걸린 사람과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다. 또 세리 레위도 제자로 부르셨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는 예수님을 비난하자, 주님은 자신이 죄인을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신다.
안식일 논쟁 (6:1~11)
유대교의 핵심은 안식일에 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의 파격적인 행보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다.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은 제자들을 비난하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도록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린다.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에도 선을 행하며 생명을 구해야 함을 분명히 하신다.
열두 사도 선택 (6:12~16)
예수님은 산에 가셔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후 제자 중 열둘을 택해 사도라 칭하셨다.
놀라운 가르침 (6:17~49)
예수님은 열두 사도를 이끌고 평지에 서신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 앞에서 네 가지 복과 네 가지 화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팔복을 다룬 마태복음의 산상 설교(마 5:1~12)와 비슷하다. 누가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한꺼번에 모아 놓기보다 복음서 전체에 걸쳐 고루 분배하는 데 신경을 쓴 것 같다. 하지만 두 설교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마태복음은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는데, 누가복음은 단순히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한다. 마태복음이 가난의 영적 의미를 강조한다면, 누가복음은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가난에 강조점을 둔다.
이어서 원수 사랑, 형제 사랑,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에 대한 가르침이 나온다.
예수님께 반응하는 사람들 (7:1~50)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백부장의 죽어 가는 종을 살리신다. 그 후 나인 성으로 가셔서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신다. 온 유대와 사방에 예수님의 소문이 퍼진다. 요단 강 주변에서 사역하던 세례 요한에게도 이 소문이 들린다. 요한은 제자들을 보내 예수님이 자신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맞는지 묻는다. 예수님은 병든 자가 치유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실상을 그대로 전하라고 하신다. 세례 요한은 칭찬받을 만한 자이지만 불신으로 가득한 세대에 영향을 받아 믿음이 흔들린 것이다.
한편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사랑한 여인도 있었다. 누가복음은 이 여인이 '죄를 지은 한 여자'라고 지적한다. 이여인을 귀신 들렸다가 치유된 막달라 마리아(눅 8:2)로 여기는 견해도 있지만, 평소 세부사항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누가복음의 저자가 알면서도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을 것 같지는 않다.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자기 눈물과 머리털로 닦고 향유 붓는 것을 본 바리새인은 충격을 받는다. 유대교는 남녀의 신체적 접촉을 엄격히 금하는 데다가, 여인은 죄인이었다. 저자가 그녀를 죄지은 여자라고 했을 정도면 당시 사람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근거로 정죄부터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인의 사랑과 헌신을 받아 주시고 이를 칭찬하셨으며, 여인의 믿음이 그를 구원했다고 선포하셨다.
예수님의 여제자들 (8:1~3)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복음 여정에 열두 제자외에 여성들도 함께했다고 밝힌다.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산나라는 이름도 기록되었다. 요안나는 헤롯의 청지기인 구사의 아내로, 이방인이었을 것이다. 존경받는 유대인 남자라면 이런 여인들과 결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진심으로 대하심을 알았고, 이에 깊은 섬김으로 반응했다.
계속되는 가르침과 이적과 치유 (8:4~56)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비유로 가르치시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에게 비유의 의미를 다시 설명해 주시곤 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 자신의 가족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갈릴리 마을을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셨는데, 호수를 건너시다 광풍을 만나자 잠잠하게 하셨다. 맞은편 거라사인 땅에서는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셨다. 또 혈루증 앓는 여인을 고치시고, 회장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려 주셨다.
첫 번째 제자 파송 (9:1~27)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보내셨다. 제자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어느 집에든 머물다가 떠나야 했다. 영접하지 않는 곳은 곧 떠나되 각 마을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야 했다. 헤롯 왕도 예수님에 관해 듣게 되었고, 자신이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 돌아온 게 아닌지 두려워했다.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과 함께 벳새다로 향하자 소문을 들은 무리가 따라온다. 무리는 날이 저물 때까지 먹지 못하고 말씀을 들었다.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들을 배불리 먹이셨고, 남은 조간은 열두 바구니에 거두었다. 이렇게 무리 가운데 사역이 확대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누구라 여기는지 물으신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 이에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예고하시며, 죽을 각오로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변형과 제자들의 무지 (9:28~50)
예수님은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 데리고 산에 올라가신다. 용모가 변화하신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말씀하신다.
