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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빌라도와 헤롯 앞에 서신 그리스도 23:1-12
종교적인 법정에서 주 예수에게 신성모독 죄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들은 예수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으나 사형에 처할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방도를 취했다.
1. 빌라도에게 고소함(1-5)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갔다. 그리고는 예수를 처벌해달라고 하였다. 그때 그들은 예수를 신성모독죄로 고발하지 않고(왜냐하면 빌라도는 그런 것을 범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 정부에 대한 반역죄로 고발했다. 그들은 속으로는 로마 정부에 대한 반역죄는 전혀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예수에 대한 고소 내용 : 그들은 예수에 대해 허위진술을 했다.
①백성들로 하여금 가이사를 반역하게 했다. 로마 통치하에 있는 백성들에게 불만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며 빌라도도 그것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빌라도로 하여금 이 예수가 백성들의 불만을 조장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2절). 그리스도께서는 특히 백성들에게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라고 가르치셨다. 그런데 지금 그를 가이사에게 세바치는 것을 금했다고 거짓 고발한 것이다. 깨끗한 양심은 중상모략에 대항하지 않는다.
②가이사에게 대적했다. 그들이 예수를 배척한 이유는 바로 그가 가이사에게 대적하는 일을 하지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예수가 자칭 왕, 그리스도라고 한다는 사실을 고발한 것이다.
2)고소 내용에 대한 변호 : 빌라도는 예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다(3절). 그 질문에 대해 "네 말이 옳다"고 답변하셨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전적으로 영적인 것으로 가이사의 통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예수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가 가이사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유대인의 왕노릇 한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3)빌라도의 무죄 선언 :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4절).
4)고발한 사람들의 계속되는 소란 : 빌라도가 무죄를 선언하자 그들은 누구러지지 않고 더욱 흥분해서 굳세게 말했다. 그들에게는 내세울만한 특별한 근거가 없었던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소란을 피우고 계속 우김으로써 이를 해결하려고 했다. 저가 온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5절). 그는 백성을 소동케 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칭찬할만한 일을 위한 것뿐이었다. 그는 백성을 가르쳤다. 그러나 공공질서를 해치는 교훈을 가르쳤다는 죄목으로 그를 고발할수는 없었다.
2. 헤롯에게 고소함(6-12)
1)빌라도는 예수와 그의 소송을 헤롯에게 넘겼다. 그를 고소한 사람들이 갈릴리 사람들이라는 말을 했기때문이다. "그가 어느 지방 사람이냐?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고 빌라도가 물었다(6절).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헤롯 관할이니 헤롯에게로 보내자"고 빌라도가 말했다. 빌라도는 그 사건때문에 골치가 아팠으며 그 사건에서 손을 떼고 싶어했다.
2)헤롯은 기꺼이 예수를 심문했다(8절). 헤롯은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했다. 그는 갈릴리에서 예수의 소문을 들었으며 예수를 보고 싶어한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것은 호기심때문이었으며 또한 이적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것도 호기심때문이었다. 그래서 헤롯은 여러말로 물었다. 그러나 예수는 아무말도 대답지 아니하셨다. 그뿐 아니라 이적을 행하심으로써 헤롯을 만족시키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고난에서 건짐받기 위해 이적을 바랐던 자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결코 거절당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거만한 왕은 거절당한 것이다. 그는 갈릴리에서 그리스도와 그가 베푸시는 이적들을 볼수도 있었다. 이제 이적들을 보려고 하지만 보여주시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헤롯은 자기가 청함받은 날을 몰랐기 때문이다. 주님은 값싸게 기적을 행하시지는 않으며, 아무리 위대한 군주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마음대로 할수는 없는 것이다.
3)예수를 고소한 자들이 헤롯앞에 등장했다. 그들은 서서 예수를 힘써 고소했다(10절). 그 말에는 뻔뻔하다는 뜻이 들어있다.
4)헤롯은 예수에게 심한 모욕을 주었다. 그는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겼다. 그 말은 예수를 멸시했다는 뜻이다. 그들은 예수를 힘을 다 잃고 이제는 보통 사람과 똑같이 무력해진 사람처럼 취급하며 비웃었다. 헤롯은 빌라도보다 훨씬더 그리스도를 모욕했다. 헤롯은 왕이라고 조롱하려고 빛난 옷을 예수에게 입혔으며 나중에 빌라도의 군사들도 같은 모욕을 주도록 가르쳤다.
