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할 줄 알아야 하는 감사

[누가복음 17장 11절~19절]
11절 -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절 -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절 -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절 -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절 -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절 -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절 -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절 -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영국에 어느 무뚝뚝한 남편과 살다가 병이 나서 죽은 부인이 있었습니다. 이 남편은 도무지 자기 부인에 대해서 사랑한다는 말도 하는 법이 없고, 무엇을 '잘 한다'는 말도 없고, '음식을 잘 한다'거나, '살림을 잘 한다'거나, '고맙다'거나 하는 칭찬이나 인사를 전혀 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하는 일이 남편 마음에 안들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칭찬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고 몇 년이 지나도록 반응이 없자 그녀는 실망하여 고민하던 나머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살 가망이 없어지고 죽을 날이 임박했을 때에야 남편이 부인 침대 옆에 가까이 오더니 '여보 당신이 죽으면 난 어떻게 해 당신은 참으로 훌륭한 아내였는데 …'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죽어가던 아내가 얼굴이 환해지면서 미소를 띄우고 말하기를 '여보, 왜 그 말을 진작하지 못했어요? 나는 지금까지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듣고 싶었는데 도무지 칭찬 한마디도 없기에 나는 당신 마음에 들지 못하는 아내라고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이렇게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그 남자는 속으로만 자기 아내가 좋은 아내요 고마운 아내라고 생각했지 그것을 표현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 칭찬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속으로만 가지고 있지 말고 겉으로 충분히 표현할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때 우리는 속마음으로 감사하고 마음속으로 사랑하면 되지 뭐 그렇게 겉으로 나타내야 하느냐고 생각할 때가 있으나 그것은 결코 잘못된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고 한 것 같이 '표현이 없는 감사는 죽은 감사'나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열 문둥이 가운데 오직 한 문둥이만 예수님께 찾아와 엎드려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는데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예수님께서 섭섭해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 다른 아홉명의 마음에 문둥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께 고마운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분명코 그들도 역시 감사의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찾아와 감사하다는 표현이 없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를 섭섭해 하셨던 것입니다.

1. 감사를 표현할 줄 모를 때
첫째, 그것은 죄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 1:22절에 여러 가지 죄목을 쓰는 가운데 감사치 않는 것도 죄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감사해야 될 사람이 감사의 표현이 없으면 그것은 상대방의 가슴에 기쁨을 빼앗아 가고 행복을 빼앗아 가는 약탈행위이며 곧 죄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명에 대해서 얼마나 섭섭해 하셨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 무례한 이기주의자가 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무례히 행치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예의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무례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 중심주의로 살고 이기주의로 사는 사람은 무례하여서 인사를 받으려고만 하지 인사할 줄은 모르고 감사할 줄은 모르게 됩니다. 만가지 죄악이 이런 생활에서 나옵니다.
셋째, 교만으로 인해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모두 제가 잘나서 잘 되는 줄 알지 하나님의 은혜나 타인의 은덕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더 이상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축복과 은혜가 중단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했습니다.

2. 올바른 감사의 표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한 것 같이 표현이 없는 감사는 감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감사의 행위를 바로 나타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먼저 마음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들 중에 먼저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하나만 생각해도 지금 죽어도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지난 일년 동안에도 먹여주시고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다시금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특별히 죽을 수밖에 없는 위험한 고비를 여러번 겪으면서도 특별하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으로 무사히 지나온 것에 대해서도 감사할 일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합 3:17-19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하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성도라면 감사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 감사한 마음을 말로나, 기도로나, 찬송으로나, 물질로 제때에 올바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감사의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신속하게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습니다. 감사해야 할 때에 감사해야지 사이다를 가스가 다 빠진 다음에 마시는 것처럼 지난 다음에 감사하는 것은 진정한 감사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 119:60절에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감사나 인사를 해야 할 때에 하지 못하고 책망을 받고 난 다음에 하는 행위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본문에 고침받는 열 문둥이 중에 즉시로 달려와 감사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아홉 명도 나중에 예수님 만나면 인사하지 뭐 하고 생각은 했을 것입니다. 신속하게 먼저 와서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생길 때는 즉시 기도로 감사하고 또 물질로 감사할 때도 미루지 말고 신속히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56:33)고 했습니다. 이 '먼저'라는 이 말에 강조점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께 먼저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차리리 세상 일 좀 못해도, 물건을 못사도, 김장은 못해도, 사르밧 과부와 같이 굶어도 하나님께 먼저 감사할 줄 알아야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겸손히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에 한 문둥이는 예수님께 달려와서 땅에 엎드려 겸손히 절하면서 감사했습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감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대체적으로 교만한 사람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또 교만해지면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감사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신 8:12-14절에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범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말씀하셨으며 17절에서는 "또 두렵건데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나 감사헌금을 드릴 때 먼저 겸손해야 합니다. 많이 바칠 수 있게 되었다면 적게 바치는 사람보다 은혜를 더 많이 받았으므로 더 겸손해야 됩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드리면 드리고도 복을 받지 못합니다.
셋째, 희생적인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의 열 문둥이가 다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으나 감사하러 온 이 사람은 자기 육신의 쾌락이나 감정을 다 희생하고 제일 먼저 예수님께 달려와서 감사했던 이것이 바로 희생적인 감사입니다. 자기 쾌락을 다 취하고 자기 쓰고 싶은 것 다 쓰고,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나서는 인사를 제때에 하거나 감사를 바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 50: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는데 이 제사의 말은 원래 희생(sacrifice)이란 뜻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양을 잡아 제사드릴 때 목을 자르고 각을 뜨고 피를 뽑아내고 내를 갈라 내장을 긁어 내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희생이 없이 진정한 감사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내 할 일 다하고 나서 쓰다 남은 것으로 감사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희생의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 무성의하게 하지 말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흠향하시고 또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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