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③
예루살렘을 향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얻은 명성과 인기를 뒤로하고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신다. 구원이 좁은 문을 통과하는 자들에게 허락된 것처럼, 예수님의 사역은 예루살렘의 고난을 통과해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요단 강을 따라 사마리아를 지나 여리고에 이르는 여정에서도 예수님은 쉼 없이 사람들을 고치시고 가르치시며 복음을 선포하신다.
유대 사역 (9:51~13:21)
예수님의 경고 (12:1~5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주신다. 먼저, 사람에 대한 경고다(1~12절). 바리새인의 외식을 주의해야 한다. 언젠가 모든 게 드러날 것이다. 제자들을 죽이려 드는 자들이 있겠지만 하나님이 보호하시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면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을 것이다. 사람 앞에 끌려갈 때 성령께서 할 말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둘째, 탐심에 대한 경고다(13~34절). 무리 중에 형제와 재산을 다투는 자가 와서 중재를 요청하자, 예수님은 자신이 그들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또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한 자는 헛되다고 지적하신다. 우리의 염려는 믿음이 부족해서 생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나라를 먼저 구하면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채워 주실 것이다.
셋째,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언제나 깨어 있으라고 경고하신다(35~53절). 예수님은 이것이 사명을 맡은 모든 종의 자세라고 밝히신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세상을 화평이 아니라 분쟁에 돌입했다. 인간의 죄악 된 본성과 복음의 진리가 투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시대를 분별하며 화해하기를 힘쓰라고 하신다.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 제자의 삶이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길에서'(58절) 화해할 때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수직적인 관계에서도 영원한 심판에 이르기 전에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 지혜다.
회개의 촉구 (13:1~21)
예수님은 회개의 필요성과 관련해 두 가지 국가적 재난을 언급하신다.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과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열여덟 명이 죽은 사건이다. 이들이 더 큰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이 아니다. 재앙이 닥치는 이유는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해서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처럼 좀처럼 회개하지 않는 백성에게도 회개의 기회는 주어질 것이다. 예수님이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느라 꼬부라진 여자를 고쳐 주시자,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며 분을 낸다. 이에 예수님은 그를 '외식하는 자'라고 부르시며 책망하신다. 또 무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실체는 겨자씨 한 알이나 가루 속 누룩과 같다고 가르치신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13:22~19:27)
좁은 문과 예루살렘 (13:22~35)
한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는 예수님께 구원받는 사람이 적은지를 질문하자,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라고 명하신다. 구원이 전혀 다른 차원,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얻는 것임을 일깨우신 것이다. 이 은혜에는 시간적 제약이 있다. 한편 바리새인들이 나아와 예수님께 헤롯의 음모를 알리며 몸을 피하시라고 알린다. 예수님은 동요하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에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 암시하신다. 이어서 선지자와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며 반역하는 악한 도성을 위해 한탄하신다.
예수님 시대 각 계층과 예수님과의 견해 비교
계층 | 특징 | 예수님과 같은 점 | 예수님과 다른 점 |
바리새인 | 유대의 전승과 율법을 가장 엄격하게 지킴. | 율법을 준수함. 부활을 믿음. 하나님 뜻에 순종함. | 그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고, 부정하다 여기는 자들과 사귀기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음. |
사두개인 | 부유함, 상류 계층, 제사장 그룹. 모세 오경 외의 성경을 인정안 함. | 모세 오경을 존중하고 성전의 신성함을 인정함. | 부활을 부인함. 성전에서 장사할 수 있다고 생각함. |
서기관 | 직업적 율법 해석자. 율법을 해석할 때 전통을 중시함. | 율법을 중시하고 하나님께 복종함. | 예수님의 율법 해석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음.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음. |
열심당 | 로마 압제에 대항하는 애국 무장 독립투사. | 이스라엘의 장래를 걱정함. 메시아를 믿음. | 메시아는 유대를 정치적으로 해방시켜 줄 자라고 여김. |
에세네마 | 정결 의식과 거룩함을 강조하는 은둔자. | 정의, 정직, 헌신을 강조함. | 정결 의식이 그들을 거룩하게 한다고 믿음. |
출처 : 「통 큰 통독」주해홍(두란노, 2012)
안식일에 바리새인에게 주신 교훈 (14:1~24)
안식일에 바리새인 지도자가 예수님을 식탁에 청한다. 끊임없는 염탐과 책잡기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수종병 환자가 있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이 합당하냐고 예수님이 물으시자 아무도 답하지 못한다.