5) 헤롯은 예수를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으며 이로써 그들은 친한 사이가 되었다. 헤롯은 예수에게 유죄 판결을 하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도로 보낸 것이다(11절). 그렇게 함으로써 빌라도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다. 이같이 서로 좋게 생각하게 되었다(12절). 전에 그들은 서로 원수였다. 자기들끼리 서로 다투는 자들이 예수를 대적하는데는 하나가 되는 방법을 잘 살펴보라. 그리스도는 위대한 화해자시다. 빌라도와 헤롯은 둘다 예수의 무죄를 인정했다. 여기서 의견의 일치를 봄으로써 다른 곳에서 가졌던 불화를 해결하게 된 것이다.
Ⅱ.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23:13-25
여기서 복되신 예수는 군중들의 소요에 휘말려 십자가에 달리게 된다.
(1) 빌라도는 예수가 사형을 받거나 구속당할만한 일을 전혀 하지않았음을 강력히 주장한다. 그가 그렇게 믿었다면 그는 곧 예수를 석방해야만 했다. 하지만 빌라도는 악인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전혀 친절하지 않았으며 백성들이 화가날까봐 염려했다. 그러므로 완전을 기하려고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모았다. 그리고는 그들이 말하는바를 듣고자 하였다(14절). "너희가 이 사람을 내게 끌어왔도다.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 심문하였으며 너희 모두 이 사람에 대해서 주장하는바를 들었으나 나는 도저히 그것을 납득할수가 없다. 즉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
(2) 빌라도는 헤롯도 같은 생각임을 백성들에게 호소한다(16절). "내가 너희를 헤롯에게로 보냈으며 헤롯은 예수를 도로 보냈다. 헤롯은 예수가 사형받을만한 죄는 짓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헤롯은 예수를 무력한 자라고 비웃었으나 위험 인물이라는 낙인을 찍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사형장보다 정신병원이 더 어울린다고 빌라도는 생각했다.
(3) 빌라도는 백성들이 찬성하기만 하면 예수를 놓아주려고 했다. 백성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이 일을 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사람을 두려워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이 올무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소란이 생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불의를 행하려고 한다. 백성들의 비위를 맞추기위해 빌라도는 첫째로 죄수 한명을 부득이 놓아주어야 하므로 죄수라는 명목으로 예수를 놓아주려고 했다(17절). 둘째로 빌라도는 예수를 때려서 놓으려고 했다.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한다면서 왜 그를 때려야만 하는가?
(4) 백성들은 차라리 바라바를 놓아달라고 한다. 바라바는 성 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때문에 옥에 갇힌 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보다 이 범죄자에게 우선권을 준 것이다.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주소서(18,19절).
(5) 빌라도가 두번째 그리스도를 놓아주어야 한다고 말하자 그들은 소리쳤다.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20,21절).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고는 어쩔수가 없게 되었다. "저를 십자가게 못박게 하소서."
(6) 빌라도가 세번째 말하자 그들은 더욱 포악해졌다(22절). "무엇때문인가?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는가? 그의 죄목을 대라. 나는 그를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큰 소리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요구하고 있었다. 마치 자기들에게 죄인을 놓아주고 결백한 자를 십자가에 못박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7) 빌라도는 마침내 포기한다. 백성과 대제사장들의 소리가 이긴 것이다. 빌라도는 그들이 원하는대로 하도록 언도했다(24절). 바라바를 놓아주는 악한 상황과 함께 이 내용이 다시 한번 나온다. 민란과 살인을 위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25절). 저희 뜻대로 하게 예수를 넘겨준 것보다 더 잔인하게 예수를 다룰수는 없었다.
Ⅲ. 십자가의 형장으로 가는 도중의 사건 23:26-31
그들이 어떻게해서 예수의 재판을 마쳤는지 이상하다. 날이 새자 예수는 대제사장들에게 끌려갔다(눅 2:66). 그 다음에는 빌라도에게 끌려갔다가 헤롯에게로 끌려가고 다시 빌라도에게 끌려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빌라도와 백성들 사이에 예수를 놓고 의견 차이가 있었던것 같다. 예수를 채찍으로 때리고 가시관을 씌우며 무례한 짓을 자행했다. 이런 일은 네 다섯시, 기껏해야 여섯시까지 모두 끝났다. 왜냐하면 9시에서 12시 사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당했던 것처럼 세상밖으로 쫓겨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제 그들이 예수를 죽이는 광경을 보게 된다.