한편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시자 큰 무리가 찾아와 귀신을 쫓아 달라고 청한다. 남아 있던 제자들이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 이미 귀신 쫓는 권능을 받았는데도 그 일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이들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앞으로 닥칠 수난을 다시 예고하셨지만, 제자들은 오히려 서로 누가 큰지를 변론한다. 또 요한은 다른 이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 쫓는 것을 금했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금하지 말라고 타이르신다.
유대 사역 (9:51~13:21)
나를 따르라 (9:51~62)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결심하시고 사마리아를 통과하신다. 이에 예루살렘과 척을 지고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다. 화가 난 제자들은 이들에게 불을 내리겠다고 나선다. 예수님은 이들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향하신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가 치러야 할 대가를 암시하는 듯하다. 제자의 삶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야 하고, 이 땅에 머리 둘 곳도 둘 수 없으며, 예수님을 따르는 우선순위로 인해 아버지의 장사나 가족과의 작별도 미뤄야 하는 삶이다. 또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에 작별을 고해야 한다. 자꾸 뒤를 돌아본다면 하나님 나라를 향해 담대한 발걸음을 뗄 수 없다.
두번째 제자 파송 (10:1~24)
예수님은 열두 제자 외에 칠십 인을 제자로 세워 보내셨다. 칠십 인에게 주신 사명은 열두 제자에게 주신 것과 비슷하지만, 그 사안이 훨씬 절박하다. 길에서 사람과 마주쳤을 때 인사도 하지 말아야 할 정도다. 이들은 성공적으로 선교를 수행했고, 이로 인해 예수님은 기뻐하시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셨다. 한편으로는 이들의 교만을 엄히 꾸짖기도 하셨다. 이 본문은 악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세상에는 사탄의 영역이 존재하지만 사탄은 하나님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을 건드리지 못한다. 그리스도인 안에는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탄과 전쟁 중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언젠가 하나님이 모든 악을 멸해 버리실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영생을 얻는 법 (10:25~42)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영생을 얻는 법을 묻는다. 예수님이 율법은 뭐라고 생각하는지 되물으시자, 율법 교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답한다. 이에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난 사람이 있었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를 피해 간다. 예수님의 이야기에서 핵심은 유대인이 미워하고 경멸하던 사마리아인이 나서서 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가장 고상한 바람인 영생을 거론하며 예수님이 사마리아인을 언급하신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어서 마르다와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자매는 주로 요한복음에 등장하고, 공관복음에는 여기에서만 나온다. 이는 우선순위에 관한 가르침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 여러 가지를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했지만, 예수님이 원하신 것은 단순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한다면서 수많은 일을 만들어 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주님이 무엇보다 기뻐하시는 것은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기도하는 법 (11:1~13)
유대교에서 기도란, 랍비가 가르쳐 준 대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행위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예수님께 묻는다. 이에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가 '주기도문'으로 알려진 내용이다.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은 마태복음보다 짧고 간단하다. 이어서 예수님은 인내하며 절실히 간구하는 기도에 관한 예를 드신다. 간절히 바라고 구하는 자가 하나님의 응답을 얻어 낼 것이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 (11:14~54)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을 보고, 이것은 귀신 왕의 힘을 빌려 행하신 거라며 비방하는 자들이 있었다. 사탄과 분쟁하는 이가 같은 편일 수 없으니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사탄은 절대로 순순히 자기 세력을 내주는 존재가 아니므로 예수님이 사탄을 제압하신다는 것은 그보다 강하시다는 증거다. 이때 한 여자가 예수님을 낳고 키운 태와 젖이 복 있다고 외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 있다고 하신다.