상석에 앉아 위세를 과시하려는 명예욕을 피하라고 예수님은 경고하신다. 당시 바리새인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서로 상석에 앉으려는 탐색전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예수님은 이를 보시고 겸손하게 상석 대신 말석에 앉고, 부유한 이웃 대신 소외된 사람들을 초대하며, 하나님 나라에 청함을 받았다면 지체하지 말라고 교훈하신다.
제자가 되는 길 (14:25~35)
진정한 제자는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망대를 세우거나 전쟁에 나갈 때 미리 계산해야 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도 무엇을 버리고 따를 것인지 계산해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다가 중단한 제자라면 아무 쓸 데가 없다.
잃은 자에 관한 비유들 (15:1~32)
사람들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는데, 이는 권위 있다고 인정받은 교사를 뜻한다. 예수님은 비유들을 통해 질문을 유도하며 토론을 이끄셨고, 이론을 나열하는 대신 삶으로 말씀을 보여 주시며 변화된 반응을 요구하셨다. 그 말씀은 자주 논란을 야기했고, 생각지도 못한 관점을 갖게 했으며,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주셨다.
예수님은 모여드는 세리와 죄인들에 관해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겨냥해 세 가지 비유를 들려주신다. 첫째, 100마리 양 중 1마리를 잃고 최선을 다해 그 양을 찾아온 목자 이야기다. 둘째, 10드라크마 중 1드라크마를 잃고 이를 찾기 위해 온 집을 뒤진 여자 이야기다. 셋째, 재산을 낭비하고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 이야기다. 아버지는 배은망덕한 둘째 아들을 내내 기다렸고 마침내 아들이 돌아오자 뛰어나가 맞는다. 그런데 맏아들은 동생을 반기지 않고 불만을 터트린다. 창녀나 세리와 어울리는 예수님을 비난하는 바리새인처럼, 맏아들은 죄인이 하나님 나라에 마땅하지 않다고 믿었다. 아버지의 해명과 타이름에도 불구하고 맏아들이 마음을 돌이켰다는 내용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불의한 청지기와 부자 비유 (16:1~31)
예수님은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통해 불의한 재물도 지혜롭게 사용하라고 당부하신다.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해서 섬길 수 없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기에 이 교훈을 비웃었다.