1. 십자가를 진 한사람(26)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갔다. 그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시몬에게 지우고 예수를 좇게하였다(26절).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는 분명히 십자가 밑에 쓰러졌을 것이다. 그들이 예수를 이같이 편하게 해준 것은 동정심, 잔인한 동정심에서였다.
2. 슬피우는 무리(27-31)
보통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이 아팠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가 부당하게 고난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형 집행시 흔히있는 것처럼 이로인해 많은 무리가 예수의 뒤를 따라갔다. 백성 특히 여자의 무리가 그를 따라갔다(27절). 그들은 또한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다. 예수를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를 존중하며 동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스도를 믿지않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가슴을 쳤으며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많은 자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울었다. 그리스도에게는 그들의 눈물을 인식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그는 슬퍼서 죽을것 같았다. 그리스도는 돌이켜 그들을 향해 자기를 위하여 울지말고 자신들을 위해 울라고 하신다(28절).
1)예수는 그들에게 우는데 대해 지시하신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말라." 그들이 예수를 위해 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자기들과 자녀들을 위해서는 울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특별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대적들에 대한 승리였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이며 우리를 대신해 영생을 획득할 것이다. 그러니 그를 위해 울지말고 그를 죽게한 우리의 죄와 우리 자녀들의 죄를 위해서 울자.
2)그들이 그들 자신과 자녀를 위해 울어야하는 특별한 이유를 말씀하신다. "보라 너희 성읍에 슬픔의 날이 곧 오리라." 얼마전에는 자신이 예루살렘을 위해 우셨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위해 울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눈물은 우리로 꼼짝없이 울게 만든다. 두 잠언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데 둘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참으로 끔찍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너무나 무서워서 자식없이 산 후에 죽어 묻히고 싶었을 것이다.
①무자한 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가족이 없는 자를 부러워하며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가 복이 있다할 것이다.
②살아서 묻히고 싶어할 것이다. 산들에게 우리 위에 무너지라 작은 산들에게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30절). 이러한 재난의 소리가 들리지않는 어두운 동굴에 숨고 싶을 것이다. 가루가 될 위험이 있다고하더라도 어쨋든 숨으려고 할 것이다.
3)그리스도가 받으시는 고난에서 이러한 황폐함을 생각해 내는 것은 당연하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31절). 그리스도는 푸른 나무이시다. 그것도 아주 무성한 푸른 나무이다. 그에게 이런 일이 닥치는 것을 볼때 그가 중재하시지 않았다면 전체 인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또한 그들이 번성하도록 모든 것이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른 나무로 남아있는 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짐작할수 있다. 예수께서 당하신 혹독한 고난을 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절감하게 된다. 아무리 거룩한 성도라도 그리스도와 비교하면 마른 나무이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셨다면 그들이라고 어찌 고난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겠는가?
Ⅳ. 십자가 처형 23:32-43
1. 마태 마가복음과의 공통된 내용 32-38
(1) 다른 두행악자도 사형을 받게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가니라(32절).
(2) 해골이라는 곳 갈보리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이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죽음이었다.
(3) 예수를 두행악자 사이에 못박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예수를 범죄자처럼 취급했을뿐만 아니라 완전히 범죄자로 여겼다.
(4) 사형을 집행했던 군병들이 그 대가로 예수의 옷을 취하여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졌다.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34절).
(5) 사람들은 예수를 조롱했다. 백성들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그들 사이에 서서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그가 십자가에 달림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고 있었을때 사람들은 그에게 십자가에서 자신을 구원하라고 독촉했다.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거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35절). 그들은 예수를 희롱했다.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37절).
(6) 예수의 죄목을 밝혀 머리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붙였다. 유대인의 왕노릇을 했기때문에 예수는 죽음을 당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가 실제 유대인의 왕임을 선언하고자 하셨다. 즉 그는 유대인의 왕이시며 그의 십자가는 면류관을 향하는 길이다. 이 말을 고등언어인 헬라어, 라틴어, 히브리어로 기록했다. 모든 사람이 읽을수 있도록 이 세언어로 기록한 것이다. 이 세언어로 예수가 왕이심을 선포한다.
2. 누가복음의 고유한 내용(34,39-43)
두 구절이 여기 해당하는데 이 구절의 내용은 매우 놀랍다.
