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자선에 대한 의무 11:1-6
솔로몬은 본문에서 부자들에게, 가난한 자들에게 후히 베풀라고 강조한다.
(1) 우리에게 권장되는 의무(1절) :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더러는 이 구절을 "너는 네 곡식을 낮은 곳에 던지라"는 말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 말은 농부가 씨앗을 뿌리지 않고서는 다음해에 아무 수확도 거둘수 없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자기 식구가 먹는 곡식에서 파종할 씨앗을 남겨두었다가 '귀중한 씨앗을 가지고 나가서 뿌리는' 것을 암시한다. 이렇게 자선을 베풀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기위해 자기 먹을 곡식에서 종자를 떼어놓는다. 이는 그가 심는대로 '거둘' 것이기(갈 6:7)때문에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려는'(사 32:20) 것이다. "비록 그것이 '물위에 던져지는' 것처럼 즉 없어지듯이 보일지라도, 가난한 자들에게 후히 주라. 해로로 무역하는 상인처럼 모험삼아 식물을 띄워보내라. 그것을 '물위에' 맡겨라. 그래도 그 식물이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자선을 베푸는 일에 후하고 너그러이 하라. 조금 주지말고 '일 인분' 곧 한끼 분을 주어라. 많은 사람에게 주어라." 즉 네가 동정을 베풀어야할 사람을 일곱 만나면 일곱 모두에게 동정을 베풀고, 여덟 사람을 만나면 여덟 모두에게, 그리고 그 이상을 만나도 역시 그들 모두에게도 정을 베풀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일에 풍성하시다. 비록 우리가 그 긍휼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을지라도 역시 그의 자비는 풍성하시다. 그는 '후히 주시고' 이전에 주신 선물을 가지고 우리를 '꾸짖지 아니하신다.'
(2) 이 의무가 우리에게 강조되는 이유 : "네가 '식물을 물위에 던지면' 그것을 잃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농부가 자기가 뿌린 씨앗을 풍성한 수확으로 다시 거두듯이 '네가 여러날 후에 그것을 다시 찾을 것이라. 그 돌아오는 기간이 더딜수는 있으나 반드시 돌아오며 또한 훨씬더 많은 양으로 돌아올 것이라." 가장 귀한 곡식인 밀은 땅속에 가장 오랫동안 있다. 선행을 할수 있는 우리의 기회란 매우 불확실하다. "이는 네가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지 알지 못함이라. 다시말해서 그 재앙이 네게서 재산을 빼앗아 갈지, 선행을 행할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 갈지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때가 닥쳐서 자신들이 궁핍하게 될수 있다는 것을 알지못하기 때문에 이 말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반대하는 논리로 사용한다. 우리는 이와 반대로, '재앙이 임할' 때 우리가 할수 있는동안에 선을 행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수 있도록 서둘러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
(3) 자선을 행하지않는 자들의 변명.
1) 더러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자기 것이라고 말하면서 왜 그것을 '물위에 던져야' 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이 사람아 하늘을 쳐다보고 이것을 좀 생각해 보아라. 곧 만일 네 머리위에 떠있는 '구름이' 자기속에 물을 간직하고서 땅에 뿌려주지 않으려고 한다면 네가 황무한 땅에서 이내 굶어죽게 되리라는 것을 생각해 보아라. 하늘은 자기보다 훨씬 아래에 있는 보잘것없는 땅에게 이처럼 후한데 너는 '네 뼈중의 뼈인' 불쌍한 네 형제에게 나눠주기를 왜 싫어하느냐?"
2) 더러는 자기들이 유익을 끼칠수 있는 범위가 낮고 좁으므로 실제로는 아무소용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좀더 공적인 지위가 있는 다른 사람들이 행할수 없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려고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그들은 '나무가 쓰러지면' 즉 공교롭게 나무가 쓰러지면 그 나무의 주인을 위해서 '쓰러진 곳에 그냥 둘'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간에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있게된 그곳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복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 우리는 어느 곳에 있든지간에 할 마음만 있다면 행해야할 선한 일을 언제든지 발견할수 있다.
3) 더러는 그들이 자선을 베푸는중에 만나는 많은 낙담거리들을 항의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자선행위가 거만하고 위선적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들어왔다. 만일 줄것이 거의 없어 다른 사람들이 주는만큼 그들이 주지않는다면 그들은 멸시받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내야할 세금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낸 구호금이 어떻게 쓰일지도 알지 못한다. 솔로몬은 이같이 허다한 반론들에 대해 한마디로 이렇게 대답한다(4절).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여기서 파종한다는 것은 선을 행한다는 말이다.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거둔다는 것은 유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사소한 모든 어려움을 크게 보고 이의를 말하며 어려움이 전혀 없는 곳을 생각하면서 그 자리에 멈춰 서있다면 우리는 결코 일을 계속해 나가지못할 것이다. 만일 농부가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서 파종을 하지않거나 하다가도 그만둔다면 또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농작물 거두기를 그만둔다면, 그는 연말에 가서 형편없는 수확밖에 거두지못할 것이다.
4) 더러는 우리가 구제하는 일에 들이는 비용과 정력이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보상될지 알지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 말에 대해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또한 네가 그것을 알아야하는 것도 아니니라. 그러나 비록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의 말씀을 어떻게 이루실지를 네게 말씀해 주시지 않을지라도, 너는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확신할수는 있느니라." 그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다음의 두가지 실례를 들어 설명한다.