또 예수님은 율법의 한 획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를 드신다. 한 부자가 죽은 뒤 음부에서 고통당하던 중, 죽어서 아브라함과 함께 있는 나사로를 본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구원을 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는 생전에 좋은 것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부자는 살아 있는 자기 형제들에게 나사로를 보내 음부를 피하도록 증언하게 해 달라고 청하지만, 아브라함은 이 또한 거절한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않는 자들은 죽은 자가 살아온다 해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 (17:1~18:34)
예수님은 먼저 제자는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할 행실을 피하고 용서할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믿음을 더해 달라고 청한다. 이에 예수님은 믿음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임을 상기시키시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나무를 바다에 옮겨 심기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둘째,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나병환자 10명을 고치신 일이 있는데 이 중 오직 사마리아 사람 한 명만 돌아와 감사를 표했다. 셋째, 하나님 나라로 인한 고난을 견뎌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어느 때 임하는지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실체라고 답하신다. 또 제자들에게는 이를 위해 먼저 고난을 받게 된다고 경고하신다. 노아의 때, 롯의 때와 같이 인자가 오시면 세상은 심판을 받을 것이고 사람들 중 일부만 생명을 보전하게 될 것이다. 넷째, 기도의 자세에 대해서는 끈질긴 과부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한 과부가 원한을 풀어 달라고 재판장에게 자꾸 조른다면, 불의한 재판장조차 괴롭힘받지 않기 위해 이를 들어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밤낮 부르짖는 자들의 원한을 반드시 풀어 주신다. 다섯째, 제자는 자기 의에 가득 찬 종교인이 아니라 회개하는 죄인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세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여섯째, 하나님 나라는 어린아이의 것이다. 일곱째, 영생을 얻으려면 가난한 자에게 자기 소유를 나눠 주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는 하나님 나라에 가기가 어렵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희생한 것이 있는 자들은 현세는 물론 내세에도 보상이 따를 것이다. 끝으로 예수님은 열두 제자와 함께 예루살렘에 오르시며 희롱과 능욕과 침 뱉음과 채찍질과 죽음을 당하시나 3일 만에 살아나실 것이라고 예고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깨닫지 못한다.
여리고에서 (18:35~19:27)
예수님이 여리고에 들어가실 때 한 맹인이 소리친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탄원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응답하신다. 예수님이 여리고에서 만나신 두 번째 인물은 세리장 삭개오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다. 자신을 부르신 예수님께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다른 사람 것을 속여서 빼앗은 것은 네 갑절로 갚겠다고 다짐한다. 삭개오의 집에 머물고자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은 수군거렸지만, 예수님은 이날 삭개오와 그의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신다.
이어서 10므나 비유가 나온다. 타국으로 떠나는 주인이 종 10명에게 1므나씩 주며 장사하라고 했다. 주인이 돌아와 보니 10므나와 5므나를 남긴 종들이 있었던 반면, 그대로 한 므나를 수건에 싸 둔 종이 있었다. 주인을 무서워해서 그랬다는 종의 변명에, 주인은 책망하며 1므나를 빼앗아 10므나 있는 자에게 준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자는 더 풍성한 열매를 얻지만, 메시아를 거절한 자는 결국 멸망에 이를 것이다.
예루살렘 사역 (19:28~23:56)
예루살렘 입성 (19:28~44)
예수님은 벳바게와 베다니에서 제자 둘을 보내 나귀 새끼를 끌고 오게 하신다. 이 나귀 새끼를 타고 감람산 내리막 길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다. 제자들은 자기 옷을 길에 펴고 온 무리가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맞이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불만을 표출한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가까이 다가가 성을 보시고 우시며, 언젠가 무너질 성의 운명을 예언하신다.
성전 정화 (19:45~48)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신다.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려면 공식 지정 판매소에서 희생 제물을 사야 했다. 또 로마 통화를 소지한 사람들이 성전세를 내려면 반드시 성전에서만 환전할 수 있었다. 상인들은 대제사장의 용인 아래 폭리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자기 배를 채우는 사기꾼들에게 보기 드물게 물리적인 행동으로 화를 내셨다. 이 사건은 성전에서의 매매 행위를 시스템화했던 사람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고, 결국 이들은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찾아 나선다.
성전에서 벌어진 논쟁 (20:1~47)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에서 왔는지 물으며 첫째 논쟁을 시작한다. 예수님이 요한의 세례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반문하시자,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이 곤란해질까봐 모른다고 물러난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포도원 농부 비유를 말씀하신다. 포도원 주인은 소출을 걷기 위해 세 번이나 종들을 보내지만 농부들은 무시한다. 이어 상속자의 말은 들으리라 기대하고 자기 아들을 보낸다. 하지만 농부들은 도리어 상속자를 죽여 버린다. 주인은 이 농부들을 진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포도원을 주기로 결정한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기에, 이 돌에 거침이 된 자들은 깨지고 흩어질 것이다. 둘째 논쟁은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 문제였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놀라운 답변을 하신다. 셋째 논쟁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의 질문으로, 한 여자가 차례로 일곱 형제와 결혼하면 부활 때는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부활 때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는다고 답하신다.