1)원수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34절)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34절).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뒤 돌아가실때까지 일곱가지의 유명한 말씀을 남기셨다. 그런데 이 말씀이 그 중 최초로 하신 말씀이다. 그는 십자가에 묶이자마자 혹은 그들이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고 있을때 이 기도를 하셨다.
①그들을 위한 간구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이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셨다. 예수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중보를 하셨다. 그런데 예수의 수난과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하신 말씀도 곁에 보이는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는 자기 죽음의 의도와 의미를 설명하셨다. 즉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뿐만이 아니라 회개하며 복음을 믿게될 모든 사람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대신해 죄사함이라는 놀라운 것을 획득하셨다. 예수의 피는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말한다. 그들이 자기를 박해하며 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②그들을 위한 청원 :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얼마간 용서받을수 있는 종류의 무지가 있다. 즉 교육받을 길이 없거나 교훈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은 지도자들때문에 무지했으며 그에 대해서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가 선포하는 교리에 대적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자들은 동정해야 하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기도할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도록 하자. 우리 자신과 남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구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죄사함이다. 원수들 그리고 우리를 미워하며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자. 우리는 대적하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자.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는 자기가 세우신 원칙에 따라 본을 보이셨다(마 5:4,45 네 원수를 사랑하라). 그리스도께서 그런 원수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는데 우리에게 사랑하고 기도하지 못할 원수가 있을수 있을까?
2)십자가에 달린 강도의 회개 : 그리스도는 두강도 사이에 달리셨다. 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인류에 미친 상이한 결과들을 볼수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한강도에게는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전조가 되었으며 다른 한강도에게는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는 전조가 되었다.
①두행악자 중의 한사람은 끝까지 완악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가까운 곳에 달린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비방했다(39절).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39절). 그 강도도 지금 상당히 고통을 받고 있었으며 교만한 마음을 낮추지 못했으며 자기와 같이 고통받는 자에게까지도 착하게 말하지 못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에게 독촉한다. 뻔뻔하게 그리스도를 욕하면서도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②나머지 한강도는 마침내 마음이 녹아졌다. 이 강도는 불속에서 타는 나무 조각을 건져내듯 간신히 구원받았으며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인한 불후의 작품이 되었다. 그렇다고해서 회개를 자꾸 미루는 자들을 격려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회개라면 아무리 늦어도 괜찮지만 막판에 하는 회개치고 진정한 회개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은혜를 맛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리스도는 그를 그의 능력을 보여주는 특별한 예로써 택하신 것이다. 유다를 파멸시키고 베드로를 견고케 하심으로써 이미 사단을 정복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승리의 트로피를 하나 더 마련하신다. 이 사건을 잘 살펴보면 이 사건이 예외적인 사건임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하나님 은혜의 예외적인 역사 : 그것은 그가 한 말에 나타난다. 우선 나머지 한강도에게 한 말을 참조하라(40,41절)
㉠그는 그리스도를 비방하는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꾸짖었다.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40절). 이 말은 그가 이같은 악을 행하는 무리를 따르지 않게된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었음을 의미한다. "네게 인정이란 것이 있다면 너와 같이 고통을 받는자를 모욕하지 않을 것이다. 너도 동일한 정죄를 받았으며 같이 죽어가고 있지 않느냐."