첫째, 우리는 '바람의 길' 곧 성령의 길이(더러는 이렇게 본다) '어떠함을 알지 못한다.' 즉 우리는 바람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또 언제 바람이 방향을 바꿀는지 알지 못한다. 선원들은 바람이 그들에게 순풍으로 변할때까지 바람을 기다릴 준비가 되어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정해진 축복의 때를 기다리면서 자신의 의무를 행해야 한다. 이 구절을 사람의 영혼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할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에게 이같은 영혼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그러나 그 영혼이 어떻게 몸속에 들어와서 생기를 불어넣어주며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는 알지 못한다. 영혼은 그 자체가 신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이 우리에게 그와 같이 신비스럽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둘째, 우리는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신체에 영혼이 들어간 방법과 더불어서 뼈의 형성방법이나 뼈에 대한 지식을 정확히 기술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두가지가 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의 일로 잠자코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 더큰 일을 행하신 이가 그보다 작은 일도 행하실 것이라고 우리는 믿어야 한다.
5) 더러는 "이제까지 자선을 베풀어왔지만 그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보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여러날이 지났지만 그것을 '도로 찾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솔로몬은 그럴지라도 계속해서 선행을 해나가라고 대답한다(6절).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아침 곧 젊었을때에 열심히 선을 행하라. 네게 있는 적은 것으로 나눠주리라. '저녁' 곧 늙었을때에 인색해지려는 노인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유혹에 넘어가지 말며 그때에도 '손을 거두지 말고' 끝까지 선을 행하라." 이것이 잘될는지 저것이 잘될는지 혹 둘이 다 잘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이는 너의 구제 행위중 어떤것이 다른 사람들과 네 자신에 대해서 잘될는지 알지 못함이며 혹시 '둘이 다 잘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Ⅱ. 죽음과 심판에 대한 준비 11:7-10
전도자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탁월한 교훈으로써 우리에 잘사는 방법을 가르쳐왔는데 이제는 잘죽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치려고 한다.
(1) 그는 나이든 사람들에게 말을 한다.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7절). 이교도들은 그 즐거움에 너무 매혹된 나머지 해를 숭배하였다. 햇빛에 의해서 다른 사물들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생명이 아름답다는 것 또한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생명은 모든 사람에게 즐거운 것이다. 생명이 아름답다는 것이 자연에서도 나타난다. 죽음은 만일 그것이 현재의 악에 대한 종지부이거나 미래의 선에 대한 이주로서 바라지 않는한, 사람들이 그 자체를 위하여 바랄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여러해를 살면...캄캄한 날이 많으리니 그 날을 생각할지로다(8절).
1) 즐길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여름 낮이 있다. 즉 그것은 생명이 여러해동안 계속되며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생명이 안락해져서 사람이 항상 '즐거워할'수 있는 날이다. 어떤사람들은 자기들이 누리는 여러해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기뻐한다. 형통하는 상태와 즐거워하는 심령, 이 두가지가 함께 갖추어진다면 실로 그것은 사람으로 '항상 기뻐할'수 있도록 만드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아무리 유쾌한 마음에라도 낙담시키는 것은 있다. 희희낙낙하는 죄인들에게도 우울한 불만이 있고, 명랑한 성도들에게도 은혜로운 슬픔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여러해를 살면서 항상 즐거워한다는' 것은 실제의 경우가 아니라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다.
2) 이 여름 낮이 지나면 겨울 밤이 오리라고 기대해야 한다. '그러나' 이 건강한 노인은 '깜깜한 날을 생각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 날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날이 많기는 하나 무한정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낮이 길어도 밤이 있듯이, 아무리 밤이 길어도 아침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캄캄한 날'이 오기전에 미리 그것을 생각한다면 정작 그 날이 올때는 덜 무서워할 것이다.
(2) 그는 젊은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해보도록 일깨우려고 애쓴다(9,10절).
1) 그는 역설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허영과 쾌락을 용인한다. 청년이여 네 어린때를 즐거워하며. 솔로몬은 이와같이 역설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우매를 드러내고 방탕하고 사악한 인생 행로의 어리석음을 내보이라고 말한다.
2) 그는 이같은 허영과 쾌락을 강력히 저지한다.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인하여 너를 심판하실줄 알라.
3) 그는 이 모든 사실에서 주의와 권고의 말씀을 이끌어낸다(10절). 젊은 사람들은 자신을 살피고 자기 영혼과 몸을 잘 돌보아야 한다. 또한 마음이 교만으로 높아지거나 노여움이나 죄악적인 어떤 격정으로 동요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근심(노여움)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이 말은 근심에서 일어나는 어떤 동요나 혼란을 뜻한다. 젊은 사람들은 저지와 제어를 참지못하며 굴욕감을 주는 것에 대해서는 안달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교만한 마음은 그들을 방해하고 반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엇이든지 반기를 들고 일어서려 한다. 그들은 반성하면서 슬퍼해야할 일은 무엇이든 가까이 하지말아야 한다. 그들은 무절제와 불결 혹은 어떤 육신적인 정욕에 의해서든지 몸을 더럽히지 않도록해야 한다.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네 몸의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
(3) 전도자는 그의 강화의 중요 요지인 이 세상 모든 것의 허무성과 불확실성 그리고 불충분성을 강조한다.
1) 그는 노인들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킨다(8절). 장래 일은 다 헛되도다. "비록 사람이 여러해를 살면서 항상 즐거워할지라도 장래일은 다 헛되도다."
2) 그는 젊은이들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킨다(10절). 어릴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 이는 어릴때와 청년의 때의 쾌락과 이점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꽃들은 시들고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래가고 좋은 평가를 받을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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