예수님은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했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느냐고 바리새인들에게 물으신다. 끝으로 예수님은 서기관을 삼가라고 경고하신다. 서기관들은 겉치장에 몰두하고 대접받기를 좋아하며 외식하는 자이므로 더 엄중히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누가복음 길라잡이 ②
부유한 자들에게 주는 내려놓음의 메시지 - 신현우 총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누가복음의 수신자는 '데오빌로 각하'다(눅 1:1~3), 저술 목적은 데오빌로가 들은 바를 더 분명히 알도록 하려는 것이다(눅 1:4). 여기서 데오빌로가 이미 복음을 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은 데오빌로 같은 당시 고위직으로 부유하고 사회적인 영향력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을 더 확실히 알게 하려고 쓰여진 것이다.
누가복음을 읽다가 6장 24~25절에서 그들은 소름 끼치는 경고를 듣게 된다.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당시 로마 고위 관직에 앉은 데오빌로 같은 사람들은 이 말씀의 대상이 자신들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다 6장 27~28절을 읽으며 안도의 한숨을 쉴 것이다. 자신과 같은 자를 사랑하라고 예수님이 가난한 식민지 백성에게 가르치셨다는 사실에서 자신들도 심판을 면할 수 있는 소망을 보았을 것이다. 10장 29~37절에서 이웃의 범위를 민족의 경계 밖으로 넓힌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들도 하나님의 사랑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나 데오빌로 같은 부자 그리스도인들이 누가복음의 날카로운 메시지를 적당히 벗어날 길은 없다. 12장 33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재물을 처분해 가난한 백성을 도우라는 명령이 로마 제국의 한가운데서 권력과 재물을 누리는 고위직 그리스도인에게 내려진다. 이 명령을 따르면 영원한 곳에 재물을 투자하게 된다. 영생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제는 가장 현명한 투자다.
이 말씀을 간신히 넘어 전진하다가 14장 33절에서 충격적인 말씀을 듣는다. "너의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제자'는 누가의 글 속에서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소유를 모두 버려야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특히 부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틀렸구나.'하며 낙심하던 독자들은 15장에서 죄인들과 가난한 자들이 장애물 없이 환영받고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다가 누가복음 16장에서 다시 도전에 직면한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9절),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13절). 불의하게 축적한 재물이라도 하나님 뜻대로 좋은 일에 잘 사용해 하나님과 화해하라는 가르침이다. 이로 인해 번민하는 데오빌로에게 지옥에 간 부자 비유가 펼쳐진다(16:19~31). 영생과 재물 둘 중에서 선택하라는 강력한 경고라 할 수 있다.
누가복음을 읽을 때 부자 독자들이 빠져나갈 길은 없다. 적당히 예수 믿는 타협의 길은 제시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18장 22절은 강력한 최후 일격이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근심하는 독자들에게 또 한 번 부러움의 대상이 등장한다. 세리 삭개오가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겠다고 예수님께 약속하고 칭찬받는 장면이 그것이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19:8). 식민지 백성을 약탈하는 세리가 재산의 대부분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며 로마의 고위 관원 데오빌로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쉽지 않은 결단을 쉽게 해 낸 삭개오의 모습은 부러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복음은 식민지 백성의 무력 투쟁의 의지를 물거품이 되게 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제국의 지배층에게도 그들이 쉽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멀리 사라지게 한다. 재물과 영생을 함께 추구하려는 그들의 소망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식민지 백성에게나 제국의 백성에게나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한쪽은 칼을 내려놓아야 했고, 다른 한쪽은 재물을 내려놓아야 했다.
누가복음은 로마의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 재물이 아닌 하늘의 영원한 상급을 차지하라는 도전과 약속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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