㉡그는 자기가 당한 일이 마땅함을 인정한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41절). 진실하게 회개한 자는 죄의 대가를 받는가운데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의를 행하셨으나 우리는 악을 행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부당하게 고난당하셨다고 생각한다. 회개한 이 강도는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는 모습을 보고 그가 행한 것은 옳지않은 것이 없다고 확신한다. 대제사장은 그리스도를 행악자 중의 하나로 간주하여 두행악자 사이에 못박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강도는 대제사장들이 깨닫지못한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주 예수께 한 말을 보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때에 나를 생각하소서(42절). 이는 죽어가는 죄인이 죽어가는 구세주에게 드린 기도이다. 이렇게 기도함으로써 그리스도는 영광을 받으셨다. 또한 이렇게 기도함으로써 그 강도에게는 복이 되었다. 아마 전에는 이렇게 기도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마지막 순간에 구원해 주셨다. 이 기도에 나타난 그의 신앙을 잘 살펴보라. 죄를 고백하면서 그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간구하면서 그는 주 예수가 주님이시며, 그의 나라가 있으며, 곧 그 나라에 들어가실 것이며, 그가 사랑하는 자들은 복되리라는 것을 고백한다. 그 당시 이 모든 것을 믿고 고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후에 또하나의 세상이 있으리라고 믿었으며 그 세상에서는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나머지 한강도와는 달리 십자가에서 구원받고 싶어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고통이 다 끝났을때를 잘 예비하였다. 이 기도에 나타난 겸손을 보라. 그가 청한 것이라곤 단지 자기를 기억해달라는 것이었다. 자기를 어떻게 기억하시든 그것은 주님께 맡겼다. 그리스도는 이 강도를 기억하셨다. 이 기도속에는 끈질긴 열의가 들어있다. 즉 그는 이 기도속에 온마음을 쏟았다. "주여 나를 생각하소서. 나는 더이상 바랄 것이 없으니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기도해야할 것은 바로 그의 나라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생각해주시는 것이다.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복된 삶을 사는 것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둘째, 그에게 베푸신 그리스도의 예외적 사랑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 기도에 내가 응답하리라. 네가 구한 이상을 네게 줄것이며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43절).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셨는가? 회개한 강도에게 하셨다. 그리스도 자신은 지금 말할수 없는 고통중에 계시지만 불쌍한 회개자에게 위로의 말씀을 잊지않으셨다. 아무리 악한 죄인일지라도 진실로 회개한다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을 얻게될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낙원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게될 것이다. 누가 이 말씀을 하셨는가?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중보의 말씀으로 그가 받으시는 고난의 의미를 깊이 설명하고 있다. 즉 그는 우리를 대신해 우리에게 죄사함과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돌아가셨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며 순종하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천국 문을 열어주시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스도는 여기서 우리에게 그가 낙원에 들어갈 것임을 알려 주신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서 면류관에 이르셨다. 우리도 다른 길로 갈 생각을 하지말자.
㉡그리스도는 회개한 모든 신자들에게 그들이 죽으면 그 낙원에 자기와 함께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려주신다. 여기서 우리에게 마련되어 있는 천국이 얼마나 복된 곳인가를 살펴보라. 그곳은 기쁨의 낙원이며 하나님의 낙원이다(계 2:7). 그곳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신다. 이것이야말로 하늘나라의 행복이다. 우리는 죽자마자 그곳으로 가게 된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43절).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밤 우리는 낙원에 있을 것이다.
Ⅴ. 십자가 처형 23:44-49
1.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실때 일어난 기이한 현상들(44,45)
(1) 해가 빛을 잃음 : 때는 제 육시 즉 정오쯤이었다. 그런데 제 구시까지 온땅에 어두움이 임하였다.
(2)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 먼저 말한 것은 하늘에서 일어났으며 이것은 성전에서 생긴 일이다. 하늘도 성전도 다 하나님의 집이다.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의식적인 율법이 폐기됨을 암시하였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던 모든 장애물이 사라짐으로써 이제 우리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수 있게 되었다.
2. 그리스도께서 힘을 다하여 하신 말씀(46)
예수께서는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그렇게 나와있다. 또한 여기서도 큰 소리로 말씀하신것 같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46절). 그는 이 말씀을 조상 다윗에게서 빌어왔다(시 31:5). 그리스도는 성경 말씀대로 죽으셨다. 하나님께 호소하는 이 말씀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버림받은 것을 하소연할때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짖었으나 이제 끔찍한 영혼의 고통이 끝났음을 보여주려고 여기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그리스도는 이 말씀을 특별한 의미에서 중보자이신 자신에게 사용하셨다. 그는 지금 "우리의 죄로 인하여 그의 영혼을 속건제로 드리며"(사 53:10)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는 것이다"(마 20:28). 이렇게 말씀함으로써 그는 제물을 드리셨다. 즉 그 머리 위에 손을 얹으셨다가 떼셨다. "이것을 바칩니다. 이것을 당신 손에 모두 드립니다." "아버지여 내가 위하여 죽는 죄인들의 생명과 영혼대신에 내 생명과 영혼을 받으소서." 제물을 바치는 자의 뜻이 선할때에는 하나님은 그 제물을 흠향하신다. 그는 자기 영혼을 낙원에 들이시며 사흘후에 되돌아가게 해달라고 아버지 손에 자기 영혼을 맡긴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이 한 이 말을 유용하게 만드신 것이다. 우리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우리가 기꺼이 죽을 준비를 하고 있으며 내세를 믿는 굳건한 믿음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도록 하자.