이어서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세대에게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요나의 전도에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보다 크신 이의 말씀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는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다. 한편 예수님이 식사하시기 전에 손을 씻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자들도 있었다. 예수님은 겉은 깨끗이 하면서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한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비판하셨다. 또 자신들도 지지 못할 어려운 율법의 짐을 사람들에게 지우는 율법 교사들을 비판하신다. 이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몰려들어 어떻게든 책잡고자 예수님께 여러 일을 따져 묻기 시작한다.
누가복음 길라잡이 ①
나라 잃은 백성에게 주는 회복의 메시지 - 신현우 총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누가복음은 나라 잃은 백성이 한 맺힌 회복의 소망을 품고 있을 때 메시아가 찾아와 구원하신 이야기다. 마리아의 찬양은 이런 애절한 소망을 전해 준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눅 1:47~48). 여기서 '비천함'은 마리아의 개인적 비천함이 아닌, 나라 잃은 백성의 '비천함'을 가리킨다. 이러한 비천함은 이사야서를 배경으로 이해해야 한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사 40:1~2).
마리아가 언급한 비참함은 로마 제국에 주권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유대 민족의 비참함이다. 로마 제국의 손에 분봉 왕들과 대제사장들이 세워지고, 모든 유대인이 1년에 1데나리온을 로마에 조공세로 내는 수모를 겪고, 로마 총독에게 감독을 받는 비참함이다. 이것은 국토 대부분이 헤롯 가문에 넘어가고, 그나마 남은 것은 대제사장들과 예루살렘에 있는 산헤드린 의원들을 비롯한 귀족들이 가져가고, 대부분의 서민은 춥고 배고프게 살아야 하는 비참함이다.
이렇게 비참한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마리아는 찬양한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눅 1:51~53). 나라 잃은 백성의 입장에서 이 노래는 민족 해방의 소망을 담은 독립 찬가다.
여기서 '팔'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하나님의 팔을 연상시킨다.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신 26:8). 마리아는 하나님의 팔을 언급하며 과거에 조상들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같이 자신들로 로마로부터 해방될 것을 소망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그분의 팔로 내리치시는 대상인 '교만한 자', '권세 있는 자', '부자'는 로마를 가리킨다. 이러한 해석은 마리아 찬가의 이어지는 문맥이 지지해 준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눅 1:54). 여기서 '이스라엘'은 앞에 언급된 '비천한 자'(비참한 자), '주리는 자'에 해당하는 자가 누구인지 밝힘으로써 이와 대조되는 '부자'는 로마임을 알려 준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의 예언도 유사하다. 그는 유대인의 주권 회복을 기대한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눅 1:68). 여기서 '속량'은 나라를 회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해석은 이어지는 사가랴의 예언 속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눅 1:71).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눅 1:74). 여기서 '원수'는 민족의 원수인 로마가 된다. 이 예언에서 구원받는 대상이 이스라엘 백성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방의 기대를 가진 백성에게 메시아가 오셨고 그들을 해방하셨다. 그런데 그것은 로마 제국으로부터가 아니라 사탄 왕국으로부터의 해방이었고,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기대한 해방보다 더 크고 위대한 해방이었지만, 나라 잃은 백성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여전히 유대인의 나라를 회복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행 1:6). 나라 잃은 백성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유대 민족이 주권을 회복하는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라 잃은 백성의 절망과 소망 속에 복음의 씨앗은 뿌려졌고 열매를 맺었다. 오늘날도 복음은 세상에서 버림받고 상처받고 짓눌린 사람들에게 소망이 된다. 그들은 겸손히 복음을 받아들이고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교만하고 부유한 자들에게 복음은 종종 거부당한다. 그들이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못 맺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심판이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어도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면 무한한 낭패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비참한 백성을 돌보신다. 그들은 세상에서 잃은 나라가 회복되기를 기대하지만, 하나님은 더 크고 위대한 나라를 그들에게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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