3.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변화(47-49)
(1) 군병들을 지휘했던 백부장은 일어난 일들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47절). 그 백부장은 로마인 즉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또한 그는 참을성 있게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던 자에 대해 증언하셨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47절).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더나아가 "진실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2) 무관심하게 구경만 하던 자들에게도 관심이 생기지 않을수 없었다. 누가만 이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48절).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일을 보고 심각해져서 돌아갔다. 그들은 다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갔다. 이 일은 당분간 그들을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바로 이 사람들이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하고 소리질렀으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을때 예수를 희롱하며 욕하던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입을 열지못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양심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감동은 곧 사라진것 같다. 즉 그들은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갔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경의의 표시를 더이상 하지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잠시후에 이 사건을 잊어버린 것을 염려하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마찬가지로 말씀과 성례전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들가운데 못박히신 사실을 알게된 많은 사람들이 잠시동안은 감격하지만 그 감격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고 어째서 그를 사랑해야만 하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린다.
(3) 예수를 아는 자들과 제자들은 멀리 떨어져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할수 있는한 가까이 다가와서 그 된일을 보았다(49절). 예수를 아는 자들이 다 멀리 서있었다. 이 사실은 예수의 괴로움 중의 하나였다.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이 이 일을 보고 있었다. 이렇게 그리스도는 시므온이 예언한대로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위하여 그리고 여러사람의 생각을 드러내려고 세움을 입으신 것이다(눅 2:34,35).
Ⅵ. 그리스도를 장사지냄 23:50-56
1. 장사를 치른 사람(50,51)
예수를 아는 자들은 멀리 서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이라 하는 사람'을 일으키셨다(50절). 요셉은 선하고 의로운 자요, 덕행이나 경건이 있어서 흠이 없다는 평판을 받던 자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할뿐만 아니라 자기가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던 자였다. 그는 상류층에 속한 사람이었으며 공회 의원이었고 산헤드린 회원이었으며 유대 교회의 장로였다. 비록 그가 그리스도를 죽인 사람들과 같은 집단에 속해 있었지만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하였다(51절). 그는 공개적으로 그리스도의 원수들을 반대하였을뿐만 아니라 비밀리에 그리스도의 친구들과 동조하였다. 즉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크게 소란을 떠는 자들보다 훨씬더 진실하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이 많이 있다.
2. 그리스도를 장사지내기 위해 요셉이 한 일(52,53)
(1)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했다.
(2) 이를 내려 세마포로 쌌다. 틀림없이 손수했을 것이다. 우리가 어린아기를 "배내옷"으로 싸듯이 시체를 천으로 싸는 것이 유대인의 풍습이었다. 그래서 그는 세마포를 원단으로 사서 시체를 쌀수 있도록 여러 조각으로 잘랐다.
3. 장사지낸 곳(53)
바위에 판 무덤이었는데 그곳에서는 아직 사람을 장사한 적이 없었다.
4. 장사지낸 시기(54)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54절). 그들이 급하게 장사를 서두른 이유가 여기 있다. 즉 안식일이 거의 되었기 때문이다. 슬픔때문에 일을 못하게 되서는 안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때문에 지키는데도 신경을 써야만 했다.
5. 장례에 참석한 사람들(55)
그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아니고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온 여자들이었다(55절).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신 동안 그 옆에 있었다. 그래서 그의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았다. 호기심때문이 아니라 주 예수께 대한 사랑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6. 그의 시체를 위해 마련된 준비물(56)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56절). 이는 그들의 신앙이라기보다 그들의 사랑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께서 사흘만에 부활하리란 것을 기억하고 믿었더라면 그와 같은 낭비나 수고는 하지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준비를 바삐해 놓고 안식일에 쉬었다.
# 해설
십자가에 처형되시는 그리스도 ( 23 )
본장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총괄하는 대단원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체포되신 그리스도께서는 불의한 무리들이 불법으로 진행하는 재판의 과정을 통해 십자가에 달리시어 이 땅에서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죽음은 악인들에게는 일시적인 승리를 주었고, 반면에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1. 심문 받으시는 그리스도
1) 빌라도에게 심문받으심
무리들이 다 일어나 예수님을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끌고 갔습니다. 공회원들이 예수님을 끌고 빌라도에게 간 것은 사형 선고를 얻고자해서 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죄목 세개를 들어 고소하였습니다. 이들이 고소한 내용은 정치적으로 중범죄에 속하며 당시 로마 정부가 특히 엄중하게 다스리던 것들이었습니다. 공회원들의 고소를 받게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무죄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무리들은 더욱 굳세게 예수님을 고소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피할 길을 생각하던 빌라도는 갈릴리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는 헤롯에게로 예수님을 보냈습니다.
a.백성을 소동케한 민란의 수동자라고 했음(눅23:5)
b.구체적으로 묻고 구체적으로 답함(요18:37)
2) 헤롯에게 심문받으심
헤롯은 예수께서 많은 이적을 행하고 귀신을 내쫓는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에 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빌라도가 예수를 자기에게 보내자 그는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헤롯이 예수를 만나서 했던 질문이 어떤 것인지 본문은 밝히고 있지 않지만 그는 자신과 관계된 몇가지 문제를 질문했을 것입니다. 헤롯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아무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헤롯은 하는수 없이 빌라도에게로 도로 보내었습니다.
a.평소 보고 싶었음(눅9:9)
b.믿음 없이 표적만 바라는 것은 예수를 시험하는 것임(마16:1)
3) 사형을 언도하는 빌라도
헤롯이 예수님을 자기에게 도로 보내자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심문에 따라 무죄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공회원들과 백성들은 빌라도의 결정에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의 선동 아래서 거칠어지고 과격해진 유대인들을 앞에 놓고 정치가로서 큰 결정을 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는 명절때 죄수 하나를 풀어주는 전례를 들어 예수님을 석방시키려고 하였으나 도리어 백성들은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그들의 요구대로 예수께 사형을 언도하였습니다.
a.분기가 가득함(눅6:11)
b.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함(요19:16)
2.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
1) 십자가를 지고 가심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 최종적으로 십자가 처형을 언도받은 예수님은 자신이 매달려야 하는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갔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형수들은 자신이 달려 죽을 십자가나 십자가의 횡대를 처형 장소까지 지고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을 너무 힘들어하자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 대신에 구레네 시몬에게 억지로 십자가를 지워 예수님을 좇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백성과 슬피우는 여자들의 큰 무리를 향하여 '나를 위하여 울지말고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
a.희롱을 당한후 끌려가심(마27:31)
b.갈릴리에서 함께온 무리들임(눅23:55)
2) 사람들의 희롱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못박은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무리들과 백성들은 비웃고 희롱하였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백성들은 구경하고 관원들은 비웃었습니다. 저들은 눈으로 멸시하며 입으로 조롱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모든 불의에서 떠나라고 가르치며,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같이 거룩하도록 명합니다.
a.자기 구원에 무능한 자라 했음(막15:31)
b.예언의 성취임(시69:21)
3) 함께 달린 두행악자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을 누가는 행악자라고 하였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그들을 강도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십자가처형은 특별히 민란이나 소요 사태를 일으킨 지방민들에게 관례적으로 가했던 지독한 형벌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사람 중 한사람은 예수를 향해 비아냥거렸지만 또 한사람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옳다고 인정한 강도는 구원의 은총을 입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a.자기 죄를 인정함(눅15:18)
b.영생의 약속(마19:29)
3. 그리스도의 죽음
1) 예수께서 운명하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처절한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주님은 큰소리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후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삶 전체를 하나님께 의탁했으며, 죽으실때도 그 영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며 운명하실때 여러 현상들이 일어났습니다. 해가 빛을 잃어 어두움이 임하였으며 성전 휘장의 한가운데가 찢어졌습니다
a.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게 함(출26:33)
b.하나님은 영이심(요4:24)
2) 백부장의 고백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는 모습을 지켜본 백부장은 그 모든 된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정녕 의인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인생의 문제들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분이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과 말씀하시는 중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참조, 요4:14). 이 말씀은 우리가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찾아야만 하는가를 가르쳐줍니다.
a.두려움으로 지켜봄(마27:54)
b.하나님의 아들임을 시인함(막15:39)
3) 무덤에 장사되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자 공회의원인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에게 나아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주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 세마포로 싸고 바위에 판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이때 니고데모도 함께했습니다(참조, 요19:39). 예수님의 장례는 예비일에 되어졌습니다. 주님은 금요일 오후에 돌아가셨으므로 다음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을 따르고, 따른 제자로서 끝까지 소신껏 주님께 충성하였습니다. 그는 주님을 메시야로 믿고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기를 기다렸던 자입니다.
a.존귀한 공회원으로 하나님나라를 기다렸음(막15:43)
b.성도들은 공개적으로 예수의 제자됨을 시인해야 함(마10:32)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는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아무런 죄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또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죄를 멀리하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 핵심
23:1-25
당시 유대인들에 대한 사형 집행권은 로마 총독이 행사했다. 빌라도에게 심문당하신 예수님은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십자가 처형(23:21)
십자가형은 원래 유대인의 처형법이 아니라 앗수르, 바사(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등에서 행하던 것이다. 반역자나 살인범, 강도 같은 중죄인이 이런 처형을 당했는데 그것도 노예나 식민지 족속에만 국한되었다. 십자가 형태는 X자나 T자, 十자 등 다양했다. 처형 방식은 먼저 죄수의 옷을 벗겨 채찍질한 다음 십자가에 묶고 팔과 다리와 발에 커다란 쇠못을 박았다. 이런 상태로 방치된 죄수는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심한 고통과 탈수 증세로 쇠진해 2,3일만에 죽는다. 그 시체는 야수나 새들에게 뜯어먹히기도 했다.
낙원(paradise, 23:43)
헬라어 ‘파라데이소스’는 바사인들이 온갖 수목과 꽃이 만발한 화려한 정원을 가리켜 ‘파이리 다에자’라고 부른데서 파생된 말이다. 70인역(LXX)에서 에덴 동산을 ‘파라데이소스’로 번역한 이래 사용된 단어로 본절외에 고후 12:4절과 계 2:7절에도 나온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천국의 모습으로써의 낙원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계 2:7), 회복된 에덴 동산을 낙원과 일치시킨다고도 볼수 있다. 우리는 성도가 죽으면 그 영혼이 바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살게된다(빌 1:23; 계 6:9)고 믿는다.
# 묵상
빌라도의 판결 ( 23:1-4 )
빌라도는 처음에는 예수님의 무죄를 판결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 무죄임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강력한 항의에 직면하자 그는 선고를 번복하였습니다. 법보다 군중의 소동에 더 마음을 쓴 그는 비겁한 사람의 대명사요, 구세주를 죽인 원흉으로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헤롯의 죄악 ( 23:8-11 )
헤롯은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심을 믿지않으면서도 이적 보기를 원하는 신성모독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우주적 왕권을 멸시한 반역죄를 저질렀으며, 예수님의 무고함을 알면서도 빌라도에게 심문하도록 권한을 넘겨줌으로써 왕으로서의 태만죄를 저질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헤롯은 예수님을 심문하는 일로 빌라도와 친구가 되었고 결국 사탄의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는 멸망의 길을 자초한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 ( 23:26 )
일반적으로 사형수는 자신이 달려 죽을 십자가를 처형 장소까지 직접 지고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력이 너무 쇠약해져서 십자가를 지는 일이 불가능해지자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그 일이 맡겨졌던것 같습니다. 시몬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것을 보면(막15:21; 롬16:13), 그가 우연히 주님의 십자가를 짐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의 명패 ( 23:38 )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히브리어와 헬라어, 그리고 로마어로 붙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언어로 기록한 이유는 예수님을 경멸하거나 조롱하기 위해 쓴 것이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예수님의 진정한 신분을 드러내는 것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일뿐만 아니라 온세상의 왕이며, 구원자이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고난과 수욕이 하늘의 영광이 된 것입니다.
십자가상의 두죄수 ( 23:39-43 )
한 행악자는 예수님을 비방했으나 다른 행악자는 회개와 함께 예수님께 은총을 구했습니다. 악한 행악자는 자신의 처형이 억울하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서 예수님을 비방했지만, 다른 행악자는 자신의 악행을 자인하며 예수님의 무죄를 인정하고 자신의 영혼을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성소의 휘장 ( 23:45 )
예수님의 운명과 함께 어둠이 임하고 성소 휘장의 한가운데가 찢어졌습니다. 성소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쳐진 것으로 하나님과의 분리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성전 휘장이 찢어진 사건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하나님과의 화목의 길이 활짝 열렸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 주위의 사람들 ( 23:47-49 )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절규하며 영혼이 떠나시자 한백부장은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라고 고백했으며, 사람들은 가슴을 쳤고, 여자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는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음은 승리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 ( 23:50-53 )
공회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우며 하나님나라를 기다리는 자로, 예수님을 새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 그도 예수님의 제자였지만(마27:57) 유대인들이 두려워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예수님의 죽음에 직면해 용기있게 나서서 예수님을 장사지냈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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